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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누군가 돕고 싶다면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누군가를 위로하고 돕고 싶을 때 일단 애쓰면 될 것 같지만 여기에도 바람직한 방법이 있고 그렇지 않은 방법이 있다. 예컨대 요즘 같은 시대에 막무가내로 조언을 주겠다며 "나 때는 말이야"를 무턱대고 던지면 ‘라떼’라는 말을 듣는다.  또 상대가 딱히 요청하지 않은 도움을 들이밀면 오지랖을 부리는 셈이 된다. 함께 일하는 상황이나 편안한 관계일 때나 선의로 시작한 도움이 잘못된 결과를 내는 일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오른손이 하는 일은 왼손이 모르게

어차피 도울 거면 가급적 티 내지 말고 생색내지 말라는 것이 일반적인 지혜이다. 똑같이 돕더라도 티를 팍팍 내거나 생색을 내면 안 돕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연구에 의하면 실제로 이런 현상이 나타나서 일반적으로 눈에 보이는 도움(가시적 지지)보다 보이지 않는 도움(비가시적 지지)이 더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미국 컬럼비아대 캐서린 지 교수에 따르면 가시적 지지란 도움을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지금 도움을 받고 있음을 인식하게 만드는 형태로 도움을 주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하면 안 되고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식으로 직접적인 조언을 주거나 아예 대놓고 일을 함께 또는 대신해주는 식의 도움이 여기에 속한다. 

반면 비가시적 지지란 도움을 받는 사람이 지금 도움을 받고 있는지 아닌지 모르게 은연중에 돕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나는 가봤지만 상대방은 처음 가보는 레스토랑에서 웨이터에게 “이 음식은 뭔가요? 주문 방법은 이렇게 하는 게 맞나요?”라고 넌지시 물으며 상대에게 힌트를 주는 것이나, 조언을 할 때 어떻게 해보라고 지시하기보다 “내가 아는 사람은 이렇게 했더니 잘 됐다더라” 같이 참고할 만한 정보를 넌지시 흘리는 것이 비가시적 지지에 속한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가시적 지지와 비가시적 지지를 주고 관찰한 결과 비가시적 지지를 받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성과가 향상되고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기분이 나아지며 관계 만족도 또한 더 좋아진 편이었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었다. 

상대의 약점을 들추지 않을 것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캐서린 지는 우선 대놓고 조언을 주거나 돕는 것이 사람들의 약점을 부각시키고 자신감을 낮추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아이들도 양육자가 너무 쉬운 일을 도와주면 기뻐하기보다 ‘나를 이것도 못하는 바보라고 생각하나?’라고 생각하며 자신감이 떨어진다는 보고가 있었다. 이와 비슷하게 누군가 너무 나서서 돕는다는 것은 적어도 그 사람이 나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부정적인 신호를 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따듯한 말이나 위로 같은 ‘정서적’ 지지의 경우 가시적이어도 괜찮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경우 상대의 무능함을 까발리지 않는 비가시적 지지가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특히 도움을 받는 사람이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를 크게 신경 쓰는 사람이라면 가시적 지지보다는 비가시적 지지를 주는 것이 좋다. 이들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남기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향을 보인다. 예컨대 요가 수업 같은 데에서도 자신의 어설픈 동작이 선생님을 자극해서 자세를 교정하러 오게 만들까봐 두려워한다. 따라서 이렇게 부정적인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 큰 사람들은 누가 자신을 가시적으로 도와주러 오면 큰 불편함을 느끼고 스트레스가 줄어들기보다 되려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비슷하게 중요한 시험 같이 평가받는 상황을 앞둔 사람이나 자기 비판적인 사람들에게는 가시적인 지지보다 비가시적인 지지가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부담 주지 않기

가시적 지지보다 비가시적 지지가 더 나은 또 다른 이유는 ‘부담’이다. 누군가 나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느낌을 팍팍 받을 때면 고마우면서도 조금은 어쩔 줄 모르겠고 이를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게 된다. 만약 상대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고 앞으로도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인 경우라면 부담이 더 커진다. 이런 이유로 독립심이 강하고 주변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경우 가시적 지지보다 비가시적 지지를 받을 때 자율성을 침해받지 않았다 여기고 관계 만족도도 높았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또한 가시적 또는 비가시적 지지를 사용하는 타이밍도 중요해서 일을 막 시작하는 ‘초기’에는 지나치게 참견한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비가시적 지지가, 일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분명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드러나거나 시급히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경우에는 가시적 지지가 더 적절할 수 있다고 한다. 

학교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는 지인을 보더니 대뜸 사람들 보는 앞에서 “나는 혼자 밥 먹는 애들을 보면 불쌍해서 가만 두지 못하겠더라”며 혼자 잘 먹고 있는 사람 앞에 터억 앉던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굉장히 무례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요청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일방적인 도움을 줌으로써 상대의 자율성과 혼자서 식사할 권리를 침해하고, 정작 그 사람은 혼자 먹는 것을 싫어하지 않을 수 있는데 자기 마음대로 실은 같이 먹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혼자인 거라고 단정짓는 것, 또 마음대로 상대방을 ‘불쌍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 등 모든 것이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보다는 자기중심성에서 나온 행위로 보였다. 가시적인 지지의 상당수가 이런 자기중심성의 산물이기 때문에 역효과가 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돕기로 마음 먹었다면 내 생각이나 나의 편의보다는 상대방의 생각과 상대방의 필요에 더 세심하게 귀를 기울여보도록 하자. 상대의 안녕을 증진시키는 것이 진짜 목적이라면 내가 돕는다는 걸 상대방으로 하여금 꼭 알게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참고자료

Girme, Y. U., Overall, N. C., & Hammond, M. D. (2019). Facilitating autonomy in interdependent relationships: Invisible support facilitates highly avoidant individuals’ autonomy. Journal of Family Psychology, 33(2), 154–165.  
Zee, K. S., & Bolger, N. (2019). Visible and Invisible Social Support: How, Why, and When. Current Directions in Psychological Science, 0963721419835214.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