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이야기들이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다. 새벽에 대뜸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된 기사 링크를 보내고, 기사를 써야 한다는 압박을 보내는 누군가 때문에 며칠을 끙끙 앓았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난감하니까.
최소한 1783년 크림칸국을 합병한 예카테리나 2세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할까. 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감정적인 관계를 설명하자면 구소련 시절, 스탈린이 일으킨 농업 집단화와 뒤이은 홀로도모르(Holodomor : 대기근)부터 시작해야 겠다.
증오의 이유, 홀로도모르
구소련 시절, 우크라이나는 소련이 소비하는 식량의 1/4을 생산할 정도로 비옥한 토지를 가지고 있었다(땅덩이도 넓었다. 현재 유럽에서 프랑스보다 땅덩어리가 큰 게 우크라이나다). 문제는 스탈린의 ‘잘못된 생각’이었다.
“소련도 공업화를 하자! 그러려면 종잣돈이 필요한데, 우린 지금 돈이 없잖아? 대신에 우크라이나는 식량이 남아돌잖아! 오케이, 그럼 우크라이나 식량을 징발해서 수출하자! 서방에 우크라이나 식량을 수출한 돈으로 설비와 자재를 구입하면... 소련도 공업화를 할 수 있어!”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농민들이 들고일어났다.
“아니, 씨바, 뼈 빠지게 농사 지어놨더니만 우리 거 뺏어간다고? 그럼 우리 농사 안 지을래!”
어차피 뺏길 거 가축들은 다 잡아먹고, 농사지을 말들은 굶겨 죽이거나 방치했다. 가축들을 먹일 사료가 부족해졌고(어차피 농사를 안 지었기에). 어차피 농사지어도 빼앗길 것이기에 농민들은 땅을 버리고 루마니아로 도망가기에 이르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스탈린이 한마디 던진다.

스탈린
사진 출처 - 핀터레스트
“막아!”
군대를 동원해 농부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한 거다(실제로 철조망을 치고 막았다). 이런 상황에서 1932년 가뭄이 들었다. 그렇게 홀로도모르가 시작됐다. 소련 최대의 곡창지대였던 우크라이나에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하게 된 거다. 당시 우크라이나 인구 3천만 명 중 6백~1천만 명이 굶어 죽었다는 통계가 나왔다.
(지금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홀로도모르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홀로도모르가 스탈린이 기획한 ‘의도적인 학살’로 의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는 이 홀로도모르를 ‘집단학살’로 규정하도록 UN에 계속 요구하고 있다.
“이건 러시아 새끼들이 의도적으로 한 짓이라니까!”
당연히 러시아는 이에 반발한다. 딱봐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서로 ‘감정’이 있을 거 같지 않은가?)

홀로도모르 희생자 추모비
후르시초프의 실수
민족적인 특징에 대해 설명하려고 해도 애매하다. 우크라이나는 10세기부터 ‘키예프 공국’으로 불렸던 동네다(나름 유럽에서 그 입지를 다진 동네다). 그러다가 징기스칸 형한테 박살이 나기도 하고(그 당시에 칸 형한테 밟힌 게 어디 한두 나라겠냐만), 나중에 좀 살만해지니까 폴란드와 러시아가 사이좋게 나눠 먹었고, 18세기가 되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러시아가 다시 우크라이나 땅을 나눠 먹었다. 그러나 1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는 폴란드와 소련이 이 땅을 나눠 먹게 된다.
국경선이 이리저리 쪼개지고, 갈라지고, 나라가 사라지고 만들어지는 게 다반사인 유럽에서 우크라이나 같은 경우는 일상다반사다. 굳이 이렇게 우크라이나의 ‘단편’들을 먼저 말하는 건, 지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계가 하루 이틀 사이에 이렇게 나빠진 게 아니란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다.
이렇게 갈라지고 쪼개진 건 지금 크림반도 상황과도 맞물린다. 우크라이나 민족 구성비를 보면,
우크라이나인 : 77.8%
러시아계 : 17.3%
타타르를 비롯한 소수민족 : 4.9%
이다. 민족적으로는 우크라이나인이 많아 보이는데, 문제는 지역별로 나눠진 ‘분위기’다. 우크라이나의 분위기를 나누는 건 드네프르 강이다. 드네프르 강을 중심으로 강 동쪽 지역은 러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은 지역이다. 거기에 러시아에서 이주해 온 인구도 많다. 덕분에 동부지역은 전체 인구의 30% 이상이 러시아계다. 이러다 보니 당연히 러시아에 찬동하고, 러시아에 붙으려 한다. 대표적인 게 크림반도인데, 크림반도는 원래 ‘러시아’거다. 이게... 설명하면 복잡한데, 한마디로 말하면
“흐루시초프 개객끼!”

소비에트 연방의 국가원수 겸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흐루시초프
가 맞을 거 같다. 물론 흐루시초프도 훗날 이 사달이 날지 몰랐을 거다. 원래 크림반도는 ‘예민한’ 땅이다.
(1954년 흐루시초프가 크림주를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양도했었다. 이건 그냥... 일종의 ‘정치쇼’였다. 그는 종종 우크라이나 출신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았는데, 정확히 따지자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국경 사이에 있는 칼리노프카에서 태어났다. 물론, 그의 두 번째 부인이 우크라이나계이기도 하고, 그의 정치적 배경이 우크라이나였다는 것, 결정적으로 라자르 카가노비치 우크라이나 공산당 서기장의 후원에 힘입어 중앙 정계로 진출했다는 건... 뭐 그렇다는 거다.
나중에 소련 서기장이 되고 나서는,
“씨바! 우크라이나한테 크림반도 주자!”
라고 설레발쳤다. 당시 명분은 제정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병합 300주년을 맞이해,
“기분이다 너 가져!”
라는 거다. 그때는 이게 그리 큰 문제가 안 된 게, 이건 어디까지나 서류상의 문제였을 뿐이다. 왜? 당시에 소련과 우크라이나는 한 나라와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훗날 큰 문제가 된다. 소련이 붕괴되면서 우크라이나가 뚝 떨어져 나가게 된 거다. 우크라이나가 독립할 당시, 크림반도를 다시 돌려받아야 한다는 말이 나왔으나 그때는 유야무야 넘어갔다. 이때 단도리를 했으면 훗날 전쟁까지는 나지 않았을 텐데...)

말 많고 탈 많은 크림반도...
망치를 집어든 푸틴
부동항에 대한 끝없는 갈망을 내비친 러시아 입장에서 크림반도는... “생존” 그 자체를 의미했다. 바다로 나가는 관문이자, 흑해와 발칸반도 쪽으로 세력을 확장할 수 있는 교두보가 되는 게 크림반도다.
(역으로 말하면, 서방 세계가 여길 틀어막으면 러시아의 진출을 막을 수 있다는 소리가 된다. 영국과의 그레이트 게임 중 영국과 러시아가 맞붙은 크림전쟁이 그렇게 시작된 거다)
전략적으로 정말 중요한 위치이기에 소련이 붕괴됐을 당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협상을 벌였다.
“씨발... 그래 각자 살림 차려서 나가는 건 좋은데... 세바스토폴을 내놔.”
“야... 그런 게 어딨어? 주면 다 주는 거...”
“이 색희가... 좋게 좋게 말로 풀려고 하니까 누굴 호구로 보나.”

세바스토플 해군기지의 위치는
위 자료 사진을 참고하시라.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결국 2042년까지 세바스토폴 해군기지에 러시아 흑해함대를 주둔시키겠다는 협정을 맺게 된다(이거 한 차례 연장된 거다. 뭐, 나중에 크림 반도 자체를 먹어버리니). 러시아로서도 크림반도를 포기할 수는 없었던 거다.
(크림반도는 미국의 괌과 비교해 볼 만 하다.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는 중국, 한반도, 일본, 동남아시아 각국을 커버할 수 있는... 정말 절묘한 위치에 박혀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괌에 대한 방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나라에 뭔 일 터지면, 괌에서 폭격기가 날아오는 게 바로 그런 이유다. 같은 의미로 크림반도에 위치한 카차(kacha), 심페로폴(simferopol) 같은 곳에도 공군기지가 있다. 이 공군기지는 유럽 전 지역을 커버할 수 있다. 전략적으로 정말 중요한 위치란 소리다)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어쨌든 이 크림반도의 경우 인구 200만 명 중 러시아인의 비율이 56%를 넘어갔다(우크라이나계는 24% 밖에 안 된다).
역사적으로도 러시아에 가깝고, 인구도 많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이 땅을, 러시아가 가만 내버려둔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까놓고 말해 러시아가 지금 이러는 건,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내가 푸틴이었다면
“아니 씨바, 우리가 아무리 호구로 보여도 이건 너무한 거 아냐?”
라고 말했을 거 같다. 지금 러시아가 하는 ‘일’을 보자면 이런 생각이 든다.
하나, 러시아가 빡칠만 했다.
둘, 푸틴이 정말 머리를 잘 쓰고 있다.
셋, 근데 러시아가 정말 쓸 카드가 별로 없다.
뭐, 위에서 너무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서술한 거 아니냐 반문할 수 있는데, 사태의 원인은 러시아의 ‘불안감’에서 시작된 거다. 그러니까 러시아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연재물에서 계속 이어나가겠다).
다 떠나서 국제사회는 ‘힘’의 논리대로 움직인다. 지금 핵심은 무너진 패권국인 러시아가 자기에게 칼날이 다가오는 걸 보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망치를 집어든 상황이 된 거다. 그 망치를 내려칠지, 아니면 단순히 흔들면서 위협을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소련 시절에 비해 러시아가 내놓을 카드의 숫자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다는 거다. 러시아가 지금 상황에서 내놓을 수 있는 최대의 카드가 ‘전쟁’이다. 그거 말고 가스관도 있고, 가스관도 있고, 가스관도 있지만...
후아. 어쨌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는 정말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걸 알아야 지금의 일들이 이해되는데 한 편에 당장 다 풀어내는 건 어려울 거 같고, 키워드 별로 하나씩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관계를 정리해 보겠다.
‘냉전’이 시작됐을 때,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이런 ‘신기한 전쟁’의 정체성을 보여준 사건이 하나 있었다. 바로 1952년 2월 18일, 그리스와 터키가 나토(NATO)에 가입한 일이다.
(터키는 당시 나토에 가입하기 위해 한국전에 뛰어들어서,
“씨바, 우리 잘 싸워! 우리 너네 편이야! 우리가 너네 편하면 몸빵 잘할 수 있어!”
를 몸으로 보여줬다. 한국전에서 피 흘린 덕분에 터키는 나토에 가입할 수 있게 됐다. 터키가 형제의 나라이고, 뭐고 말이 많은데 목숨을 바치신 군인 분들께는 당연히 감사해야하지만 국제사회라는 큰 판으로 봤을 때 ‘의리’ 따위는 없다. 오로지 ‘이익’만이 있다. 터키가 미쳤다고 주워 먹을 것도 없는데, 지구 반 바퀴를 날아와서 피 흘리겠는가? 당시 터키는 소련의 남하에 대한 절박감이 있었고, 이를 막기 위해서는 ‘나토’라는 든든한 뒷배가 필요했다. 이후 터키에는 미국이 전술핵도 배치하고 나름 어깨 힘 좀 주며 살 수 있었다)
앙숙 그리스와 터키가 나토에 동시 가입한 이유

그리스와 터키는 지역 내의 앙숙이었다. 영토분쟁부터 시작해서 소소한 충돌을 끊임없이 일으켜왔다. 이게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14세기 오스만 제국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슬람 국가인 오스만 제국(현재 터키)은 발칸 반도에 뿌리를 박고, 그리스 땅을 지배했다.

시기별 오스만 제국(현 터키) 영토
그리스가 이 ‘이슬람 세력’에게서 독립할 수 있었던 건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였다. 1차 대전 당시 그리스는 연합국으로 참가했고, 오스만 제국은 독일 쪽에 붙었다. 1차 대전(1914년 발발) 바로 직전에도 오스만 제국과 그리스는 1912~1913년 동안 ‘발칸 전쟁’을 치렀다. 여하튼 복잡다단하다. 핵심은 그리스와 터키는 제대로 전쟁을 치렀고, 서로 앙숙이란 거다.
그런데 이들이 동시에 나토에 가입한 거다. 이유는 간단하다.
“서로 싸우다가 소련이란 불곰에게 먹힐 수 있다.”
라는 위기감 때문이다. 이런 위기감의 정점을 찍은 게 1955년 5월 9일 서독의 나토 가입이다. 서독의 나토 가입은 국제정치학적으로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그동안 2차 대전 전범 취급받으며, ‘보통 국가’로서의 권리를 제한받아온(대표적으로 ‘군대’ 보유 같은 것) 서독을 다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인 것은 물론이고, 공식적으로
“소련 생퀴들 모가지 딸 사람 여기 붙어라!”
라고 대놓고 선전포고를 한 모양새가 된 거다. 이제 과거는 필요 없고, 소련의 목을 딸 의향이 있는 모든 이들을 받아들이겠다는 거다. 그리고 나토에 점점 많은 국가들이 가입하면서 나토의 경계선은 점점 소련 국경선으로 다가갔다.
나토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애초 나토의 시작은 ‘중부유럽’의 소소한(?!) 모임이었다. 까놓고 말하자면, 스탈린의 ‘욕심’으로 시작된 것이 바로 나토이다. 이야기는 베를린 봉쇄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은 동과 서로 나눠지게 됐고, 수도였던 베를린은 미, 영, 프, 소련이 나눠서 관리하게 됐다. 여기서 문제는 소련이 이대로 쉽게 넘어갈 나라가 아니었다는 거다. 동독에 공산정권을 세운 소련은 서독마저도 그렇게 만들고 싶어 했다. 그 시작점이 베를린이었다.
여담이지만, 이 당시 소련의 행보는 서방세계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출처-<orbi.kr>
1946년 소련은 동독 지역에 독자적인 총선거를 실시했다. 이때 소련의 행보는 ‘예술’ 그 자체였다. 언론을 장악하고, 정치집단의 참여를 제한한 상황에서 전광석화처럼 총선거를 실시해 꼭두각시 공산주의 정당을 세운 거다. 그 다음? 바로 공산화로 들어갔다. 산업과 재산은 국유화되고 완전한 공산주의로 나아간 거다.
“아니, 씨바 동독이 순식간에 빨갱이 나라가 됐네? 동독 다음엔 서독일 테고, 서독 다음은 프랑스고, 프랑스 다음은?”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스탈린은 서독에도 공산정권을 세우고 싶어 했다. 그래서 서독이 총선거를 치를 때 사회주의 정당을 후원하고, 이들을 뽐뿌질 해서 뭔가를 해 보려 했는데, 서방 세계는 또 당할 바보가 아니었다.
“빨갱이가 서독까지 먹으면 안 돼! 당장 돈 풀어!”
마셜플랜의 ‘은혜’가 서독 땅에 뿌려졌다. 이 무렵 소련은 가열차게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었고 실제로 1949년 8월 29일 소련 최초의 핵무기 RDS-1의 실험이 성공하게 된다.
이 무렵이었다. 스탈린은 서독은 못 먹어도 베를린은 다 먹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게, 서베를린에 마르크화를 통용시킨 문제가 소련의 심기를 건드렸다느니, 경제통합 때문에 스탈린이 빡쳤다느니 하는 건 부차적인 문제였다. 스탈린은 그냥,
“베를린 다 먹고 싶다스키. 냠냠”
이라고 생각했던 거다. 그리고 그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온건한(!!!) 방법인 베를린 봉쇄를 시작했다. 1948년 4월 1일 소련은 서베를린과 서독을 연결하는 도로와 다리를 완전히 봉쇄했다(그 이전부터 징조는 있었다). 스탈린은 아주 상식적(?)으로 생각했다.
“지금 당장 우리가 핵이 없는 상황이니까 전면전은 좀 그렇다스키. 그리고 2차대전 끝난 지가 겨우 3년이다스키. 우리가 2천 만 명이나 갈려나간 게 엊그제인데 또 미국과 싸우라고? 안 돼! 그냥 적당히 협박하고 삥 뜯는 방법으로 베를린 얌얌하자스키.”
베를린 봉쇄는 누가 봐도 소련이 이기는 게임이었다. 4월 1일 도로를 막았고, 6월 24일에는 전기를 끊었고, 그동안 겨우겨우 이어지던 철도, 수로 길마저 다 끊어버렸다.
“이제 어쩔스키? 석탄이 못 들어가면 얼어 죽을테고, 식량이 안 들어가면 굶어 죽을 텐데. 그냥 앉아서 죽느니 서베를린 넘겨! 어때스키?”

저 봐. 저 봐. 곧 넘어오겠구만스키. 우헤헤~
스탈린의 배짱 장사였다. 이 당시 서베를린 시민의 숫자가 220만 명. 소련이 봉쇄에 들어갔을 당시 식량은 36일 치, 석탄은 45일 치가 고작이었다.
여담이지만, 당시 서방세계의 군사 전문가 대부분의 판단은 ‘베를린 포기’였다. 베를린은 동독 땅 한가운데 있었고, 이 주변을 소련군 50만 명이 포위하고 있었다. 게다가 동독에 주둔 중인 소련군과 소련에서 증원할 병력까지 생각한다면 ‘전쟁’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럼 이걸 공중수송으로 해결한다면?
“서베를린 220만 명 인구가 평시에 쓰던 물자가 하루 평균 8천 톤 정도입니다.”
“그 물자를 다 어떻게 움직였는데?”
“전부 철도였죠.”
“그걸 지금 공중수송으로 대체하겠다고?”
“8천 톤을 다 공중수송으로 채울 순 없죠. 필요 최소 물자. 그러니까 생존에 필요한 최소 물자를 계산하니까 3,600톤 정도 되더라구요. 이걸 공중수송으로...”
“그걸 누가 해?”
그렇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판단할 일이다.
쇼미더머니 끝판왕과 나토의 라이벌 탄생
그때 등장한 인물이 그 유명한 ‘커티스 르메이(Curtis Emerson LeMay)’였다. 2차 대전 당시 독일과 일본을 전략폭격으로 불태워버렸던 신화적인 존재. 이 인간이 공수작전을 진두지휘했다.

커티스 르메이
“나 커티스 르메이가 말한다. 전 세계의 C-54 조종사들에게 전한다. 지금 즉시 독일로 날아오도록!”
그 유명한 베를린 공수작전이 시작된 거다. 스탈린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씨바스키... 이러면 안 되잖아. 진짜 쇼미더머니를 찍으면 어쩌란스키. 진짜!”
상식적으로 미국이 베를린을 포기하는 게 정상인데, 미국은 돈을 처발라서 베를린을 구했다. 이와 동시에 발 빠르게 조직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소련 생퀴들 계속 내버려 두면 안 되겠다. 우리 저놈들 뚜까 팰 조직 하나 만들자.”
베를린 봉쇄를 시작하고 사흘이 지나지 않은 1948년 4월 4일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가 만들어졌다. 이 당시 회원국이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이탈리아,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포르투갈
등이었다. 딱 봐도 중부유럽에서 약간 서쪽의 느낌이다. 동쪽으로는 넘어갈 생각을 안 했다. 이게 지정학적으로 생각해 봐야 하는 게,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을 비롯해서 19~20세기 유럽에서 대규모 전쟁이 일어난 이유는 ‘독일’ 때문이었다. 중부유럽에 독일이란 패자가 등장했고, 이 독일이 자기 국력에 걸맞는 ‘위치’를 차지하겠다고 나서면서 사단이 벌어진 거다. 문제는 그 독일이 반쪽이 났고, 그 반쪽이 소련 편에 붙었다는 거다. 역으로 말하자면, 동독이 서독을 넘는 순간, 바로 프랑스란 소리다.
냉전 시대 가장 무서웠던 게 드넓은 중부유럽의 평원을 수천 대, 수만 대의 소련 탱크들이 밀고 나오는 기갑웨이브였다. 서독이 괜히 40만 이상의 상비군을 준비하고, 탱크들을 찍어낸 게 아니다. 소련의 기갑웨이브를 막기 위해 전술핵을 쏘겠다는 작전계획을 준비한 이유가 다 있는 거였다. 냉전 시절 내내 서독에는 미국의 최정예 기갑 부대인 5군단과 7군단이 있었다(7군단은 걸프전이 돼서야 사우디로 차출됐다).
자! 문제는 베를린 봉쇄로 서방 세계가 ‘어마 뜨거워’를 외치며, 자기들의 조직을 만든 것까지는 좋은데, 1955년 5월 9일 서독을 나토에 가입시킨 거다.
이게 뭐냐면, 이제 딱 경계선이 그어진 소리다. 동서독이 냉전의 최선봉이 된 거다.
(웃기는 게 스탈린이 죽고 난 뒤 소련이 나토에 가입하겠다고 했다는 거다. 물론, 거절당했다)
서독이 나토에 가입하자마자 소련은,
“씨바스키, 우리도 뭉쳐! 저쪽이 쪽수로 나오면 우리도 쪽수로 나가스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게 바르샤바 조약기구다. 서독이 나토에 가입한지 딱 5일만인 1955년 5월 14일의 일이다.

새로운 국면, 소련의 붕괴
동서독을 경계로 나토와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서로 으르렁거린 거다. 그런데 이게 1991년 7월이 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 망했다스키.”
소련이 망하고, 러시아가 됐다.
(동독과 서독의 통일 당시, 나토 가입국을 더 이상 동쪽으로 늘리지 않겠다는 약속이 있느니, 없느니는 중요치 않다. 그 ‘동쪽’의 해석이 동독인지 동유럽인지, 약속을 했는지, 아닌지 따위도 필요 없다. 왜? 국제사회 작동 원리는 ‘힘’이니까. 조약이나 약속은 ‘힘’을 배경으로 지켜지는 거다. 즉, 설사 그런 약속이 있었다 치더라도, 그걸 문서화했더라도, 그걸 강제할만한 ‘힘’이 없다면 결과는 똑같다)
결국 소련이 망하면서 당연히 1991년 7월 1일, 바르샤바 조약기구도 공식적으로 해체했다.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본부는 폴란드의 바르샤바에 있다. 그런데 지금 폴란드는 나토의 일원이 됐다. 한때 나토의 라이벌이었던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본부가 있던 나라가 나토 가입국이 된 거다. 이 하나의 이야기만으로도 지금 러시아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추신: 후아. 어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를 설명하려다보니 이야기가 길어진다. 러시아 이야기를 하는데 나토랑 바르샤바 얘길 안 꺼낼 수도 없고. 뭐 이 정도는 교양으로 가지고 있어야 국제관계를 이해하기도 쉽고 앞으로의 이야기도 더 재밌을 테니 함께 계속 가보자.
1990년 10월 동독이 서독에 자연스럽게 흡수되면서, 동독은 나토의 ‘나와바리’가 됐다. 여기서 끝났다면 러시아가 지금 이렇게 화를 낼 상황은 없었을 거다. 그러나 동구권의 붕괴는 시작됐고, 20세기 최대의 ‘실험’이라 불렸던 사회주의는 소련의 붕괴로 끝이 났다.
그리고 나토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었던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해체됐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구)사회주의 국가들의 나토 가입이 시작되다

동구권 붕괴 지도
1999년 3월 체코, 폴란드, 헝가리가 나토에 가입하게 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국제사회에서 어느 정도 ‘이해’하는 분위기였다. 러시아 쪽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저 생퀴들이 태어나길 반골 체질이었다스키. 우리 별로 안 좋아했다스키”
“아니, 너네가 쟤네들한테 한 게 있잖아! 툭하면 탱크 밀고 들어가고! 숲에 들어가서 학살하고! 땅에 묻고! 느그 서장이랑 밥도 묵고... 아니, 아니... 암튼, 쟤들이 니들 좋아하겠냐?”
체코나 폴란드, 헝가리는 러시아에게 당한 게 좀 많았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툭 하면 러시아가 칼로 찌르고, 탱크로 밟고, 총으로 쏘고, 학살하다보니 이 세 나라는 러시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나토에 가입하는 게 당연하게 보였다.
문제는 다음 나토 가입 국가였다. 2004년 4월 2일 발틱 3국을 포함한 동구권 7개국. 그러니까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가 나토에 가입했다.
“아니, 폴란드나 헝가리 색히들은 그러려니 하겠는데, 이건 선 씨게 넘는데? 이것들까지 나토 가입한다고?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스키?”
당연히 러시아는 반대했다. 나토의 포위망이 점점 조여 오는 게 눈에 확 들어온 거다. 발틱 3국이 나토에 가입했다는 건 러시아 입장에서는 짜증나는 수준을 넘어서 ‘불안한’ 상황을 연출하게 되는 거다. 왜?
“나폴레옹이나 히틀러가 러시아를 침공했다가 X 된 이유가 뭔지 아냐?”
“뭔데?”
“모스크바가 너무 멀어. 그것도 너~어무 멀어!”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는 내륙 깊숙이 위치하고 있다. 대륙세력의 수도답게 모스크바는 적들의 접근을 쉬이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발틱 3국이 떡하니 나토에 가입하게 된 거다.
“아니, 시바스키!! 발틱 3국에서 모스크바까지 600킬로가 안 돼!! 나토 애들이 저기에다가 F-15 몇 대 가져다 놓으면, 20분 안에 모스크바 두들기고 돌아간다스키!!”
슬금슬금 나토 가입국이 늘어나면서 러시아는 전략적으로 위험에 노출됐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나토 가입국이 점점 늘어나면서 러시아는 심각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NATO의 동진은 러시아에 대한 압박이며, 러시아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
이게 러시아의 판단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이런 ‘불안감’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토는 가입국을 늘려가기 시작했다.
나토와 유럽 가입 러시, 러시아의 목을 죄어오다
2009년에는 알바니아와 크로아티아가, 2017년에는 몬테네그로가 나토에 가입했다. 그리고 대망의 2020년 3월 북마케도니아가 나토의 30번째 회원국이 됐다.

출처-<연합뉴스>
(이런 동유럽이나 발칸반도, 옛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나토 가입 러시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과도 연관이 있다. 러시아가 망치를 들고 휘두르는 걸 보면서 유럽의 작은 국가들은 너나 할 거 없이 든든한 ‘빽’을 찾게 됐다.)
(까놓고 말해서 푸틴이 일으킨 몇 번의 전쟁 덕에 유럽의 젊은이들은 고달파졌다. 냉전이 끝나고 징병제가 모병제로 바뀌고 군대가 거의 개점휴업 상태였는데, 다시 군 징병 체계가 바뀌어가고 있다. 유럽의 국가들은 병력확충, 장비 보강에 힘을 쏟아야 했고, 외교도 바빠지게 됐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자자, 나토 가입하려면 대기표 받아요. 우선 심사 거쳐야 하니까”
“나토 먼저 가입하면 안 돼요? 러시아가 지금...”
“이 사람들이 우물에서 숭늉 찾나. 우선 당신들이 유럽이라는 걸 증명하고 그다음에 나토에 가입하든 말든 해야 할 거 아냐?”
“유럽인 걸 증명하려면...”
“우선 EU에 가입해야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코소보,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몰타, 키프로스, 우크라이나가 EU 쪽에 붙었다.
“나토에 가입하기 전에 EU에 들어가서 얼굴 도장 찍어야지.”
이런 상황인 거다. 까놓고 말해서 러시아의 신경을 긁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터지기 전에 이미 러시아는 거의 ‘바보’가 된 상황이었다.


유럽 연합(European Union)
아래쪽에서는 알바니아, 크로아티아, 북마케도니아가 치고 올라오지, 중부유럽에선 폴란드를 비롯해서 말 안 듣는 애들이 치고 올라오지, 옆구리 쪽은 발틱 3국이 치고 올라왔다. 결정적으로 ‘대가리’도 문제다.
냉전 시절 핀란드는 자신들의 주권을 유지하면서 중립국을 표방했다. 소련이 핀란드를 서방세계와의 창구로 활용하기도 하면서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까놓고 말하면 냉전 시절 내내 핀란드는 어느 정도 소련의 ‘내정간섭’에 노출됐었다.
압도적으로 세서 어떻게 해볼 수 없을 정도의 큰 상대 바로 옆에 있는 조그만 나라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주권의 일부를 포기해야 했다.
(자일리톨 먹고, 휘바휘바 하면서 소련과 싸울 수도 없었다. 싸웠다간 개박살이 날 게 뻔했다. 겨울 전쟁 시절(1939-40, 소련이 핀란드를 침공하여 발발)은 그냥저냥 총이나 대포로 싸웠지만, 이제 세상은 미사일과 핵탄두가 날아가는 세상이 아닌가)
문제는 이케아와 자일리톨의 나라인 스웨덴과 핀란드가 슬슬 러시아 눈치를 보다가,
“아니, 휘바. 분위기 요상하게 돌아가는데, 이참에 우리 나토로 갈아탈까?”
“중립 더 안 해?”
“푸틴 저 색희 하는 거 봐서... 뭔가 좀 터질 거 같은데?”
“우크라이나 조지는 거 보면 좀 뒷배가 필요할 것 같긴 한데”
“그렇지? 이 참에 우리도 조직에 들어가는 게 낫지 않겠어? 시라소니가 전투력은 최강이었지만, 혼자라서 외로웠잖아. 아무리 잘 싸우면 뭐해? 다구리 앞에 장사 없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점점 나토에 가까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쪽도 분위기 험악하다. 러시아로서는 머리 위에 적이 생기는 꼴이 된 거다)
핀란드와 스웨덴. 이 중립국 애들이 슬슬 간을 보며 나토에 가입하려 하는 거다. 이렇게 되면, 러시아는 그야말로 온 천지사방에 적들이 우글거리는 상황이 된다.
이렇게 보면,
“아, 러시아가 좀 빡칠만 하네.”
라고 간단히 생각하고 넘길 수도 있는데, 그렇게 간단하게 빡치기만 할 정도로 넘길 문제가 아니다. 이건 러시아의 전략적 방향성이 완전히 틀어진 상황이 된 거다.

이런 시바스키..
생각 이상으로 지금 러시아는 몰려있다
냉전 시절을 떠올려 보자. 러시아(소련)는 미국 국력의 절반 정도의 힘을 가지고 냉전 시절을 버텨왔다. 그럼 친구들이라도 멀쩡한 애들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국가들이 어땠나? 대부분 러시아가 강제로(?!) 끌고 온 애들이며, 장비도 대부분 러시아 걸로 통일한 애들이었다. 동독 정도를 제외하고는 먹고사는 거 걱정하는 애들이 많았다.
반면, 나토의 경우는 그래도 나름 지역에서 짱 먹는, 돈 많고, 주먹 센 괜찮은 친구들이 많았다. 독일, 영국, 프랑스 같은 애들 봐라. 게다가 영국과 프랑스는 핵도 가지고 있었다.
(냉전 시절 초창기인 1950년대 소련의 GDP는 미국의 1/4 수준이었다. 이걸 가지고 꾸역꾸역 미국과 나토에 맞서 싸운 게 용한 거다)
냉전 시절 러시아(소련)가 나토군을 압박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지리적 이점이었다. 동독이 최전선이 되고, 체코와 폴란드가 그 뒤를 받쳐준다.
탁 트인 중부유럽의 대평원을 수천 대가 넘는 탱크들을 가지고 물밀 듯이 밀고 나가는 기갑웨이브. 이건 나토 진영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다. 동독에 주둔 중인 소련군이 언제 어떻게 방향을 틀어서 어디로 갈지 누가 알겠는가? 이 주둔 부대가 미국의 5군단, 7군단을 양으로 압도한다면?
서독을 찍고, 프랑스를 넘어 영국까지 치고 갈 수 있다.
이 지리적 이점은 냉전 기간 내내 나토의 지휘부들의 머리를 아프게 했다.
“이거 방법 없어. 사람 불러야 해.”
“소련 놈들 쪽수를 어떻게 막아내?”
“그럼 어떻게 해?”
“...씨바 우선 핵 쏘고 봐야지. 저걸 어떻게 사람 힘으로 막아?”
냉전 시절 서유럽 국가를 압박하던 지리적 이점은 이제 역으로 러시의 목을 조이고 있는 중이다. 일종의 완충지대가 될 수 있었던 국가들이 이제는 완충지대가 아니라 ‘적’이 돼 러시아를 노려보고 있다.
모스크바에서 600킬로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나라가 나토 가입국이 된 상황. 여기에 하나 둘 나토 가입국이 늘어나면서 바다 쪽에서는 완전히 ‘밀봉’된 상황이 됐다.
당장 발틱해, 흑해, 아조프해, 카스피해 등에 있는 해군기지들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이 어려워졌다. 여기에 만약 우크라이나까지 나토에 가입한다고 치자 어떻게 될까?
당장 육지에서 러시아의 아랫배를 누르는 상황이 될 수 있다. 뭐, 그렇다고 나토군이 지상으로 밀고 들어 가겠냐마는(이거도 문제긴 하다) 더 큰 문제는 역시나 흑해다.

빨간 동그라미가 크림반도이다.
러시아 제국 시절 영국과 박터지게 싸웠던 크림반도.
만약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게 되면, 나토 함대가 우크라이나에 기항하게 된다. 그럼,
“흑해에서 러시아의 세력이 위축된다.”
작년 11월, 그러니까 우크라이나 문제가 한참 고조되던 그때(러시아군이 본격적으로 우크라이나 국경지대로 이동하던 시절) 러시아가 흑해에서 해, 공군 합동 훈련을 했다.
이때 미국도 맞불을 놓았다. 이게 참 인상적인데, 11월 12일 미 해군 6함대 기함을 필두로 해서, 터키, 루마니아, 우크라이나의 군함이 모여서 훈련을 한 거다. 이게 11월에만 한 게 아니다. 이미 7월에도 나토와 우크라이나 해군의 합동 훈련이 2주간 있었다. 이게 단순한 훈련이 아닌 게,
“푸틴! 만약에 우크라이나에 찝쩍되면 나토가 너흴 용서치 않을 거야!”
라는 신호다. 까놓고 말해서 영국을 포함한 나토군이 흑해로 진입했을 때 러시아가 군함 위로 전투기를 밀어 넣거나 경고 사격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이 당시 미국을 포함한 나토 쪽 입장은,
“응, 이건 공해(어느 나라의 주권에도 속하지 않는 바다)상이야. 그러니 우리 여기 지나갈 권리 있어.”
라는 거고, 러시아 쪽 입장은 그 반대였다.
“크림반도는 러시아 땅이다스키. 그러니까 여기는 러시아 영해스키. 너네 지금 러시아 영해를 침범한 거야. 다음에 넘어오면 실탄 먹여주겠다스키.”
이에 대해 영국이나 미국 입장은,
“훗, 불쉣! 뻑킹 맨~ 이거 우크라이나 영해야.”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거다. 러시아 입장에선 속으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면, 흑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러시아도 장담할 수 없게 된 거다.
러시아는 지금 코너에 몰린 상태이고, 여기서 물러나면 다음번엔 모스크바에 직접 폭탄을 떨어뜨려도 참아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러시아는 지금 몰려 있다.
지난 1월 22일 블룸버그 통신은 이런 뉴스를 보도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베이징 올림픽 동안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자제해 달라고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요구했다.”
당연하게도 중국과 러시아는 이를 부인했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즉각 들고 일어났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 자오리젠.
"중·러 관계에 대한 모독과 도발일 뿐만 아니라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대한 의도적인 방해와 파괴행위이다. (중략) 우리는 세계에 간략하고 안전하며 멋진 올림픽을 보여줄 자신이 있고, 푸틴 대통령을 포함한 각국 지도자들이 원만하고 순조롭게 베이징을 방문하게 할 자신도 있다"
- 2022년 1월 24일 중국 외교부 대변인
자오리젠(趙立堅)의 발언 중 발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브리핑’이다. 실제로 이번 2022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 푸틴은 직접 참석한다. 까놓고 말해서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이라는 공통의 적을 상대하고 있고, 저마다 우크라이나, 대만이라는 ‘아픈 손가락’이 하나씩 있다. 실제로 러시아와 중국은 합동 군사훈련을 하며 미국에 대한 전의(戰意)를 불태우고 있다.
푸틴이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다는 ‘정치 일정’ 때문에 우크라이나 침공을 하지 않을 거란 ‘순진한’ 생각은 하지 말자.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도 푸틴은 참석했다. 개막식 행사가 끝나자 바로 러시아로 돌아갔고, 조지아를 침공했다(이때는 메드베데프가 러시아 대통령이었지만, 그가 ‘바지’란 사실은 세상 모두가 알고 있다). 2014년 김연아가 금메달을 빼앗긴 소치 올림픽 때도 푸틴은 직접 스키를 타며,
“우리 소치 올림픽 준비 많이 했스키. 그러니까 즐기고들 가. 아! 그리고 빅토르 안, 우린 너 믿고 있다스키!”

이러고 있었는데, 소치 올림픽 폐막 직후(빅토르 안에게 집 선물 하면서 한참 분위기 달군 다음), 크림 반도를 치고 들어갔다.
“올림픽은 올림픽이고, 전쟁은 전쟁이다스키.”
우리의 푸틴은 남다른 배포를 자랑하고 있었다. 평화의 제전 따위로 푸틴의 발걸음을 막을 순 없었다. 물론, 작년 12월 UN에서 채택한 '베이징동계올림픽 휴전 결의안'이 있긴 있다. 베이징동계올림픽과 베이징 동계패럴림픽 기간 개막 7일 전부터 폐막 7일 뒤까지 모든 세계의 분쟁을 일시 중단하자는 결의안이다. 하지만 결의안에 큰 희망을 걸지 않는 게 맞는 거 같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에도 휴전 결의는 있었지만, 올림픽 기간에 푸틴은 조지아를 조졌다. 결의안은 어디까지나 결의안일 뿐이다.
2008년 있었던 이 조지아 침공은 크림반도 합병에 비해 우리에게 훨씬 덜 알려져 있지만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러시아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사건이다. 조지아 전쟁을 보면, 러시아군의 달라진(?!) 모습과(체첸에서 삽질하던 모습과는 좀 다르다) 러시아가 생각하는 지역 패권에 대한 모습이 어느 정도 그려진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전초전이라고 해야 할까?
조지아 전쟁은 어쩌면 푸틴에게 잘못된 ‘시그널’을 줬는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잘못된 시그널을 줬다.
우크라이나 전엔 조지아가 있었다
이야기는 1991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소련이 무너지고, 조지아는 러시아로부터 독립했다. 그런데 독립 후에 조지아에는 골치 아픈 문제가 있었다. 조지아에 살고 있는 오세트인(러시아, 조지아, 터키의 소수민족)들이 문제였다.

위 그림의 북오세티야는 러시아 연방에 속해있다.
남오세티야는 1991년 11월 조지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지만,
러시아와 니카라과, 베네수엘라, 나우루, 시리아 등
소수만이 독립국으로 인정하고 있다.
출처-<한겨레>
이들은 조지아 영토 안에 위치한 남오세티야에서 분리독립을 선언했다. 이것 때문에 한참 동안 치고받고 싸웠다. 이때 러시아가 개입하게 된다. 당연히 러시아는 남오세티야 편이었다.
이후, 조지아는
“우리도 경제개발하고, 잘 먹고 잘 살아보자!”
라고 외치게 된다. 조지아는 태생부터 러시아와 불가분의 관계였던 나라답게 러시아에게 수출입을 의존하는 비율이 높았고, 지금도 높다(지금도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가 러시아이고,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가 러시아다).
그런데 이 나라가 기업도 민영화하고, 외자 유치도 하면서 급속도로 외국, 그것도 서방세계와 친해지게 됐다.
“그래, 우리도 나토 가입하고 그러자. 러시아 입김에서 벗어나 보는 거야!”
이때 미국 (아들)부시 대통령이 뽐뿌질도 해주고, 나토도 같이 힘 보태줄 거 같은 ‘느낌적인 느낌’을 막 줬다.
미국은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소련이 붕괴된 이후 지속적으로 동진정책을 폈다. 즉, 옛 소련에서 분리독립한 국가, 혹은 동구권 국가들을 포섭해 야금야금 러시아를 압박해 들어갔다. 이와 반대로 러시아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방어에 나섰다. 바로 소수 민족에 대한 지원이었다.
몰도바의 트란스니스트리아(Transnistria), 조지아의 압하지야 자치 공화국과 남오세티야 공화국, 아제르바이잔의 나고르노 카라바흐(Nagorno Karabakh) 공화국이 주민투표를 통해 독립을 선언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의 크림 자치 공화국도 껴 있다(크림 자치공화국은 주민투표를 통해 다시 러시아로 편입됐다).

몰도바의 트란스니스트리아.
조지아의 압하지야 자치 공화국과
남세오티야 공화국은
바로 이전 지도 그림에 표시되어 있다.
출처-<한국경제>

아제르바이잔의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
출처-<위키백과>
소수민족을 지원해 독립전쟁을 일으켜 러시아의 영향권 아래 두거나, 아예 주민투표를 통해 러시아와 합병하는 방식으로 러시아는 자신들의 영향력을 야금야금 넓혀 갔다.
조지아 전쟁은 러시아와 서방세계(미국)의 관계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마, 내가 부시랑 밥도 묵고, 응? 사우나도 가고! 다했어 임마!”
2008년 당시 조지아는 미국을 믿었고, 나토를 믿었다.
“우리는 너희랑 혈맹... 은 아니지만, 그래, ‘정신적인 혈맹’이라고 해두자. 맨~”
“아, 우리를 도와준다는 거죠?”
“슈얼~ 오브 코~올스, 우리랑 밥도 묵고, 사우나도 가고, 그럼 친한 거 아냐, 맨?”
“그렇죠?”
뒷배로 미국과 나토가 있다고 믿었던 조지아는 ‘전쟁’을 결심한다.
(참고로 조지아는 지금까지도 나토에 가입하지 못했다. 잘해봐야 ‘파트너국’ 지위로 나토와 연합훈련을 하는 정도이다. 2021년까지도 이러고 있는 거다. 조지아도 나토에 가입하고 싶어서 가입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역시나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조지아! 다 조져서 남오세티아 땅을 다시 찾아온다!”
조지아 입장에서 남오세티아는 ‘지방 반란’이었다. 이들을 제압해 옛 땅을 수복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남오세티아 뒤에는 러시아가 있었지만, 조지아는 자기 등 뒤에 미국과 나토가 있다고 굳게 믿었다.
조지아가 미국을 굳게 믿은 이유
조지아가 그렇게 ‘착각’할 만한 게 당시 조지아는 미국에게 간, 쓸개, 다 내준 상황이었다. 이 정도 했으면 미국이 자기들을 무조건 도와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야, 터키가 어떻게 나토에 가입한 줄 알아?”
“어떻게 했는데?”
“걔들도 러시아가 무서워서 나토 가입이 필요했거든. 그래서 걔들 한국전쟁 가서 피똥 쌌잖아. 국제사회에서 공짜가 어딨어?”
“그럼 우리도 한국에 파병해야 하는 거야?”
“이 생퀴, 세상 돌아가는 거 졸라 모르네. 얌마, 한국에 파병을 왜 해? 한국전쟁 끝난 지가 50년이 넘었는데. 지금은 미국이 이라크에서 전쟁하니까 이라크에 파병해야지.”
“아!!”
그랬다. 테러와의 전쟁 이후 이라크에 발목 잡혀 있던 부시를 보며, 조지아는 일생일대의 ‘딜’을 걸었다.
“부시 대통령과 미국을 위해 조지아가 파병하겠습니다!”
“오우~ 브로! 이런 고마울 데가 있나.”

(조)지아야~ 쌩유 베리 감사!
이랬던 거다. 이 패턴을 잘 기억해야 하는 게, 한국군도 미국이 일으킨 ‘월남전’에 파병했던 걸 생각해 봐야 한다(이라크 자이툰 부대도 있지만). 월남전 파병할 때 미국이 한국군 무장을 싹 맞춰준 거 생각해 봐야 한다. 조지아도 마찬가지다. 구 소련 장비로 무장한 조지아군이 ‘미군’으로 변신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조지아군은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 영국에 이어 파병 규모로만 3번째 나라였을 정도로 많은 병력을 이라크에 보냈다(그 수가 2천여 명에 달했다). 조지아가 이렇게 나오니 부시 대통령이 얼마나 기뻤을까?
“(조)지아야, 앞으로 너 정말 내 동생 해라!”
“정말요?”
“슈얼~ 오브 코~올스! 이 형이 뒤에 있으니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조지아는 정말 미국과 나토를 믿었다. 이 믿음을 갖고 위풍당당하게 남오세티야를 친 거다. 그리고... X신이 됐다.
공사 당한 조지아, 벼르고 있던 러시아
러시아는 조지아가 남오세티야를 침공하기 전에 미리미리 준비를 다 해놨다. 전쟁이 나기 전 이미 러시아 해커들이 조지아 정부 사이트를 마비시켜 놨고, 남오세티야 수도인 트힌발리의 주민들에 대한 소개(疏開)가 이루어졌다. 게다가 전쟁 전에 이미 러시아에서 코사크 족의 민병대와 러시아 정규군이 남오세티야에 넘어온 정황이 포착됐다.
“조지아가 공사 당했다.”
라고 보는 게 맞다. 푸틴은 조지아의 침공 계획을 알고 있었고, 이에 대한 대비를 다 해놓은 상태였다. 이 상황에서 조지아가 남오세티야를 침공한 거다.
(이건 2009년 9월 30일 EU가 작성한 조지아 개전 상황에 대한 보고서에 명시돼 있다. 조지아의 사카쉬빌리 대통령이 2008년 8월 7일 밤 11시 35분에 남오세티야에 대한 공격 명령을 내렸고, 이 명령에 따라 조지아군이 움직였다는 거다. 빼도 박도 못 하는 조지아의 침공이었다)
전쟁이 나자, UN평화 유지군으로 들어온 러시아군 몇 명이 죽게 된다. 그러자마자 러시아가 들고 일어난다.
“이런 시바스키! 러시아인을 보호하기 위해 러시아는 이 전쟁에 참여한다스키!”
(흥미로운 점은 이때 총리였던 푸틴은 베이징 올림픽 개회식장에서 부시에게 대놓고 전쟁이 시작된 걸 말했다는 거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푸틴과 부시.
“헤이~ 부시, 조지아라고 알지스키?”
“응? 알지. 나랑 꽤 친한 동생인데. 근데 와이?”
“걔가 먼저 선빵 쳐서 내가 손 좀 봐주려 한다스키.”
“왓더뻑?? 그게 뭔 소리야?”
“애가 좀 싸가지가 없더라고. 내 뒤통수를 쳤다스키. 우리 러시아 애들 몇 명이 죽었거든? 너랑 친하다며? 너랑 친하면 우리 애들 막 죽여도 되냐스키?”
“......”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때 부시를 제대로 엿 먹인 거다)
그다음은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러시아는 조지아 땅 이곳저곳에 공습을 시작했고, 한 줌도 안되는 조지아 해군을 개박살 냈다. 조지아 대통령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호기롭게 계엄령도 선포하고, 예비군 동원령도 때렸지만, 러시아랑 상대가 되겠는가?
“아니, 씨바! 러시아 이러면 안 되지... 우리 일단 진정하고! 휴... 휴전 하자, 응?”
러시아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조까스키, 이 개객끼야.”
당시 푸틴은 작정하고 조지아를 개박살 내겠다고 마음먹었는지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 앞 50킬로미터까지 탱크를 밀고 들어갔다.



결국 전쟁 발발 6일 만인 8월 12일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의 중재로 진격이 멈췄다. 그리고 다음 날 조지아와 러시아는 중재안에 사인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당시 조지아가 믿었던 미국과 나토의 ‘행보’였다. 미국은 조지와와 러시아가 중재한 다음날 은근슬쩍,
“뻑킹, 맨! 나 조지아 사태에 개입할 수도 있어!”
라고 말로만 지랄했고, 이때 러시아도 쿨하게 한 마디 던졌다.
“그래? 이 시바스키야. 그럼 한 번 붙어 보까?”
였다. 그 뒤로 유야무야였다. 당시 미국이 어떤 입장이었는지는 이라크에 있었던 조지아군을 보면 알 수 있다. 당장 본국이 개 털리는 걸 본 상황에서 이라크에 있던 조지아군이 당연히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게 맞다. 이때 이들을 수송해줘야 하는 게 미군이었는데,
“아니 씨바. 조지아 병력 수송하다가, 미군 수송기 격추되면, 이건 빼도 박도 못하고 러시아랑 전쟁해야 하잖아. 아... 쉣더뻐킹. 그랬다간 X 되는데”
미국이 몸을 사린 거다. 실제로 초기에 선발대 몇몇을 보낼 때를 제외하고는 몸을 사렸다. 조지아는 미국과 서방세계를 믿었다가 제대로 털린 거다.
한국에서는 푸틴이 크림 반도를 먹은 것만 알려져 있고, 이 조지아 전쟁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러시아가 미국과 나토에 ‘엿’을 먹인 건 조지아 전쟁 때부터였다. 러시아는 자신의 영역을 야금야금 파고들고 있는 미국과 나토에 칼을 뽑아 든 거였다.
러시아는 역사적·문화적·지정학적·경제적으로 우크라이나를 포기할 수 없다. 만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포기한다? 이걸 한국으로 치면
"한국인이 백두산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얼추 이 정도 느낌일 것 같다. 러시아의 뿌리는 키예프 공국이다. 키예프 공국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 그 뿌리 하나가 갈라져 나가 만든 게 바로 모스크바 공국이다. 즉,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뿌리다. 러시아로서는 당연히,
"우리 고향이고, 우리 뿌리인데... 이게 서방으로 넘어간다고?"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거다. 갑자기 경상도나 충청도 한쪽이 떨어져 나가서 독립하게 됐는데, 이 떨어져 나간 애들이 일본과 군사동맹을 맺겠다고 하면, 우리 국민들은 이 떨어져 나간 나라를 어떻게 봐야 할까? 이렇게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출처 - <KBS뉴스>
이제는 좀 더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키워드별로 분석해서 알려주겠다. 최종 정리편 정도로 생각해 주기 바란다.
1. 가스 때문에 가스미 아픈 나라들
냉전 시기부터 서유럽은 소련의 가스를 공급받았다. 지금 러시아도 그 가스로 톡톡히 돈을 벌어 먹고살고 있다. 러시아 GDP의 20% 이상을 지하자원 수출이 차지한다. 문제는 이 가스에 대한 유럽의 의존도이다. 서유럽의 경우는 대략 전체 가스 소비량의 30~40% 이상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가깝고, 싸고, 물량 확실하고! 이런 데가 또 어디 있어?"
이게 서유럽의 입장이다. 자, 문제는 냉전 시절부터 파이프라인이 우크라이나를 거쳐서 서유럽으로 넘어갔다는 거다. 이 부분에 대해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독립시키기 전부터 상당히 고민해야 했다.
"저것들이 수틀려서 가스관을 막아버리면?"
"아니, 저것들이 가스를 빼먹을 수도 있잖아?"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 예전에 알렉세이 밀러 가스프롬(러시아어: Газпром, Gazprom. 러시아 에너지 기업) 사장이 푸틴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가 우리 가스를 몰래 훔쳐 갔어요!"
"진짜? 이 색희들... 당장 가스 끊어!"
라는 사건이 있었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상남자 푸틴이 우크라이나의 성격을 고치기 위해 트집 잡은 거로 생각했는데, 우크라이나가 가스를 좀 훔치긴 했다(우크라이나가 좀... 가난하다. 그래서 그런 거다). 푸틴은 러시아의 ‘경제 목줄’을 우크라이나가 쥐고 있는 격이니 못내 이 가스관이 불안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정치 상황’이 요동칠 때마다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가스관 건설을 고민하게 됐다. 2013년부터 2014까지 우크라이나가 유로마이단 사태(Євромайдан, EuroMaidan. 우크라이나에서 유럽 연합 통합을 지지하는 대중들의 요구로 시작된 대규모 시위이자 시민 혁명)로 시끄러워지자, 러시아가 갈고 있던 칼을 뽑아 든다.
"우크라이나 색희들 불안한데? 이참에 노선 갈아타자!"
이렇게 해서 우크라이나를 우회하는 노선인 사우스 스트림(South Stream) 가스관을 만들려고 시도한다. 그런데 푸틴 형이 날름 크림반도를 먹어버리자 EU가 들고 일어난다.
"야, 너희들 그러면 안 되지! 우리 너희 제재할 거야!"
EU가 러시아에 경제 재재를 가하자 사우스 스트림이 지나는 경로에 있던 불가리아는 가스관 건설에 난색을 표한다. 이렇게 해서 사우스 스트림 노선이 막히자 나온 게 바로 터키 스트림(Turk Stream)이다. 흑해를 찍고 터키·불가리아·그리스·북마케도니아·세르비아·헝가리·슬로바키아 등등에 가스를 보내는 거다.

사우스 스트림(붉은 선)과 터키 스트림(파란 선)
2. 가스관들 중에 인싸(?) 노르트 스트림
이런 가스관들 중에서 요즘 가장 핫한 게 노르트 스트림(Nord stream)이다. 이건 가스관이 러시아에서 발트해 찍고 독일로 다이렉트로 들어가는 노선이다. 첫 번째 가스관인 노르트 스트림 1은 2011년 개통됐다. 두 번째인 노르트 스트림 2가 2021년에 개통됐고 지금 EU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실상 이 노르트 스트림 사업은 당사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들이 싫어하는 사업이었다. 당장, 미국의 경우만 하더라도 그렇다.
"야! 계속 그렇게 가스관 빵빵 뚫어놓으면 너네 계속 러시아에 끌려간다니까! 언제까지 잠가라 밸브에 놀아날래?"
"그럼 대안 있어?"
"그럼! 우리 셰일가스 있잖아! 이거 사가면..."
"그거 운송비는?"
"아니 그게... 러시아와 싸우려면..."
"러시아는 파이프 꽂아 놓으면 그냥 다이렉트로 넘어오는데?"

출처 - <서울경제>
동유럽 쪽에서도 불만이 있었다.
"아니, 중간에서 운송비 떼먹고 좋았는데... 이게 뭐야! 너희들끼리 다 해 먹으면 우린 어쩌라고?"
통과 수수료가 만만찮다. 당장 우크라이나만 하더라도 유럽 행 가스관을 폐쇄하면 연간 20억 달러의 통과 수수료를 잃게 된다. 이런 식으로 가스관 통과 수수료로 먹고사는 동유럽 국가들이 좀 있다.
유럽이 러시아의 가스에 의지하는 상황에서 러시아는 겨울철만 되면 이 가스를 가지고 ‘장난질’을 친다. 유럽은 전전긍긍하게 된다. 물론 유럽도 수입노선을 다변화하겠다고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러시아 입장에서도 계속해서 가스 밸브를 가지고 협상을 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우크라이나 경유 가스관들의 ‘안전성’에 대해 고민을 안 할 수가 없는 거다(그렇지 않으면, 우회 루트를 왜 만들겠는가?) 정리하자면 서로 물고 물린 상황이란 거다.
아. 부언. 따지고 들어가면 EU가 약자이긴 하다. 천연가스와 원유의 30~40%를 러시아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가스를 잠가버리면? 요소수 대란은 우습다. 지옥이 열리는 거다.
3. NATO와 러시아 사이의 완충지대, 우크라이나의 지정학
우크라이나가 친서방 정책을 계속 유지하려면 안전보장이 필요하고, 그 안전보장이 대안이 바로 나토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크라이나가 아무리 나토(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NATO. 북대서양 조약 기구)에 들어가고 싶어 해도 나토가 이걸 원하지 않는다. 폴란드나 헝가리가 나토에 들어가는 것과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들어가는 건 차원이 다르다.
"아니, 다 같은 동유럽인데 뭐가 달라?"
다르다. 확실히 다르다. 폴란드와 헝가리는 최소한 ‘국경’이 닿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국경이 닿았다. 우크라이나에서 모스크바 찍으면 460㎞ 정도다. 국경이 닿아있다는 건 언제 어디서 어떤 문제가 터질지 모른다는 거다.

영국·프랑스·독일을 비롯한 NATO 국가들과 우크라이나, 러시아
나토의 핵심 가치인 워싱턴 조약(북대서양 조약) 5조를 보자.
『유럽과 북아메리카에 있는 하나 또는 복수의 회원국에 대한 군사적 공격은 모든 회원국을 상대로 한 공격으로 간주 한다.(an armed attack against one or more of them in Europe or North America shall be considered an attack against them all)』
소위 말하는 올 포원, 원 포 올(All for one, One for all) 조항이다. 나토의 핵심 가치이자,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이 조항이 우크라이나에도 적용된다고 치자. 어떻게 될까? 당장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자신들의 고향이자, 민족의 토대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이 땅에 나토군이 들어온다면? 그리고 만약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계속해서 충돌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당장 돈바스 지역에서는 유혈 충돌이 계속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러시아 민병대라 쓰고, 러시아 정규군이 옷만 갈아입고 나갔다고 읽어야 하는)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들어간다면, 나토와 러시아가 정면충돌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거다.
"완충지대는 러시아뿐만 아니라 나토도 필요하다."
4. EU가 우크라이나에게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유
우크라이나는 ‘유럽’이 되고 싶어 한다.
"우리 정체성을 왜 너희들이 규정해? 우린 러시아 꼬붕 아냐! 우리 유럽 할 거야!"
라고 외치는 거다. 그런 우크라이나를 러시아는 잡아채고 있는 거다. 이 상황에서 유럽이 러시아와 ‘한 판’ 붙으면 어떻게 해결이 나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건 불가능하다.
당장 크림반도를 러시아가 먹었을 때 EU는 경제 제재를 때렸으나 거기까지다. 우크라이나를 대하는 EU의 겉과 속은 다르다. 겉은 이렇다.
"우... 우크라이나가 EU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마음은 잘 알고 있고, 그래, 우리가 뭐 도와줄 수 있으면 돕지 뭐."
이미 정치 분야 협력 협정도 맺었고, FTA도 맺었고, 우크라이나가 경제위기에 빠졌을 때 100억 유로 이상을 지원해 준 것도 EU다. 러시아에 두들겨 맞고, 경제 위기 겪는 우크라이나 보며 말한다.
"야, 너희들 먹고살기 힘들지? 앞으로 관세 없다."
"어 정말? EU... 너희 진짜 우릴 좋아하는구나!"
"아니 뭐... 사는 게 궁해 보여서."
상황이 이러니 우크라이나는 EU의 일원으로 합류할 수 있을 거란 꿈에 부푼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뒤에는 러시아가 있었다. 러시아가 가스관을 붙잡고 유럽을 협박하는 상황이다 보니 EU도 우크라이나를 보는 시선이 좀... 그렇다.
"EU야! 나도 EU에 가입하고 싶어! 여기 신청서 가져왔어."
"그래, 거기 놓고 가."
"아니 안 읽어 보는 거야?"
"내가 지금 바빠서... 나중에 시간 나면..."
"아니, 지금 돈바스에서 죽은 병사만 1만 3천 명이 넘어가는데..."
"아니, 내가 언제 안 본데? 지금 좀 바빠서..."


유럽 연합(EU) 현황
EU는 우크라이나의 회원국 가입 일정을 명확히 하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회원국으로 받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EU도 알고 있는 거다. 우크라이나는 계속해서 EU에 들어가겠다고 난리를 치고 있으나 EU는 가타부타 말이 없다. 이러다 보니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우리는 같은 길을 걷고 있지만 종착점이 어디인가? 그것이 있기나 한가? 모든 우크라이나인은 그 신호를 보고 싶어 한다."
라고 말할 지경에 이른다. 그도 그럴 것이 친서방 정책을 시행하자마자 크림반도는 러시아가 빼앗아 갔고, 내전이라고 포장된 돈바스 전쟁에서는 러시아군이 민병대인 척 옷 갈아입고 탱크 몰고 쳐들어오는 상황. 시시각각으로 우크라이나 영토는 줄어드는데, EU는 러시아 눈치를 보고, 뜨뜻미지근하게 가입되는 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닌 상황이 계속 이어지는 거다.
EU에 들어간 상황도 아닌데, NATO 가입은 또 언제 할 수 있을까? 아니, 그 사이에 우크라이나가 과연 무사할 수 있을까?
광팔이 바이든과 평화애호가 푸틴?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광’을 팔았다.
"내가 우리 애들 풀어서 알아봤는데, 2월 16일! 16일 날 러시아 놈들이 쳐들어올 거야"
이 뉴스를 접하자마자 바로 든 생각,
"곧 죽어도 2월 16일 날에 전쟁 나지 않겠구나."
미국 대통령이 꼽은 날짜에 러시아가 쳐들어간다면, 그게 무슨 의미일까? 미국의 리더십만 올라간다. 당연히 이날은 전쟁이 안 일어난다. 일각에서는 베이징 올림픽 폐막일인 2월 20일 전후로 전쟁이 일어날 거란 예측을 하는데, 그것도 아니다. 푸틴이 전쟁 일으키려고 했다면 올림픽 따위는 개의치 않는다. 분명한 사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가능성은 작다는 거다. 물론 분위기는 낼 테지만 전쟁을 일으키기에는 무리가 많이 따르기 때문이다. 독일의 슐츠 총리가 왔을 때, 푸틴이 기자회견장에서 했던 말을 곱씹어보자.
"러시아가 전쟁을 원하냐고요? 물론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협상 과정을 시작하자고 제안한 겁니다."
당장 사람들 머릿속에서는,
"푸틴 저 백정 노무시키가 뺑끼 치는 거다! 저거 저래놓고 뒤통수치려고 하는 거야"
"곰도 맨손으로 때려잡을 놈(?)이 좋은 주먹 내버려 두고 말로 해결한다고?"
푸틴이 대놓고 전쟁을 일으킨 경우는 거의 없다. 지금까지 일어난 사건들을 보면 ‘문제’가 터지고, 러시아를 공격하거나 러시아 사람을 죽이거나 했을 때 움직이는 게 푸틴이다. 의외로 평화주의자(?)다. 즉, 푸틴이 말하는 "우리는 전쟁을 원치 않는다."란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명분도 찾지 않고 지쪼대로 막 나가는 류의 지도자까지는 아니라는, 즉, 겉으로 그렇다는 거지 진짜로 그렇다는 건 아니다).

한국으로 치면 이런 느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그의 발언은 독일의 슐츠 총리가 오기 한참 전인 2월 1일, 헝가리 총리와 만난 다음의 발언이다.
"미국이 전쟁에 우릴 끌어들이려 한다."
이 발언 전후에 있었던 푸틴의 발언들을 곱씹어보자.
"러시아의 근본적인 우려가 무시당하고 있다는 게 이제 분명해졌다."
"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국이 되고 군사작전을 개시하는 걸 상상해 보라."
여기서 말하는 러시아의 ‘근본적인 우려’는 안보에 대한 부담감이다. 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국이 된 다음의 ‘군사작전’은 바로 크림반도를 염두에 둔 거다.
"우크라이나 이놈들이 나토에 가입한 다음에는... 분명 크림반도를 탈환하겠다고 나설 거야. 안 그래도 골치 아픈데 나토까지 엮여서 크림반도에 들어오면... 아 씨바, 막아야 해!"
푸틴이 가장 걱정하는 대목이 이런 거다. 분명한 건 러시아가 원하는 건 바로 ‘안보 우려 해소’란 점이다. 이미 지난 12월에 미국 쪽에 보낸 러시아의 요구 조건을 보면 알 수 있다.
"아니, 씨바... 우리가 동네 양아치 깡패도 아니고... 나 러시아야. 우리 참을 만큼 참았잖아? 나토의 경계선을 1997년 5월로 후퇴 시켜!"
이게 러시아의 요구사항이다. 러시아는 일관되게 이 요구를 미국 쪽에 보냈다. 그러나 미국의 답변은... 음 이렇게 말하는 게 맞을지 모르지만...
"(...동문서답...)"
러시아의 요구가 뭔지에 대해서는 공개적, 비공개적으로 무수히 미국에 전달했을 거다. 그럼에도 바이든은 ‘엉뚱한’ 말을 계속하고 있다.
"러시아가 전쟁 일으키면... 나는 존나 쎈 경제 제재랑 존나 존나 쎈 무역 보복할 거야! 두고 봐"
아마 독자분들도 위와같은 뉴스만 접했을 거다. 한국에서 나오는 기사만 보면 푸틴만한 꼴통도 없을 게다. 푸틴이 말하는 ‘협상’이나 ‘안보 보장’은 언급하지 않는다. 푸틴이 제스처를 취할 때마다 바이든은 강력한 제재와 수출통제를 준비하고 있다며 ‘압박수단’을 언론에 대고 말한다. 푸틴 처지에서는 황당하다.
"아니, 씨바 대화하자고!"
미국은 여기에 모르쇠로 일관한다.
이때 러시아 외무장관인 라브로프가 미국과 물밑접촉을 했다. "내년 1월에 우리 협상 시작할 거야."라고 말을 한다. 이 발언 직후에도 푸틴은 명확하게 자기 의사를 밝혔다.
"최소한 분명하고 이해할 수 있으며 명확히 규정된 법적 보장을 원한다."
러시아가 느끼는 ‘안보위협’인 나토의 동진을 멈추고, 러시아에 확실한 보장을 ‘문서’로 해달라는 사인을 보낸 거다. 푸틴이 원하는 건 분명했고, 이걸 미국 측에 확실히 전달했다. 사실 미국 입장에서 이런 ‘불안’이 계속 이어지면, 남는 장사다. 아니, 노났다고 해야 할까.

광파는 자와 평화주의자
"러시아 애들이 맨날 이러면 참 좋을 텐데..."
이럴 만도 한 게, 당장 러시아가 전쟁 분위기를 일으키자 미국의 발언권과 나토 내에서의 입지가 올라갔다.
"아니, 씨바... 그래도 러시아를 상대하려면... 미우나 고우나 미국이지."
군사적으로, 그리고 정보력에서도 미국에 의지하게 되는 거다(당장 바이든이 ‘2월 16일 날 전쟁 난다니까!’를 외치는 걸 보라. 이럴수록 나토 국가들이 미국에 정보를 의지할 수밖에 없다).
독박 우크라이나
미국으로서는 경제적으로도 남는 장사다.
"야야, 너희들 계속 러시아 가스 살 거야? 언제까지 러시아 장단에 놀아날래?"
"...아니 그럼 어쩌라고?"
"우리 LNG 사!"
"...아니, 그게 바다 건너오려면 운송비도 만만찮고..."
"그럼 러시아 애들이 협박하는 거 계속 당할래?"
"......"
더하여 전쟁 분위기가 계속 이어지자 미국산 무기를 사려고 힐끔거리기 시작했고, 나토에 가입한 국가들이 너나 할 거 없이,
"씨바 분위기 묘하게 흘러가는데? 이렇게 맥 놓고 미국만 쳐다보다간 우리도 우크라이나 꼴 나는 거 아냐?"
"그러게, 그동안 군사비 줄여서 복지예산으로 돌렸는데... 군사비 올려야겠는데?"
"우리가 미국한테 좀 그랬지? 오바마랑 트럼프가 괜히 우리 핀잔 먹인 게 아니라니까."
이렇게 분위기가 변해간다. 미국으로선 다행인 상황이다.
"그동안 국방비 투자 안 하고, 우리 믿고 꿀 빨더니만... 어휴 속이 다 시원하네"
나토 가입국들이 하나둘 정신을 차리니(?!) 미국으로서는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야, 러시아가 한 번 제대로 전쟁 일으키면... 안 되겠지만, 이런 분위기 나쁘지 않아. 이대로 며칠 더 가도 되겠는데?"
세상에서 가장 재미난 게 불구경과 전쟁 구경이 아닌가? 물론, 내 집에 불이 나고, 내 나라가 전쟁에 휩싸이지 않는다는 전제조건이 붙겠지만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바이든은 엉뚱한 소리를 계속하고 있었던 거다(전략적으로 헛소리를 하는 건지, 아무튼 했던 이야기를 계속 반복한다).
이때 러시아 외무장관인 라브로프가 한 마디 던진다.
"훈련에 참여한 남부 군관구, 서부 군관구 병력을 복귀시켰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왼쪽)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오른쪽)
1월 21일 스웨스 제네바에서 회담전
출처 - <경향신문>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한 거다. 그러나 바이든의 입장은 분명했다.
"씨바, 그걸 어떻게 믿어? 응? 너네 아직 전쟁하려고 폼 잡고 있잖아!"
정보라인 쪽에서는, 아래 내용 같은 정보들이 연달아 흘러나온다.
"러시아 색희들이 벨라루스 국경에 야전병원 짓고 있다. 이색희들 화전양면전술이야! 전쟁 안 할 거처럼 폼은 다 잡고 있지만, 이것들 병원 짓고 있어! 전쟁 나면 부상병 치료할 야전병원 짓는다는 게 무슨 의미겠어?"
이 뉴스들을 보면서 든 첫 번째 생각,
"지금 물밑에서 한참 협상 중이구나..."
전쟁까지는 안 갈 거 같은 공기에서 서로 패를 보여주고, 서로 패를 속여 가면서 뭔가 움직이고 있다. 그렇기에 대외적으로 ‘제스처’를 보여주고 있는 거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우크라이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2022년 2월, 우크라이나군 특수부대가 연
기본 전투 훈련에 참가한 우크라이나 여성
출처-<경향신문>
1. 우크라이나의 지역감정과 대통력 역할 출신 대통령
세계 3대 곡창지대란 말이 있다. 북미 프레리, 아르헨티나 팜파스와 함께 거론되는 곳으로 우크라이나 흑토(초르노젬, Чорнозем)지대다. 이러면 죽돌 편집장이
“흑토가 뭐임? 형. 잘난척 하지 말고 설명을 해줘!”
라고 말할 것 같은데, 간단히 말해 인산과 암모니아가 풍부한, 부식토로 만들어진 땅을 의미한다.

딱 봐도 농사 잘 될 것 같지 않음?
“여긴 비료 안 갖다 부어도 알아서 곡식이 자라! 씨만 뿌리면 돼!”
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 흑토의 28%가 몰려 있는 곳이 우크라이나다. 이러다 보니 우크라이나는 전통적으로 ‘농업 강국’으로 분류됐다. 오죽하면,
“유럽의 빵바구니.”
라는 별명이 붙었을까? 지금도 우크라이나 전체 GDP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2%가 넘는다. 전체 수출에서 농업 비중은 거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손꼽히는 농산물 수출 국가이기도 하다.
(만약 전쟁 나면...해바라기씨, 옥수수, 밀, 보리 가격이 출렁일 거다. 방금 말한 작목은 우크라이나가 전 세계에 수출하는 대표적인 농산품들이다)
한 마디로 말해 우크라이나는 농사만 지어도 먹고 살만한 나라가 될 만한 ‘가능성’이 있는 나라다. 문제는 지금 우크라이나는 유럽 최빈국 중 하나가 됐다는 거다. 왜? 이유는 복잡 다단한데, 간단히 말해 우크라이나 안에 두 개의 나라가 있어서 그렇다.
“나는 우크라이나 사람이다!”
“아냐, 나는 러시아 사람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사태의 원인은 바로 여기서 부터다. 이걸 또 거슬러 올라가면, 폴란드-리투아니아 전쟁이 나오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쪽 땅을 베어 먹고 하는, 복잡다단한 역사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울 독자들 그런 거 하나하나 다 짚고 넘어갈려고 이 기사 읽고 있는 거 아닌 거 안다. 거두절미해서 말하자면,

조오오오기 파란색으로 중간에 흐르는 거!
“드네프르 강 서쪽은 친 유럽, 드네프르 강 동쪽은 친 러시아.”
이렇게 보면 된다. 지역주의라고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간단히 말해서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의 주민들은,
“씨바, 우리 러시아 사람 아냐?”
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까놓고 말해서 러시아어를 쓰고 있는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고(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 언어는 60% 이상이 비슷하다. 언어적 특질만 바도...), 문화 역사적으로도 러시아와 가깝다. 그런데, 키예프 쪽을 보면
“우린 유럽이랑 친하게 지낼 거야!”
이러고 있는 거다. 이걸 뭐라고 할 수 없는 게 이런 감정의 근저엔 ‘먹고사니즘’도 포함 돼 있기 때문이다. 키예프를 포함한 드네프르 강 서쪽 지역의 주요 산업은 농업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수출품을 유럽 쪽으로 팔아야 하는거다.
“유럽이랑 친하게 지내야 우리가 먹고 살 수 있어!”
가 되는 거다. 반대로 드네프르 강 동쪽 지역은 공업지대다. 이 공업지대는 소련 시절부터 러시아가 공업지구로 육성한 곳이다. 이 동쪽 지역의 기업 중 가장 유명한 게 바로 안토노프다. 바로 우크라이나 항공우주 설계국인 이 곳은... 우리나라 군인들에게도 친숙하다.
“북한 놈들이 An-2기 타고 침투할 수도 있다. 대공경계를 철저히 하도록!”
군대 있을 때 귀가 따갑게 들었던 그 An-2기를 개발한 곳이다. 소련 시대 이러저러한 항공기를 생산했고, 지금도 생산하고 있다. 그리고 그 생산품은 러시아에 팔고 있다. 동쪽 지역의 중공업 지대 사람들은,
“이런, 씨바스키! 우리 생계는 러시아에 달려 있다스키... 차라리 우리 러시아랑 합치게 해줘스키!”
가 된 거다. 다시 말하지만, 거창한 이념이나 신념보다 더 위대한 건 ‘먹고사니즘’이다. 당장 생계를 우선하는 게 뭐겠는가? 이런 ‘생계’에 역사 문화적 차이, 그리고 정치가 맞물린 거다. 우크라이나의 진보성향 정치인들은 러시아 보다는 EU를 선택한 상황이고, 보수파들은 전통적인 우방(?!)인 러시아를 지지하는 상황. 이러다 보니 정치인들끼리 정권을 뺏고, 빼앗기고, 독살을 시키네 마네 하고, 유로마이단이 터지고 총격전이 벌어지고... 그러다 러시아가 돈바스 지역에 치고 들어와서 내전을 벌이고 있는 지경에까지 이른 거다.
...그러다가 대통령이 된 게 코미디언 젤린스키다.

부정부패에 저항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연기하다가
진짜 대통령이 되었다...!!
(그가 유대인 자본에 의해서 만들어진 ‘대통령’이란 음모론은 넘어가기로 하자, 검색해 보면 나오겠지만 그는 우크라이나의 한 방송사에서 만든 ‘인민의 종’이란 시트콤에서 대통령 역할로 나왔다가 인기를 얻어서 대통령이 된 케이스다... 우린에겐 이거 뭔 황당 시츄에이션이냐 하겠지만 서로 죽고 죽이고, 개판 5분 전인 우크라이나 정치 상황에서 차라리 이 인간이 대통령이 되는 게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2. 말리는 시누이, 미국
자, 문제는 이 젤린스키가 집권한 상황에서도 우크라이나는 계속 ‘전쟁 중’이었다는 거다. 이 부분을 간과하고 있는데, 우크라이나 동쪽에서는 계속 전쟁이 이어지고 있다. 2014년부터 시작된 내전은 지금까지 끝나지 않고 있다. 물론, 우크라이나의 공식 입장은
“내전이 아니고... 그래, 대테러리스트 작전이다!”
라며, 애써 내전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이게 그들 말처럼 진짜 ‘테러리스트와의 전투’라면 끝나도 애저녁에 끝났어야 하는데, 전쟁은 거의 10년이 다 돼 가도록 이어지고 있다. 물론, 배경에 러시아가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러시아군이 옷을 갈아입고 넘어와 우크라이나 군과 싸운다는 건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까놓고 말해 우크라이나 정부가 ‘테러리스트’라고 폄하한 분리주의자들은 애저녁에 루한스크 인민 공화국과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을 만들어서,
“우리는 우크라이나와 말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먹고 사는 방식도 다르다! 우리는 우리끼리 따로 떨어져 나가서 살 테니까 우리 건들지 마!”
라고 외치며 총을 들고 버티는 중이다.

위치만 봐도 친러시아일 듯한 분위기...!
물론 전 세계적으로 루한스크와 도네츠크(둘 다 우크라이나 동쪽의 도시다), 두 나라(?!)를 인정한 곳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 두 나라가 분리독립에 성공한다면, 십중팔구 러시아와 합병하든가 자치정부가 되든... 여튼 러시아 영향력 아래에 들어갈 거다.
(동쪽의 많은 도시와 지역들이 이 두 나라를 쫓아 들고 일어났다가 우크라이나 정부군에 진압 되기도 하고, 나중에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둘이서 ‘노보시아 연방국’이란 이상한 나라도 만들고... 여튼 개판 5분전인 상황이 바로 돈바스 지역이다)
까놓고 물어보자.
“이런 상황에서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겠는가?”
우리나라 충청도 땅에서 갑자기 분리 독립주의자들이 일어나서 중국의 지원을 받아가며 8년째 내전이 일어났다고 치자. 나라 살림은 어쩔 것이고, 사회 분위기는 어떨까? 젤린스키 입장에서는 폭탄을 깔고 앉은 셈인 거다. 이러다 보니,
“돈바스를 해결해야 해!”
라는 압박을 계속 받고 있다. 젤린스키 본인도 2022년까지 이 돈바스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한 상황이다(이건 정치적인 계산도 깔려 있는 선언이라 할 수 있다. 임기가 1년 남짓 남은 상황에서 뭐라도 하긴 해야 한다. 임기 내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기억 밖에 없으니...).
이런 상황에서 젤린스키는 서방의 뒤통수를 계속 맞고 있는 거다.
“서방 지도자들은 내일 당장 전쟁이 날 것처럼 말하고 있는데 (중략) 이는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우리 경제에 위해를 가하고 있다.”
지난 1월 말에 젤린스키 대통령이 한 말이다. 그는 미국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아니 씨바. 우리 도와주고 지켜주겠다고 말하는 건 좋은데... 그러려면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여줘야 하는 거 아냐? 도와준다고 말해놓고, 전쟁 난다고 공포감 조성하고, 냅다 너희들 대사관 직원들 빼 가면... 우리 어쩌라는 거야? 그냥 X 돼 보라고 고사지내는 거야 뭐야?”
대놓고 미국을 디스 한 거다. 그리곤,
“북한이 한국한테 미사일 쏘고, 잠수함 보내고 했다고... 그게 전쟁까지 이어지디? 우리도 그래! 작년 봄에도 푸틴이 탱크 보내고, 병력 보내고 하면서 분위기 요상하게 만들었어! 그때는 아무말 없다가, 지금 왜 이 지랄인 거야? 도와 줄 거면 우릴 나토에 가입시키든가, 아니면 병력을 보내! 때리는 시엄마 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밉다고 너네 지금 뭐하자는 거야?”
젤린스키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인 거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입에 모터를 달았는지, 입만 열면


<사진 출처 링크>
“아니, 씨바. 푸틴이 아무리 못 배워먹어도 말은 통한다니까! 걔 그만 자극해! 우리 공식 입장은... 그래, 러시아가 우리 공격하기 전에 먼저 제재 때리는 거 반대야! 오케이? 그러니까 러시아 그만 자극해! 안 그래도 불안해 죽겠구만... 말로 풀 수 있는데 왜 상대방을 자극하냐고!”
젤린스키가 공식석상에서 이렇게 경고를 할 정도가 된 거다. 보면 알겠지만, 미국은 혼자 지르고 있는 거다. 정말 우크라이나를 생각했다면, 이런 식으로 움직이지 않았을 거다(왜? 우크라이나 본인들이 미국을 말리고 있지 않은가?). 이 상황에서 젤린스키가 다시 한 번 뒤통수를 맞는 사건이 벌어진다.
3. 철저히 혼자가 된 우크라이나 그리고 마크롱의 제안
푸틴을 만나고 온 독일 슐츠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젤린스키가 넌지시 물어본다.

<사진 출처 링크>
“우리 언제쯤 나토 가입 할 수 있을까?”
슐츠의 대답은 독일인답게 ‘쿨’했다.
“그걸 왜 지금 묻는 거야? 우크라이나가 나토를 가입하는 문제는 눈앞의 현안이 아니잖아?”
젤린스키로서는 부아가 치밀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금 이 상황이 왜 시작됐는지 러시아도 알고, 미국도 알고, EU도 알고, 우크라이나 본인들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정작 필요할 때 나서주는 이는 아무도 없는 거다. 이러다 보니 젤린스키는,
“우리는...나토 가입을 포기할 수도 있다.”
“우리는...나토 가입을 계속 추진할 거다.”
라면서 나토 가입에 대한 입장을 번복해 가며, 분위기를 살피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딱 봐도 알겠지만, 우크라이나는 누군가의 지원을 받는 것 같지만, ‘철저히’ 혼자인 상황인 거다. 미국과 EU는 철저히 자기의 이익을 위해 우크라이나를 바라보고 있고, 러시아 역시 자신의 ‘이익’위해 우크라이나를 때릴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사이 젤린스키와 우크라이나는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리지만, 우크라이나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당장 나토 가입을 포기한다는 카드가 있지만, 이걸 택할 경우, 돌아올 국내정치의 반발과 국제적인 신인도, EU와의 관계를 생각해 봐야 한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겁박’에 굴복한 모양새가 되지 않는가?
이대로 질질 끌고 가도 문제인 게, 당장 돈바스 지역 문제는 어떻게 해결 할 것이며, EU와 나토 가입 문제로 박살난 우크라이나 경제와 국가 이미지는 어떻게 회복해 나갈 거냐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나은 선택지로 보이는 게 바로 마크롱의 제안이다.

<사진 출처 링크
“우크라이나를 핀란드화 하자!”
(국제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게 합의 된다고 쳐도, 우크라이나 내부적인 문제로 이게 과연 가능할지는 미지수이지만, 러시아와 미국이 한발씩 양보한 그 나마의 대안 중 하나가 바로 이 ‘핀란드화’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러시아랑 친하거든? 우리 러시아랑 계속 친하게 지내도 돼지? 대신 EU 너희들한테 농산품도 팔고, 경제교류도 할게. 어때?”
이러는 거다. 핀란드가 냉전 시절에 했던 방식이며... 안보에 있어선 지금도 고수하고 있는 나토 불가입 원칙의 방식이다. 이건... 우리에게도 시사 하는 바가 많다.
4. 한국은 우크라이나를 눈여겨 봐야 한다
중국과 미국의 한 가운데 있는 한국은 언제나 선택의 갈림길을 강요받고 있다. 이때 우리는 어떤 모습을 취해야 할까? 우크라이나의 상황이 남일 같지 않은 이유 중 하나다. 강대국 옆에 붙어있는 완충지대 국가의 한계이기도 하다.
까놓고 말해 바이든이 지금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보여준 모습을 보면, 내로남불이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를 보자. 미국은 자기 앞마당에 반미 성향의 정권이 들어서 완충지대가 무너지려 하자 바로 총들고 뛰쳐 나갔다.
쿠바 사태가 그것이며, 그레나다 침공이 그것이다.
“너네 씨바 비행장 짓는 거 수상해! 그거 우리 공격하려고 짓는 거지?”
“너네 소련하고 쿠바한테 지원 받는 거... 나 기분 나빠!”
“너희 씨바... 제2의 쿠바가 되려는 거지?”
이러다가 덜컥 긴급 분노(Operation Urgent Fury)라는 작전을 펼쳐서 그레나다를 개박살 낸 게 미국이다. 자기 앞마당에서 뭔가가 튀어나오면 바로 주먹을 휘두르고 사람을 때려잡았는데, 러시아보고는 그러지 말라는 게 우습지 않나?
어차피 국제사회는 힘의 논리이기에 꼬우면 힘을 키우면 된다. 그렇다 ‘힘’이 정답이다. 명분같은 건 그 뒤의 문제다. 지금 우크라이나 사태를 정확히 39년 전으로 돌리면 그레나다 침공이 등장한다. 그때와 지금의 차이는 뭘까?
첨언 1: 이면합의의 가능성
지금 우크라이나 쪽 상황은 시간 단위로 급박하게 변하고 있다. 돈바스 지역의 갈등이 고조 되는 걸 핑계로 벨라루스와 러시아는 계속 ‘훈련’하겠다고 나서고 있고, 젤린스키는 갑자기,
“러시아 제재해줘!”
를 외치게 됐다. 나토를 가입하겠다는 건지 안하겠다는 건지, 러시아를 제재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오락가락 하는 행보를 보이는데, 그만큼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물밑 협상이 난항이라는 걸 유추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건 뮌헨 안보회의에서 젤린스키가 한 발언이다.
그는 서방(구체적으로 미국과 나토)이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에 대한 대응이 부족하다고 말하면서 ‘뼈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우리 빼고 러시아랑.... 이면합의 하면 안 돼! 나 다 지켜보고 있어! 나 촉 좋아!”
한반도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말란 법이 있을까?
첨언 2: 드디어 옷을 갈아입은 러시아
기사를 송고한지 얼마 안 돼 푸틴이 돈바스 지역으로 군대를 밀어넣었다. 푸틴은,

<사진 출처 링크>
“진작에 이렇게 했어야 했다.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인민공화국의 독립과 주권을 즉각 승인한다.”
라고 말하면서 지난 8년간 지지고 볶고 싸우던 곳으로 밀고 들어갔다. 툭 까놓고 말하자,
“옷만 갈아입은 거잖아!”
이제껏 러시아군이 옷 갈아입고, ‘러시아군 아닌 척’ 하며 싸웠던 동네 아닌가? 그런데 이번에는 러시아 군복을 입고 밀고 들어간 거다. 돈바스 지역에서 그 동안 피 흘리며 싸운 시간을 생각하면 돈바스 지역 주민들은 축배를 들 상황이다. 러시아군이 평화유지 목적이라고 명분을 그럴 듯 하게 내세웠는데... 실제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군이 주둔하고 있는데, 공격할 수 있을까는... 좀 생각해 봐야 한다. 러시아군과 괜히 충돌을 일으켰다간 그 뒤는 장담 못한다. 이대로 가면, 돈바스 주민들은 지긋지긋한 8년 세월을 정리할 수 있게 되는 거다. 이렇게 보면 돈바스 주민들은 좋겠지만, 미국은 그럼 어떻게 될까?
하나씩 생각해 보자. 우선 미국의 바이든이다. 바이든, 작년 8월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발 뺐다가 온갖 쌍욕을 다 먹었다.
“아니, 씨바... 탈레반이 그렇게 빨리 장악하게 될지 몰랐어...”
이렇게 변명해 봤자 소용이 없다. 이미 바이든의 인기는 떨어질대로 떨어졌다. 국정 운영 지지도는 형편없을 정도다. 보통 대통령 취임하고 나서 첫 100일에는 강력한 리더쉽에 국정을 장악할 수 있는 힘이 있는데, 바이든은 그딴 거 없다. 이런 말 하기에는 좀 미안한데...
“씨바, 진짜 바이든 어디 좀 이상한 거 아냐?”
이런 말이 튀어나올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올 11월에는 중간 선거가 있다. 가뜩이나 지지율 낮은데, 지금 상황에서 러시아에게 섣불리 ‘양보’ 할 수는 없을 거다. 바이든에게는 진퇴양난이다. 그런데... 하나씩 살펴보자. 우선 날짜다. 홍진호의 ‘날’ 이라 할 수 있는 2022년 2월 22일은 좀 생각해 봐야 한다. 이틀 뒤인 24일에 러시아와 미국의 외교장관들이 만난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언제나 이런 상황에서 거론 되는곳. 바로 스위스 제네바로 건너가 협상을 한다. 지금 러시아가 돈바스 지역으로 치고 들어간 상황임에도 러시아 외교부는,
“응, 너희들은 모르겠는데 우리는 24일 날 외교장관 회담 약속 취소 안했어.”
라고 공식적으로 발표 했다. 미국도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에 대한 첫 번째 제재를 때렸지만, 아직까지는 간을 보는 입장이다. 24일 날 외교장관 회담을 파토내고 싶지 않은 모양새다. 물론,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의 입장은 강경하다.
“러시아가 뭘 하든 국경선은 바뀌지 않는다! 나, 나는 두렵지 않다!”
를 외쳤다. 우크라이나가 무슨 소리를 하든 역사의 수레바퀴는 지금 러시아와 미국의 팽팽한 마찰음 사이에 있다.
첨언 3: 간 보는 러시아
미국이 나섰다. 바이든이 선언했다.
“러시아는 더 이상 서방국가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도, 새로운 국채를 거래 할 수도 없습니다.”
러시아 최대 국책은행인 대외 경제 은행을 포함해서 다른 금융기관까지 서방과의 거래를 완전히 끊어버렸다. 그리고 러시아 국채에 포괄적 제재를 가해 버린다고 한다. 예상하기론 24일날 외교장관 회담 이후에 뭔가 결론이 날 거 같았는데, 외교장관 회담은 결렬 됐다. 바이든이 강공으로 나선 거다. 물론, 외교적 해법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상황이지만, 느낌은 간단치가 않다.
“푸틴 이색희 본때를 보여줄 거야!”
독일도,
“뭐...러시아 가스가 중요하긴 하지만, 푸틴이 저러는 건 아니지.”
라면서 미국에 붙었다. 바이든은 푸틴의 돈바스 침공을,
“이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거다!”
라고 성격을 규정하고, 압박에 들어간 거다. 바이든도 여기서 밀렸다간 지지율이 아니라 최악의 대통령으로 찍혀서 4년 임기 채우기 전에 쫓겨날지도 모른단 불안감에 휩싸인 거 같다(아프가니스탄의 트라우마가 이렇게도 작용하는 구나...).
이제 공은 푸틴에게 넘어간 거다. 미국은,

<사진 출처 링크
“러시아 하는 거 봐서.”
라면서 제재 카드를 하나씩 더 얹을 거고, 병력들을 계속 전진 배치하면서 슬슬 분위기를 잡고 있다. 푸틴도 러시아 상원에 병력의 해외 파병에 대한 승인을 요청했고, 만장일치로 이 요청이 통과됐다(감히 푸틴에게 반대할 의원이 몇이나 되겠냐만).
일단은 돈바스에 병력을 보냈네, 안 보냈네 말들 많은데, 푸틴 입장에선 확실히 간을 보고 있는 상황. 누가봐도 살라미 전술이다. 하나씩 툭툭 던지며 미국의 상황을 보는 거다. 여차하면,
“돈바스에 병력 안 보냈어!”
이럴 수 있도록 도망갈 구멍은 확실히 만들어 놓고 간을 보고 있다(뭐 그래봤자. 러시아군 군복을 입었느냐 안 입었느냐의 차이지만). 이 간보기가 언제 끝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