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게임에만 문 활짝 연 중국]
한국서 온라인·모바일 배운 중국, 이젠 일본 게임기에 러브콜
일본 게임은 대거 허가증 내주고 한국은 3년째 한 건도 못받아
텐센트, 닌텐도의 중국 진출 돕고 북미·유럽 시장 공략 파트너로
일본 게임업체 닌텐도가 다음 달 자사 콘솔(TV와 연결하는 게임기)인 '닌텐도 스위치'를 중국에서 정식 발매한다. 3년 만에 중국 진출 꿈을 이룬 것이다. 2017년 출시한 닌텐도 스위치는 전 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중국 정부의 게임 유통 허가증(판호·版號)을 못 받아, 중국에선 못 팔았다. 중국 내 유통은 중국 게임업체인 텐센트가 맡는다. 중국 현지 매체인 텅쉰망은 이달 초 "스위치는 내달 10일부터 판매되며 가격은 2099위안(약 35만원)"이라고 보도했다.
중국 텐센트는 닌텐도와 손잡고 북미·유럽 콘솔 게임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다. 닌텐도는 콘솔 시장에서 세계 최고의 제작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텐센트가 이런 개발 노하우를 전수받아, 모바일 게임에 이어 콘솔 게임에서도 강자로 거듭나려는 것이다.
최근 일본과 중국 게임업체들이 속속 '밀월(蜜月)' 관계를 맺으며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다. 반면 중국과 최고의 파트너였던 한국 게임업체들은 아예 중국 게임 시장에서 배제되는 상황이다. 한·중·일의 게임 삼국지 구도가 송두리째 바뀌고 있는 것이다. 한국 게임업체의 한 관계자는 "중국은 일본 게임업체에 자국 게임 시장을 열어주고, 그 대가로 북미·유럽 시장 공략의 파트너로 삼고 있다"며 "더 이상 한국 게임에서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한국은 버리는 패로 쓰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과 일본 게임의 밀월
중국·일본의 '게임 밀월'은 올 3월부터 시작됐다. 중국은 2018년 초 게임 규제를 강화하며 신규 게임의 허가증 발급을 전면 중단했다가, 1년 만인 지난 3월에야 해외 게임에 허가증을 다시 발급하기 시작했다. 당시 허가증 30개 가운데 일본 게임이 8개였다. 이후 중국 당국은 매월 10~30개씩 해외 게임에 허가증을 주고 있고, 일본 게임은 줄곧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예컨대 지난 10월에 발급한 허가증 12개 가운데 일본 게임이 5개였다. 하지만 중국 당국에서 허가증을 받은 한국 게임은 하나도 없다. 벌써 2년 8개월간 한국 업체의 신작 게임에는 허가증을 내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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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게임업체들도 중국의 러브콜에 분주하게 답하고 있다. 지난 8월 개최된 중국 최대 게임 박람회 '차이나조이 2019'에는 중국 게임업체의 뒤를 이어 일본 참가 업체가 둘째로 많았을 정도다. 닌텐도는 '젤다의 전설' '마리오카트' 같은 인기 게임의 중국어 버전을 공개했고, 일본 소니는 중국 게임업체가 만든 PS4(플레이스테이션4·소니의 콘솔) 신작을 소개했다. 반다이남코, 디엔에이 등 주요 일본 게임업체가 대형 부스를 열었다. 당시 행사에 참가한 관계자는 "소니는 미국 최대 게임쇼인 'E3'에는 불참했지만, 중국 전시회에는 공을 들이며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반면 올해 중국 차이나조이에 부스를 낸 한국 업체는 카카오게임즈 단 한 곳이었다.
◇중국 시장 잃자 드러난 韓 게임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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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업계에선 "중국은 전형적인 '시장환기술(市場換技術·시장을 내주고 기술을 배우는 것)' 정책을 펼치는 나라인데, 한국 게임에 문을 열어주지 않는 건 더 이상 배울 게 없다는 소리"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모바일 게임은 이미 세계 모바일 게임 순위(매출 기준) 상위권이다.
조사업체 수퍼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9월 중국 롱테크 네트워크의 '라스트 셸터:서바이벌'과 텐센트의 '왕자영요'가 3·4위다. 한국은 엔씨소프트의 '리니지M'이 10위에 올랐을 뿐이다.
그나마 리니지M은 매출 대부분이 국내에서 나와, '글로벌 대작'으로 보기 어렵다. 중견 게임업체 관계자는 "중국 당국이 다시 허가증을 내줘도 중국 현지 업체와 경쟁해 중국 시장을 제대로 공략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중국에서 명맥을 유지하던 인기 게임의 실적도 하락하는 추세다. 국내 최대 게임업체인 넥슨은 3분기에 중국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의 절반에 그쳤다. 중국 시장의 고전 탓에 전체 매출(5817억원)도 전년 대비 24%나 줄었다. 중국에서 매년 1조원대 로열티 매출을 올리던 '던전앤파이터'의 인기가 시들해졌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 업체들은 한국 게임 시장을 접수할 태세다. 현재 구글플레이의 한국 시장 게임 순위(매출 기준)에서 상위 10개 중 4개가 중국 게임이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중국을 제외하면 해외에서 잘나가는 게임이 없는 '민낯'이 드러난 것"이라며 "일부 게임사가 북미·유럽 콘솔 시장이나 일본·동남아 진출을 시도하고 있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