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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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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카카오 데이터 독점 막자”…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발의

일러스트=박길우

플랫폼 공룡 네이버와 카카오의 독점적 시장 지배 구조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치권과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커지는 가운데, 플랫폼 기업의 ‘데이터 독점’을 막기 위한 법안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12일 국민참여입법센터에 따르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포함한 국회의원 10명은 이런 내용을 담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지난 10일 발의했다.

개정안은 대형 플랫폼 사업자의 데이터 독점이 다른 사업자의 시장 진입과 혁신을 막는다고 보고, 데이터 독점을 막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데이터는 이용자의 상품·콘텐츠 선호도와 기타 소비·일상생활 패턴 등 이용자가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구매하는 과정에서 플랫폼에 제공하는 정보다. 한번 시장을 지배한 플랫폼은 이용자들의 데이터를 독점하고, 이를 통해 맞춤 추천 같은 개인화 서비스 품질을 높이는 데 활용한다. 한번 시장 점유율이 밀린 플랫폼은 서비스 품질에서 점점 더 경쟁력을 잃고 시장 독과점은 고착화된다.

데이터 독점의 폐해는 ‘아마존 저격수’로 불리는 리나 칸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 격) 위원장이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이란 제목의 과거 논문에서도 지적한 바 있다. 아마존은 오픈마켓(온라인 쇼핑몰) 사업자로서 수집한 입점 판매자들의 데이터를 활용해 경쟁 판매자 대비 자사 브랜드(PB) 상품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활용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는 국내에서도 데이터 독점의 폐해가 발생할 거라고 우려한다. 이상근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앞서 조선비즈와 전화 인터뷰에서 “과거 독점의 폐해가 가격 인상에 집중돼 있었다면 현재 IT 공룡 플랫폼은 정보(데이터)까지 독점해 경쟁 플랫폼이 진입할 수 없도록 만든다”라며 “미국에서 아마존이 먼저 보인 이 행보를 한국 플랫폼이 따라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번 개정안은 이용자 수, 매출액 등이 일정 기준에 해당하는 전기통신사업자에게 다른 전기통신사업자,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 통신판매업자, 이용자가 필요한 정보를 요청할 경우 정보를 공유해 사업자 간 데이터 격차를 완화하는 규정을 추가했다.

‘일정 기준에 해당하는 전기통신사업자’엔 네이버·카카오와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가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변 의원 측은 “이용자의 서비스 간 선택권을 보장하고 데이터에 기반한 서비스 혁신을 촉진해 디지털 경제의 지속 가능하고 건전한 성장을 도모하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전기통신사업법은 애플리케이션(앱)마켓 사업자 구글과 애플의 인앱(자체)결제 강제 정책을 막는 내용으로 한차례 개정돼 지난달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검색으로 시작해 쇼핑으로 마무리…200배 성장한 공룡, 한국을 삼켰다

지난 20여년간 폭풍 성장한 네이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다시 한번 도약의 계기를 맞고 있다. 비대면 생활이 일상화하면서 네이버의 대표 서비스인 검색뿐 아니라 커머스, 웹툰 등 콘텐츠, 클라우드까지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어서다. 네이버 하나면 다 되는 일상은 편리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독(毒)이 될 수도 있다. ‘네이버 없이 살 수 없게 된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시리즈로 파헤쳐 본다. [편집자 주]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 본사. /블룸버그

최근 주식투자를 시작한 김지민(35·가명)씨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스마트폰으로 네이버 해외 시황 뉴스를 체크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출근하면서는 주말에 갈 캠핌장을 찾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 후기를 꼼꼼히 살펴본다. 네이버 예약하기로 캠핑장 예약까지 마친다.

점심시간에는 네이버 QR 체크인으로 회사 인근 식당에 들어간다.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네이버 쇼핑 카테고리에서 ‘얇은 긴팔티’를 검색해 간절기 입을 만한 옷을 고른다. 결제는 등록해 놓은 신용카드가 있으니 숫자 여섯 자리만 누르면 된다. 현금처럼 쓸 수 있는 네이버페이 포인트도 살뜰히 챙겼다. 집에 돌아온 김씨는 어젯밤 못다 본 네이버 웹툰을 몰아보다 잘 작정이다. 김씨는 “얼마간 격리돼 있어도 스마트폰과 네이버만 있으면 살 수 있을 만큼 편리하다”라고 했다.

대한민국이 ‘네이버 공화국’이 되고 있다. 5000만 대한민국 인구의 80%가 넘는 4106만명(모바일인덱스 6월 월간활성사용자 수 기준)이 네이버를 쓰고 있다. 네이버 안에서 쓸 수 있는 결제시스템 네이버페이 이용자도 절반이 넘는 3000만명에 달한다. 사용자가 많으니 코로나19 시대 전자출입명부 해결사로도 뛰어들었다.

삼성SDS의 사내벤처에서 싹을 틔워 1999년 자본금 5억원의 ‘네이버컴’이란 이름으로 닻을 올린 네이버가 22년 만에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뒤를 잇는 유가증권 시장 시가총액 3위 기업으로 우뚝 섰다. 2002년 10월 코스닥 시장에 첫 상장하던 사업 초창기 때만 해도 네이버의 시총은 약 3000억원에 불과했으나 현재 70조원을 기록 중이다. 몸값이 200배가 넘게 뛴 셈이다. 그만큼 네이버의 현재·미래에 대해 투자자들이 베팅하고 있다는 의미다.

코스닥 시장 상장 첫해 각각 746억원, 302억원 수준이었던 네이버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지난해 기준 5조3042억원, 1조2153억원 수준으로 체급이 달라졌다. 이 기록은 해마다 새롭게 써질 것으로 증권업계는 보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도 네이버는 매출 3조1626억원, 영업이익 6244억원을 기록했다.

네이버는 국내 1위 인터넷 검색 포털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광고, 커머스 사업뿐 아니라 웹툰, 제페토 등 콘텐츠 서비스, 핀테크, 클라우드 등의 신사업으로도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 중이다. 올해 상반기에는 신사업 부문 매출이 처음으로 전체 50%를 넘어섰다. 더는 검색으로만 먹고 사는 기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덕에 상장 첫해 10여개 불과했던 계열사는 올해 6월 말 기준 약 50개까지 늘었다. 직원 수 역시 283명에서 4235명까지 불었다. 같은 기간 직원 1인 평균 급여는 3411만원에서, 지난해 처음 1억원대를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검색엔진을 장악한 네이버가 플랫폼 사업 특성상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네트워크 효과’에 기대어 빠르게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네트워크 효과는 한 이용자의 수요가 다른 이용자의 추가 수요를 불러오는 현상을 말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플랫폼은 가상공간에서 형성되기 때문에 거래 비용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라며 “(이런 상황에서) 네트워크 효과가 일어나 해당 분야의 지배적인 플랫폼으로 부상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익명의 업계 관계자는 “이용자가 많을수록 할 수 있는 서비스도 많아지고, 가격 경쟁력까지 갖추게 되면 결국 소비자를 자사 플랫폼 안에 가둘 수 있게 된다”라고 했다.

조선DB

◇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주면 망하지 않는다

‘검색 공룡’으로서의 확고한 현재 지위를 갖는 데 탄탄대로만 걸었던 건 아니다. 출범 당시에는 네이버도 후발 검색엔진 중 하나에 불과했다. 당시 야후, 다음, 라이코스 등이 국내 인터넷 시장을 주름잡고 있었다.

네이버는 당시 한글 검색에 약했던 외국계 포털의 단점, 토종 업체의 약점이었던 기술력을 보완하는 데 집중해 차별화된 가치를 소비자에게 제공하고자 했다. 2000년 한국어 데이터 기반의 ‘통합검색’을 세계 검색 포털로는 처음으로 도입한 데 이어 2002년 네이버 검색의 대명사로 통하는 ‘지식검색’, 2005년 누리꾼들이 어떤 정보를 가장 많이 찾고 관심 있어 하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실시간 급상승 검색’ 등을 시작한 것은 그 결과물이었다. 이 덕에 네이버는 검색점유율 90%에 육박할 정도로 국내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현 카카오 창업자 겸 의장인 김범수와의 협업은 네이버가 버틸 수 있는 큰 실탄이 됐다. 이해진 당시 네이버컴 창업자는 삼성SDS 출신 동료로 게임포털 ‘한게임’을 창업한 김범수와 손잡고 2000년 한게임을 인수, 합병하기로 했다. 이용자 수를 단기간 내 끌어올릴 방안을 고민하던 이해진과 이용자 수는 늘지만 수익을 내지 못하던 당시 김범수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덕분이었다. 기존 무료였던 한게임 내 게임을 유료화하면서 발생하는 매출은 네이버의 기술력으로 이어졌다.

한게임에 이어 네이버는 2000년 인터넷 검색 기술업체 서치솔루션까지 합병하며 덩치를 키웠다. 간판도 바꿨다. 네이버컴·한게임의 비전을 모두 담아 NHN으로 새 출발했다. 사명은 ‘넥스트 휴먼 네트워크(Next Human Network)’의 줄임말이다.

현 사명이 된 것은 2013년이다. NHN의 게임 사업부문이 인적 분할됐고, 김범수 의장을 비롯한 한게임 출신 대부분이 회사를 나갔기 때문이다. 서치솔루션 창업자인 이준호 NHN 최고운영책임자도 한게임을 맡으며 떠났다. 나 홀로 회사를 끌게 된 이해진 창업자는 네이버라는 간판을 다시 달았다.

이해진 창업자는 일찍부터 해외시장을 노린 것으로 유명하다. 창업 이듬해인 2000년부터 일본 검색시장에 진출했다가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2005년 철수했다. 2007년 재도전한 뒤에도 4년 이상 고전하다가 2011년 서비스를 시작한 모바일 메신저 ‘라인’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라인은 카카오톡 같은 모바일 메신저로 일본에서는 국민 메신저로 통한다. 이 창업자가 동일본 대지진 당시 소중한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절실하다는 점에 착안해 밤새가며 만든 서비스다. 현재 라인은 라인페이 등 핀테크 서비스도 선보이고 있으며 주력시장인 일본을 비롯해 한국, 대만, 남미, 스페인 등에서 1억8700만명(올해 3월 월간활성사용자 수 기준)이 쓰고 있다. 올해 3월에는 일본 소프트뱅크와 합작법인인 A홀딩스를 출범하고, 검색포털 야후재팬과 라인의 경영통합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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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의 그림자…독과점·여론조작·내부 문화

덩치가 커질수록 그림자도 커진다. 네이버에 대한 가장 큰 비판은 독과점이다. 젊은 세대의 검색 트렌드가 네이버에서 유튜브 등으로 넘어갔다고 하지만, 여전히 네이버의 국내 인터넷 검색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기준 약 60% 수준에 달한다(인터넷 트렌드 집계). 여전히 10명 중 6명은 네이버로 검색한다. 소수의 경쟁자와 경쟁 중인 커머스, 웹툰 등에서도 네이버가 시장을 선도 중인 것은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은 네이버의 독과점이 과거 전통 산업의 대기업 독과점보다도 폐해가 심각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상근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과거 독점의 폐해가 가격 인상에 집중돼 있었다면 현재 IT 공룡 플랫폼은 정보까지 독점해 경쟁 플랫폼이 진입할 수 없도록 만든다”라며 “미국에서 아마존이 먼저 보인 이 행보를 한국에서 네이버가 따라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플랫폼 중개 사업의 특성상 고객 개인화 정보를 많이 가질수록 서비스 품질 경쟁에서 유리한데, 한 번 독점이 이뤄지면 중개 수수료를 올려도 후발업체들이 가격 인하 정책만으로는 독점 플랫폼의 서비스 품질을 따라잡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예전 재벌 독점에 비해 나아진 게 없다”라며 “피해는 결국 소비자들이 입게 될 것”이라고 했다. 서비스 품질을 내세운 네이버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은 골목까지 매우 깊숙이 침투 중이다.

지금까지 네이버를 키웠던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실검)와 뉴스토픽은 이제 없다. 실검과 뉴스토픽은 선거의 계절만 오면 여론 조작 논란에 시달려왔다. 이용자들이 특정 검색어를 순간적으로 많이 검색하면 순위에 오르며 동시에 화제가 됐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 당시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 의혹은 관련자들의 실형으로 일정 부문 사실로 드러나기도 했다. 결국 네이버는 성장의 자양분 역할을 했던 서비스를 종료할 수밖에 없었다.

내부에서도 잡음이 나온다. 단기간 내 빠르게 성장을 이뤄온 탓에 조직문화가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한 네이버 직원이 오랜 기간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끝에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며 수면 위로 급부상했다. 네이버는 책임자에 대한 직무정지 등의 조치를 했지만, 여전히 회사 안팎에선 톱다운(상명하달식) 방식의 의사결정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공룡을 움직이는 사람들… 이해진과 12人의 리더

네이버 사옥과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

“회사를 해오면서 기술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해외에 진출하는 사업 모델에도 자부심이 컸지만 그보다 더 큰 자부심은 새롭고 건강한 회사 문화를 만들어 왔다고 생각한 것에 있었습니다. 저 역시 대기업에서 처음 직장을 시작했던 터라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것에 늘 관심이 많았고 여러분과 힘을 합쳐서 많은 새로운 시도를 해왔고 나름대로의 자랑스러운 문화를 만들어 왔다고 믿어 왔었는데 이 믿음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입니다. 지금 겪고 있는 일들은 회사 문화와 관련된 문제이기에 제 부족함과 잘못이 제일 크다고 생각합니다.”

네이버를 창업한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가 지난 6월 30일 임직원에게 보낸 이메일 사과문 중 일부다. 40대 한 직원이 오랜 기간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다가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지 약 한 달 만에 이 GIO가 직접 진화에 나선 것이다. 이를 두고 2004년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은 뒤 대외활동을 최고경영자(CEO)에게 일임하고 있는 이 GIO가 네이버를 움직이는 실세라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는 GIO 겸 라인 회장, 네이버·소프트뱅크가 50%씩 출자한 합작법인 ‘A홀딩스’의 대표이사 회장에 이름을 올리며 공식적으로는 경영일선에서 한 발 물러나 해외 사업만 챙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네이버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들은 이 GIO가 글로벌 사업뿐 아니라 네이버의 거의 모든 서비스를 직접 챙기고 있다고 전한다. 이 GIO가 지분율을 3.73%까지 낮추고 사내이사에서 물러났는데도 대기업 총수(동일인), 즉 네이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사람으로 지정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KAIST에서 전산학 석사학위를 마친 이 GIO는 1992년 삼성SDS에 입사했다. 수십명씩 미국에 가서 인터넷을 배우면서도 막상 직접 만든 소프트웨어는 뒷전으로 하는 삼성의 현실을 보고 회사를 나가겠다고 마음먹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5년 간의 준비 끝에 1997년 3월 네이버의 전신인 사내 벤처 ‘네이버 포트’를 만들고 웹 검색 개발에 뛰어들었으며, 1999년 이 사내벤처를 네이버로 독립시키게 된다.

“비즈니스를 해온 경험을 토대로 봤을 때 인터넷 사업은 대포가 아니라 유도미사일입니다. 타깃을 잡아도 사용자가 계속 바뀌고 환경도 변하며 경쟁자도 나타납니다. 모든 것이 변한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목표를 잡고 쏘는 대포가 아니라 끝까지 추격하는 미사일이어야 명중할 수 있습니다. 결국 정보기술(IT) 분야는 고객의 변하는 요구를 끝까지 맞춰가며 서비스할 수 있는 사업자의 열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2016년 공식 석상에 모처럼 나타난 이 GIO가 한 말이다. 그의 집요함, 사업가적 근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창업 이듬해부터 일본 시장을 동시 공략, 수차례 실패에도 ‘라인(2011년)’, ‘라인-야후재팬과의 경영통합(2021년)’ 같은 성과를 내고야 만 것도 그의 리더십을 짐작하게 한다. 다만 이런 불굴의 리더십이 경직된 조직문화, 직원들의 이탈로 이어졌다는 비판도 나온다.

◇ C레벨, 이해진 최측근으로 쏠림현상

‘보이지 않는 이 GIO의 리더십’ 전면에는 한성숙 CEO가 있다. 잡지사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한 CEO는 엠파스 창립 멤버로 검색사업본부장을 지냈다. 엠파스가 SK커뮤니케이션즈에 매각되면서 네이버의 전신인 NHN으로 자리를 옮겼고, 네이버 서비스 총괄 등을 거쳤다. 김상헌 당시 CEO가 물러나면서 2017년부터 네이버를 이끌고 있다.

조선DB

삼성SDS 출신으로 창업 초기부터 합류해 ‘이해진 GIO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최인혁 전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최근 직원의 극단적 선택 사건을 계기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난 상태다. 현재 COO는 공석이다. 다만 그는 네이버의 신규 핵심 먹거리 중 하나인 금융을 주력으로 하는 네이버파이낸셜, 해피빈재단의 대표 자리는 유지 중이다. 이에 대해 네이버 노동조합 측은 최 대표가 모든 계열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상진 최고재무책임자(CFO) 역시 삼성SDS 출신으로 창업 초기부터 네이버로 자리를 옮긴 ‘재무통’이다. 채선주 최고커뮤니케이션책임자(CCO)는 이 GIO,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등과 함께 일한 ‘IT업계 1세대’로 불린다. 2000년부터 네이버에 근무하며 회사 안팎의 각종 현안을 챙기고 있다. 이 GIO가 고민거리가 있을 때마다 의견을 구하는 최측근이다. 김범수 의장이 2010년 카카오 설립 당시 영입제의를 했지만, 네이버에 잔류해 이 GIO의 신임이 특히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IT 업계 관계자는 “직원의 극단적 선택을 계기로 네이버 조직 문화, C레벨에 과도하게 쏠려 있는 권한 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진 만큼 한성숙 CEO를 비롯해 일부 C레벨 교체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했다. 실제 이 GIO는 관련 이메일 사과문에서 “당장 어떤 책임이라도 지고 싶지만 회사의 새로운 구조가 짜여지고 다음 경영진이 선임되고 하려면 어쩔 수 없는 시간이 필요하다”라면서 “늦어도 연말까지 해내야 한다는 이사회의 제안이 맞다고 생각한다”라고 경영진 쇄신 가능성을 밝힌 바 있다.

◇ 네이버 속 독립회사 이끄는 7명의 리더

현재 네이버에는 독립적인 사내기업(CIC·company in company) 7곳의 수장이 있다. 대부분 회사 초창기부터 각 사업에서 경력을 쌓은 전문가다.

검색 리더 김광현(서치 CIC 대표), 디자인설계를 총괄하는 김승언(아폴로 CIC 대표), ‘밴드’ ‘스노우’ 같은 커뮤니티 서비스를 담당하는 김주관(그룹& CIC 대표), ‘바이브’ 등 오디오 서비스를 담당하는 박수만(튠 CIC 대표), 장소 기반 서비스를 전문으로 하는 이건수(글래이스 CIC 대표), 커머스를 맡는 이윤숙(포레스트 CIC 대표), 인공지능(AI) 기술 등을 담당하는 정석근(클로바 CIC 대표) 등이다.

2015년 처음 도입된 네이버의 CIC는 사업이 궤도에 오르면 별도법인으로 분사시키는 것이 궁극적 목표인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네이버 자회사인 네이버웹툰·네이버파이낸셜도 CIC 형태로 있다가 덩치를 키우면서 분사한 곳이다. CIC 대표는 관련 사업에 대해 독립적인 권한을 갖는 대신 성장에 대한 책임감·중압감도 동시에 받을 수밖에 없다.

CIC처럼 별도 조직은 아니지만, ‘센터’처럼 동영상 플랫폼, 뉴스 등을 각각 총괄하며 독립적인 권한을 갖는 장준기 엔터기술총괄, 유봉석 서비스운영총괄도 입김이 센 임원급으로 분류된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네이버 임원의 가장 큰 문제는 대부분 회사 초창기 대리·과장부터 시작해 현재 자리까지 올라온 ‘고인물’이라는 점이다”라면서 “대기업이 된 네이버의 현실을 냉정히 보고 뜯어 고치기 위해서는 결국 이해진 GIO가 얼마만큼 외부 새 피를 수혈하는가에 달려 있다”라고 지적했다.

‘검색’으로 한 번, ‘구독’으로 두 번… ‘이중 가두리’에 쇼핑공룡 등극

네이버쇼핑. /웹사이트 캡처

직장인 김용찬(30·가명)씨는 새 청소기를 사기 위해 네이버에 들어갔다. ‘다이슨 청소기’ 특정 모델을 검색해 보니 100여곳의 판매처가 주르륵 떴다. 가격은 40만~50만원대였다. 쿠팡·지마켓 등에서 최저가로 살 수 있었지만, 김씨는 별도 로그인을 하지 않고도 편리하게 결제할 수 있는 ‘네이버페이 마크’가 붙은 상품을 선택했다. 3만원 더 비쌌지만 ‘네이버 플러스 멤버십’에 가입하고 네이버 현대카드로 결제하면 다음번 네이버 쇼핑 때 쓸 수 있는 네이버페이 약 3만원어치가 적립돼, 최저가로 구매하는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이후 웬만한 쇼핑은 온라인으로 해결하는 김씨는 앞으로 현금처럼 쓸 수 있는 네이버페이를 적립할 수 있는 상품 위주로 골라야겠다고 결심했다.

‘국내 최대 인터넷 검색 포털’ 네이버가 연간 159조원(2020년 기준) 규모의 국내 온라인 쇼핑(전자상거래·이커머스) 시장도 빠르게 장악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온라인 쇼핑 시장에서 거래액 기준 네이버는 점유율 18.6%로 1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 뒤를 잇고 있는 쿠팡(13.7%), 지마켓·옥션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12.4%)와 비교해도 5%포인트에 가깝게 격차를 벌렸다.

쇼핑을 위해 검색포털부터 찾는 소비자들이 네이버페이를 통해 해당 판매처(사이트)에 로그인하지 않고도 결제할 수 있도록 하고, 구독 시 높은 적립금을 부여함으로써 쇼핑을 위해 다시 네이버를 찾을 수밖에 없도록 한 구조적 지위가 네이버의 1위 비결이다. 네이버는 온라인 쇼핑몰들의 플랫폼에서 한발 더 나아가 ‘스마트스토어’ ‘브랜드스토어’ 등 사업자로 나서며 직접 경쟁에도 뛰어들고 있다.

이런 네이버를 중심으로 오프라인 유통망을 보유한 이마트와 택배시장 1위 CJ대한통운이 뭉쳐 ‘반(反) 쿠팡 연대’를 만든 것은 플랫폼 파워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건이라고 업계는 평가하고 있다.

온라인 쇼핑이 네이버 사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점점 커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1~6월) 커머스(쇼핑 관련) 사업 매출은 6896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4874억원)보다 41% 늘었다. 이 기간 전체 사업 매출 대비 비중으로 보면, 서치(검색) 사업이 1년 만에 54.42%에서 49.92%로 줄어들 동안 커머스는 20.05%에서 21.81%로 늘었다. 메리츠증권은 네이버의 올해 연간 거래액이 지난해(28조원)보다 40% 증가한 4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커머스 매출 비중이 더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걸 쉽게 짐작해볼 수 있다.

그래픽=정다운

◇ 심판(쇼핑검색)이자 선수(쇼핑몰)로 뛰는 네이버

처음부터 유통 회사로 시작한 쿠팡·이베이를 제치고 네이버가 국내 온라인 쇼핑 시장 선두에 오른 것은 ‘심판이 선수로도 뛰는 이중 플랫폼 사업자’로서 유리한 경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온라인 쇼핑은 여러 판매처의 가격과 구매 후기 같은 상품 정보를 비교하기 위한 검색 행위부터 시작되는데, 전체 인구의 80%가 넘는 4106만명이 이용하는 검색 포털을 가진 네이버가 점유율 경쟁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네이버의 커머스 사업은 2개 층의 이중 플랫폼 구조를 이루고 있다. 위층은 오프라인 백화점처럼 판매자들이 모이는 쇼핑 플랫폼인 ‘오픈마켓’이다. 쿠팡·지마켓·옥션·11번가·쓱닷컴 등이 직접적인 경쟁 오픈마켓이다. 아래층은 오픈마켓들이 모인 플랫폼 ‘쇼핑검색’이다. 이용자는 쇼핑검색으로 구매 조건에 맞는 오픈마켓을 찾은 후 그곳 웹사이트나 애플리케이션(앱)에 접속해 상품을 결제한다. 네이버는 1등 검색 포털의 힘으로 쇼핑검색을 자연스럽게 장악한 후 네이버페이나 자사 쇼핑 서비스를 통해 오픈마켓 판마저 뒤흔들고 있다.

사업 초창기였던 2001년 쇼핑검색 ‘지식쇼핑’(현 ‘네이버쇼핑’의 전신)을 선보인 네이버는 현재 카카오·다나와·에누리 등 경쟁 플랫폼을 평정하고 80%가 넘는 점유율을 거머쥐고 있다(공정거래위원회, 2018년 기준). 쿠팡·지마켓·옥션·11번가·쓱닷컴 같은 오픈마켓들은 네이버쇼핑 안에서 경쟁하고 있다.

네이버쇼핑 검색결과 예시. '네이버 마크'가 붙은 판매처에서 상품을 구입하면 네이버 간편 로그인, 네이버페이 적립 등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웹사이트 캡처

네이버는 이런 경기장의 심판 역할에 만족하지 않았다. 2012년 오픈마켓 ‘샵N’(현 ‘스마트스토어’의 전신)을 출시하고 다른 오픈마켓과 직접 경쟁을 시작했다. 업계 관계자는 “일각에선 쿠팡의 성장이 업계의 가장 큰 위협이 아니냐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네이버가 더 큰 위협으로 받아들여진다”라며 “쿠팡은 어쨌든 ‘잘 뛰는 선수’니까 다른 선수들이 분발해 경쟁할 수 있지만, 네이버는 심판 역할을 하면서 선수로도 뛰니까 얼마든지 게임을 유리하게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네이버는 이런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스마트스토어가 판매자로부터 입점비와 판매 수수료를 받는 오픈마켓이 아닌 ‘결제 수수료만 받아 온라인 쇼핑몰 구축을 도와주는 플랫폼’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경쟁업체들은 스마트스토어를 직접 경쟁자라고 보고 있다. 실제로 점유율을 네이버에 빼앗기고 있다.

지난해 10월 공정거래위원회는 2015년 연간 거래액 기준 4.97%였던 네이버의 오픈마켓 시장 점유율이 2018년 1~6월 21.08%로 늘었다고 밝혔다. 당시 공정위는 네이버가 스마트스토어의 상품 위주로 네이버쇼핑 검색결과 상단에 노출되도록 검색 알고리즘을 변경했고, 이로 인해 네이버 오픈마켓(스마트스토어) 상품의 노출 비중과 오픈마켓 시장 점유율이 상승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공정위는 과징금 265억원을 회사 측에 부과했고 네이버는 이에 불복해 현재 소송을 진행 중이다.

공정위는 네이버를 두고 “중개 역할(쇼핑검색)을 하는 동시에 플랫폼 입점 업체(오픈마켓)와 직접 경쟁하는 위치에 있는 ‘이중적 지위’를 가진 플랫폼 사업자”라고 표현했다. 이중 플랫폼 사업자란 얘기다. 공정위가 주장하는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가 아니더라도, 네이버는 이중 플랫폼 사업자로서 다른 오픈마켓에 로그인해야 하는 불편함을 없애주고 네이버페이 추가 적립과 웹툰 이용권 지급 등 네이버 내 다른 서비스 혜택을 통해 스마트스토어의 점유율을 높일 수 있었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 소비자·판매자 다 빨아들이는 ‘구독’

지난해 6월 네이버는 ‘네이버 플러스 멤버십’을 출시했다. 월 4900원을 내면 쇼핑 결제액의 최대 5%를 네이버페이로 적립해주고 웹툰·음악 등 디지털 콘텐츠 이용 혜택을 주는 구독 상품이다.

네이버는 월 4900원을 내면 쇼핑 추가 적립에 웹툰과 음원, 동영상, 클라우드 저장 공간까지 골라 쓸 수 있는 ‘네이버 멤버십 플러스’를 선보이고 있다. /네이버

네이버 플러스 멤버십은 미국 최대 쇼핑업체인 아마존을 벤치마킹한 이용자 락인(lock-in·특정 제품이나 서비스에 소비자를 묶어두는 효과) 전략이란 평가를 받는다. 현재 선두를 달리는 거래액을 지속적으로 늘리려면 충성 고객층을 확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아마존은 월 12.99달러(약 1만5000원)에 배송비 무료, 디지털 콘텐츠 이용 등 혜택을 주는 구독 상품 ‘아마존 프라임 멤버십’을 2004년 출시, 지난해 말 기준 2억명이 넘는 회원을 유치하며 락인 효과를 증명했다. 네이버는 지난해 말 기준 목표치(200만명)을 넘는 250만명의 회원을 모았다.

올해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락인 전략은 더 중요해졌다. 쿠팡은 여전히 추격 중이고 신세계가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했다. 11번가는 지난달 31일 아마존 직구 서비스(아마존 글로벌 스토어)를 시작했고 카카오는 1일 이커머스 자회사 카카오커머스를 카카오톡 시너지를 위해 재합병한다.

네이버는 소비자뿐 아니라 쇼핑시장에서 중요한 자산인 판매자를 빨아들이기 위해서도 저렴한 수수료라는 미끼를 던지고 있다. 스마트스토어 입점 판매자가 네이버에 내는 거래(결제) 수수료는 결제수단에 따라 결제액의 1~3.85% 남짓이다. 최대 10%대 수수료율을 적용하는 쿠팡 등과 비교해 매력적인 조건이다.

정기구독 서비스도 최근 시작했다. 소비자들이 입점 판매자를 구독, 생필품 등을 자동 구매하고, 정해진 날짜에 맞춰 정기 배송해주는 것이다. 네이버는 판매자들이 쿠팡처럼 배송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스스로 물류 시스템을 갖추는 대신 업계 1위 CJ대한통운과 손잡았다. CJ대한통운이 지을 예정인 66만㎡(20만평) 규모의 풀필먼트(상품 보관·포장, 출하, 배송 등 일괄 처리)센터를 네이버가 활용한다. CJ대한통운도 오픈마켓들의 물류 수요를 겨냥한 ‘이(e)풀필먼트 서비스’ 사업을 벌이고 있는 만큼 국내 최대 오픈마켓 네이버와의 동맹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오픈마켓 쓱닷컴을 가진 유통 대기업 신세계도 오는 4분기 네이버와 협력해 ‘이마트 장보기’ 서비스 출시와 백화점 명품의 ‘브랜드스토어’ 입점을 계획 중이다. 지난 2월 출시된 네이버 브랜드스토어는 중소상공인(SME) 누구나 입점하는 스마트스토어와 달리 유명 브랜드 기업들이 입점하는 또 다른 오픈마켓이다. 네이버는 앞으로 더 다양하고 많은 판매자 수요와 오픈마켓 성장을 자신하고 있다. 한성숙 대표는 지난 1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브랜드스토어의) 입점 문의는 많아지고 있고 거래액 역시 성장하고 있다”라며 “5~8년 내 스마트스토어와 동일한 비중으로 성장할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플랫폼 독과점, 쇼핑서도 재현되나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도마에 오른 네이버 검색과 쇼핑의 이해상충 문제. /국회사진기자단

전문가들은 수요·공급을 대거 빨아들이는 네이버의 공격 행보가 시장 독과점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아동학과 교수는 “소비자 입장에선 판매 경험이 많은 플랫폼으로 가는 게 유리한데, 소비자가 몰리면 판매자도 몰리고 시장이 점점 과점화될 수밖에 없다”라며 “지배적인 사업자가 나타나면 시장 경쟁이 줄어 소비자 입장에선 가격 상승 등의 권익 침해로 이어지는 게 플랫폼 독과점의 일반적인 수순이다”라고 했다.

쇼핑 플랫폼이 ‘판매 경험이 많다’는 건 거래 데이터도 그만큼 많이 가질 수 있다는 의미다. 소비자·판매자를 따라 거래 데이터도 한 곳에 집중되고, 이를 장악한 플랫폼은 소비자를 위한 상품추천 등 개인화 서비스 품질 경쟁에서 다른 오픈마켓을 압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플랫폼 경쟁은 독점 사업자가 정보(데이터)는 물론 산업의 모든 것을 차지하고 종속시키는 ‘승자 독식(Winner takes all)’ 방식이다”라며 “아마존과 월마트닷컴이 80% 점유율을 차지한 미국 시장만큼 독과점 문제가 불거지진 않았지만, 한국 시장도 네이버·쿠팡·이베이가 시장 절반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2~3년이 지나면 이런 문제(플랫폼 독과점)가 가시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데이터 독점의 폐해는 ‘아마존 저격수’로 불리는 리나 칸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 격) 위원장이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이란 제목의 과거 논문에서도 지적한 바 있다. 아마존은 스스로가 오픈마켓이자 그 속에 입점한 자체 브랜드(PB) 판매자인 이중 플랫폼 사업자인데, 오픈마켓으로서 수집한 입점 판매자들의 데이터를 활용해 경쟁 판매자 대비 자사 PB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활용했다는 것이다.

변호사·세무사·트레이너까지… ‘지식플랫폼’에 가둬 수수료·광고 수익 극대화

네이버

“언제 어디서든, 지식 상담으로 수익을 창출하세요!”

네이버가 ‘지식인(iN) 엑스퍼트’란 플랫폼을 통해 전문가를 모집하기 위해 내세운 문구다. 네이버는 지식인 엑스퍼트를 통해 법률이나 소액소송, 세무 같은 전문분야뿐 아니라 피트니스, 번역, 뷰티, 인테리어 같은 일상 분야에서까지 전문가와 실시간 상담을 나눌 수 있는 유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심지어 사주나 타로점 같은 이색 서비스도 제공 중이다. 이를 위해 콘텐츠를 제공할 변호사, 세무사, 공인중개사 같은 이른바 ‘사(士)’자가 포함된 직업군뿐 아니라 검증된 업계 전문가를 플랫폼으로 끌어들이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네이버가 이처럼 전문직을 내걸고 이를 원하는 사용자와 매칭해 주는 ‘온라인 사무장’을 자처하는 이유는 뉴스나 쇼핑, 웹툰 같은 콘텐츠 외에 전문적이면서도 누구나 내놓을 수 없는 희소한 콘텐츠까지 구색을 갖춰 사용자를 포털 플랫폼에 더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한 것이란 게 중론이다.

지식인 엑스퍼트의 뿌리이자 오늘날 국내 인터넷 최대 검색 포털로 네이버를 자리매김하게 해준 ‘지식인’ 서비스는 ‘지식플랫폼’으로 업그레이드됐다. 지식인 서비스는 현재도 무료로 제공 중이다. 여기에 네이버가 검증한 전문직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며 유료를 내건 것이 엑스퍼트다. 결국 이런 네이버의 콘텐츠 확보는 이용자 수 기준으로 광고 단가를 매기는 현 구조에서 주 수익원(광고)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네이버는 각 업계 이익단체와 충돌하고 있다. 변호사 등 일부 업종과는 법 위반 등을 놓고 갈등을 벌이고 있다. 아무런 규제도 안 받는 플랫폼 사업자 네이버가 위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뿐만 아니라 각 업계에서 플랫폼 스타트업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로톡(변호사 홍보 플랫폼), 강남언니(소비자·의사 연결해주는 플랫폼) 등과의 차후 경쟁도 불가피하다. 네이버가 거대 플랫폼 파워를 등에 업고 현업은 물론, ‘제2의 네이버’로 클 수 있는 기업들의 씨마저 말려버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진욱 변호사(법무법인 주원)는 “네이버 같은 인터넷 사업자는 성장하는 신산업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규제 없이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으나 더는 시장 혼란을 방치하기 어려울 정도로 급성장했다”라면서 “이제는 국내에서도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명확한 규제가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했다.

◇ 콘텐츠 늘리고, 광고수익까지 ‘두 마리 토끼’

네이버 엑스퍼트 메인 홈페이지. /엑스퍼트 홈페이지 캡처

네이버가 지식플랫폼으로 먹거리를 확장하려는 이유는 지식인에서의 성공 경험이 작용했다. 2002년 지식인을 내놓기 이전까지 네이버는 야후, 다음, 라이코스 등에 비해 존재감이 미미한 검색 포털 후발주자에 불과했다. 사용자가 올린 질문 등에 다른 사용자가 답변하는 식으로 지식을 공유하는 이 서비스는 정보전달이라는 일방향성에 그쳤던 포털의 기능을 쌍방향 소통으로 바꾸는 전환점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야후와 다음은 물론, 구글까지 지식인과 유사한 서비스를 도입하기도 했다.

2019년 첫선을 보인 지식인 엑스퍼트는 지식인에 ‘전문성’을 더했다. 누구나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지식인과 달리, 네이버의 검증을 거친 전문가가 답을 준다. 양질의 답을 제공하는 만큼 이용자는 전문가에게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이 중 5.5%는 수수료 명목으로 네이버가 가져간다.

이를 위해 네이버는 전문가를 수시로 모집하고 있다. 전문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자격증 등을 필수로 확인한다. 변호사는 대한변호사협회로부터 받은 변호사 신분증을, 변리사는 특허청, 대한변리사회로부터 받은 자격증·등록증 등을 각각 제출해야 하는 식이다. 이후 네이버는 영업일 기준 7일 동안 심사로 엑스퍼트 적격 여부를 판단한다.

‘네이버 톡톡(네이버 ID 기반 무료 채팅 서비스)’을 이용해 전문가와 상담하고, 이용자는 그 대가를 ‘네이버페이’로 결제하는 식의 가두리 전략도 더해졌다.

◇ ‘사(士)’들과 끊이지 않는 갈등… ”플랫폼 종속 우려”

네이버가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시도를 꾀하고 있지만, 반발도 만만치 않다. 기존 사업자들은 국내 최대 포털이라는 독점적 지위를 앞세운 네이버에서 서비스할 경우 당장은 수익을 낼 수 있지만, 향후에는 완전히 종속될 위험이 있다고 우려한다. 이는 곧 수수료 인상이나 현재는 부과하지 않고 있는 광고비 청구서로 연결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검색 결과 상위에 업체명을 노출해주는 ‘파워링크’ 같은 광고상품이 엑스퍼트 서비스가 안정화된 뒤에 나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라면서 “이 경우 거대 자본을 등에 업은 전문직들이 우선 노출돼 소비자들은 왜곡된 선택을 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한국법조인협회 관계자들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네이버 지식인 엑스퍼트' 서비스 사업자인 네이버 주식회사와 한성숙 네이버 대표, 네이버 엑스퍼트 실무담당자 등을 상대로 한 변호사법 위반 등 혐의 고발장을 제출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변호사 업계는 특히 엑스퍼트에 반발하고 있다. 변호사 단체는 네이버가 지식인 엑스퍼트로 법률상담 서비스를 하며 수수료 공제 후 변호사에게 상담료를 지급하고 있는 것을 문제 삼고 있다. 이 수수료가 현행 변호사법에서 금지하는 ‘변호사가 아닌 자와의 이익분배’라는 게 이 단체의 주장이다. 또 추후 네이버가 수수료율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네이버는 엑스퍼트의 형사 고발 이후 수수료율을 5.5%에서 1.6%로 인하한 바 있다. 이는 반대로 다시 올릴 수 있다는 의미다.

앞서 지난해 6월 말 여해법률사무소에 이어 같은 해 7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출신 변호사들로 이뤄진 한국법조인협회(한법협)가 변호사법 위반으로 지식인 엑스퍼트를 형사고발했다. 올해 7월 경기 성남 분당경찰서가 불송치 결정을 했지만, 고발인들의 이의신청으로 사건은 현재 성남지청에 이첩돼 있어 불씨는 여전하다.

현재 법률플랫폼 ‘로톡’과 갈등을 빚는 대한변호사협회도 지식인 엑스퍼트를 로톡과 같은 대상으로 보고 있다. 이윤우 변협 수석대변인은 “현재 로톡에 집중된 것은 사실이지만, 엑스퍼트 역시 로톡과 같은 대상에 포함된다”라며 “중장기적으로는 지식인 엑스퍼트에 대한 대응책도 마련해나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변협은 ‘변호사 광고에 관한 규정’을 근거로 플랫폼을 통한 변호사의 알선·광고를 원천 차단하겠다며 로톡 가입 변호사들에 대한 징계 절차에 착수한 상태다. 현재 지식인 엑스퍼트에 등록된 변호사는 약 130명으로 집계된다.

부동산도 네이버가 업계와 갈등을 빚는 대표적인 업종이다. 공인중개사들은 네이버 등 플랫폼 사업자가 중개업 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네이버는 한국공인중개사협회(협회)에 공문을 보내 “부동산 중개 시장에 직접 진출할 의도가 전혀 없다”고 강조했지만, 공인중개사 업계 한 관계자는 “직접 진출은 안 하겠지만, 지분 투자 등의 방식으로 간접 진출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게 아니냐”라고 지적했다.

공인중개사 반발을 불러왔던 네이버의 약관 개정 불씨도 남아 있다. 허위매물을 관리하겠다는 취지로 네이버는 부동산 정보업체(CP) 매물 등록 시 집주인 전화번호와 네이버 아이디를 추가하도록 약관 개정을 추진했다. 이를 두고 공인중개업계는 공인중개사법상 제3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맞섰다. 이에 네이버도 한발 물러선 상태다. 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네이버가 중개업 진출을 염두에 두고 정보를 취합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면서 “정보 취합은 공인중개사에게 맡겨 놓고 이를 취합해 네이버에 넘기면 네이버가 어떻게 관리·감독하는지 확인할 방법도 없다”라고 말했다.

김용희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는 “네이버가 디지털 플랫폼으로 시장에 진입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존 사업자와 분쟁이 생길 수밖에 없다”라며 “기존 사업자 입장에서는 로컬(지역)에서 경쟁하던 것을 전국으로 확대해야 하고, 경쟁 심화는 수수료율 인하로도 이어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플랫폼으로 사람 모을 땐 언제고… 문제 생기면 “우리도 피해자”

카카오의 대표 웹소설 '나 혼자만 레벨업'이 '솔로 레벨링'이라는 해적판으로 왓패드에 올라와 있는 모습. 현재는 삭제됐다. /왓패드 캡처

네이버가 올해 1월 6600억원(6억달러)을 들여 인수한 세계 최대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에 국내 웹소설·웹툰 불법 번역판이 무더기로 유통 중인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작가들은 공들여 만든 작품이 공짜로 풀리자 분통을 터뜨리면서도 거대 플랫폼에서 벌어진 불법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워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네이버 측은 “해적판 신고를 받는 즉시 이를 삭제하고 있으나, 우리 역시 피해자다”라는 입장이어서 논란은 가중되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불법 복제물의 유통 창구가 네이버의 관리·감독 영역에 있다면, 100%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네이버 포털 안에서처럼 콘텐츠 필터링 수준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며 “할 수 있는데도 안 하는 것은 플랫폼 사업자로서 스스로 경쟁력을 갉아먹는 것이고, 법적 책임도 질 수 있다”라고 했다.

수요·공급자가 쉽게 만나 계약(거래)할 수 있는 장(場)을 제공해준다는 취지로 소정의 통행세(수수료)를 받으며 ‘플랫폼 공룡’으로 성장한 네이버가 막상 불공정 거래가 일어났을 때는 뒷짐을 지고 있어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이런 문제는 웹툰 유통뿐 아니라 온라인쇼핑 중개, 소상공인 대상 광고사업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중이다.

◇ 중개해준다는 네이버, 분쟁 생기면 떠넘기거나 방관

“네이버 분쟁센터가 왜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해결해주는 것도 없고 결국엔 소비자고발센터로 가라 하니까요.”

“판매자는 연락도 잘 안 되고 분쟁 때문에 분쟁조정신청을 하는데, 판매자와 알아서 협의하라니. 중재해줘야 할 네이버 측 태도에 답답합니다.”

네이버가 오픈마켓으로 직접 운영 중인 ‘스마트스토어’ 관련 제품 하자로 판매자와 갈등을 겪은 소비자들이 네이버 블로그에 토로한 반응이다.

한국소비자원의 지난 1월 보고서에 따르면, 네이버 같은 온라인 플랫폼에서 발생한 소비자 피해 중 40%가량은 피해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소비자가 피해 입증 자료를 미흡하게 제출했거나 판매자 신원정보가 미상이라는 등의 이유에서다.

이는 키워드·블로그 광고 등의 방식으로 네이버 광고 플랫폼에 의존하고 있는 소상공인에게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블로그 광고가 대표적이다. 블로그 광고는 네이버가 대행업체를 통해 확보한 파워블로그 등을 통해 이뤄진다. 이를 활용하면 특정 키워드 검색 시 상단에 올라가기 때문에 소상공인들은 비용을 지불하지만, 상호 등이 얼마나 노출돼 어느 정도의 홍보 효과를 봤는지 알 수 없다. 이를 악용해 소상공인 대상 블로그 광고로 ‘대박을 낼 수 있다’라며 접근하는 악성 마케팅 업체도 여러 곳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은 청와대 국민청원에 광고업자를 처벌해달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소상공인 업계에선 네이버가 이런 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방관하고 있어 광고비 지출만 늘고 있다고 호소한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현행 전자상거래법에 따라 소셜미디어(SNS) 플랫폼 운영사업자를 전자게시판 서비스 제공자로 분류해 책임을 분류하고 있지만, 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업자가 대부분이다”라며 “소비자 보호를 위해서는 정보 제공, 적극적인 중재 등 플랫폼 운영 사업자의 협조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사진은 한 행사에 참석한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연합뉴스

◇ 규제 기로 선 네이버, 중개 이상의 역할 해야

온라인플랫폼이 단순 중개 역할뿐 아니라 거래를 하는 중요한 ‘보증 수표’가 되고 있지만, 현행법은 시장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커머스(전자상거래) 플랫폼 시대를 맞아 플랫폼에 대한 규율을 강화하는 내용의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소비자가 플랫폼 운영사업자에게 직접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배상책임이 포함됐다.

유동수 의원실 관계자는 “소비자들은 플랫폼 내 입점사보다 플랫폼 자체의 영향력 등을 믿고 제품을 구매하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피해 사례 발생 시 플랫폼 사업자들은 입점사에 책임을 떠 넘기는 듯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라며 “이런 피해 사례를 줄이기 위한 취지로 법안을 발의했다”라고 설명했다.

최근 정부·국회에서는 네이버 등 플랫폼 독과점에 대한 제동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네이버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그러나 “한성숙 대표를 포함해 네이버 내부적으로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몰려서 생긴 독점일 뿐, 이로 인해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는 외부 시각에는 크게 동의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있다”라고 전했다.

국민의힘에서 경제통으로 꼽히는 정무위 윤창현 의원은 “네이버에 가면 다 할 수 있는 편리성 때문에 자연 독점이 일어나고 있으나, 가진 힘을 그대로 행사하면 독점 지위를 남용하는 것이다”라면서 “이를 내부적으로 점검, 막을 수 있는 장치를 두지 않으면 제3자의 철퇴가 불가피하다”라고 했다.

이해진 개인 회사 ‘지음’ 사무실은 아파트 가정집… 꼬리 무는 의혹 3가지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가 지분 100%를 보유한 개인자산관리회사 '지음' 본점이 있는 아파트. /김양혁 기자

지난 10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역 인근에 있는 아이파크분당 1단지를 찾았다. 총 4개 동이 있는 아이파크분당 1단지는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겸 글로벌투자책임자(GIO)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개인투자회사 ‘지음’이 둥지를 트고 있는 곳이다. 네이버는 지음과 지분 등 아무런 사업적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공정거래위원회는 지음을 사익편취 규제 대상 회사로 보고 주시하고 있다. 이 회사는 최근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수백억원의 평가이익을 챙겼다는 의혹에 휘말리기도 했다.

실제 지음이 아파트를 사무실로 쓰고 있는지를 외부에서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주소지를 찾아 여러 차례 인터폰을 했지만 아무런 응답 없이 출입문만 열렸다. 지나가던 입주민은 “인터폰 후 출입문이 열렸다는 것은 안에 사람은 있는 것”이라고 했다.

1단지 일부 동은 사무실과 주거용 아파트가 섞인 주상복합형태였지만, 지음이 있는 곳은 주거용이 대부분이다. 아파트 인근 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지음이 있는 동은 사무실로 쓰는 경우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사업자 입장에서 임대료 환급 등 세금 혜택도 받지 못하는데 굳이 주거용 아파트를 사무실로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라고 했다.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가 지분 100%를 보유한 개인자산관리회사 '지음' 본점이 있는 아파트. 수차례 인터폰을 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김양혁 기자

지음의 공시 담당자 유선번호로 통화를 시도했지만, 역시 연락이 닿지 않았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내 게재된 전화번호는 네이버의 고객센터 번호였다. 현재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통화 연결을 할 수 없다는 안내가 흘러나왔다. 이에 대해 네이버 측은 2017년 준대기업집단으로 지정, 지음도 공시 대상이 되면서 급히 네이버 전화번호를 동일하게 게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시각은 다르다. 대표 번호가 같은 경우 차명회사로 볼 여지도 있다는 것이다.

조선비즈는 지음의 등기부등본, 현장 답사, 전문가 취재 등을 통해 네이버와 관련이 없다는 지음의 세 가지 수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 혜택도 없는데… 이해진 총수 지정 직전 가정집으로 들어갔다?

23일 대법원 등기소에 따르면 지음은 지난 2017년 3월부터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역 인근에 있는 아이파크분당 1단지로 본점을 옮겼다. 2019년 한 차례 전세를 연장한 뒤, 올해 3월에도 계약을 연장해 2023년 3월까지 계약을 맺은 것으로 파악된다.

지음이 아파트로 사무실을 옮긴 2017년은 공정위가 이해진 GIO를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한 해이기도 하다. 그해 9월 네이버가 공정위로부터 공시대상기업집단(준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며 지음의 존재가 대외로 알려졌다. 이 GIO가 네이버를 실제로 지배하는 총수가 되면서 그의 개인 회사를 비롯해 친족 보유 회사 정보 등을 공시해야 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당시 네이버는 이해진 GIO의 지분이 4%에 불과한 점을 근거로 ‘총수 없는 기업 집단’ 지정을 요청하며 전방위로 로비를 벌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라면서 “총수 지정 반년 전쯤 지음의 본거지를 가정집으로 옮겨둔 것은 공정위 결정을 앞두고 대비를 해둔 것으로도 보인다”라고 했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경제정책국장은 “과거부터 총수, 총수 일가들이 개인회사를 만든 목적은 대부분 사익편취였다”라며 “(주식회사와 비교해) 공시 의무를 크게 지지 않는 유한회사 형태에 본점이 아파트라는 점은 조심스럽고, 은밀하게 운영하기 위한 형태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권 국장은 “대기업 총수 일가가 아파트라는 주거지 용도를 활용해 사무실을 꾸린 사례는 이례적이다”라고도 했다.

② 지음 대표는 이해진 친동생… 회사는 분당, 주소는 제주도?

네이버 이해진 창업자가 2018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감에 참석한 모습. /조선DB

이 GIO에게는 ‘은둔의 경영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외부로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서다. 지난 2019년 한 강연 대담자로 나와 “내성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은둔형 경영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밝히기는 했지만, 공식 석상에 나선 그의 행보는 손에 꼽을 정도다. 지난 2017년과 2018년 두 해에 걸쳐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 네이버의 뉴스 편집권한과 뉴스 댓글을 통한 여론조작 논란 등의 질의에 대답한 바 있다.

이런 성향 탓에 이 GIO는 자신은 물론, 가족사에 대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대기업과 달리 이해진 GIO의 친족 가운데 네이버 지분을 보유한 이도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래서 지음에 관심이 더 집중된다는 평이 나온다. 지음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인 이해영씨는 이 GIO의 친동생이다. 가족 중 유일하게 이 GIO 지근 거리에서 경영을 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이해영 대표는 서울과 분당 일대에 거주하다가 지난해부터 거주지를 제주도로 옮긴 것으로 파악된다. 지음이 있는 분당과는 거리가 있다. 이해영 대표의 주거지 등기부등본을 보면, 전세권자로 이 GIO의 이름도 공동전세로 같이 표기돼 있다. 전세 계약은 오는 2022년 6월까지다. 그가 분당에서 실제 근무하고 있는지 여부는 현장에서 확인할 수 없었다.

이해영 대표는 과거에도 간접적으로 이 GIO와 업무상 연결고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해영 대표는 과거 1999년 설립된 ‘인터베이스’라는 회사의 대표이사를 맡은 바 있다. 이 회사는 정보기술(IT) 서버 관련 회사였다. 네이버가 2000년 게임포털 한게임을 흡수합병하며 급증한 트래픽을 감당하기 위해 외부 서버 공급업체로부터 납품을 받았는데, 인터베이스도 여기에 포함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GIO의 친동생뿐만 아니라, 부친인 이시용씨도 인터베이스 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린 것으로 파악된다. 이시용씨는 삼성생명 공채 1기로 입사해 대표까지 지냈다. 인터베이스는 설립 10년도 채 되지 않은 2008년 청산된 상태다.

③ 지음 대표번호는 네이버 고객센터?

네이버 창업주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가 지분 100%를 보유한 개인회사 지음의 전화번호와 네이버 고객센터 전화번호가 같은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및 네이버

세 번째 의혹은 지음의 대표 전화번호가 네이버 고객센터로 게재된 것이다. 이는 이해진 GIO의 개인회사 지음과 사업적 연관성이 없다고 밝힌 네이버의 주장과 대치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네이버는 이에 대해 “2017년 준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며 지음도 공시를 하게 됐고, 규모가 작은 회사다 보니 회사 번호로 게재하게 됐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김진욱 변호사(법무법인 주원)는 그러나 “같은 대표번호를 쓰고 있는 경우 차명 회사로 볼 수 있는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 플랫폼을 장악하고 있는 카카오에 정부·국회의 규제가 집중되고 있다. 반면 인터넷 검색포털뿐 아니라 이를 기반으로 한 쇼핑, 페이, 콘텐츠, 클라우드 등 여러 방면에서 공격적으로 세를 확장 중인 네이버에 대해서는 ‘규제 청정 지역’이라는 증권가 평가까지 나온 상태다. 구체적으로 규제를 받을 여지가 있는 사업은 커머스(온라인 쇼핑), 핀테크 정도인 만큼 저가 매수할 좋은 타이밍이라는 조언까지도 나왔다.

국회 관계자는 그러나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플랫폼 독과점 폐해와 이를 규제해야 한다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미국 등 글로벌뿐 아니라 여야를 가리지 않고 공감대가 커지고 있기 때문에 네이버도 카카오와 동일 선상에서 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한국판 구글’ 꿈꾸며 OS도 노린다… 첫 카드는 ‘고가 논란’ 교육용 노트북

네이버의 자체 운영체제(OS)가 탑재된 노트북 웨일북. /LG전자, 레노버 제공

네이버가 최근 자체 운영체제(OS) ‘웨일OS’와 이를 통해 구동되는 노트북 ‘웨일북’을 출시했다. 지난 4월 3년 내 국내 웹 브라우저 시장에서 ‘웨일’을 1위에 올려놓겠단 포부를 밝힌 네이버가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하는 것이다. 네이버는 2017년 웨일을 처음 선보였으나 큰 존재감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의 OS인 ‘윈도7’ 기술 업데이트 종료 등에 따라 MS, 구글(크롬·안드로이드)로 사실상 양분돼 있는 OS 시장에 파고들 여지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웨일OS는 아예 웨일 웹브라우저로 모든 작업을 하는 것이다. 웨일OS 확산은 웨일 이용률을 높이고 나아가 웨일 안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네이버 검색·커머스·콘텐츠 등 ‘플랫폼 가두리 효과’도 극대화할 수 있다.

나아가 이미 인터넷 검색 포털로 완전히 장악한 국내 중개 플랫폼을 뛰어넘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한국판 구글’을 꿈꾸는 것이다. 신민수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플랫폼 위의 플랫폼’으로 불리는 OS는 각종 애플리케이션(앱)에 디자인 최적화, 보안 사항 등을 요구하는 등 공급자에 대한 통제력이 훨씬 세다”라며 “앱이 이에 최적화돼 있을 경우 전환도 어려운 만큼 락인(lock-in·특정 제품이나 서비스에 소비자를 묶어두는 것) 효과가 네이버 자체보다도 훨씬 더 크다”라고 했다.

웨일북 구동화면. /홈페이지 캡처

◇ OS 확산, 구글처럼 교육용 노트북 시장부터 공략

구글이 MS의 빈 자리를 빠르게 파고들고 있는 상황에서 후발주자인 네이버가 내놓은 카드는 ‘구글 벤치마킹 전략’이다. 구글은 2008년 웹브라우저 ‘크롬’을 출시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검색 포털 이용자를 끌어모은 덕분에 MS의 ‘인터넷 익스플로러(IE)’를 제치고 전 세계 웹브라우저 시장 점유율 65%로 1위를 차지했다(스탯카운터).

2011년엔 아예 크롬으로 작동하는 크롬OS, 이것을 탑재한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 제조 노트북 ‘크롬북’을 출시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원격수업이 늘어나면서 전 세계 교육현장에서 크롬북의 수요가 폭발했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 세계 크롬북 출하량은 1300만대로 지난해 1분기(280만대)보다 4배 이상 늘었다.

덕분에 크롬OS의 점유율도 크게 늘었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크롬OS는 지난해 전 세계 PC OS 시장에서 점유율 10.8%를 기록, 사상 처음으로 애플 맥OS(7.5%)을 추월하고 MS 윈도(80.5%)에 이어 2위에 올랐다.

크롬북은 정품 설치에 국내 기준 10만원 정도가 드는 윈도10 대신 무료 OS를 탑재하고 대용량 저장장치 대신 구글 클라우드를 사용해 가격을 최저 200달러대(약 23만원)로 낮췄다. 원격교육·메신저·파일공유·출석과 진도 관리 등이 가능한 교육 플랫폼 ‘클래스룸’도 지원한다. 학교 입장에선 값싸게 대량 구매할 수 있고 다수의 교사와 학생이 같은 플랫폼을 사용할 수 있어 크롬북을 선호한다. 클라우드를 통해 학생들의 학습 데이터 관리까지 쉬워 크롬북이 교육용 노트북으로 제격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국내 노트북 시장 역시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경제 확산에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연간 2만4000대 수준(크롬북 출하량 기준)이었던 국내 교육용 노트북 시장은 올해 상반기에만 6만3000대로 성장했다(한국IDC). 이런 상황에서 네이버도 교육용 노트북이란 수식어를 달고 웨일북을 출시했다. 학교 납품을 위한 조달청 나라장터 등록 절차도 진행 중이다. 서울시교육청을 포함해 10개 교육청과 업무협약(MOU)을 맺어 초·중·고등학교에서 쓰이고 있는 교육 플랫폼 ‘웨일스페이스’를 탑재했다.

웨일북은 국내 교육용 노트북 시장에서 유일한 토종 브랜드다. 학교를 포함한 관공서는 국산 제품을 우선적으로 구매하는 만큼 유일한 경쟁 브랜드인 크롬북에 맞서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국내 시장에서 웨일북과 웨일OS가 확산되면 5%대의 웹브라우저 점유율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6월 서비스를 종료하는 IE의 8% 점유율 일부도 노려볼 수 있다.

구글의 크롬 운영체제를 사용하며 인터넷 검색에 최적화된 클라우드(가상 저장공간) 기반 노트북 '크롬북'.

◇ 시작부터 바가지 논란… 윈도 떼고 웨일 붙였는데 10만원↑

현재 웨일북 시리즈는 LG전자와 중국 레노버가 각각 OEM 방식으로 생산하는 제품 2종이 있다. 지난 15일 출시한 LG전자 웨일북은 가격 55만원, 주요 사양은 ▲인텔 셀러론 N4120 쿼드코어 ▲4GB(기가바이트) 램(RAM) ▲저장 용량 64GB eMMC ▲GPU 인텔 UHD 그래픽스 ▲14인치 크기와 FHD 해상도 디스플레이 ▲무게 1.45㎏다. 레노버 웨일북도 이르면 다음 달 중순 판매 업체 리퓨터를 통해 59만9000원의 가격에 출시된다. 주요 사양은 디스플레이(11.6인치 크기·HD 해상도)와 무게(1.35㎏) 정도만 다르고 LG전자 웨일북과 같다.

두 제품 모두 시중에서 팔리고 있는 동일 브랜드, 동일 사양의 윈도10 탑재 모델에 비해 가격이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CPU(인텔 셀러론 N4100 쿼드코어)와 화면 해상도(HD)만 좀 더 낮고 나머지 주요 사양이 같은 ‘LG전자 울트라PC’(품번: 14U390-ME1TK)는 네이버의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최저 40만9000원에 팔리고 있다. 정품 설치에만 10만원 정도가 드는 윈도10 비용을 고려하면 기기 값 차이는 더 벌어진다. 레노버 웨일북의 원 모델인 ‘레노버 300e 크롬북 2세대’는 국내에 출시되지 않아 직접적인 가격 비교가 힘들지만, 역시 아마존·이베이 등 해외 온라인 쇼핑몰에선 윈도10을 탑재한 같은 사양 제품을 30만~40만원대에 찾아볼 수 있다.

네이버는 리퓨터에서 동일 사양의 레노버 크롬북(레노버 500e 크롬북 2세대)이 69만4800원에 팔리고 있는 것과 비교해 웨일북이 비싸지 않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이 모델 역시 사양에 비해 비싸다는 반응이다. 게다가 리퓨터에서 판매되는 웨일북과 크롬북은 조달청을 통해 공공시장으로 납품되는 제품들인데, 국산 제품 위주로 구매하는 공공시장 특성상 비싼 가격이 세금 낭비로 이어진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전문가 사이에서는 웨일북이 어느 정도 성과를 올리더라도 웨일 OS가 소비자들을 끌어모을 만큼 성공을 거둘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가 웨일에 맞는 SDK(소프트웨어 개발 키트), 인센티브를 주고 공급자들에 앱 개발을 유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구글 같은 파워풀한 플랫폼이 있는 상황에서 굳이 웨일OS에 최적화된 앱을 개발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게 현실이다”라면서 “네이버가 소비자를 부르는 네트워크 효과를 달성하기까지 얼마만큼 투자, 기술 연구를 이어가며 버틸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했다.

노조가 말하는 플랫폼 공룡의 민낯… “괴롭혀도 참을 수밖에 없다”

오세윤 네이버 노조 '공동성명' 지회장. /본인 제공

네이버는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구글 같은 이미지, 그러니까 자유롭게 토론하고 아이디어를 존중하는 창의적인 사내 분위기를 가진 회사가 아니에요. 소수의 창업 멤버와 이들에게 인사평가와 보상 지급 권한 100%를 위임받은 100여명의 조직장을 아래 사람이 거스를 수 없는 상명하복의 조직입니다.

오세윤 네이버 노조 '공동성명' 지회장

오는 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한성숙 네이버 최고경영책임자(CEO)를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불러 직장 내 괴롭힘과 개발자 죽음 사건의 책임과 재발 방지 대책을 질의한다. 지난 5월 25일 네이버 지도 서비스 개발팀의 40대 개발자가 상사로부터 괴롭힘과 과도한 업무지시에 시달리다가 극단적 선택을 했던 일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다.

조선비즈는 한 대표의 출석을 하루 앞둔 5일 네이버 노조(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네이버지회) ‘공동성명’의 오세윤 지회장과 전화 인터뷰해 괴롭힘의 근본적 원인으로 지목된 네이버의 비민주적인 경영 구조를 진단하고 필요한 재발 방지 대책을 물었다.

공동성명은 전 계열사 임직원 1만여명 중 3000여명(약 30%), 본사 4100여명 중 1700여명(약 40%)이 소속된 네이버 단일 노조다. 2018년 4월 판교 인터넷·게임 업계 최초로 조직됐다. 괴롭힘 사건과 관련해 이달 중순 사측과 단체교섭을 준비 중이다.

◇ 임원이 가해자인데 조사·징계 회사가 알아서

오 지회장은 “사건의 책임자였던 경영진(최인혁 전 최고책임운영자(COO))에 대한 징계 조치는 여전히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징계를 결정하는 것도 전적으로 경영진의 권한이기 때문에 팔이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소수의 창업 멤버가 회사의 모든 걸 결정하고 끌고 나가는 시스템 아래에서는 언젠가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고, 앞으로도 벌어질 수 있다”라고 비판했다.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와 ‘C레벨(최고위급)’ 경영진에 모든 의사결정 권한이 집중된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네이버는 창업자인 이 GIO와 그 아래 한성숙 CEO, 삼성SDS 출신으로 창업 초기부터 합류해 ‘이해진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최인혁 전 COO, 역시 삼성SDS 출신으로 창업 초기부터 네이버에 합류한 박상진 최고재무책임자(CFO),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과 함께 일하다가 2000년 네이버에 합류한 채선주 최고커뮤니케이션책임자(CCO), 그 외 사내독립기업(CIC) 대표 7명 등 총 12명의 경영진이 이끌고 있다(하단 그래픽 참조).

오 지회장은 “이 구조를 유지하면서 사람만 바꾸는 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앞서 한 직원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 한 달 후인 지난 6월 30일 이 GIO는 임직원에게 “더 젊고 새로운 리더가 나타나서 전면 쇄신하는 게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해결책이다”라며 “연말까지 경영 체계 쇄신을 마무리하라는 이사회의 제안이 맞는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경영 쇄신에 대해선 공동성명과 생각이 같지만, 현재 일각에서 가능성이 거론되는 일부 경영진과 책임리더급의 단순 교체에 그친다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게 오 지회장의 생각이다.

조선DB

◇ 100명 조직장 손에 달린 4000명 임금

네이버는 C레벨 경영진으로부터 업무 지시·인사 평가·연봉과 보상 수준 결정의 권한 100%를 위임받은 100여명의 조직장(책임리더)이 조직별로 직원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오 지회장은 “직원들 각각의 다음 해 연봉 인상률, 인센티브, 스톡옵션은 공개된 객관적인 평가 기준 없이 모두 조직장의 재량에 따라 결정된다”라며 “직원들은 부당한 지시라고 할지라도 조직장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라고 했다.

보통 대기업의 경우 전 직원에 적용되는 연봉 테이블, 가령 ‘연 5%’ 같은 기준에서 직원들 각각의 성과에 따라 차등을 두고 적용한다. 네이버의 경우 직원 개인에게 보장되는 공개된 연봉 테이블은 없다. 그나마 노조 창설 이후 전 직원 임금 총액의 인상률을 매년 노사 협상을 통해 정하고 공개하는데, 이 인상분 총액을 각각의 직원에게 어떻게 배분할지는 조직장의 평가에 달렸다. 임금 총액이 5% 인상돼도 조직장의 평가에 따라 직원마다 0%에 근접할 수도, 10%에 근접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센티브(성과급) 역시 마찬가지다. 조직별로 인센티브 총액이 할당되면, 조직장이 부하 직원을 평가해 재량껏 배분한다. 네이버는 조직장 아래 실무진들의 판단·재량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철저한 상명하복의 시스템인데, 동시에 보상은 개인별 성과에 따라 크게 차등을 두는 성과주의의 시스템인 셈이다.

오 지회장은 “이런 상황에서 조직장이 누구냐에 따라 직원들의 근무 환경이 크게 달라지고 최악의 경우 지도 서비스 개발팀처럼 직원의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는 괴롭힘이 자행될 수 있다”라며 “고인을 직접 괴롭힌 가해자가 바로 조직장(신모 당시 책임리더)이었단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지도에 이어 내비게이션 서비스도 1등이 되겠다는 회사의 목표, 지난 5월로 다가온 관련 서비스 출시 일정을 무리하게 맞추느라 신 당시 책임리더는 고인을 포함한 부하 직원에게 과도한 업무지시와 모욕적인 언행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고인은 이를 따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오 지회장은 “당시 가해자(신 당시 책임리더)가 (전 직장이었던 넷마블에서 네이버로) 이직하기 전부터 관련 소문이 업계에 있었고, 직원들이 이를 문제제기했지만 경영진은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라고 했다. 공동성명에 따르면 2019년 1월 최인혁 당시 COO는 직접 신 당시 책임리더를 회사로 데려왔고, 일부 직원들의 반발에 ‘문제가 생기면 내가 책임지겠다’라는 취지로 답했다고 한다.

지난 6월 7일 오전 경기 성남시 네이버 그린팩토리 앞에서 열린 '동료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노동조합의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네이버 노조 '공동성명' 관계자가 발언하고 있다. 왼쪽에서 세 번째가 오세윤 지회장. /연합뉴스

◇ 1000명이 괴롭힘 당했다는데, 신고는 6건… ”해봤자 손해”

오 지회장은 또 “사전 문제제기는 물론 괴롭힘이 벌어진 후에 필요한 신고 시스템도 미흡한 실정이다”라며 “사내 신고 채널이 있지만 어차피 회사가 접수를 받고 결국 경영진이 징계를 결정하기 때문에 직원들이 안심하고 이용하기는 힘든 분위기다”라고 전했다.

오 지회장은 신고 처리를 노조 동수로 구성된 위원회가 맡는 카카오와 비교하며 “지난해 네이버의 괴롭힘 신고 건수는 6건으로 카카오의 절반에 그쳤다”라며 “네이버가 카카오에 비해 특별히 괴롭힘이 덜해서가 아니라 직원이 안심하고 신고하기 어려운 분위기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집계 기간은 다르지만 ‘6건’은 고용노동부 조사와 규모에 큰 차이가 난다. 고용부가 사건 직후인 지난 6~7월 임원급을 제외한 네이버 본사 전 직원 402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982명 중 절반 이상(52.7%)이 ‘최근(당시 기준) 6개월 동안 한 차례 이상 직장 내 괴롭힘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응답자의 10.5%는 1주일에 1번 이상 지속적인 괴롭힘을 겪었다고 했다. 외부인이 동석한 자리에서 상사에게 뺨을 맞았고 이 가해자는 정직 8개월 끝에 복직했지만 피해자는 끝내 퇴사했던 사례도 있었다.

오 지회장의 지적처럼,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 중 44.1%는 신고 여부에 대해 ‘대부분 혼자 참는다’고, 6.9%만 ‘사내 상담부서에 호소한다’고 응답했다. 혼자 참는 이유는 ‘대응해봤자 해결이 안 되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59.9%로 가장 높았다.

공동성명은 실제로 신고자에게 불이익이 돌아간 사례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다른 조직장이었던 한 임원을 신고한 직원은 본인이 겪은 일을 상세하게 얘기했지만 이를 통해 작성된 보고서에선 문제점이 축소돼 있었고, 오히려 신고자가 대기발령 조직으로 이동한 후 결국 퇴사했다는 것이다. 공동성명은 해당 임원이 초과 근무를 하고 수당을 신청하는 직원에게 ‘돈이 없어서 수당을 신청하느냐’며 면박을 주고 결재 승인하지 않은 일이 있었는데, 이런 내용이 고용부의 특별근로감독으로도 확인됐다. 해당 임원은 회사의 징계 없이 여전히 현직으로 근무 중이다.

◇ 고용노동부, 괴롭힘·신고 부실·신고자 불리한 처우 확인

동료 죽음 사건 직후 고용부의 특별근로감독과 별개로 회사와 공동성명도 각각 자체 진상규명에 나섰다. 회사는 사외이사로 구성된 리스크관리위원회가 외부기관에 조사를 의뢰했고 경영진은 조사 결과를 받아 가해자인 신 당시 책임리더를 해임했다. 최 COO는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라며 COO직을 자진 사임했는데 현재 여전히 네이버의 사내이사로서 네이버파이낸셜·해피빈 등 계열사 대표직을 유지하고 있다.

오 지회장은 “회사보다 노조의 자체 조사 결과가 고용부의 공식 조사인 특별근로감독 결과에 더 근접했음에도 회사는 할 일을 다하지 않았다”라며 “모든 걸 결정하는 경영진의 팔이 안으로 굽은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사진은 한성숙 네이버 대표가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그랜드센트럴에서 열린 디지털플랫폼 기업 간담회에 참석한 모습. 한 대표는 오는 6일 환노위 국감에도 증인으로 나선다. /연합뉴스

고용부는 사건 두 달 후인 지난 7월 27일 “네이버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결과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채널 부실 운영, 신고자에 대한 불리한 처우를 확인했고 조직 문화와 관련해 전반적인 개선이 긴요하다”라고 결론내렸다.

고용부가 고인과 같은 부서에서 근무한 동료 진술과 일기장 등 자료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고인은 직속 상사(신 당시 책임리더)로부터 지속적으로 폭언과 모욕적인 언행을 겪고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의도적으로 배제됐으며 과도한 업무 압박에 시달렸다. 사용자인 네이버 경영진은 괴롭힘 사실을 인지하고서도 사실 확인을 위한 조사를 진행하지 않는 등 ‘사용자의 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고용부는 이 사건 말고도 네이버가 괴롭힘에 해당하는 사내 신고를 받고도 ‘괴롭힘 불인정’ 처리하고 추가 조사를 진행하지 않는 등 불합리하게 처리한 사실도 확인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긴급하게 분리한다는 명목으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기존 업무와 무관한 임시 부서로 배치하고 직무를 부여하지 않는 ‘불리한 처우’도 있었다. 고용부는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조치를 다하지 않은 사용자는 근로기준법 제76조의3 제6항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내려질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공동성명이 동료 증언을 토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신 당시 책임리더는 회의 중 책상에 보드마카를 집어던지고 직원의 사원증 목줄을 당겼다 놨다 하는 행동을 했는데, 이 때문에 퇴사하는 직원이 많아지자 직원들에게 “이직하면 (중간 관리자인 고인은) 나한테 죽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인력 이탈이 일어나는 와중에 고인은 지난 5월 서비스 출시 일정을 맞추기 위해 밤과 휴일 구분 없이 조직장에게 업무 지시를 받고 보고해야 했다고 한다.

◇ “노조 패싱해 온 회사, 이번엔 달라져야 할 것”

공동성명은 사건 직후 회사에 공동 조사를, 징계 결정 직후엔 최인혁 당시 COO를 포함한 책임자나 공범의 징계를 요구하며 피켓 시위와 집회를 벌였지만 회사는 ‘노조 패싱’의 태도로 일관했다. 오 지회장은 “회사에 지속적으로 재발 방지 대책을 노사 공동으로 만들어갈 것을 요구했으나 회사는 이에 전혀 응하지 않았다”라며 “하지만 고용부의 권고, 국정감사 등 회사가 여러모로 눈치 볼 일이 많아진 만큼 이달 협상에선 요구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공동성명은 이달 중순 노사 단체협약을 진행한다. 임금협약 외 직원의 복지와 근로조건을 다루는 단체협약은 노조 창설 이후 두 번째, 올해 동료 죽음 사건 이후 처음인 만큼 재발 방지 대책을 강하게 요구하겠다는 방침이다.

공동성명은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및 조치 신설 ▲과도한 업무시간 방지 보강 ▲평가 및 보상 방식 개선 ▲분할·합병·양도·전환배치 시 조치 보강 ▲공통 복지제도 신설 등 5가지를 사측에 요구한다. 구체적으로는 괴롭힘 신고 처리를 위한 ‘카카오식(式)’ 노사 동수 위원회 신설, 시급하지 않은 일에 대한 업무시간 외 연락 금지, 객관적인 인사평가 항목과 연봉·인센티브 지급 기준 마련, 직원별 보상에 대한 충분한 설명 제공 등을 요구할 예정이다.

드루킹 사건에도 정치 편향 댓글 넘쳐나는 초록창… 남녀·세대 갈등 부추겨

네이버 카페에 올라온 이재명 경기지사 관련 뉴스에 지지세력들이 줄줄이 옹호 댓글을 달았다. /카페 회원 제공

필명 ‘패헤XXX’씨는 회원 수 107만명의 부동산 관련 네이버 카페 ‘아름다운 내집갖기’에 올라오는 뉴스의 댓글 단골손님이다. 그는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재명 경기지사 관련 기사가 올라오면 댓글에 어김없이 “곽상도 무소속 의원의 아들이 잘못했다”라는 취지의 기사 캡처 사진과 댓글을 달고 있다.

‘대장동 개발사업으로 한 변호사가 1000억원가량을 챙겨 강남 노른자위에 건물을 샀다’라는 내용의 기사에 “본인이 스스로 설계했다는데 왜 정부는 수사 안 하나”라는 식의 이재명 지사에 대한 비판 글이 게재되자 “미국으로 떠난 대장동 키맨에 국민의힘 보좌관이 연루돼 있다”라거나, “화천대유에서 근무했던 곽상도 전 의원의 아들이 잘못했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기사 캡처 사진을 올리는 식이다. 이는 화천대유 논란과 무관한 기사 댓글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복수의 카페 회원은 “’패헤XXX’를 포함 ‘팩XX’, ‘사랑하며XXX’ 등 ‘손가락 혁명군(손가혁·이재명 경기지사의 강성 지지자)으로 추정되는 일부 아이디가 경기 성남 대장동 개발사업에 참여한 화천대유 관련 의혹 기사에만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댓글을 달고 있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라면서 “이런 식으로 여론을 조작, 호도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라고 했다.

매일 3000만명이 찾는 국내 최대 인터넷 포털 네이버에서 여론 조작으로 추정되는 조직적 댓글 활동이 활개 치고 있다. 네이버 카페뿐 아니라 네이버 뉴스 댓글, 블로그, 지식인(in) 등 이용자가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고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성 서비스가 다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가운데 특히 네이버 뉴스 서비스 이용률은 80% 수준으로 다른 인터넷 포털을 압도하고 있어 정치 뉴스 댓글의 편향성에 대한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3월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서 여론을 호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동규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댓글 자체를 제재하는 것은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라면서도 “네이버가 문제 소지가 있는 댓글에 대해 제재를 한다지만, 이마저도 사람의 주관이 개입될 수 있는 만큼 편향적인 의견이 반영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어떤 사안에 대한 입장이 정리되지 않은 개인이, 다수가 아닌 이해관계 당사자의 편향된 시각을 반복적으로 접했을 때 함께 편향될 가능성이 크다”라면서 “네이버는 사회 주요 화두에 대해서라도 플랫폼으로서 어떻게 중립을 지켜나갈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 하루 댓글 수 제한·클린봇도 무용지물

사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네이버 출신의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문재인 정부 초대 홍보수석 시절 문 대통령과 산책하는 모습. /연합뉴스

현재 네이버 뉴스의 경우 본인 확인된 사용자 1인당 한 기사에 달 수 있는 댓글이 만 하루 기준 20개, 답글(대댓글)이 40개, 공감·비공감을 누를 수 있는 횟수가 최대 50회로 각각 제한돼 있다.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댓글은 무제한으로 신고할 수 있다.

유죄로 결론 난 이른바 ‘드루킹 댓글 조작’을 재현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형을 받고 도지사직을 잃은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드루킹 일당과 함께 아이디 2000여개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2017년 5월 대선 전후로 유리한 댓글을 매크로(자동화 프로그램)를 통해 네이버 상단에 노출되도록 한 혐의를 받았다. 당시 네이버에서 재직하던 윤영찬 부사장(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 초대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됐다.

그러나 이런 정책을 우회, 순공감순을 끌어올려 ‘효율적으로 여론 조작하는 비법’도 네이버 카페 등에서 공공연히 돌고 있는 게 현실이다. 아군 댓글에는 ‘좋아요’를 눌러 공감 수를 늘리되, 적군에는 ‘먹금(먹이금지, 무대응을 뜻함)’에 적극 신고하라는 것이 골자다.

한 여초 카페에 공지된 한남(남성 비하) 댓글 신고법. 한남 댓글을 모조리 신고해야 효율적으로 여론을 선점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카페 캡처

친(親)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성향의 한 네이버 카페에는 민주당 대선후보 결정을 위한 경선 결과를 다룬 네이버 뉴스 댓글에 이 같은 방식으로 상위에 노출돼 있던 이재명 지사 지지 댓글을 뒤집었다는 성과 글도 올라와 있다.

편향적 댓글 정황은 이념뿐 아니라 여성이나 지역, 세대 갈등을 조장하는 데도 나타나고 있다. 청년참여연대가 최근 약 3주간(2021년 7월 27일~8월 16일) ‘네이버 이용자 대상 혐오 표현 노출 경험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를 보면 전체 응답 인원 275명 가운데 85.5%인 236명은 네이버 이용 중 혐오 표현을 접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 중 178명(75.4%)은 네이버를 이용할 때마다 ‘거의 항상’ 혐오 표현을 접했다고도 했다. 이들이 혐오표현을 주로 접하는 서비스는 뉴스 검색, 댓글이었다. 혐오표현의 대상은 주로 여성(192명)이었고, 성소수자·지역이 각각 136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외국인’이라고 답은 117명으로 3위를 차지했다.

이런 혐오발언은 네이버가 인공지능(AI) 기술로 자동으로 감지해 숨긴다는 ‘클린봇’마저 교묘히 피해가고 있다. “페미는 정신병이 맞는 것 같다(여성 혐오)”, “홍어, 수박들 부들부들(호남인 혐오)”, “틀딱(노인 비하)들만 모였나” 같은 비하 댓글이 클린봇 활성화에도 버젓이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 “댓글조작 공범 피하려면 모니터링 강화해야”

전문가들은 댓글 조작 분위기는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이를 제재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김진욱 변호사(법무법인 주원)는 “댓글 공작이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만큼 ‘제2의 드루킹 사태’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많다”라면서 “네이버가 댓글 공작의 공범으로 취급되지 않기 위해서는 모니터링, 필터링 수위를 더욱 강화해야 하며, 이를 외부 기관으로부터 검증받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상근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도 “선거 국면에서는 한시적으로라도 특정 이해관계자들의 여론 호도를 막는 장치가 필요하다”라고 했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댓글이 어느 정도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가 먼저 필요하다”면서 “실제 여론을 심각하게 호도하는 것으로 확인된다면, 댓글창을 아예 없애든지 실명 확인을 하는 절차를 밟아야겠지만, 현재 기준에선 인터넷 자유를 희생하기 어렵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