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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

? 민주주의

에디터의 노트

새해를 맞아 ‘이즘 스튜디오’ 두 번째 주제로 탐색할 이즘은 민주주의입니다. 현대가 사랑하는 경제 체제가 자본주의라면, 현대가 수호하는 정치 체제는 민주주의입니다. 이미지는 민주주의가 더 좋습니다. ‘자본주의’는 어딘가 문제의식을 떠올리게 하는 반면 ‘민주주의’는 마땅히 수호해야 할 가치로 여겨지죠. 타당합니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깊이 들여다볼 동기가 덜 유발되곤 합니다. 이미 민주주의 사횐데 굳이 알아야 할까 싶기도 하죠. 그러나 자본주의와 경제의 관계처럼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는 오늘날 정치를 이해하는 근본적 시야를 제공합니다. 앞으로 6화에 걸쳐 민주주의의 개념과 흐름, 요소, 현황, 위기 및 미래 등을 짚어봅니다. 먼저 민주주의가 갖는 정치적 의미부터 살펴볼까요?

개념?

민주주의의 의사결정 방식

민주주의(民主主義)란 무엇일까요? 말 그대로 국민이 주인 되는 정치 체제입니다. 민주주의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공산주의를 왕왕 떠올리지만, 공산주의는 경제 체제입니다. 사유 재산을 긍정하냐를 기준으로 자본주의와 대립하죠.

민주주의와 대립하는 개념은 엘리트주의(독재주의)입니다. 구분 기준은 의사결정 방식입니다. 누가 어떻게 내리냐입니다. 민주주의의 의사결정은 ‘주인’인 국민에 의해 이뤄집니다. 그 인권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정치적으로 주목할 것은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주체(주권자)의 수입니다. 민주주의가 국민 다수에 의해 의사가 결정되는 통치 방식이라면, 엘리트주의는 소수에 의해 의사가 결정되는 통치 방식입니다.

비교1️⃣

군주제와의 비교

가장 전통적인 정치 체제이자 엘리트주의는 군주제입니다. 흔히 왕정으로 불리는 왕에 의한 통치죠. 참고로 지칭은 정치 형태를 부각할 것이냐 정치 체제를 강조할 것이냐에 따라 ‘-정(政)’ ‘-제(制)’로 나뉩니다.

군주제의 의사결정 주체는 왕입니다. 왕이 국가 중대사를 결정합니다. 군주제는 왕의 권한에 따라 다시 전제군주제와 입헌군주제로 나뉩니다. 전제군주제는 그야말로 왕이 국가 권력을 전적으로 제어합니다. 자문기구 등이 존재할지언정 정치는 왕 마음대로입니다.

입헌군주제에서 왕의 정치는 헌법에 입각해 이뤄집니다. 전제군주제에선 왕의 권한이 법에 앞섰다면, 입헌군주제에서 왕의 권한은 법에 종속됩니다. 결정을 내리긴 하지만 법의 테두리 내여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론 헌법의 내용을 좌지우지하는 의회가 정치적 힘이 가장 셉니다.

입헌군주제는 다시 둘로 나뉩니다. 기준은 앞서 정치적 힘이 가장 세다고 한 의회의 구성 방식입니다. 옛날처럼 귀족 중심 의회가 꾸려지면 귀족 중심 입헌군주제입니다. 역사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귀족정’이 바로 이 정치 형태입니다.

반면 오늘날 영국, 일본과 같은 체제가 국민 중심 입헌군주제입니다. 왕은 있지만 형식적이며, 실질적 의사결정은 총리와 의회에 의해 이뤄집니다. 총리와 의회의 구성이 국민 투표로 이뤄지기에 실질적 권한은 국민에 있다고 봅니다. 제도적 외피를 벗겨내면 사실상 대의 민주주의 체제죠. 결론적으로 말해 어떤 식으로든 왕이 존재하면 군주제로 볼 수 있습니다.

비교2️⃣

공화제와의 구분

왕이 존재하지 않는 정치 체제는 민주주의 말고 또 있습니다. 공화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화제와 비교하면 민주주의가 갖는 정치적 윤곽을 더욱 선명히 그려볼 수 있습니다. 공화제는 왕이 아닌 공동의 주권 집단이 서로 협력해 통치하는 정치 체제입니다.

역사 시간에 절대왕권이나 독재정치에 대항해 공화정을 수립하는 시민 움직임에 대해 들어본 기억 나실 텐데요. 이처럼 공화제는 독재와 대립합니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같진 않습니다.

공화제의 전제는 두 가지입니다. 왕이 없으며, 공동에 의한 의사결정 방식을 따를 것. 민주주의와의 구분이 발생되는 지점은 후자입니다. ‘공동’이긴 하되 국민 ‘전체’를 가리키진 않기 때문입니다. 공화제의 ‘공동’은 의회나 귀족처럼 소수인 경우도 포함합니다. 고대 로마가 대표적으로 공화정을 채택한 입니다.

핵심?

민주주의의 정치적 의미

결론적으로 말해 민주주의는 공화제의 포함관계입니다. 왕에 의한 통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통분모를 갖지만, 의사결정 주체에 있어 공화제는 민주주의와 달리 꼭 국민 전체일 것을 상정하지 않죠.

이 차이는 큽니다. 오늘날 전제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나 브루나이 등 일부 소수입니다. 그렇다면 공화제와 민주주의의 차이에 있어 부각되는 것은 소수에 의한 통치를 긍정하느냐입니다. 공화제는 그렇고 민주주의는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공화제 역시 다수에 의한 통치도 긍정하지만, 이 경우 굳이 민주주의를 두고 굳이 공화정을 정치적으로 추구할 실익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 오늘날 공화정의 추구는 엘리트주의와 맞닿아 있죠.

그렇다면 신분제가 해체되고 귀족이 존재하지 않는 현대 사회에서 엘리트란 누구를 가리킬까요? ‘엘리트’란 뭘까요? 엘리트란 사회에서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지도적 위치에 오른 사람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대표적 엘리트는 자본주의와 함께 사회적 주체로 자리매김한 자본가죠.

반면 민주주의는 콕 집어 ‘주권재민’(主權在民)을 원칙으로 합니다. 모든 국민에 의해 정치적 의사결정이 이뤄져야 하며, 마찬가지로 모든 국민의 정치적 의사가 반영돼야 합니다. 이는 오늘날 정당 정치에서 각각 보수와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정치적 견해를 비교하면 쉽습니다. 공화당의 경우 시장 자유 및 자본가와 기업의 이익을 통한 낙수효과로 국가 전체의 파이를 늘리고자 한다면, 민주당의 경우 모든 서민의 삶이나 복지, 분배 등에 대해 비교적 관심 갖죠.

어느 것이 더 민주적이며 정치적으로 우월한지 가늠하긴 어렵습니다. 각각 엘리트와 서민의 가치를 대변한다고만 이해하는 일도 단편적입니다. 민주주의의 가치는 성과와 당위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평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경제 및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성과도 중요하며, 국가를 막론한 긴 민주화 투쟁이 말해주듯 성과만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인권의 문제와도 닿아있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평가는 결국 국가 운영의 효율성 및 올바름 차원에서 과거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인 정치(뛰어난 개인에 의한 통치 긍정), 중우 정치(우매한 대중에 의한 통치 경계)로까지 기원이 거슬러 오를 수 있는데요. 이에 대해선 다음 화에서 역사 속 민주주의의 흐름과 개념을 짚어보며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생각해보기?

이해한 개념을 바탕으로 다음을 생각해볼까요?

1️⃣ 우리나라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에서 ‘민주공화국’이라는 표현이 밝히는 정치적 의미는 무엇일까?

  • 다수 국민이 의사결정 주체이며(민주) 왕에 의한 통치를 인정하지 않는 국가(공화국)다.

2️⃣ 미국의 대표 양당이기도 한 공화당과 민주당은 각각 어떤 가치를 내세울까?

  • 공화당: 신자유주의, 세금 인하, 시장 자유 확대, 자본가와 기업 이익 신장, 자유 경쟁 옹호
  • 민주당: 수정 자본주의, 복지 증대, 정부 개입 확대, 노동자 및 서민 이익 신장, 상호 협력 옹호

3️⃣ 우리나라 보수 정당에 ‘자유’, 진보 정당에 ‘민주’라는 이름이 각각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예)자유한국당: 시장 자유를 추구하며 친기업·애국보수 이미지 소구
  • (예)더불어민주당: 상생과 서민 친화적 이미지 소구
? 참고한 도서 및 자료는 똑똑 홈페이지 본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역사 속 민주주의의 흐름과 개념을 짚어보는 '민주주의는 어떻게 변화했을까?'가 이어집니다.

? 민주주의가 부정적 의미였다고요? 

에디터의 노트

지난 화에선 민주주의가 정치 체제로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살펴봤습니다. 왕을 인정하지 않고 국민 다수의 의사가 정치에 반영되는 되는 체제로 요약할 수 있는데요. 오늘날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점검하기 위해선 그 안에 담긴 이제까지 역사적 흐름을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 화까지 2화에 걸쳐 역사 속 민주주의에 담긴 의미와 사유를 들여다볼 텐데요. 먼저 민주주의의 싹이 움튼 것으로 유명한 고대 그리스로 돌아가 현인들(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얘기를 들어봅니다. 뭐라고요? 민주주의는 좋지 못한 정치 체제라고요?

문제의식?

민주주의의 장단점

시곗바늘을 돌리기 앞서 다소 막연하게 느껴질 수 있는 민주주의의 장점과 단점을 먼저 정리해봅니다.

장점

개인과 사회의 측면으로 나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먼저 시민(권리와 의무를 지닌 사회 구성원) 개인이 직접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자신이 살아갈 사회의 모습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죠. 삶의 자유는 물론 미래에 대한 자기결정권까지 지닌다는 걸 의미합니다.

물론 오늘날 민주주의는 정치인이나 정당을 통해 간접적으로 의사를 반영하는 대의 민주주의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정치적 의사는 지난 화 ‘생각해보기’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의 가치로 짚었던 보수 또는 진보라는 큰 틀 안에서 갈무리할 수 있습니다. 투표로써 내가 원하는 방향에 대해 위임 권한을 주는 형태지만, 바라는 정치적 의사는 대부분 표현됩니다.

사회 측면에서 민주주의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공동체로서 모든 구성원의 의견을 종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개인적 삶을 허용하면서 구성원을 하나로 결속시키는 힘으로도 작용합니다.

그러나 개인의 측면이든 사회의 측면이든 정치 체제의 가치는 당위는 물론 성과도 논해야 합니다. 이제껏 정리한 것은 마땅히 수호해야 할 당위에 가깝죠. 즉, 성과에 대한 물음은 이것입니다. 모든 시민의 정치적 의사가 반영되고 공동체로서 모든 구성원의 의견을 종합하면 더 나은 삶을 가져오는가?

단점

민주주의의 정치적 이점이나 독재, 엘리트주의의 한계에 관해선 추후 더 조명할 예정입니다. 여기선 단점으로 넘어가 보죠. 위 물음에 대한 회의론이 바로 민주주의의 단점으로 거론되는 지적의 핵심입니다. 모든 구성원의 의견을 반영하는 체제가 나은 삶을 가져오지 않는다면 원인으로 지적되는 건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대중을 신뢰할 수 없다는 뜻이죠.

민주주의의 단점은 대중에 문제가 있는 경우입니다. ‘문제’ 역시 두 가지 경우로 세분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타고난 재능 때문이든 놓인 환경 때문이든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입니다. 존중되는 건 좋은데 그 존중된 의견이나 생각이 모두 올바르거나 가장 생산적인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어리석은 생각이 다수라는 이유로 정치적 의사를 잠식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대중이 믿는 신념에 문제가 있는 경우입니다. 대중이 믿는 신념은 당대 사회의 지배적 정서를 따라가기 쉽습니다. 문제는 사회의 지배적 정서가 항상 올바르진 않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경쟁 과열의 사회에서 대중의 합리적 선택은 자신의 이권 보호입니다. 전시 상황에서 우선되는 것은 자국의 안전입니다. 화합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세금 좀 먹는 소리죠. 군중심리나 선동가에 의한 포퓰리즘에 정치적 여론이 호도되기도 쉽습니다.

그래서 잘못된 민주주의는 아이러니하게도 독재를 부를 수 있습니다. 지적한 두 ‘문제’의 경우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전자는 잘못된 다수 의견의 독재를 초래하며, 후자는 잘못된 지도자를 선출함으로써 독재를 부릅니다. 과거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당시 히틀러의 집권이 죠. 잘못된 다수 의견을 견제하기 위해 오늘날 표현의 자유나 소수 의견의 존중이 필요한 겁니다. 대화나 토론의 장 역시 마찬가지고요.

이러한 잘못된 민주주의에 대한 경계는 서양 철학의 요람인 그리스 아테네의 세 성현(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부터 드러납니다.

배경?

아테네 민주주의

먼저 그 배경이 되는 아테네 민주주의부터 들여다보죠. 오늘날 ‘민주주의의 기원’ 하면 ‘그리스 아테네’라고 할 만큼 아주 공식화됐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민주주의를 나타내는 ‘democracy’ 역시 그리스어 ‘demos’(인민)와 ‘kratos’(통치)에서 유래합니다.

그리스의 대표적 폴리스인 아테네의 정치 형태는 왕정을 거쳐 귀족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무역과 상업으로 부를 쌓은 평민의 지위가 오르고, 스스로 전쟁에 참여함으로써 정치적 목소리가 커집니다. 이와 함께 기원전 6세기 솔론과 클레이스테네스에 의해 민회나 도편추방제(참주가 될 가능성 있는 사람을 도자기 파편에 적어 다득표자 추방) 등 민주 정치의 기틀이 마련되죠.

그 결과 당시 아테네 시민들은 개인적 일뿐 아니라 공공업무에도 늘 관심을 기울이고 의견을 나누는 등 정치 이해도가 높았습니다. 공공업무에 관심 두지 않는 사람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쓸모없는 사람’으로 불렀으며, 이는 오늘날 ‘idiot’(멍청이)의 어원이 되죠. 요컨대 아테네 민주주의는 공공선을 위해 존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혹시 지난 자본주의 리포트에서 재산의 추구를 두고 공공선에 위배되기에 오랫동안 금기시 여겨졌다고 한 점, 기억하시나요? 동양 사상의 요체가 의(義)라면 서양은 공공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아테네 민주주의의 융성을 가져온 것은 전쟁입니다. 정확히는 스파르타와 오랜 기간 펼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죠. 앞서 살짝 지적했지만, 아테네 시민권은 군역 의무와 함께 주어졌습니다. 그렇기에 성인 남성에 국한된 치명적 한계를 지니기도 하는데요. 어쨌든 스파르트와의 오랜 전쟁 과정에서 아테네 정부는 시민들에게 계속적인 충성과 희생을 요구해야 했습니다. 아테네는 그럴 자격과 가치가 있음을 입증해야 했죠. ‘민주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페리클레스는 전사자 추모 연설에서 아테네가 민주정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수호할 가치가 있는 영광스러운 국가라고 역설합니다.

검토?

그들은 왜 민주주의를 반대했을까?

왼쪽부터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중우정치’ 또는 ‘폭민정치’라는 말 들어보셨을 겁니다. 각각 ‘어리석은 다수의 정치’ ‘난폭한 대중에 의한 정치’라는 의미로 민주주의를 회의적으로 여긴 플라톤의 표현인데요. 이처럼 민주주의는 처음부터 이상적 정치 체제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경계해야 할 정체(政體)로 여겨지죠.

그렇기 때문에 플라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는 지혜로운 철인왕의 통치인 ‘철인정치’를 가장 이상적으로 여겼습니다. 소크라테스라는 양반을 조금 이해할 필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논리적인 양반입니다. 그가 위대한 철학자로 여겨지는 이유는 세상 모든 문제에 관해 진리를 탐구해 대부분의 사상과 체제에 기틀을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후대 정치철학자들도 모든 서양사상이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할 정도죠.

논점은 소크라테스가 논리로 답을 찾으려 한 인물이라는 겁니다. 그가 이상적으로 제시한 정치인 철인정치 역시 다른 모든 인간보다 우월한 철인이라는 존재가 있다고 했을 때 유효하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이상적으로 여긴 것은 스파르타의 엘리트주의입니다. 이는 당시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패배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욕망과 사리사욕이 넘치는 대중의 요구가 모여선 공공선을 이끌 수 없으며 이러한 대중의 인기를 좇는 민주주의는 올바른 지도력을 구축할 수 없다는 시각입니다. 플라톤에게 있어 가장 똑똑한 인물인 스승 소크라테스가 인민재판에 의해 죽음을 맞는 일 역시 민주주의에 있어 회의로 작용했을 테고요.

경계할 것은 당시 플라톤이 사용한 민주주의의 의미, 엄밀히는 ‘인민’(demos)의 의미가 오늘날과는 다르다는 점입니다. 다수자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일종의 멸칭입니다. 평민이나 가난한 자, 지체 낮은 자를 의미합니다. 역사 속 많은 문물의 비판이나 평가가 향유 계급에 맞춰 이뤄졌던 것처럼요. 따라서 오늘날 민주주의는 물론 앞서 페리클레스가 대중을 고취하며 사용한 민주주의와도 다릅니다.

핵심?

아리스토텔레스의 결론

이상적 정치 체제에 대한 고민은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러 구체화됩니다. 그는 국가가 취할 수 있는 정치적 몸체, 즉 정체(政體)를 위의 6가지로 분류합니다. 정치의 목적은 서양 최고의 가치인 공공선의 실현입니다. 이를 기준으로 정체가 잘 조절되는 경우와 사사로이 당사자 사익을 추구해 타락(왜곡)한 형태를 구분합니다. 순환과 타락의 과정이 반복된다고도 지적하죠. 정당성 없이 독재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형태가 참주정이며, 부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체가 과두정, 빈민의 이익을 좇는 경우가 민주정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민주주의(빈민정치)에 비판적이었습니다. 쇠락해가는 아테네 민주주의를 보며 귀족들의 의견이 무시되고 다수 빈자들의 결정 속에 무모한 전쟁이 잇따랐다고 판단했죠. 그렇다고 군주정이나 귀족정을 옹호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군주나 귀족(엘리트)에 의한 정치는 그들이 나머지 모두를 합친 것보다 유능할 경우에만 정당하며 이는 신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하다고 봤죠. 정체로 구분했듯 타락의 가능성도 있고요.

아리스토텔레스의 결론은 마냥 옳거나 마냥 그른 정체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오늘날 민주주의 중심에 귀족정을 섞은 형태긴 합니다. 영국이나 일본과 유사하죠. 이유는 가난이나 부유함에 상관없이 시민의 참여를 보장하고 규정을 조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돌아와서, 그가 주목하는 정체의 핵심은 구성원이자 주체인 시민의 구성 원리입니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복합)정체가 돼야 한다는 거죠. 소수 전문가가 유리한 상황에선 귀족정을 꾸리고, 전체의 의견이 필요한 상황에선 민주정체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이는 오늘날 권력 분립이나 대의제와의 연결도 환기하는데요. 혼합정체의 핵심은 다시 말해 국가는 누구의 전유물도 아니며 아니어야 한다는 겁니다. 공공의 것(res publica)이라는 이 개념은 이후 로마 공화국(republic)으로 계승됩니다.

? 참고한 도서 및 자료는 똑똑 홈페이지 본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로마 공화정과 이후 민주주의를 짚어보는 '민주주의는 어떻게 변화했을까?②'가 이어집니다.

? 민주주의의 길도 로마로 통한다?

에디터의 노트

민주주의에 대한 아이디어를 고대 그리스에서 읽을 수 있다면, 구조적으로 정교화한 형태는 로마 공화정입니다. 도시국가였던 아테네와 달리 제국으로까지 융성했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감당해야 했던 범위도 수준도 다른데요. 과연 어떻게 운영됐길래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것은 물론 과거 근대를 여는 르네상스의 롤모델로 여겨졌을까요?

개념?

공화(共和)

공화정에 대한 개념적 정의는 1화에서 살핀 바 있습니다. 왕 개인이 아닌 공동에 의한 의사결정 방식을 취하는 정치입니다. 오늘날 체제 구분의 편의상 ‘왕이 없으면 공화제’라는 식으로 구분하지만, 중요한 것은 꼭 ‘왕’이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왕 포함 누구에 의해서도 의사결정이 독점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지난 2화에서 언급한 바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 체제에 대한 결론과도 비슷합니다. 1인(왕)이든 소수(귀족)든 다수(인민)든 누구에 의해서든 정치적 의사결정이 독점되면 문제 있다고 보고 상황에 따라 유연한 정체(政體)이상적으로 봤죠. 공화국(republic)의 이념 또한 비슷합니다. 국가를 이루는 누구도 독점할 수 없는 국가, 공공의 것(res publica)으로서의 국가를 가리키죠. 고대 로마는 이의 원형으로 꼽힙니다.

전개?

로마 공화정의 성립
 

로마가 처음부터 공화국은 아니었습니다. 기원전 753년 건국된 로마는 약 200년 동안 왕정을 지속합니다. 그러다 정복 활동의 실패로 국력이 침체되자 귀족들의 합의체인 원로원 세력이 왕정을 몰락시키는데요. 이때부터 로마 공화정이 시작됩니다.

로마 공화정은 누가 전적으로 통치를 좌지우지하지도 않고 누구나 국가 운영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형태를 취했습니다. 세 계급이 서로 견제하며 균형을 이뤘죠. 귀족과 평민, 그리고 정무관이라는 이름의 통치계급입니다. 정무관 중에는 다시 집정관이라는 최고 통치권자가 시민의 직접선거로 선출됩니다. 상호견제 및 대내외 역할 분담을 위해 2명을 두었으며, 독재를 막기 위해 임기도 1년으로 매우 짧습니다.

사실 로마 공화정은 원로원 세력에 의해 시작된 만큼 귀족의 입김이 세고 자칫 과두정으로 흐를 여지가 컸습니다. 그러나 로마 공화국의 평민들은 자치와 자유에 대해 열정적으로 투쟁했습니다. 스스로 외적을 물리치기 위해 나서는 한편 적극적으로 귀족들과 다툼을 벌이기도 했죠. 내부 투쟁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전쟁에서 철수하는 모습도 보여주고요.

결국 귀족들은 모든 것을 잃지 않기 위해 평민에게 일정 몫을 허용하는 결정을 내립니다. 평화의 대가로 모든 시민에게 일정한 권리를 부여하고, 평민의회는 공식 지위를 얻고 관료 선출에 대한 권리도 얻죠. 이들이 바로 평민들을 대표하고 법률 사건에 개입했던 호민관입니다. 또한 암묵적으로 원로원 귀족 출신에서 2명의 집정관이 추려지던 것에서 1명은 반드시 평민일 것을 법률로 규정하는 균형을 이루는 데도 성공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공화적 개혁 조치를 통해 이룬 내부 통합과 정치적 성장은 로마가 이탈리아 지역을 정복하고 나아가 지중해 패권을 차지하는 발판이 되죠.

구조⚙

로마 공화정을 이루는 2가지 핵심

상호견제

정리하면 로마 공화정은 다음 3 세력에 의해 운영되고 또 서로 견제되며 균형을 이뤘습니다.

원로원: 귀족들을 대표. 정책 권고 및 자문기구. 국가 재정에 대한 통제권 행사.

호민관: 평민들을 대표하는 평민집회에서 선출. 입법권 행사. 오늘날 헌법재판소처럼 정무관의 명령 무효화 권한 지님.

집정관: 법이나 행정, 군사 동원 등의 집행권자인 정무관 계급의 최고위직. 정무관 포함 로마 시민 전체를 대표하는 민회에서 선출.

로마 공화정은 귀족과 평민이 서로 세력 균형을 이룬 가운데 집정관으로 하여금 정치를 담당하도록 한 일종의 대의제입니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대표자의 독단과 전횡을 막기 위해 상호견제와 권력분립이 철저하다는 점입니다. 통치를 담당하도록 선출되는 정무관 계급의 통치는 법에 따르는 법치이며, 민회와 호민관의 견제를 받고 국가 중대 사항은 귀족 모임인 원로원의 자문과 재가를 구해야 하죠. 더구나 고위직에 대해 원로원이나 민회의 탄핵 제도도 보장했습니다. 이런 구조 아래서 로마는 그야말로 공공의 나라, ‘공화국’일 수 있었습니다.

시민적 덕성

눈여겨볼 것은 이러한 로마 공화국의 융성과 유지는 로마 국민의 당시 뛰어난 시민적 덕성으로 발휘됐다는 점입니다. 흔히 백성이나 일반 대중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인민, 국민, 시민과 같은 다양한 표현이 쓰이는데요. 이 중 시민은 정말 시(市)에 사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권리와 의무를 가지며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주체적 구성원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당대 로마는 평민층도 정치적 권리를 수호하고자 적극적으로 나섰을 뿐 아니라 귀족들도 ‘노블리스 오블리주’에 걸맞은 책무를 다하도록 노력했습니다. 전쟁이 나도 병사들을 이끌고 똑같이 종군했습니다. 한 예로 16년 동안 카르타고와 지중해 패권을 다퉜던 제2차 포에니전쟁에서 전장에 나선 집정관의 수는 25명이었으며, 그중 13명은 전사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검토?

마키아벨리의 분석
 
후에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사상가이자 정치철학자 마키아벨리(1469~1527)는 로마 공화국을 분석합니다. 근대를 연 르네상스가 그리스 로마 시대를 모델로 한 문예 부흥 운동이기도 하다는 점 잘 아실 겁니다. <군주론>의 저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혹한 군주주의자로 유명한 마키아벨리지만, 그는 사실 공화주의자입니다. <군주론>은 당대 체제 안에서 가능한 정치론을 펼친 것에 가까우며, 중세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이 지배하는 체제에서 신의 후광을 벗겨낸 군주정의 민낯을 보여준 작업이기도 하죠. 군주정의 최선은 덕이 아닌 권모술수라는 거죠.
돌아와서, <로마사 논고>라는 저작을 남기기도 한 마키아벨리가 로마 공화국에 관심 가진 이유도 당시 조국 이탈리아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섭니다. 정치적 부패 속에서 도시 단위로 여러 자치 공화국이 들어서고 있었으나 주변엔 프랑스나 에스파냐 같은 위협적인 왕국이 즐비했죠. 마키아벨리는 궁금합니다. ‘로마는 공화국으로서 어떻게 그렇게 강대했지?’
 

앞서 로마 공화정의 2가지 핵심으로 돌아봤던 내용이 그대로 귀결됩니다. 먼저 정치 형태입니다. 마키아벨리는 로마 공화정에서 바람직한 정치 제도와 행위의 영원한 모델을 읽어낼 수 있다고 봤습니다. 중요 국가사업은 원로원의 재가를 받고, 평민의 대표 호민관은 결정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민회를 통해 입법권도 가졌죠. 이를 바탕으로 집정관은 집행권을 수행합니다. 그야말로 군주정, 귀족정, 민중의 요소들이 교묘히 분배돼 조합된 형태입니다. 이러한 권력분립 및 상호견제의 구조는 오늘날 법원의 사법권을 제외하면 거의 유사합니다. 게다가 세계 제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법이 발달해 관습법, 성문법 그리고 모든 이에게 적용하는 시민법까지 제정하죠. 이는 유스티니아누스 법전(로마법대전)으로 편찬돼 이후 서양법의 기본이 되죠.

로마 공화국의 쇠락

나머지 하나의 힘은 로마의 건강한 시민성에 있었습니다. 보통 영토를 엄청나게 넓힌 ‘제국’ 시절을 로마의 전성기로 보지만, 실은 그 기틀을 닦은 것은 물론 정치적으로 안정된 것은 이전 공화국 시절입니다. 평민과 원로원이 대립해 서로 견제하던 공화정이 로마를 자유로우면서 강력하게 만든 것이죠.

그러나 이후 로마가 강성해져 외적의 위협이 줄어들자 내부 분열이 극심해집니다. 귀족들은 더이상 용기나 헌신을 보여주지 않고 세력 다툼에 매몰되고, 평민들은 그들이 던져주는 콩고물을 챙깁니다. 자유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공화정을 세웠던 옛날과 다른 모습이 되죠. 카이사르에 의해 내전이 종식되고 그의 독재를 막고자 암살을 기도한 뒤에도 공화정은 회복되지 못합니다. 이미 권력의 적용 범위나 임기 등 제도에 균열이 일어나고 권력은 특정 개인 또는 집단에 집중되기 시작했죠.

결국 내전과 혼란을 최종적으로 수습한 것이 로마 초대 황제 옥타비아누스입니다. 원로원은 그에게 존엄한 자(Augustus)라는 칭호를 내리며 사실상 공화정의 종식을 알리죠. 결국 타락한 건강한 시민의식은 자유의 획득은 물론 유지에도 필수적인 셈입니다.

영향?

로마 공화국의 계승

로마 공화국이 이후 정치 역사에 미친 영향은 큽니다. 로마 공화정의 정치적 면모를 분석하자면 직접 민주주의와 대의제의 과도기적 형태로 볼 수 있습니다.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 사이에서 어느 정도 권력의 분립이 이뤄졌으며, 법이나 제도를 통해 상호견제의 원리를 뒷받침했죠. 나아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조화롭게 운영하는 풀뿌리 민주주의 원리라든지 이상적 공동체 구현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점에서 현대 민주주의의 기본적 뼈대를 구성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로마의 자치 공동체적 면모는 중세 도시의 전형인 코뮌(Commune)으로 계승됩니다. 코뮌은 중세 자치도시로서 중앙 권력을 대신해 중세 교회와 도시 주민들의 자치 권력이 결탁해 독립 도시로서 번영하는 형태죠. 터전적 후손인 이탈리아에선 12세기부터 집정관을 임명하는 도시들이 생겨나고 공화국을 자처했습니다. 이후 프랑스혁명을 대표로 한 시민혁명들의 영감도 로마 공화정입니다. 오늘날 미국 상원(Senate)이란 명칭의 어원도 로마 원로원이죠. 그러나 민주주의의 역사는 중세 신 중심 질서 아래 약 1000년의 공백을 갖고서야 근대 이후 다시 등장하는 셈인데요. 이에 관해선 다음 화에 이어서 짚어봅니다.

? 민주주의: 중세의 암흑과 근대의 혁명

에디터의 노트

이번 화에서 민주주의의 시곗바늘은 중세와 근대를 향합니다. ‘근대’와 ‘민주주의’ 하면 바로 ‘혁명’이 떠오르지만 ‘중세’와 연결 짓긴 쉽지 않은데요. 어떤 점에서 중세는 민주주의의 암흑기였을까요? 이와 더불어 오늘날 민주주의의 직접적 기원으로 꼽히는 근대 시민혁명의 중심 사상을 살펴봅니다.

배경?

 
중세가 민주주의 암흑기인 이유는?

유럽 역사에서 중세는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 르네상스가 시작되기까지인 5~15세기, 약 1000년 동안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르네상스는 과거 그리스 로마의 문물을 부흥하고자 일어난 움직임입니다. 이탈리아 정치철학자 마키아벨리(1469~1527)가 당대 사회를 개혁하고자 고대 로마에 관심 가졌던 것처럼 말이죠.

왜 1000년 이상의 세월을 거슬러 답을 찾으려 한 걸까요? 시대를 구성하고 있는 세계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먼 훗날 기계가 지배하는 세상이 왔다고 해보죠. 인간들이 가까스로 해방에 성공한들 같은 세상을 구성할 순 없습니다. 다른 방식이 필요하죠. 그럼 생각하겠죠. ‘먼 옛날 인간 세상은 어땠지?’ ‘심지어 잘 굴러갔다고?’ 참고할 만한 좋은 모델입니다.

르네상스도 마찬가집니다. 인간 중심적 사고관이 발달하고 새로운 세상을 구축하고 싶은데, 그간 모든 것이 신의 권위 아래 이뤄졌던 중세 신 중심 사회에서 인간의 사유나 체제 등은 답보 상태입니다. 진전이 스킵돼 버렸죠. 중세는 ‘암흑기’라는 말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야말로 블랙아웃(black-out)됐기 때문입니다.

신민(神民)의 세상

신이 군림하는 중세에서 정치적 고민은 인식 뒤편으로 사라집니다. 신이 내린 신적 대리자인 교황, 세속적 대리자인 황제에 의한 통치에서 의문의 여지는 없습니다. 통치의 합리성이든 권력 간 상호견제든 판타지 소설 같은 얘깁니다. 잘 굴러가면 그만이죠. 물론 우리나라 개화기에서처럼 가톨릭이 자유와 평등을 가져다준 측면을 무시할 순 없습니다. 교회의 부패를 계기로 일어난 종교개혁이 있기까지 긴 시간 잘 운영됐다고도 볼 수 있고요. 그러나 인간에 의한 다스림의 과학이라 할 수 있는 정치사상이 발전할 여지나 동인은 없었죠.

중세에 정체(政體)에 대한 연구가 아예 없었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집니다. 그러나 중세에서 민주주의 개념은 고대에나 있던 하나의 헌법 형태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에 대한 철학 또는 문헌학적인 논의에서만 사용됐죠. 평등이라든지 공동 결정(Mitbestimmung) 등의 사상 역시 그래서 헌법 관련 사료나 발견할 수 있죠.

가령 농민 봉기 등이 일어나더라도 이를 민주주의적으로 묘사하려는 시도는 근대 이후인 19세기에서야 나타납니다. 중세에서 지배자의 권리 남용이나 의무 불이행 같은 게 문제 되지 않았다는 건 아닙니다. 문제 삼는 포인트가 다릅니다. 체제를 문제 삼는 게 아니라 체제가 잘 유지되지 않음을 문제 삼는 식이었죠. 이것이 근대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까지 민주주의가 학술용어에만 머무른 이유입니다. 프랑스혁명 같은 근대 시민(市民)혁명이 ‘혁명’으로 불리는 이유 중 하나기도 하고요.

내용?

시민혁명과 민주주의

 
오늘날 민주주의의 직접적 기원은 17~18세기 시민혁명을 통해 등장한 근대 민주주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역사로 300~400년을 거론할 때 근거기도 하죠.

시민혁명의 의의는 다양합니다. 먼저 이름처럼 시민이라는 보편적 주권자를 탄생시켰으며, 스스로 주체가 돼 그간 절대군주의 자의적 지배나 귀족 중심의 봉건적 특권 체제를 전복했죠. 그 과정에서 논리이자 당위, 수호해야 할 가치가 된 것이 바로 자유와 평등 같은 인권 개념입니다.

모든 이에게는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권리가 있으니, 이를 위협하는 지배 체제나 국가마저 투쟁의 대상이 됐습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주권재민(主權在民), 인민주권론을 기반으로 하는 근대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나아갔습니다.

 

왼쪽부터 홉스, 로크, 루소.

홉스

고대 그리스에서 민주주의를 검토한 것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라면, 근대 민주주의의 사상적 기틀을 마련한 삼대장은 홉스와 로크 그리고 루소입니다.

먼저 살펴볼 것은 영국의 정치철학자이자 최초로 민주주의적 측면에서 사회계약론을 주창한 토머스 홉스(1588~1679)입니다. 사회계약론이란 말 그대로 사회는 구성원의 필요에 따라 계약적으로 구성되고 유지돼야 한다는 이론입니다.

지금에야 당연한 소리지만 당대엔 무서운 소리입니다. 구성원의 필요에 응하지 않으면 정부도 해체돼야 한다는 얘기니까요. 당시 통치 정당성을 보증하는 왕권신수설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얘기기도 하고요. 여기서 ‘구성원의 필요’에 해당하는 것이 생명과 재산입니다. 오늘날 인권에 해당하는 셈인데요, 인간은 자유 상태에선 이를 보호하기 위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에 놓이기 때문에 이를 제어할 사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유명 저서 <리바이어던>(Leviathan)의 이름처럼 절대권력이 이를 수행해야 한다고 봤죠. 시민성이 정치에 차지하는 중요성에 주목하면서도 절대권력으로 귀결된 점은 마키아벨리와도 유사한 측면이죠.

로크

홉스가 주창한 사회계약론의 민주주의적 면모는 영국 정치철학자 존 로크(1632~1704)에게로 이어져 구체화합니다. 로크의 사회계약론 역시 구성원의 필요에 따라 사회는 계약적으로 구성돼야 한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와 같은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자연 상태에서도 인간은 완벽히 자유롭지만, 발생할 수 있는 권리 침해 상황을 대비하고 막기 위해 사회가 필요하다는 거죠.

로크는 자유, 생명, 재산을 남에게 양도할 수 없고 침해받아선 안 되는 인간의 기본권, 즉 ‘천부인권’으로 바라봤습니다. 특히 재산권을 중요하게 여겨 계약에 의해 구성된 권력이나 정부는 개인의 사유 재산을 보호하고 공공선의 증진을 위해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죠.

이를 어기거나 소홀히 할 경우 전복하고 새로운 정부를 수립할 권리가 인민에게 있다고 함으로써 주권재민(主權在民) 사상을 확립합니다. 홉스가 개인의 필요를 제어하기 위해 절대적 주체로 권력을 몰아주는 방향을 제시했다면, 로크는 대의제처럼 권력의 행사를 위임할 것을 내세웠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루소

“선거는 4년이나 5년에 한 번씩 투표할 때만 주인과 자유인이 되고 끝나면 다시 노예로 돌아가는 제도이다.” — 루소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 음악가이기도 한 장자크 루소(1712~1778)입니다. 자유, 평등, 박애를 주창했던 그는 그간 개인적 영역에 머물렀던 자유를 민중적으로 확대해 프랑스혁명의 사상적 지주로 꼽힙니다. 다양한 이력만큼 다재다능한 인물이며, 낭만스러운 구석도 있는 자유로운 영혼이기도 하죠.

<사회계약론>이라는 책까지 남긴 그가 국가 상태를 필요로 한 이유는 자유를 위해섭니다. 루소의 대표 저작인 <인간 불평등 기원론> <에밀> 등에서 드러나는 한결같은 메시지는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 행복하며, 그렇기에 속박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겁니다. 그러나 산업혁명이 일어날락 말락 하는 시기에 ‘자연인’이 되는 것은 무리니까 차선으로 정부를 둬서 자유를 보장하자는 게 그의 사회계약론입니다.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에 열광한 1인이었던 루소는 직접민주주의를 선호했습니다. 주체로서의 자유를 중요시했던 그이기에 어쩌면 당연한데요. 그래서 그의 사회계약론은 홉스처럼 ‘몰아주기’도 로크처럼 ‘위임’도 아닙니다.

국가는 그 전체 구성원과 계약을 통해 성립되며 그 사회 안의 모든 개인은 사회 구성원 전체 의사로 통치돼야 한다. —루소, <사회계약론>

주권은 양도할 수 없으며 누가 대신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루소는 투표와 선거를 매우 싫어했죠. 그러나 고대 도시국가 아테네의 경우와 달리 근대에 이르러 체제적으로 직접민주주의는 불가능에 가까운 소리였습니다.

그러나 주권의식이라든지 사회는 구성원 모두의 의지를 반영해야 한다는 ‘일반의지’ 개념은 법으로써 구체화되고, 나아가 정부 운용의 원리로 확장합니다. 낭만적이리만치 열정적이었던 그의 메시지는 혁명은 물론 민주주의의 체계에까지 닿는 중심 사상이 된 셈이죠.

? 민주주의는 어떻게 자리 잡았을까요?

에디터의 노트

지난 화에선 근대 민주주의의 뿌리가 된 시민혁명과 이를 구성하는 정신적 토대인 홉스, 로크, 루소의 사상을 들여다봤습니다. 자유, 생명, 재산을 인간이라면 누려야 할 기본권으로 천명해 국가의 기능을 재정의하는 한편 루소는 구성원의 의사 반영을 중시해 공공선을 위한 시민의 의지인 ‘일반의지’까지 강조했죠. 이는 법과 정부의 운용 원리가 되고 참정권 및 시민의 정치 참여에 대한 근거가 되는데요. 이번 화에서는 현대에 민주주의가 자리 잡는 실질적 이해관계를 한번 살펴봅니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소환됐을까요?

배경?

 

자본주의+민주주의

 

혹시 실정법(제정법)과 대비되는 개념인 ‘자연법’에 대해 아시나요? 실정법이 나라의 실정에 맞게 경험에 따라 제정되는 법이라면, 자연법은 인간이라면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는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보편한 법입니다. 대표적인 게 인권이죠. 인권의 개념이 인간의 자연 상태에서 고찰됐듯 인권은 인간의 본성과 일치합니다. 그러므로 이를 보장하는 법을 자연법이라 하는데요.

민주주의는 최악의 정치체제다. 지금까지 실시된 모든 정치체제를 제외하면.

— 윈스턴 처칠

민주주의는 좋다. 다른 제도가 더 나쁘기 때문이다.

— 자와할랄 네루

이렇게 생각하면 민주주의 역시 인간의 본성으로 여길 수 있지만 사실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의 나이가 이렇게 어리진 않을 텐데요. 모든 정체(政體)가 그러하듯 민주주의 역시 사회의 필요에 따라 등장했습니다. 그 사회의 필요란 중세 봉건사회에서 상업경제의 발달로 맞이한 자본주의적 전환입니다.

관계를 따져보자면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와 함께 발전했습니다. 아니, 자본주의가 아니었다면 발전할 수 없었을지 모릅니다. 기존 봉건 질서와 대비되는 새로운 자본주의 질서 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보편한 정치이념으로 떠오른 게 민주주의니까요.

중상주의 질서가 대두하며 사회 유력층이 된 상인 및 부르주아는 봉건사회에서 유력층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스스로 유리한 체제를 꿈꾸며 기존 귀족 중심 사회 및 정치 구조와 충돌하며 발전시킨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혁명 역시 기존 권력 체제에 갇혀 있던 자신들의 부와 야망을 발휘해 사회적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불가피한 수단이었고요. 하지만 혁명에는 동지가 필요한 법입니다. 구체제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부르주아 계급과 지식인들은 대중을 모아야 했습니다. 농민이나 노동자, 여성 등을 모아 ‘시민’의 깃발 아래 함께 싸운 속내 중 하나입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이룩한 인권 및 민주주의의 진보는 폄훼할 수 없는 가치이자 정치적 계몽이지만요.

대상?

최초의 민주주의 국가

그럼 처음으로 ‘민주주의’를 천명한 국가는 어디일까요? 위에서 민주주의의 나이를 언급한 자료에서 보셨듯, 바로 미국입니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 이후 2000년 만의 부활인데요. 그러나 사실 처음에는 ‘민주주의’ 국가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꺼려 했는데요.

그 이유는 고대 그리스 당시와 같습니다. 무지한 인민의 정치, 가난한 빈민들의 통치로 간주됐기 때문인데요. 그렇기에 민주주의는 혼란과 무질서, 무정부 상태를 야기하고 무엇보다 재산권을 위협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당시 민주주의의 이명은 빈민정치였으니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그러나 재산권은 인권으로 확립된 가치 중 하나고요.

오히려 공화제가 훨씬 더 선호됐습니다. 미국 민주주의의 아버지인 제임스 매디슨은 연방 헌법안 비준을 위한 <연방주의자 논설>을 작성하며 미국을 공화국이라 밝혔을 정돈데요. 실제로 미국이 민주국가로 불리게 된 건 헌법을 제정한 20~30년 후의 일입니다. 왜일까요? 키임브리지대 킹스칼리지 명예교수 존 던은 ‘민주국가’ 미국에 대해 이런 분석을 내놓습니다.

그저 미국의 정치 체제에 붙일 차별화된 이름이 필요했다는 겁니다. 당시 대표적인 공화제 국가는 프랑스였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공화정은 재산권 보호에 매우 변덕스러운 모습을 보여 사람들의 반감을 샀는데요. 반면 일관되고 강력하게 사유재산권 보호에 힘써 온 미국이 다른 이름을 찾다 보니 군주정도 귀족정도 아닌 민주주의였던 거죠.

여기까지 이야기하며 환기하려는 것은 하나입니다. 적어도 혁명 이후 초기 민주주의의 모습은 통념만큼 그렇게 달달하지도 낭만적이지도 숭고하지도 않다는 거죠. 오히려 이념과 이름으로만 소비된 인상도 큽니다. 그렇담 말만 가져왔을 뿐이었던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정착하는 때로 볼 수 있는 건 언제일까요? 민주주의의 기치처럼 모든 시민이 자원 배분에 참여하고 통제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전개⚙

참정권의 확대와 민주주의의 확립

정치란 사회적 가치, 즉 희소한 자원의 권위적 배분이다. — 데이비드 이스턴

바로 참정권입니다. 정치적 의사를 반영한다는 건 달리 말해 자원의 배분 과정에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려면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자유이자 주권이며 평등이기도 하고요. 그러므로 민주주의의 보편적 이념으로서 성장은 참정권을 향한 일반 시민들의 의지와 함께 이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보통선거권이죠.

보통선거권을 위한 투쟁은 19세기 중엽 영국 차티스트 운동 등 유래가 깊습니다. 20세기 초 애멀린 팽크허스트의 주도 아래 일어난 여성참정권 운동인 서프러제트에서 보여주듯 ‘보통’이란 기표에서 차별을 걷어내는 데도 오래 걸렸고요.

일반 시민의 보통선거권 쟁취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세계대전입니다. 모든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의 정착은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 도운 셈인데요. 가장 일찍 확립된 영국에서 보통선거권이 확립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중입니다. 무기 생산 노동력이 필요했던 정부와 노동자 사이에서 타협을 이뤄 1918년 남성에게, 1928년 여성에게로 확대됐죠.

보통선거권 이전부터 투표권은 군사적 지원을 대가로 주어졌습니다. 17세기부터 선거권이 주어질 때에도 ‘남성 한 명당 하나의 투표권과 한 자루의 총’이 당시 슬로건이었죠. 투표권을 가지되 군사적 의무도 져야 했습니다. 그 예로 총알이라는 영어 단어 ‘불릿’(bullet)과 투표용지의 ‘밸럿’(ballot)은 원래 ‘작은 공’을 가리키는 동의어죠. 기시감이 느껴지지 않으시나요? 고대 그리스 아테네, 고대 로마에서 전쟁과 함께 시민의 권리를 획득한 것과 유사하죠. 그냥 얻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요.

더 보기?

대의제를 바라보는 상반된 시각

공화정, 즉 대의제가 왜 선호됐는지에 대해 살펴보는 일도 흥미롭습니다. 오늘날 민주주의가 왜 대의제를 채택하고 있는지는 아마 어린아이도 답할 수 있을 겁니다. 네, 사람도 많고 땅도 넓은데 일일이 모든 사람의 의견을 정치적으로 반영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인데요.

그러나 앞서 언급한 미국 헌법의 주요 설계자인 존 매디슨과 프랑스혁명의 주도자인 에마뉘엘 조제프 시에예슨은 다른 시각을 내놓습니다. 쉽게 말해 둘 모두 대의제를 직접민주주의의 하위 호환 또는 대체재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제임스 매디슨(왼쪽)과 에마뉘엘 조제프 시에예슨(오른쪽).

먼저 살펴볼 시에예스의 관점은 보다 건조하면서 구조적인 매력이 있습니다. 그의 대의제는 소위 ‘분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 정치할 시간도 정치에 관여할 시간도 없다는 겁니다. “바쁘다 바빠” 소리가 절로 나오는 현대사회에서 개인은 경제적 생산과 교환에 매진할 여력밖에 없다는 거죠. 노동 분업에 적용되는 효율성이 정치적 영역에 적용된 꼴입니다. 사람들이 생업에 종사하기 위해, 정치 역시 분업의 영역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죠.

민주주의와 공화제 간의 가장 큰 두 가지 차이점은 첫째, 공화제의 경우 시민이 선출한 소수의 대표에게 정부를 위임한다는 사실이다. 둘째, 공화제는 더 많은 수의 시민들과 더 넓은 범위의 국가로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이다.

— <연방주의자 논설> 중에서

매디슨은 대의제를 고대 민주정과 다른 우수한 정치 체제로 생각했습니다. 논점은 다수의 정치참여에 대한 회의입니다. 효율적이지 않으니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점은 시에예스와도 유사합니다. 그러나 매디슨은 다수의 잘못된 전제정치를 막는 기제로서 대의제를 옹호했습니다.

매디슨의 생각은 정치적 의사를 타진하는 시민 집단이 선택되는 과정에서 대중의 견해는 정제되고 논의는 확대된다는 겁니다.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다는 거죠. 게다가 선출 집단은 사명감과 현명함으로써 공익을 분별하고 사적인 이해관계에 눈멀지 않을 것이라 여겼죠. 쉽게 말해 그들에 의해 여과된 민중의 목소리가 공공선 또는 일반의지에 더욱 부합하리란 것이죠. 이러한 미국의 공화제에 대한 신뢰는 지금도 공화-민주 양당 체제나 선거인단을 통한 간접선거 등을 통해 남아 있습니다.

? 민주주의가 위기라고요?

에디터의 노트

현대 들어 많은 기관이 민주주의의 위기 내지 후퇴를 진단하고 있습니다. 미국 비영리기구 프리덤하우스(Freedom House)는 자유민주주의로 구분할 수 있는 국가 수가 줄었다고 통계자료를 보고했습니다. 매년 민주주의 지수를 발표하는 이코노미스트 산하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에서도 전 세계 민주주의가 위태로운 상태에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사회의 지속가능 거버넌스에 대해 연구하는 비영리재단 배텔스만의 변혁지수(BTI)에서도 2000년 이후 민주주의의 후퇴를 경험한 국가가 이전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고 나타납니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어떤 위기를 맞닥뜨리고 있을까요?

개요?

민주주의의 현주소

 

먼저 지난 화에 이어 현재 민주주의가 어떤 상태에 놓여있는지 간략히 짚어봅니다. 민주주의는 시민혁명 과정에서 드러나듯 자유의 쟁취 과정에서 확립했습니다. 그 자유의 근거가 되는 게 이성이고요. 인간은 이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누구나 자유롭고 합리적인 존재로서 평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결합해 나타납니다. 보다 정치적 언어로 정리하자면 자유주의는 피치자(시민)의 권리 보호와 국가권력의 부당한 개입 방지를, 민주주의는 인민의 주권과 정치적 평등을 지향하는 이념이죠.

필요해진 배경은 자본주의의 발전이 잡아줍니다. 부르주아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대중이 부상함에 따라 기본권과 참정권이 확대되는 형태를 띱니다. 그 결과 혁명 이후 초기 민주주의는 부르주아의 지배와 대중의 정치 참여가 타협된 자유민주주의 형태를 띠죠. 부르주아와 자본주의 질서를 수용하는 대가로 일차적으로 주어진 게 자유, 그 다음 쟁취한 게 참정권인 셈입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는 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 위기를 맞습니다. 제국주의적 이권침탈 경쟁이었던 세계대전은 파시즘과 같은 극단적 국수주의, 민족주의를 낳기도 하죠. 이는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이 승리하고 이후 민주주의가 발전하며 상당 부분 극복했습니다. 그러나 대공황이 불러온 경제 위기는 민주주의를 19세기 자유민주주의와 다른 모습으로 바꿉니다. 마찬가지로 배경은 자본주의입니다. 수정 자본주의죠. 케인스주의에 따라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고, 복지 정책을 적극적으로 펴는 복지국가가 됩니다. 이때 비로소 자유와 더불어 평등이 민주주의 가치로 강화됩니다. 이후 다시 신자유주의가 부상하고 세계화의 물결 속에 복지정책은 축소됩니다. 이는 사회적 양극화를 낳고 민주주의의 경제적 평등을 약화시킵니다.

자유민주주의 → 자유+평등 민주주의 →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로 복지 축소 → 양극화 및 경제적 평등 약화(오늘날 갈등 상태)

우리나라의 경우

조금 다릅니다. ‘한강의 기적’으로 이룬 경제 발전만큼이나 민주주의 역시 단기간 내에 이뤘기에 그 성숙도나 발전이 모자른 게 사실입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민주주의적 기반이 약한 국가들에선 복지국가적 경험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신 민족주의나 권위주의에 기댄 독재정권이 들어서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과거 권위주의 독재 시대에 강력히 구축된 보수 세력의 영향력이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성장 일변도의 길을 걷느라 평등, 복지 측면이 부족하며 민주주의 역시 민주화 항쟁 등을 통해 급진적으로 발전했고요. 그러나 여전히 민주주의적 가치의 희생을 담보로 성장한 측면이 있습니다. 이 점은 오늘날까지 보수 세력의 향수로도 남아있죠. 이런 점에서 현대 민주주의의 일반적 한계를 공유함과 동시에 원 플러스 원으로 위와 같은 특수성을 함께 지닌 것이 특징입니다.

검토1️⃣

대표성의 위기

이제 민주주의에 어떤 위기가 도사리는지 볼까요? 이번엔 우리나라 통계 얘길 해볼 텐데요. 2020년 한국리서치에서 조사한 우리나라의 정치 만족도는 평균 3.84점입니다. 정치를 매개하는 정치인, 정당에 대한 만족도는 각각 2.95점과 3.89점이고요. 10점 만점입니다.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도 4.09점으로 직접민주주의나 강한 리더 중심 통치와 비교해 가장 낮습니다.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 중 하나는 대표성입니다. 인구 증가와 도시 발전으로 사실상 민주주의=대의민주주의인 오늘날 매우 중요하죠. 그럼에도 정치인이 구성하는 국회 그리고 정당은 매우 낮은 신뢰를 받고 있습니다. 비단 조사 결과에서만 드러나지 않습니다. 2016년 박근혜 국정농단사태만 봐도 국민의 목소리는 국회의원이나 정당이 아니라 광화문에서 직접 표출됐죠.

이는 선거로 탄생한 정당이나 국회가 국민의 의사를 정책 결정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합니다. 민의를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는 대표성의 위기입니다. 공공의 이익이 반영되지 잘 반영되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기에 공공성의 위기기도 하죠. 모두 권한을 위임받은 대리인들이 사익을 위해 권한을 남용하거나 서로 담합(카르텔 정당)하고 책임을 회피할 때 벌어지는 일입니다.

선거의 한계

일단 투표는 해야 합니다. 대의민주주의에서 투표도 안 하면 정치적 의사 표현은 포기한 셈입니다. ‘날 잡아 잡수’란 얘기죠. 그러나 사실 투표와 선거도 한계가 있습니다. 때문에 다른 보완책과 시민의 정치적 성숙이 요구되는데요. 이와 관련해선 다음 화에서 알아보도록 하고, 여기선 어떤 한계가 있는지 간략히 짚어봅니다.

얘기할 것은 ‘투표의 역설’과 ‘불가능성 정리’입니다. 핵심은 선택지가 합리적인 대표성을 띠지 못할 때에도 다수결을 통해 선택될 수 있다는 겁니다. A, B, C라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을 때 A가 B보다 좋고 B가 C보다 좋다면 A는 C보다 좋아야 합니다. 그래야 A와 B가 후보로 있을 때 A라는 선택이 합리적이죠. 이를 이행성(일관성)의 원칙으로 부르는데요. 그러니 현실에선 C가 A보다 좋을 수 있죠. 이재명보단 윤석열이 좋은데 윤석열보다 안철수가 좋을 수 있는 것처럼요.

또한 선거가 반드시 능력을 검증한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후보자에게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지도 않고요. 후보자는 최소한 자신을 알려야 하며, 인지도는 선거에 큰 당락을 좌우합니다. 자신을 알리거나 선거활동을 위해서도 많은 돈이 들죠.

또한 유권자 역시 반드시 가장 능력 있는 이에게 투표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사실 선거가 시험이라고 봤을 때, 뭐가 기출문제고 평가기준인지 종잡기 어렵습니다.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죠. 또한 선거 역시 유권자에게 공정하게 판단하길 강제하지 않습니다. 그냥 ‘이마가 훤칠하니 잘생겼어’ 하고 찍어도 이를 막을 수 있는 어떤 방법도 없죠. 투표의 역설에서처럼 ‘누구보단 좋아서’일 수도 있고요. 다만 경험적으로 성숙하길 기대할 수 있을 뿐이죠.

검토2️⃣

갈등의 양상, 양극화

민주주의는 갈등의 정치입니다. 갈등으로 굴러갑니다. 대의민주주의에선 정당에 의해 선택된 ‘갈등’이 공론이자 여론이 됩니다. 정당 또는 정치인에 대한 선택은 내가 해결하고 싶은 갈등을 담은 상품 꾸러미 구매와도 같죠.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기로 지목되는 것은 양극화로 인한 사회적 분열입니다. 사회적 가치를 분배하는 게 정치이고 그 신체가 정치체제라고 봤을 때 곧 현재 사회의 가장 큰 위기로도 볼 수 있죠.

그럼 양극화란 무엇일까요? 양극단으로 치우치는 일입니다. 태도나 소속감이 극단적 이데올로기로 치우쳐 중도적 공간이 희박해지는 일 또는 현상이죠. 그럼 왜 안 될까요? 중도적 공간이 왜 필요할까요? 딱 부러진 게 야무지다고 평가받고 흑백논리가 각광받는 세상이지만, 양극화는 타협이나 합의, 상호존중이나 이해 그리고 관용을 품기 어렵게 합니다. 그러면 규범이나 입법 과정 사법에 대한 존중이 약화되고 시민은 불만과 분노를 절제 없이 분출하기 쉽습니다. 정치인도 여기에 편승해 포퓰리즘에 치우쳐 대중을 호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정치를 승패의 구도로 만들 수 있습니다. 승자는 패자를 배제하고 패자는 승자에 보복하기 위해 정당성을 부정하고 비민주적 수단을 강구할 수 있죠. 민주주의의 룰 자체가 붕괴할 수 있습니다.

양극화는 시민이 갖는 사회적 신뢰도 훼손합니다. 양극화된 정치인은 자신의 이념으로 시민을 정치적으로 동원하며, 시민은 지지하는 진영의 정치 논리에 종속되고 갇히고 맙니다. 팩트와 토론 가능한 이슈는 필요 이상으로 정치적으로 소모되죠. 여기에 언론, SNS, 지식인 집단까지 휘말리면 민주주의에서 합리적 토론과 숙의는 흔들리고 맙니다.

정치의 양극화는 한층 더 위험합니다. 흔히 극우, 극좌로 불리는 정치 세력은 왜 위험할까요? 좁은 한 편의 입장만 대변하고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그게 왜 위험할까요? 그 외의 것을 타자화하고 차별하고 혐오하기 때문입니다. 파시즘이나 나치즘, 자국민 우선주의 등이 국가적으로 발현된 예라면, 이민자나 인종, 여성, 장애인 혐오 등은 대중에도 만연하는 정치적 양극화입니다. 이는 과거 트럼프의 당선처럼 귄위주의적 스트롱맨 정치를 낳기 쉬울뿐더러 가짜뉴스나 포퓰리즘에 있어서도 좋은 먹잇거리가 되죠.
경제적 불평등은 어떻게 양극화를 낳고 이와 민주주의는 어떤 관계를 갖는지에 대해선 다음 화에서 이어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 민주주의는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까요?

 
 

에디터의 노트

이즘 스튜디오 자본주의 마지막 화를 맞아 앞으로 민주주의가 가야 할 길을 생각해봅니다. 오늘날 만연한 경제적 불평등과 민주주의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요? 앞으로의 민주주의엔 어떤 요소들이 어떻게 필요할까요?

관계?

 

경제적 불평등과 민주주의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는 함께합니다. 누구는 잘살고 누구는 못 사는 사회에서 갈등과 반목이 존재하지 않기란 어렵겠죠. 그렇기 때문에 불평등 문제가 완화되지 않으면 민주주의의 질은 떨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모두가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데 몰두하면 사회적 연대나 공적 가치는 소홀해집니다. 그런 사회에서 자유란 일부 가진 자와 힘센 자의 전유물이 되죠. 현재 신자유주의 체제가 초래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1700~2100년(예상) 인구성장그래프. 푸른 부분은 인구, 보라색 선은 인구증가율을 나타낸다. 1950년 급증했다. ⓒMax Roser via wikimedia commons(BY-SA) (자료: Our World in Data)

내버려 두면 부는 증식되고 편중돼 불평등은 고착됩니다. 피케티는 자본수익률과 경제성장률의 격차를 줄이는 방법은 두 가지라고 말합니다. 자본이 벌어들인 수익에 세금을 부과해 그 수익률을 떨어뜨리거나, 노동 소득을 늘려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것이죠. 전자의 예는 누진세, 후자의 예는 최저임금입니다. 이러한 소득 격차는 저절로 줄지 않습니다. 더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말이죠.

 

바꿀 수 있는 건 정부 정책입니다. 그리고 정부 정책을 결정하는 건 다름 아닌 민주주의죠. 자본주의는 ‘1원 1표’의 판입니다. 돈 많은 이가 항상 승리합니다. 스타트 라인도 다르고 뛰는 환경도 다르고 보상의 규모도 다릅니다. 하지만 누구나 평등하게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민주주의는 게임의 룰을 ‘1인 1표’로 바꿉니다. 가난과 불평등한 분배는 시장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이자 곧 민주주의의 문제입니다.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절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 우리나라 헌법 제119조 2항

전망?

민주주의가 나아갈 길

그럼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지난 화에서 지적한 민주주의의 위기란 대표성과 공공성의 위기였습니다. 정치인, 정당,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낮은 신뢰도가 보여주듯 기존 민주주의가 시민의 뜻과 공공의 이익을 잘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건데요. 그렇담 그들이 정치적 의사 결정을 독점하는 상태를 벗어나는 게 대안의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곧 시민의 정치적 참여가 다양해져야 함을 뜻합니다.

 

시민의 뜻을 더 다양한 방법으로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젊은 층의 참여를 늘리는 것도 방법입니다. 실제로 지난 2020년 총선은 선거법 개정으로 만 18세 54만8986명의 청소년이 투표권을 행사한 바 있죠. 기존 고령화 사회 속에서 잘 드러나기 힘들었던 젊은 목소리를 많이 확보하는 일도 민주주의의 신진대사에 도움이 됩니다.

 

“선거는 4년이나 5년에 한 번씩 투표할 때만 주인과 자유인이 되고 끝나면 다시 노예로 돌아가는 제도이다.”  — 루소

 

시민이 더 다양하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선거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사회는 민주주의적으로 성숙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루소의 말처럼 선거 때만 주인이 돼서야 올바른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 없으며 진정한 주인으로도 볼 수 없죠.

 

선거(election)는 본디 엘리트(elite)를 뽑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엘리트란 선출된 사람을 뜻합니다. 그렇기에 정치적으로 능력 있는 이에게 정치를 맡긴다는 공화제적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죠. 대의제 시스템 역시 마찬가집니다.

 

그러나 투표는 민주적으로 시민의 뜻을 말하고 또 들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일 뿐입니다. 선택받지 못하는 후보와 그를 지지하는 유권자는 항상 존재합니다. 그렇담 이들의 의견은 묵살되는 걸까요?

 

이들을 포함한 다양한 의견을 들을 다른 방식도 있어야 맞습니다. 슬로건일 뿐이긴 하지만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거나 정권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느낀다는 건 분명 민주주의 관점에선 문제가 있습니다. 민의가 특정 진영이나 이념에 따라 선택적으로 반영된다는 거니까요.

 

정치적 성숙은 인간사회 발달에 따라 맞이하는 단계적 소양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정치학자 로널드 잉글하트는 매슬로 욕구 이론을 들어 안전이나 신체적 생존에 걱정하지 않게 됨에 따라 환경, 기아, 민족이나 종교 및 소수자 문제 같은 사회적 문제에 대해 배타성을 거두고 적극 논의하게 됐다고 말하죠. 이는 앞으로의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 있게 하지만, 동시에 민주주의와 자유엔 평등한 기본적 삶의 보장이 전제조건으로 기능함을 드러냅니다.

정치적 성숙은 인간사회 발달에 따라 맞이하는 단계적 소양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정치학자 로널드 잉글하트는 매슬로 욕구 이론을 들어 안전이나 신체적 생존에 걱정하지 않게 됨에 따라 환경, 기아, 민족이나 종교 및 소수자 문제 같은 사회적 문제에 대해 배타성을 거두고 적극 논의하게 됐다고 말하죠. 이는 앞으로의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 있게 하지만, 동시에 민주주의와 자유엔 평등한 기본적 삶의 보장이 전제조건으로 기능함을 드러냅니다.

키워드?

새로운 민주주의

대안적 의미에서 새로운 민주주의로 거론되는 두 가지를 살펴봅니다. 시민의 참여를 증진시킬 뿐 아니라 그간 반영되지 못했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게 특징이자 목적입니다.

전자민주주의

처음에는 시민의 참여 확대에 그 논의가 한정됐으나, 다양한 기술 활용을 통해 정치적 의사결정의 대표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는 장치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전자정부, 전자정당, 전자 거버넌스 등이 실험되고 있는데요.

오늘날 디지털 네이티브로 대표되는 새로운 시민이 그 주체입니다. 자라면서 이미 정보통신기술 활용이 능숙해 능동적이고 자발적으로 정치적 데이터를 소비하고 또 공급하죠.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젊은 세대의 정치참여 역시 전자민주주의의 단면입니다.

저렴한 비용을 활발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어 참여 효과가 증대됩니다. 개인의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참여하는 시민권도 확대된다고 볼 수 있죠. 비판도 있습니다. 참여는 늘지만 책임과 심의성은 낮아진다는 지적입니다.

책임 없는 참여나 심의 없는 참여입니다. 가짜뉴스를 퍼뜨리거나 각자의 입장만을 강조하는 반향실 효과(echo chamber)로 정치적 부족주의를 낳을 우려도 있습니다. 또한 권위주의 정부의 통제 아래 놓이면 정보 감시나 통제, 조작 등 ‘빅브라더’가 출현할 수도 있죠. 디지털 권위주의는 이미 중국이 잘 보여주고 있는 예입니다.

정보정치학자 채드윅은 낙관이나 비관에만 머물러 다투기보다 아예 새로운 전자민주주의를 디자인하자고 제안합니다. 대의민주주의의 문제를 보완할 기술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가치와 시민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해 디지털 아고라를 구축하자는 거죠. 해외 협업 의사결정 플랫폼 루미오(Loomio)나 블록체인 기반 투표 기술인 아고라(Agora)가 재미난 예입니다. 루미오는 디지털 기술로 강화된 토론 및 심의가 가능하고, 아고라는 단순다수제를 벗어나 다중투표, 선호반영, 위임옵션 설정 등 다양한 투표 설계가 가능한 것이 특징이죠.

숙의민주주의

‘숙의’(熟義)는 ‘깊이 생각하여 넉넉히 의논함’을 뜻합니다. 숙의민주주의란 이러한 ‘숙의’를 의사결정의 중심으로 삼는 직접민주주의적 형태로서 다수결로 대표되는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합니다. 첨예한 갈등이 존재하는 사안에 대해 단순히 찬반으로 의견을 대립하는 게 아니라, 충분한 시간을 두고 학습 및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이해와 공감으로 해결책을 도출해낸다는 장점이 있죠.

개념은 1980년에 탄생했습니다. 당시 미국 의회 의원들의 업무를 규정하기 위해 조지프 베세트 교수가 제안한 표현인데요. 오늘날 투표나 여론조사처럼 선호를 간단히 추려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에 반대하고 열린 토론을 바탕으로 공공문제를 해결하고자 대두했습니다.

이는 정확하게 표현 또는 반영되지 않는 시민의 의견을 반영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학습 및 토론을 갖기에 정보 습득이나 의사교환, 숙고의 시간과 기회가 없는 상태에서 내리는 여론의 신뢰성 문제에도 기여하죠. 핵심은 국민 중에서 대표집단을 뽑아 일정 기간 교육 및 토론 시간을 주면서 공론화를 거치는 겁니다. 대표적인 예가 우리나라 2017년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당시 공론화입니다.

숙의 민주주의 역시 거론되는 한계는 있습니다. 참여하는 집단의 대표성 문제라든지, 높은 비용 발생 문제라든지, 의견 신뢰성 문제 등입니다. 전문적 결정을 시민의 손에 맡기는 한계나 숙의 결과를 반영해 집행한 정책에 대한 책임소재를 묻기 어렵다는 비판도 지적됩니다. 그러나 시민이 스스로 정치적 의사에 참여하고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추구할 만한 대안으로 계속 논의되고 있습니다. 마치 민주주의가 수단이자 목적이고, 체제이자 가치인 것처럼요.

? 권위주의와 포퓰리즘 

 
 
에디터의 노트

이즘 스튜디오를 마무리하는 특별편입니다. 이번 리포트에서는 민주주의의 대척점 또는 위협요소로 거론되는 권위주의에 대해 알아봅니다. 현재 세계 자유민주주의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민주주의 국가의 단합을 강조하며 중·러로 대표되는 권위주의 국가에 대해 경계 발언을 내놓는 것을 뉴스에서 보신 적 있을 텐데요. 권위주의가 민주주의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알아볼까요?

현상?

민주주의의 후퇴

 
2021년 <이코노미스트>가 조사한 민주주의 지수 지도. 초록색은 민주주의, 노란색은 혼합 체제, 붉은색은 권위주의 체제를 가리킨다. 색이 진함이 얼마나 해당 체제와 가까운지 나타낸다.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선 지난 리포트에서 소개드린 바 있습니다. 비영리기구 프리덤하우스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 지속가능 거버넌스 연구재단 배텔스만 등이 전 세계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이했다고 진단했다는 것이었는데요.

당시 리포트에선 민주주의 자체의 문제에 집중하느라 생략했지만, 여기선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뭐가 어쨌길래 민주주의가 위기라고 진단했을까요?

이는 민주주의의 ‘후퇴'라고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위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이코노미스트의 민주주의 지수는 총 10점 만점으로, 10점에 가까울수록 진한 초록색, 0점에 가까울수록 진한 붉은색으로 표현됩니다. 이는 ‘선거절차 및 다원주의’ ‘시민의 권리’ ‘정부의 기능’ ‘정치 참여’ ‘정치 문화’의 5가지 범주에 대한 지수와 함께 수량화한 것인데요. 민주주의 요소라 할 수 있는 기준을 토대로 점수를 매긴 셈입니다.

민주주의의 위기이자 후퇴는 말 그대로 민주주의로 구분할 수 있는 국가의 수가 줄어든 데 대한 표현입니다. 냉전이 끝나고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며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1989년 논문 ‘역사의 종언’을 통해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자유주의의 승리로 끝났다.” 이후 세계는 빠르든 늦든 자유민주주의 물결이 퍼지는 일만 남은 듯 보였는데요. 그러나 위 조사들은 오늘날 민주주의의 후퇴를 진단했습니다. 대표적 현상은 민주주의로 이행하다 권위주의로 회귀하거나, 선진 민주주의 국가 안에서도 정치적 양극화가 발견되는 겁니다.

개념?

권위주의

이쯤에서 권위주의가 무엇인지 알아볼까요? “너무 권위주의적이야”라는 표현 들어보셨을 텐데요. 의사결정 과정이 지나치게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견제받지 않을 때 흔히 쓰는 표현이죠.
 
정치체제로서 권위주의는 일부 개인 또는 집단이 막대한 힘, 권력을 갖고 정치적 의사결정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체제입니다. 시스템이 아니라 특정인물의 의지대로 정치권이 움직이죠. 보통 ‘초대통령제’로 불릴 만큼 막강한 권력자(대통령)가 독재적인 힘을 갖고 국가를 지배하고 통제합니다. 정치적 자유는 제한됩니다.
그러나 대놓고 국가가 무제한의 권력을 갖고 국민의 생활, 신념 등 모든 면을 통제하는 전체주의와는 다릅니다. 전체주의 국가의 예는 과거로는 히틀러의 독일, 현재로는 김정은의 북한입니다.
권위주의는 표면적으론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합니다. 의회도 있고 정당도 있고 투표도 있고 선거도 있습니다. 그러나 유명무실합니다. 매스컴 장악은 물론 여론 조작이나 가짜뉴스 전파도 서슴없습니다. 입법부, 사법부가 존재는 하나 삼권분립 또는 상호견제가 이뤄지는 게 아니라 정부에 종속됩니다. 전체주의와 마찬가지로 반민주적이긴 하지만 형태적으로나마 구색은 갖추고 있는 게 권위주의입니다. 정치적 다원성이 표면적으론 존재하지만 실질적으론 없는 셈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오늘날 러시아입니다.

이러한 권위주의 정부가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 내세우는 것은 국가 위기 상황의 타개입니다. 전쟁이나 외세의 위협, 정치적·경제적 위기 등이죠. ‘위기 상황에 맞설 강한 힘이 필요해!’라는 것이 권위주의 정권이 국민에게 내거는 슬로건입니다. 이 때문에 권위주의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표적으로 삼죠. 그중에서도 굶주림이나 가난, 불평등, 외부 세력의 위협 등 쉽게 인지할 수 있으면서 일차적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대상으로 삼습니다.

조명?

권위주의와 포퓰리즘의 득세

포퓰리즘이나 권위주의나 대중을 선동하고 호도해 하고 싶은 대로 하려 한다는 점에선 같습니다. 대중의 일차적 니즈를 공략하거나 기득권 또는 외세와 같이 적대세력을 표적화하는 정치적 전략도 유사하죠.

민주주의의 후퇴에 대한 진단과 더불어, 지난 ‘민주주의의 위기’ 화에서 짚었던 한국리서치 정치만족도 조사를 떠올려보고자 합니다. 국가 형태에 대한 선호도 조사 결과 기억하시나요? 1위인 직접민주주의와 3위인 대의민주주의 사이에 ‘강한 리더 중심의 통치’가 2위로 자리합니다.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유럽국가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현상입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사랑이 식고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이 약해지고 있죠.

왜일까요?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 민주주의를 겪으며 경제적 불평등 문제가 심화됐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 저소득 백인 노동자 입장에서 클린턴과 오바마 정부는 분노의 대상이었습니다. 신자유주의의 대표주자 레이건 정부에서 시작한 미국의 불평등은 민주당 정부에서 심화됐죠. 트럼프의 당선과 포퓰리즘의 득세, 민주주의의 후퇴는 이러한 맥락의 연쇄작용입니다.

포퓰리즘이나 권위주의가 왜 인기를 얻는가 하면 그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약속하는 것은 일차적 생존 위협에 대한 해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를 강하게 보장하기도 합니다. 매슬로의 욕구이론이 보여주듯 인간은 일단 생존에 관련한 일차적 욕구가 충족돼야 정치적 성숙이나 관용에 관심 갖습니다. 그러나 포퓰리즘, 권위주의는 끊임없이 일차적 문제를 건드림으로써 불만 어린 대중에 강한 소구력을 갖죠. 이는 단기적으로는 특정 이해관계를 만족하기 쉬울지 모르나나 결국 해당하는 좁은 집단, 공동체 또는 국가만을 대변하며 그 밖의 모든 이해관계자를 배척하게 됩니다. 자국우선주의나 집단이기주의로 변질하기 쉽죠. 그 과정서 저지르는 여론 왜곡이나 조작, 통제, 폭력 등도 무거운 문제고요.

성장이 정체되면서 불평등이 심화되고, 불안감이 커지면서 인구의 대다수가 자아실현의 가치에 집중하지 않게 된다. 대신, 유권자들은 다시 한 번 매슬로가 말하는 하위 계층 욕구에 관심을 돌린다. ... 자신의 안전과 생계유지를 걱정하는 유권자들은 단순한 경제적 해결책을 제시하고 우리의 모든 문제에 대해 외부자를 희생양으로 삼는 포퓰리스트들의 호소에 훨씬 더 솔깃해할 수 있다. — <위험한 민주주의>, 야스차 뭉크, 23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