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다발현하면 대사증후군, 부족하면 거식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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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대 서울백병원은 전 세계 전문가와 함께 대규모 다국적 거식증 환자의 유전자를 분석해 대사증후군을 유발하는 돌연변이 유전자가 거식증 환자에게도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18일 밝혔다.
신경성식욕부진증이라고도 부르는 거식증은 섭식장애의 하나로, 체중 증가에 대한 스트레스 등으로 먹는 것을 장기간 거부하는 질환이다. 영양실조와 관련있는 만큼 모든 정신질환 중 치사율이 가장 높다.
지금까지 거식증이 대사증후군의 원인 중 하나라고 알려져 있었다. 거식증으로 인해 영양실조가 발생하면 저혈당이나 지질 이상 등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연구 결과를 통해 기존에 알려졌던 것과는 반대로 유전적인 대사 이상이 거식증을 일으킬 수 있음이 밝혀졌다.
김율리 인제대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신디아 불릭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와 제롬 브린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 정신의학및신경과학,심리학연구소 교수 등 전 세계 100여 개 기관의 공동연구자들과 함께 유럽과 북미, 호주 등 17개국의 거식증 환자 1만6992명과 건강한 여성 5만5525명의 유전자를 분석했다.
연구팀은 거식증 환자와 건강한 사람의 유전정보를 비교 분석해 돌연변이 유전자 8가지를 발견했다. 이들 돌연변이 유전자 중에는 당뇨병이나 지질대사 이상 등 대사증후군을 유발하는 것들이 있었다. 이 유전자들이 과다 발현하면 대사증후군이 발생하고, 지나치게 적게 발현하면 거식증이 발생했다. 또한 돌연변이 유전자 8가지 중에는 놀랍게도 강박장애나 우울증, 불안장애 등 정신질환을 유발하는 것들도 있었다.
브린 교수는 "거식증 환자들은 영양 결핍으로 대사 이상이 생기지만, 이번 연구 결과를 통해 유전적으로 타고난 대사 이상이 거식증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말했다.
불릭 교수는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주로 심리적인 원인 때문에 거식증이 발생한다고 생각했었다"며 "이번 연구를 통해 거식증이 대사 이상과 정신질환이 공존하는 질환임이 밝혀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연구 결과를 통해 거식증 환자들이 왜 쉽게 저체중이 되고 영양치료를 받은 뒤에도 쉽게 재발하는지 원인을 찾았다"고 말했다.
김율리 교수는 "향후 거식증 치료에 있어 대사적 특성과 정신적 위험 요인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제네틱스' 7월 15일자에 발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