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고 폰 충전하면 대출해 드려요”… 신용평가가 달라진다
[편집자 주] 소득과 담보만을 바탕으로 돈을 빌려주는 시대가 저물고 있다. 핀테크뿐만 아니라 전통 금융사들까지 신용도가 낮은 새 고객군 발굴에 적극적이다. 은행은 중·저신용자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신용평가모형을 진화시키고, 이에 활용할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처럼 뜬금없어 보이는 비금융플랫폼까지 선보이고 있다. 신용점수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구매하고 나서 나중에 지불할 수 있도록 하는 후불 결제 서비스도 속속 도입되고 있다. 전통적 의미의 신용도에 균열이 생긴 셈이다. 전통을 벗어나려는 금융사의 시도는 여러 방면에서 이뤄지고 있다. 점포를 없애는 대신 메타버스나 편의점 같은 이색 공간에 창구를 만들고, 골칫덩이로 취급하던 가상자산 시장에 대해선 시각을 바꿔 새 사업 영역으로 삼는 분위기다. 2022년 금융업계가 주목하는 뉴트렌드를 5편으로 정리해 봤다.
우리나라에 KCB(코리아크레딧뷰로)·NICE(나이스) 점수라는 국민 신용점수가 있다면, 미국에는 ‘파이코 점수’(FICO Score)가 있다. 파이코 점수는 미국 은행 대출의 약 90%가 의존할 정도로, 그간 미국 금융사들이 대출 심사를 할 때 가장 신뢰해 온 지표 중 하나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파이코 점수의 신뢰도는 시험대에 올랐다. 상환 이력 정보에 초점을 맞춰 산정되는 파이코 점수가 사회 초년생이나 흑인·히스패닉계 미국인 등 금융 소외 계층의 ‘진짜 신용도’를 제대로 측정하지 못해, 약탈적 금융으로 내몰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다.
미국 주요 금융사들은 점차 파이코 점수에서 손을 떼는 추세다. JP모건·뱅크오브아메리카 등 미국 1·2위 은행은 과거보다 파이코 점수를 제한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일부 금융사들은 최근 아예 파이코 점수를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신용점수를 매기는 신용평가모형(CSS·Credit Scoring System)을 금융사 자체적으로 수정하거나, 비금융 데이터와 AI(인공지능) 기술이 접목된 CSS를 운영 중인 핀테크 업체와 연계해 대출의 기회를 넓히는 변화를 보인다.
비단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총량 규제를 가하는 동시에 중·저신용자 대출 확대는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정책적 특수성 탓에, 전통 금융사들마저 적극적으로 CSS 개발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대출 시장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하는 은행들에 ‘신용평가 차별화’는 2022년 주요 과제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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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낡은 신용평가 타파’는 세계적 추세
미국은 핀테크 업체 주도로 개발한 CSS가 급부상하고 있다. 2020년 나스닥에 상장해 폭발적인 성장을 보이고 있는 ‘업스타트’(upstart·업체명 업스타트홀딩스)가 대표적이다.
업스타트에서 소비자가 자신의 소득 정보와 금융거래 내역 등을 입력하면, 이를 토대로 AI가 신용도를 분석하고 은행 등 금융기관의 대출 상품을 추천해준다. 업스타트는 신용정보보고서에 기재된 상환이력 정보뿐만 아니라, 약 1000개 이상의 데이터 정보를 함께 분석한다. 통상 5~8개 정도의 금융 정보를 분석하는 전통 금융사와 비교되는 모습이다.
업스타트의 CSS에선 개인의 대학·전공 등 교육 수준이나 고용 기록, 생활비, 통신 비용 등이 함께 고려된다. 예를 들어 간호사란 직업을 가진 대출 신청자의 경우, 실직자가 거의 없는 직군이기 때문에 신용도가 유리하게 책정될 수 있는 식이다.
등록금이 비싼 뉴욕 사립대학교에 다니면서 큰 빚을 지게 돼 은행들에서 대출이 거절된 고객이, 업스타트에선 해당 대학교에서 공부한 이력 등 교육 수준이 긍정적으로 평가돼 대출이 이뤄진 사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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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스타트는 이런 신용평가를 기반으로, 뉴저지 금융기관인 크로스리버뱅크(Cross River Bank) 등 30개 이상의 대출 기관에 대출을 중개해주고 있다. 전통 CSS를 적용했을 때보다 27% 더 많은 대출 승인이 이뤄졌고, 차주들이 지불한 평균 이자율은 16%가량 낮아졌다.
스탠퍼드대 졸업생이 재학생에게 낮은 금리로 학자금을 빌려주는 중개 플랫폼으로 시작해 은행 라이선스까지 획득한 ‘소파이’(SoFi),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친구·포스팅 등 평판 데이터를 활용하는 ‘렌도’(Lenddo) 역시 대안 신용평가를 활용하는 미국의 대표 핀테크 기업으로 꼽힌다.
공인된 신용평가 척도가 없는 국가의 경우 더욱 이색적인 평가모델이 사용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나이지리아·케냐·가나 등지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싱가포르 기반 핀테크 기업 크레도랩(CredoLab)은 소비자의 스마트폰 사용 행태가 신용점수 생성에 활용된다. 휴대폰에 있는 셀카(Self camera) 비율, 설치된 게임 수, 월별 생성 동영상, 자판 입력 속도 등이 대출 신청 시 수집돼 분석되는 식이다.
중국에선 알리바바 자회사인 앤트파이낸셜(蚂蚁金服)의 ‘즈마크레딧’(즈마신용·芝麻信用) 점수가 준정부 수준 지위의 신용평가로 취급되고 있다. 알리바바를 통해 수집된 온라인 거래나 교통 신호 위반 이력, 세금납부 내역 등의 빅데이터가 자료로 활용된다. 가령 기저귀를 사는 사람은 유흥비로 돈을 쓰는 사람보다 더 책임감 있는 소비를 하는 것으로 인식해 더 높은 점수를 부여받을 수 있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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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부터 스타트업까지… 한국도 신용평가 개발 봇물
우리나라도 CSS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과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체(P2P·개인 간 대출) 등이 대출이 가능한 금융소외 계층 발굴을 위해 CSS 시장에서 선두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눈에 띄는 건 최근 은행 등 전통 금융사의 적극적인 변화도 감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우리 금융당국의 기조도 한몫했다.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총량 규제를 엄격히 적용해 관리하고 있다. 금융사들은 과거보다 고신용·고소득자에 집중해 제한적으로 대출을 내주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금융당국은 동시에 포용금융 확대 정책의 일환으로 중·저신용자 대출 확대를 주문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은행 등은 대출 시장에서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대출이 가능한 중·저신용자를 적극적으로 발굴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들의 승인율을 높이기 위해 CSS를 고도화해야 하는 것이다.
국내 리딩뱅크인 KB국민은행도 2022년 역점사업으로 CSS 개발을 꼽고 있다. 이재근 신임 국민은행장은 “가계대출 성장 제한은 우량 고객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7등급 이하 저우량 고객에게는 그 한도가 열려 있다”며 “CSS를 정교화해 7·8등급 고객도 발굴할 수 있느냐가 앞으로 은행 간 성과 차별화 요소가 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국민은행은 최근 비금융 정보를 활용하는 ‘대안’ 신용평가(ACSS·Alternative-CSS) 모델을 개발할 업체 용역 공고를 냈고, 2022년 상반기 중으로 이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다수의 금융사가 모여 금융·비금융 데이터 협업을 통해 개인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새 신용평가모형 개발도 추진되고 있다. 한국신용데이터·카카오뱅크·국민은행·전북은행·현대캐피탈·웰컴저축은행·현대캐피탈 등은 ‘데이터 기반 중금리 시장 혁신준비법인’을 준비하고 있다. 건강보험료 납부 내역, 연말정산 등 공공 비금융 데이터를 접목한 신용평가모델을 개발하고, 이를 다른 금융사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이색적인 CSS도 조금씩 출현하는 추세다. 카카오뱅크는 교보생명·문고·증권 등 교보 3사와 업무 제휴를 맺고, 도서 구매 이력 같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대안 신용평가 모델을 개발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국내에서 16년 만에 인가된 신용평가(CB)업자로서 1호 비금융 CB사가 된 핀테크 기업 ‘크레파스솔루션’은 스마트폰 충전 주기, 운영체제(OS) 업데이트 주기, 애플리케이션(앱)·인터넷 사용 시간, 메시지 수신 대비 발신 비율 등을 성실성의 척도로 평가해 신용평가에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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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망 밝지만 차별·사생활 침해 문제 등 고민해야
금융당국의 CB업 시장 활성화 의지가 더해지면서, CSS 개발 경쟁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관 곳곳에 흩어진 개인 정보를 한데 모아 볼 수 있는 마이데이터(본인신용정보관리업) 시대도 본격화하면서, 빅데이터를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는 환경도 조성됐다. 전문가들은 “대안 신용평가가 미래의 신용평가모델이 될 것”이라며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다.
다만 한계나 우려되는 점도 있다. 인간의 행동은 가변적이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는 대안 신용평가가 지속적인 고도화나 검증을 거듭하지 않으면 ‘잠재적 편향’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탓에 대안 신용평가는 독자적으로 사용되기보다 전통 신용평가와 함께 활용돼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동시에 이는 차별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차별을 막기 위해 성별·인종·지역·나이에 대한 신용점수를 사용하지 못하게 돼 있다. 더불어 SNS 등을 통해 데이터가 취합될 경우 사생활 침해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이에 대한 활용 원칙 마련 등의 고민도 수반돼야 한다.
“은행이 만든 배달·부동산 앱”… 비금융 분야 뛰어든 금융지주
온라인 플랫폼 기반 서비스가 금융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은행이 더는 은행으로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이른바 ‘디지털 유니버설 뱅크(digital universal bank)’가 전통 금융지주그룹의 주요 사업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
디지털 유니버셜 뱅크는 금융 그룹이 하나의 수퍼 앱(app)에서 은행·보험·증권 등 다양한 서비스를 통합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금융시장에 지각 변동을 일으킨 네이버, 카카오, 토스 등 빅테크·핀테크 플랫폼의 금융 진출 확대에 대항하기 위해 기존 은행들도 금융업에만 안주하지 않고, 배달·숙박·쇼핑 등 비금융 플랫폼 신(新)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며 주도권을 지키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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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변화는 경쟁이 심화하는 금융업계의 생존 전략이다. 그동안 금융사들은 기존 금융업권과 다른 규제를 받는 빅테크·핀테크들의 금융업 진출에 대해 ‘불공정 경쟁’이라고 주장해왔다. ‘동일기능(업무)·동일규제’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시장 후발주자인 신생 핀테크사에 과도한 부담이 될 수 있고, 혁신금융을 위한 핀테크 육성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는 반박도 있었다.
초기에는 빅테크의 규제 강도를 높이는 데 무게가 실렸다면, 현재는 ‘금융그룹에게 비금융 플랫폼 사업을 영위할 기회를 적극적으로 부여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도 최근 주요 시중은행장 간 간담회에서 “디지털 유니버설 뱅크로의 전환을 중심으로 은행의 업무 확대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아직 국내 금융지주사의 비금융 플랫폼 진출은 걸음마 단계다. 신한은행은 배달 앱 ‘땡겨요’를 통해 금융권 최초로 음식 배달업에 진출한다. 이는 작년 12월 최장 3년간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 금융위원회의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돼 추진하는 사업으로, 신한은행은 140억원을 투입했다.
신한은행은 이달 정식으로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 일대 1만여개 가맹점의 배달 서비스를 시작하고, 내년에는 서울 전역으로 서비스 범위를 확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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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은행은 배달 앱 중개수수료보다 사업 과정에서 얻게 될 각종 데이터에 주목하고 있다. 가맹점으로부터 앱 입점 수수료와 광고비를 받지 않고, 중개 수수료도 공공 배달앱 수준으로 적게 받는 대신 배달노동자(라이더)의 소득정보와 소비자의 결제 정보 등을 얻어 본업인 금융 서비스와 연계하려는 계획이 깔려있는 것이다. 실제 앞서 신한은행은 배달대행 플랫폼 생각대로(로지올)와 손잡고 라이더의 배달 수행 정보를 기반으로 신용평가를 하는 ‘라이더 전용 대출’을 출시하기도 했다.
반려동물을 위한 생활플랫폼 ‘쏠 펫(SOL PET)’도 있다. 신한은행은 프리미엄 반려동물용품 전문 브랜드 브레멘과의 제휴를 통해 선보인 고객 참여형 반려동물 커뮤니티 ‘펫스타픽’을 시작으로 향후 ▲펫(PET) 관련 원스탑 상품·서비스 ▲보험, 적금을 비롯한 데이터 기반 펫 금융 서비스 등으로 점차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신한은행은 최근 LG유플러스, CJ올리브네트웍스와 함께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 정보를 공유하는 데이터 커뮤니케이션 플랫폼 ‘디키타카(DIKITAKA)’도 개발해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이는 금융·통신·유통 데이터 활용하는 서비스로, 기업이 분석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물론 고객이 직접 데이터로 이야기를 만들어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가령 ‘실제 방문이 많은 맛집’ 등 제시된 주제에 맞춰 고객이 직접 실시간으로 느낌(이모지), 사진, 글을 서로 공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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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은 ‘실손보험 빠른청구 서비스’와 ‘개인 택배 배달·픽업 서비스’ 등을 모바일뱅킹 앱 ‘우리WON뱅킹’에 잇따라 출시했다.
우리은행이 앞서 선보인 ‘실손보험 빠른 청구 서비스’는 삼성화재, 현대해상 등 30여개 보험사 실손보험 가입자가 세브란스병원, 성모병원 등 90여개 주요 대형병원을 이용한 경우 진단서, 영수증 등 별도의 종이서류를 발급받을 필요 없이 은행 앱 ‘원뱅킹’ 내에서 보험금 청구를 할 수 있는 서비스다. 기존에 실손보험 가입자가 보험금을 청구하기 위해 번거로운 과정을 은행 앱 안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해 편의성을 높였다.
택배 플랫폼 서비스 전문업체 파슬미디어와 함께 택배 서비스 ‘마이(My)택배’는 택배 예약·결제 서비스뿐 아니라 개인별 휴대폰 번호를 기반으로 택배 운송 상태도 조회할 수 있는 원스톱 종합택배 플랫폼이다.
KB국민은행은 지도를 기반으로 부동산 정보를 알기 쉽게 보여주는 앱 ‘리브부동산 서비스’를 올해 초 출시했다. KB시세부터 실거래가, 매물가격, 공시가격, 인공지능(AI) 예측 시세, 빌라 시세까지 다양한 부동산 가격정보를 조회할 수 있다. 여기에 최신 청약 정보를 담은 ‘분양 홈’과 회원 중개업소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리브부동산 중개사 허브’ 서비스도 추가했다.
KB국민은행은 또 인테리어 앱 ‘오늘의집’을 운영하는 버킷플레이스와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 공동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할 계획이다. 고객이 KB국민은행의 리브부동산을 통해 매물정보를 확인하면, 해당 매물의 평형과 연계해 ‘오늘의집’에 게시된 실제 인테리어 시공 사례와 온라인 집들이 등의 콘텐츠 정보를 제공하는 식이다.
금융지주사들은 별도의 인터넷전문은행을 설립하겠다는 의지도 강하다. 뱅크 인 뱅크(BIB·은행 안의 은행)’ 혹은 100% 자회사나 다른 기업과의 합작사 설립 등을 통해 별도의 인터넷은행을 설립하겠다는 구상이다.
2021년 상반기 은행연합회와 은행권, 한국금융연구원이 머리를 맞대고 인터넷전문은행 제안서를 작성해 금융위원회에 건의한 바 있다. 올해는 무산되는 듯한 분위기지만, 금융권에선 차기 정권과 이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계속 추진할 것이라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BIB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117년 역사의 이스라엘 르미(Leumi)은행이 2017년 만들어 내놓은 모바일플랫폼 페퍼(Pepper)뱅크가 꼽힌다. 이는 18~35세 청년층 고객을 겨냥한 플랫폼으로, 르미은행은 이를 기반으로 미국과 유럽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이다. 그 외에도 유럽 BNP파리바의 ‘헬로뱅크’, 일본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의 ‘페이페이뱅크’, 미국 골드만삭스 ‘마커스’, 스페인 BBVA 등이 있다.
신용 없어도 일단 쓰고 나중에 지불… MZ세대 겨냥한 후불결제
한 소비자가 미국 룰루레몬 온라인 홈페이지에서 요가복을 골라 장바구니에 담는다. 곧 주소 입력창이 뜨면 옆에서 ‘어떻게 결제하겠느냐’고 묻는다. 익숙한 신용카드사 이름 대신 페이팔 같은 간편결제 플랫폼이 보인다. 그런데 이전에 페이팔 아이콘이 있던 자리에는 생소한 이름이 보인다. ‘클라르나(Klarna)’와 ‘애프터페이(Afterpay)’다.
클라르나(Klarna)와 애프터페이(Afterpay)는 둘 다 ‘선구매 후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핀테크 기업이다. 영어로는 ‘Buy Now, Pay Later’의 약자를 따 ‘BNPL’ 서비스라 불린다.
소비자가 BNPL 방식으로 결제하면 결제 업체가 가맹점에 먼저 대금을 지불하고, 소비자는 여러 차례에 걸쳐 결제 업체에 돈을 갚게 된다.
예를 들어 앞서 말한 룰루레몬에서 30만원짜리 요가복을 사고 싶지만 당장 돈이 없는 소비자라면, 클라르나나 애프터페이 같은 BNPL 결제 업체를 이용해 물건을 먼저 사면 된다. 대금은 소비자가 결제 버튼을 누르는 즉시 클라르나나 애프터페이가 가맹점에 전액 지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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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들으면 “신용카드와 뭐가 다른데?”라고 생각할 수 있다. BNPL은 소비자 신용등급이 필요 없다. 발급과 한도 설정을 위해 까다로운 신용 조건을 요구하는 신용카드와 달리 18세 이상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또 신용카드로 할부 서비스를 이용하면 꽤 높은 할부 수수료가 붙지만, BNPL은 따로 수수료도 없다.
BNPL 업체는 소비자에게는 신용등급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심지어 수수료도 받아 챙기지 않는다. 대신 가맹점에서 높은 수수료를 받아 수익을 올린다. 보통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가 1~2% 초반 수준이라면 BNPL 업체들은 가맹점 수수료를 5~7%까지 받는다.
룰루레몬, 아디다스, 월마트 같은 가맹점들은 두 배가 넘는 수수료를 물어가면서도 BNPL 결제를 도입했다. 돈과 신용등급은 없지만, 구매 욕구만큼은 누구보다 강한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 소비자들이 BNPL에 열광하기 때문이다. BNPL을 잡아야 MZ세대가 지갑을 연다는 뜻이다.
특히 신종 코로나 사태 이후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지자 MZ세대를 중심으로 BNPL 사용자는 급증하고 있다. 2005년 설립한 스웨덴의 BNPL 플랫폼 클라르나는 미국 내 2000만명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9000만명을 사용자로 확보하며 선두주자로 치고 나섰다.
애프터페이는 호주를 중심으로 1000만명이 사용한다. 세계 최대 간편 결제 기업 페이팔이나, 전통적인 신용카드업계 강자 아메리칸익스프레스 같은 대기업들이 클라르나와 애프터페이를 뒤따라 갈 정도로 판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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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NPL의 저력은 ‘전 세계 최대 쇼핑 행사’라는 블랙프라이데이에서도 드러났다. 댄 슐먼 페이팔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11월 “올해 블랙프라이데이 기간 BNPL 사용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00% 늘어났다”며 “블랙프라이데이 당일에만 75만 건이 넘는 BNPL 거래를 처리했다”고 밝혔다.
다만 편리한 만큼 ‘빚’이라는 인식을 못 느끼게 하고, 갚을 능력을 넘어서는 소비를 부추긴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 자산관리 플랫폼 크레딧 카르마(Credit Karma) 조사에 따르면 BNPL 사용자 가운데 3분의 1은 결제 시기를 놓쳤고, 그중 72%는 신용점수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미국 소비자금융보호국(CFB)은 BNPL 결제 업체 서비스가 가진 위험요인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지난 16일 CFB는 “소비자들이 BNPL을 통해 빌린 돈을 제대로 갚을 수 있는 지 사실상 불확실하다”며 “BNPL 관련 규제와 공시제도 준수 여부, 업체들의 데이터 수집 등을 조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미국 뿐 아니라 영국 역시 재무부가 앞장 서 업체들과 BNPL 규제안을 놓고 논의 중이다. 클라르나의 본고장인 스웨덴은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직불카드나 신용카드에 앞선 결제수단으로 BNPL을 설정할 수 없도록 직접적인 규제에 나섰다.
이에 대해 미국 경제 금융 전문 TV 채널인 CNBC는 전문가를 인용해 “앞으로 나올 관련 규제가 BNPL 성장성을 둔화시킬 수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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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일부 빅테크사가 선제적으로 BNPL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만큼 폭발적인 반응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네이버파이낸셜은 지난 4월부터 네이버페이 가입자 일부를 대상으로 ‘후불결제’를 시범 서비스 중이다. 월 최대 30만 원까지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후불결제가 가능하다.
쿠팡 자회사 쿠팡페이도 로켓와우 멤버십 회원 가운데 일부를 대상으로 ‘나중결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월 50만 원 한도이며, 다음달 15일까지 일괄 지불하는 방식이다.
카카오페이는 올해 안으로 충전금 없이 월 최대 15만 원까지 후불 결제가 가능한 모바일 교통카드를 출시할 계획이다. 토스뱅크는 내년 3월 중 관련 서비스를 선보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고은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BNPL 서비스는 소비자에 할부 이자나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아 소비를 촉진시키는 반면, 가맹점에 높은 결제 수수료를 부과해 최종 상품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서비스 이용자들의 채무상환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할부 거래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부채를 증가시켜 장기적으로 경제 기반을 흔들 수 있는 위험 요소를 감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바타가 대출받고, 편의점에서 24시간 은행 업무… ‘대안 점포’ 시대
“고객님, 메타버스 은행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떤 업무를 도와드릴까요?”우리은행의 메타버스(가상세계) 소상공인 지원센터인 ‘우리메타브랜치’에 접속하니 실제 점포처럼 구현된 가상공간이 펼쳐졌다. 안내에 따라 1번 창구로 내 아바타를 옮기자 대기하고 있던 창구 직원인 우리은행 A 센터장의 실제 얼굴이 화면 한 쪽에 띄워졌고, 이내 이런 인사말이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대출을 받고 싶다”고 마이크를 통해 문의하니, 직원이 위치와 업종 형태를 되물었다. “경기 수원 광교 쪽에 거주하는데,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의류를 판매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가장 가까운 판교센터의 기업 컨설팅 담당자에게 상담 내용을 전달하겠다”며 “담당자의 전화가 바로 선생님께 갈 것”이라고 말했다.10여분간의 상담을 마친 아바타가 창구를 떠나자, A 센터장은 웃으며 “연말 잘 마무리하세요”라는 친절한 인사를 건넸다. 마치 직접 은행에서 직원과 마주한 느낌이었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6일 메타버스 전문업체 ‘오비스’(oVice)와 손잡고 가상 소상공인 종합지원센터를 선보였다.
센터에서는 상담을 통해 담당 실무자의 유선 전화를 직접 연결해주거나 실제 대출을 받는 등의 업무를 볼 수 있다. 단순 체험형이 아닌 실제로 직원이 얼굴을 맞대며 상담을 해주는 금융사 메타버스 공간은 이곳이 처음이다.
우리은행 본사 중소기업고객부 소속 직원 10여명이 하루씩 돌아가며 응대 당번을 선다. 오픈 후 13영업일 동안 약 300여명의 소상공인이 이곳을 다녀갔다.
지점에서 번호표를 뽑고 은행 업무를 보는 시대가 점점 저물고 있다. 대신 메타버스·VR·편의점 은행 같은 ‘대안 점포’들이 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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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들, 메타버스 진출 활발… 아바타 PB가 상품 추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는 국내 기업들에 메타버스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금융권도 예외는 아니다. 실제로 대형 은행들의 메타버스 사업 진출은 활발해지고 있다.
신한은행의 경우 은행권 최초로 금융업무가 가능한 자체 메타버스 점포를 선보일 예정이다. 최근 메타버스 스타트업 ‘핏펀즈’와 손잡고 관련 서비스 개발에 나섰다.
다만 현재 대부분 은행이 선보인 메타버스 공간은 ‘체험용’에 그친다. 일례로 제페토 플랫폼에 구축된 하나은행 ‘하나월드’나 게더타운에 구축된 KB국민은행 ‘KB금융타운’ 접속해 봤더니, 은행처럼 꾸며진 가상공간에 아바타를 통해 움직일 수 있는 게 전부였다. 동시 접속한 직원이나 사용자들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여타 은행들도 메타버스 공간 오픈을 앞두고 있으나, 이 역시 금융업무용보다는 게임용에 가깝다. NH농협은행이 오는 3월 오픈할 ‘독도버스’, IBK기업은행이 올 상반기 싸이월드에서 선보일 ‘도토리은행’ 등이 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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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는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기술을 활용하는 은행도 속속 늘고 있다.
프랑스 BNP파리바은행의 경우 고객이 VR 환경에서 은행 업무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전용 VR 앱을 2017년 출시했다. 고객들이 가상세계를 통해 금융 서비스를 체험하고, 담당 직원과 이메일·실시간 대화 등으로 소통할 수 있게 하는 식이다.
걸음마 단계이긴 하나 국내에서도 VR 점포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국민은행은 VR 기술을 접목한 가상 영업점 ‘KB 메타버스 VR 브랜치’를 개설해, 서울 내 지점 2곳에서 체험존을 운영하고 있다.
국민은행 ‘KB인사이트’(InsighT) 지점에 마련된 VR 점포에서 VR 기기를 머리에 쓰고 컨트롤러를 손에 쥔 채 가상 세계에 접속하면 아바타로 구현된 직원이 업무를 안내한다. 단순 이체부터 대출, 투자 성향 분석, 펀드 추천, 포트폴리오 설계까지 여러 금융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는 탭이 허공에 띄워지는 식이다.
개인종합 창구로 걸어가 손에 쥔 기기를 통해 돈을 보낼 대상을 선택하고 나서 금액을 입력하면 이체도 가능하다. VIP 라운지로 이동해 프라이빗뱅커(PB) 아바타에게 포트폴리오 상담을 요청하면, ‘펀드 35%, 예·적금 20%’ 등 내 자산 비중이 표시된 그래프가 눈앞에 펼쳐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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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의점에서 24시간 계좌 개설부터 대출 상담까지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대안 점포도 등장하고 있다. 편의점과 은행을 결합한 ‘편의점 혁신 점포’가 대표적이다.
이는 편의점 공간에 입점한 디지털 은행 점포 형태로, 24시간 365일 업무가 가능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오전 9시~오후 4시로 제한된 영업시간(코로나 단축 운영 시 오전 9시30분~오후 3시30분) 탓에 불편함을 겪었을 고객 혹은 은행 점포가 없는 지역에 거주하는 고객들을 위한 것이다.
올해 신한은행은 GS25와 함께 강원도 정선군에 편의점 은행을 오픈했다. 하나은행의 경우 CU와 함께 서울 송파구에 1호점을 열었다. 편의점 매장 내에는 실제 직원과 화상 상담이 가능한 화면과 무인 단말기(키오스크) 등이 설치됐다.
기존에 가능했던 ATM(현금 인출기) 사용뿐 아니라 약 50가지의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실제 직원을 연결해 대출 상담까지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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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형 은행 점포는 앞으로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금융업계가 최근 타깃으로 삼은 MZ세대(1980~2000년대생)를 공략하기에 유리하다는 점에 더해, 오프라인 은행 점포를 빠르게 축소하는 상황에서 고령층 등 금융 소외 계층에 대한 대책으로 편의점형 점포를 키우겠다는 게 은행들의 계획이다.
◇ 금융거래조차 안 되는 현실… “기술·제도적 한계 풀어야”
전문가들은 앞으로 대안 점포가 금융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금융업 전문 연구보고서를 제공하는 미국 더파이낸셜브랜드(the financial brand)가 지난 11월 발간한 ‘2021년 디지털 뱅킹 리포트’에 따르면 소비자의 20% 이상이 ‘VR·AR 등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은행 업무를 볼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은행 관계자 10명 중 9명은 ‘2030년 이후에는 소비자 중 20% 이상이 해당 기술을 이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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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비대면이 가진 불편함이나 상용화 문제 등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메타버스나 VR 은행의 경우 계좌 개설 같은 기본적인 금융거래 행위조차 구현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여기에는 기술·제도적 한계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메타버스 플랫폼은 게임·엔터테인먼트 목적인 ‘폐쇄형’(Closed)으로 운영되는데, 금융거래가 가능해지려면 이를 ‘개방형’(Open)으로 전환해야 한다. 현재 폐쇄형과 개방형을 나누는 명확한 기준은 없지만 전문가들은 자유도에 따라 이를 구분하고 있다. 가령 금융의 경우, 메타버스 내에서의 거래를 현실세계에서 인정하지 않는 경우는 폐쇄형인 반면 인정하는 경우는 개방형으로 보는 식이다.
기존 통화를 메타버스 안에서 거래하기 위해서는 관련 지침이나 규율도 마련돼야 한다. 현대원 서강대 메타버스전문대학원장(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은 “현재 메타버스 내에선 ‘크립토커런시’(Cryptocurrency)란 가상화폐만 거래되고 있는데, 정부가 발행하는 화폐까지 거래하기 위해선 금융당국의 법적 해석이 수반돼야 하는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며 “인증이나 보안 문제 등 기술적인 문제도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나마 금융당국이 환경 개선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최근 “메타버스를 이용해 가상공간에서 금융 서비스를 제공·소비하려는 수요에 맞춰 규제와 합리적 소비자 보호 원칙을 정비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한국서도 가상자산 상장 허용… 금융서비스 봇물
2022년은 한국에서 가상자산 관련 금융산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할 첫해가 될 전망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가상자산의 성격과 규제 방식을 정하는 법률이 제정되면서, 암호화폐 등 가상자산 상장이나 가상자산 기반 금융서비스가 국내에서도 허용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암호화폐뿐만 아니라 암호화폐 기반 투자 및 금융상품 개발 업체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상자산이나 블록체인 기반의 다양한 서비스도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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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전통적인 금융회사들의 가상자산 관련 사업도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개인들의 암호화폐 채굴이나 매매에 기반을 뒀던 기존 가상자산 산업이 질적으로 변모하게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 내년 1월부터 가상자산법 입법 본격화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난 11월부터 가상자산 관련 법안 심사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가상자산과 관련해 발의된 법안은 13건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법안 제정 작업은 이뤄지지 않았었다. 빠르게 기술과 업태가 발전하는 가상자산업을 다루는 법안을 섣불리 만들 경우 현실을 반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법안이 산업 발전을 저해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는 법안 제정을 늦출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법안 제정 논의가 시작됐다. 현재 가상자산 관련 규제는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외환관리법 위반이나 돈세탁 등 금융범죄와 연관될 수 있는 부분만 감독하는 정도다. 암호화폐 발행 등 가상자산 관련 산업은 법률 적용을 받지 않는다. 금융산업이 아니라 일종의 디지털 재화 유통업으로 취급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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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원회는 17일 정무위원회 법안소위에 ‘’가상자산 이용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가상자산법) 기본 방향 및 쟁점’이라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가상자산법 제정과 관련한 현안, 현안별 쟁점, EU(유럽연합)의 ‘암호화 자산 규제((Regulation on Markets in Crypto Assets·MiCA)’ 등 해외 사례, 기존 발의된 가상자산법 비교 분석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가상자산법 제정을 위한 기초 보고서인 셈이다.
금융위는 이 보고서에서 가상자산 발행(ICO) 요건 및 규제에 대해서 자세히 다루었다. 가상자산 발행 시 향후 계획 및 기술 특성을 설명하는 백서(白書) 요건 및, 중요 정보 제출과 공시를 의무화하겠다는 것이다. 발행인 자격도 법인으로 규정했다.
또 공모 자금의 보관, 사용도 제3자를 통해 하도록 해 투명성을 확보하도록 했다. 상장 및 유통 과정에서 가상자산 사업자 협회가 자율 규재하도록 하기도 했다. 이렇게 금융위가 상장과 관련된 규제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나선 것은 결국 국내에서도 가상자산 발행을 허용해주겠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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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서 상장에 관심 있는 이들은 가상자산 간 탈중앙화 거래소인 유니스왑 등을 고려해 큰 영향이 없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상장이 허용되면 가상자산의 제도권 진입이 한 단계 진전되면서, 여러 관련 산업이 발전할 것이란 관측이다.
금융위는 “법률에서는 이용자 보호 원칙과 필요한 규제만 최소한으로 두고 상세 내용은 하위 규정에 위임하겠다”고 설명했다. 또 “민간에 자율 규제 권한을 부여하고, 금융당국은 시정 명령권 등 필요한 감독권을 최소한으로 보유하겠다”고 덧붙였다.
가상자산 사업자들이 협회를 결성해 자율 규제하는 방식을 주로 취하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또 증권형 토큰, 스테이블코인의 경우 자본시장법 적용대상으로 규정했다. 가상자산 기반으로 파생금융상품을 만들어 거래하는 DeFi 시장의 경우 사실상 추후 검토 대상으로 삼았다.
23일 정무위 법안소위는 자본시장연구원 등에 법안 제정을 위한 용역보고서를 의뢰, 이를 기초로 자본시장법 제정 작업에 나서기로 했다. 김병욱 법안소위 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당시 회의에서 “위원님들이(국회의원) 발의한 안을 중심으로 해서 자본시장연구원 등 전문가 단체와 용역을 해서 통합안을 만들어 심의하겠다”고 말했다. 국회 안팎에 따르면 내년 1월께부터 관련 심의가 본격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 가상자산 투자 전문 펀드에 몰리는 자금
가상자산에 투자하는 전문 운용사들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가상자산과 가상자산 관련 기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탈(VC) 해시드가 12월 결성한 2호 펀드에는 2400억원의 자금이 모였다. 여기에는 2020년 11월 결성된 1호 펀드에 투자한 네이버, 크래프톤은 물론 SK, LG, 컴투스, 위메이드, 에프앤에프(F&F), 무신사, 하이브 등 여러 기업이 참여했다.
최소 투자자금이 30억원이었음에도, 개인 투자자들이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해시드는 자사 1호 펀드가 이더리움 기반 파생상품 거래소 디와이디엑스(dYdX), 블록체인 게임회사 미씨컬게임즈(Mythical Games), NFT 플랫폼 리큐어(Recur), 미국 최대 비상장 주식투자 플랫폼 리퍼블릭(Republic) 등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거두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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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자산 전문 운용사인 하이퍼리즘은 지난 8월 1100만달러(130억원) 규모의 시리즈B(두 번째 유상증자)에 성공했다. 시리즈B에는 위메이드의 블록체인 자회사 위메이드트리와 해시드가 주로 참여했다. 또 삼성전자의 투자 전문 자회사 삼성넥스트도 자금을 댔다.
시리즈B 투자 유치 과정에서 하이퍼리즘은 1300억원 규모로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는데, 지금은 그보다 더 높아졌을 것이라는 게 업계 예상이다.
국내 은행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가상자산 관련 기술과 서비스를 준비 중인 곳은 신한은행이다. 신한은행은 미국 달러화 등 실제 화폐에 가치가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을 2022년 발행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 은행 전산망을 통한 가상자산 송금 시험 등도 내부적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가상자산 규제 방향에 발맞추면서도, 규제 허용 범위 내에서 빠르게 관련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