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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과학세상]점점 심각해지는 기상이변, 탄소중립만으로 해결될까?

서울, 인천, 부산, 광주, 제주 제주시 등에 지난 밤 열대야(오후 6시 1분부터 이튿날 오전 9시까지 최저기온이 25도 이상)가 나타났다.연합뉴스 제공

한반도가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있다. 극심한 봄 가뭄에 이어서 낯선 야행성 장마가 찾아왔다. 그러더니 서울에는 지난 6월 27일 기상 관측 사상 처음으로 6월 열대야가 시작되었다. 작년에 서울에서 열대야가 처음 나타난 것은 7월 12일이었다. 올해는 열대야가 보름이나 일찍 찾아온 것이다. 서울만 열대야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다. 대전‧수원을 비롯해서 전국 62개 기상관측 지점에서 열대야가 관측되었다.

유난히 일찍 시작된 올 여름 더위가 쉽게 물러날 기세도 아니다. 진로가 일본으로 꺾어진 제4호 태풍 에어리 때문에 우리나라에 덥고 습한 바람이 밀려왔다. 폭염을 가라앉혀 줄 것으로 기대했던 태풍이 오히려 폭염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어버린 셈이다. 다행히 장마 전선이 다시 살아날 모양이다. 그러나 올 여름의 폭염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뜨겁게 달아오르는 지구촌

 

우리만 폭염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가 기록적인 폭염·홍수·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물론이고 중국·일본·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전역이 모두 그렇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기록적인 폭우를 경험했던 미국은 이제 뜨겁게 달아오른 열돔(heat dome)에 갇혀 버렸다. 인구의 3분의 1이 섭씨 40도가 넘는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프랑스 남서부와 스페인의 최고 기온도 40도를 넘어섰다는 소식이다.

중국의 남부 4개 성에는 61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엎친 데 덮친다고 제3호 태풍 ‘차바’가 몰고 온 거센 풍랑에 30명이 타고 있던 선박이 두 동강으로 쪼개져 침몰해버렸다. 그런데 중부의 허난성은 정반대로 극심한 가뭄과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지표면의 온도가 74.1도까지 치솟기도 했다. 국지성 폭우에 시달리던 일본도 일주일째 40도에 가까운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벼가 자라는 논의 수온이 43도까지 치솟으면서 민물가재가 빨갛게 익어버리는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우리에게 기상 이변은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지난 30년 동안 걱정해왔던 기후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이제 기상 이변과 극한 기상은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세계기상기구(WMO)의 클레어 놀리스 대변인은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현실은 우리의 불행한 미래를 미리 맛보게 해주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WMO가 지난 달 내놓은 ‘2021년 글로벌 기후 현황 보고서’의 내용이 몹시 암울하다. 지구의 평균 기온도 산업화 이전보다 섭씨 1.1도나 올라갔다. 2016년 파리협약에서 약속한 ‘1.5도 마지노선’까지 고작 0.4도가 남았다는 뜻이다. 1980년 754만 제곱킬로미터였던 북극의 해빙(海氷)도 62.6%나 줄어들었다. 해수면은 지난 30년 사이에 10센티미터 이상 올라갔다. 해수의 온도와 산성도도 모두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우리나라가 위치한 동아시아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아시아의 평균 기온은 최근 30년(1981년부터 2010년까지)의 평균보다 무려 1.42도나 올라갔다. 특히 시베리아의 상황이 매우 걱정스러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상 이변으로 발생한 사회·경제적 피해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20년 태풍·홍수·가뭄 등으로 431조 원이 넘는 피해가 발생했다.

부쩍 잦아지고 있는 기상 이변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산업화 이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의 증가를 무시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280ppm이었던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2021년에는 413.2ppm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이산화탄소 농도의 증가는 대부분 산림을 훼손하고,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인간의 활동에 의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을 위험도(risk)라고 한다. 2월 28일 발표된 IPCC 제6차 평가보고서에서는 발생 빈도와 강도를 고려해 주요 위험도 127가지를 선정했다. 대표적으로 열 스트레스와 물과 식량 부족, 홍수 위험 등이 있다. 출처 IPCC 보고서

‘적응’이 ‘완화’보다 더 중요

 

오늘날 우리가 걱정하는 기후 위기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절박한 과제임에 틀림이 없다. 1988년에 조직된 UN 산하의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가 작년에 발간한 제6차 보고서에 따르면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기후 위기에 의한 피해는 저개발국에 집중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실제로 기후 위기에 ‘가장 취약한 계층’으로 분류되는 약 33억 명의 인구는 대부분 저개발국의 주민들이다. 옥수수 재배 면적의 30%와 콩 재배 면적의 50%를 잃어버리게 될 아프리카가 특히 심각하다. 해수면 상승에 의한 홍수로 피해를 입게 될 인구도 10억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과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북아시아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IPCC가 국제 사회에 제시하는 기후 위기 대응 전략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인류의 삶을 급격하게 변화하는 기후에 ‘적응’(adaptation)하도록 노력하는 것이고, 둘째는 기후 변화의 속도를 ‘완화’(mitigation)시키는 것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20년 10월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서 선포했던 ‘탄소중립 2050’이 바로 가장 대표적인 완화의 노력이다.

물론 탄소중립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국제 사회의 노력을 외면할 수는 없다. 탄소중립이나 RE100(신재생 100%) 등의 완화 노력은 대부분 유럽의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방법론이다. 전 세계의 모든 국가가 탄소중립을 비롯한 유럽의 완화 노력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공화당을 중심으로 하는 보수 세력과 민주당을 중심으로 하는 진보 세력의 입장이 격하게 충돌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축을 위한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적극적인 화석연료 사용 제한이 연방정부의 과도한 규제라는 미국 대법원의 판결도 있었다. 유럽 주도의 탄소중립 노력에 대한 미국 사회의 입장이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는 뜻이다.

사실 탄소중립이 기후 위기에 대한 확실하고 완벽한 해결책이라는 보장도 없다. 지구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산업화 이전으로 되돌리는 일은 비현실적이다. 산업화 이전보다 지구상의 인구가 20배 이상 늘어났고, 1인당 에너지 사용량도 8배 이상 늘어난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인구와 삶의 질을 농경목축 시대의 수준으로 되돌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더욱이 이산화탄소를 마구 내뿜어서 지구의 대기를 뜨겁게 만들 수는 있어도, 이미 달아오른 지구의 대기를 다시 식히는 일은 간단치 않을 것이다. 단순히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를 줄인다고 대기가 식을 것이라는 과학적 근거는 충분하지 않다.

태양광·풍력과 같은 소위 무늬만의 ‘무탄소 전원’으로 전환한다고 기후 위기가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어렵다. ‘새로운 에너지 기술은 당면한 문제를 풀어줄 수 있지만 동시에 새로운 문제를 발생시켜왔다’는 것이 이회성 IPCC 의장의 무거운 지적이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노력한다면 탄소중립의 목표를 달성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탄소중립을 추진하기 위해서 도입한 새로운 에너지 생산 시스템이 생태계에 주게 될 부하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지구 생태계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인류가 지속가능한 삶을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이회성 의장이 완화를 위한 탄소중립보다 더 강조하고 있는 것이 변화하는 기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이다. 지금 당장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기상 이변에 의한 자연 재해에 더욱 확실하고 항구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도로·교량·제방·방파제·발전소 등 사회기반시설의 안전 강화가 시급하다. 

홍수·가뭄에 취약한 4대강 ‘재자연화’의 환상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탄소중립을 핑계로 산림청이 밀어붙이고 있는 볼썽사나운 싹쓸이 벌목 정책도 당장 폐기해야 한다. 무분별하게 설치해놓은 태양광·풍력시설의 안전도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 자연이 우리의 따뜻하고 포근한 안식처라는 인식은 착각일 뿐이다. 실제 문명화 이전의 자연은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칠고 위험한 ‘야생’(野生)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석유·석탄은 온실 가스를 내뿜는 ‘더러운’ 에너지이고, 원전은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한’ 에너지라는 패배주의적 인식도 바로잡아야 한다. 물론 환경과 안전도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경제성과 안보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냉혹한 현실도 외면할 수 없다. 온실 가스를 적게 배출하고, 원전을 더욱 안전하게 가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술’과 ‘제도’를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아무리 치명적인 ‘독’(毒)이라도 잘 쓰면 ‘약’(藥)이 되고, 아무리 좋은 ‘약’도 함부로 쓰면 ‘독’이 되는 법이다.

합리적인 에너지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경제성·안전성·환경성·안정성(안보)의 균형과 조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아무리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라도, 너무 비싸고 수급이 불안하면 그림의 떡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에너지 기술의 발달과 경제 환경의 변화를 고려한 장기적인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섣부른 선무당의 정치적으로 왜곡된 선동과 억지를 걸러내는 자정(自淨) 능력도 반드시 필요하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폭염이 계속되고 있는 4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한국전력 서울본부에 설치된 전력수급 상황 현황판에 현재 전국의 전기 사용량과 예비율이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제공

지난 2년 6개월 동안 지구촌을 무겁게 짓누르던 코로나19 팬데믹의 후유증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 시장 경제에 의한 세계화의 꿈에 들떠 있던 우리에게 글로벌 가치 사슬의 붕괴는 당혹스러운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다툼도 모자라 이제는 서방과 러시아가 극한 대립을 시작했다. 그야말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위기 상황이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를 앞세운 ‘퍼펙트 스톰’이 밀어닥치고 있다.

탄소중립도 중요하고, 기상 이변과 극한 기상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다. 그러나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한다. 환경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나 포기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비현실적인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어떤 기술이라도 당장 실용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요술방망이 증후군’도 떨쳐버려야 한다. 거칠고 위험한 지구 생태계에서 우리의 생존은 절대 보장된 것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의 노력으로 자구책을 마련해야만 한다.

우선 전력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폭염이 시작된 지난 6월의 월평균 최대 전력 수요는 작년보다 4.3% 증가한 71.8GW(기가와트, 1000MW)로 최대 전력 수요 집계를 시작한 2005년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6월의 최대 전력이 70GW를 넘어선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당연히 전력의 공급예비율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6월 23일에는 공급예비율이 연중 최저인 9.5%로 떨어졌다. 산업부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8월 둘째 주에는 최대 수요가 91.7GW까지 치솟고, 예비전력이 5.2GW 수준으로 떨어져서 ‘전력수급 비상경보’를 걱정해야 하는 형편이다. 폭염을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