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끝나지 않은 스코틀랜드의 독립 소망

스코틀랜드 왕국은 17세기 말 파나마 지역에 대한 대규모 투자 실패로 국가부도 위기에 처하게 됐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부유한 잉글랜드와 통합조약을 체결했다. 프랑스와 갈등 관계에 있던 잉글랜드도 북부의 스코틀랜드가 프랑스와 군사적으로 연합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1707년에 이루어진 통합조약에 의해 스코틀랜드는 40만 파운드의 채무를 변제받았고, 잉글랜드는 영국 섬에서의 안보 위험을 제거하고 해외진출에 전력투구하여 대영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지난 9월 18일에 스코틀랜드 독립에 대한 주민투표가 있었고, 찬성표가 44.7%에 머물러 독립에 실패했다. 하지만 올해 초에 독립 찬성 여론이 30%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분리주의 운동은 선전한 편이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독립 운동이 과격성과 폭력성의 덫에 빠지지 않고 정책에 기반을 둔 투쟁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 독립 지도자들은 복지 축소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화하고 있는 영국 중앙정부와 달리 북유럽식 복지국가 모델을 본 따 건설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또한 북해유전을 공유하고 있는 노르웨이는 수익의 절반을 미래복지를 위한 국부펀드에 적립하고 있는 반면에, 스코틀랜드의 유전 수익은 영국 중앙정부의 손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 독립 실패의 원인 중 하나는 화폐 문제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저서에서 인간이 반드시 자유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인간은 속박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지만 자유의 대가로 치르게 될 불확실성과 불안정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유를 꺼리고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스코틀랜드인들은 영국으로부터 자유를 얻고 싶지만, 독립 이후의 혼란과 비용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기 어려웠다. 스코틀랜드의 독립 지도자들은 독립비용의 가중, 외국인 투자와 일자리의 감소 등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데 실패했다.

스코틀랜드 주민의 가장 큰 두려움은 화폐 문제였다. 영국 화폐인 파운드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지만 영국 지폐는 스코틀랜드에서 받아도 스코틀랜드 지폐는 영국에서 받지 않아 낭패를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화폐란 정부가 보증하는 어음과 같은 것이다. 영국 화폐에는 ‘영국 왕립은행은 이 화폐의 소지자에게 아래 금액을 보증한다.’라고 쓰여 있다. 스코틀랜드 화폐에는 ‘스코틀랜드 왕립은행은 이 화폐의 소지자에게 아래 금액을 보증한다.’라고 쓰여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영국 중앙은행이 두 화폐를 모두 보증하는 화폐동맹을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코틀랜드가 독립하게 되면 화폐에 대한 중앙은행의 보증이 사라지고, 유로화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유럽연합(EU) 가입이 선결돼야 하는 것이다.

| 스코틀랜드, 독립 대신 실익 챙겨

영국은 EU에서 탈퇴하려 하고, 스코틀랜드는 EU에 잔류하려 한다.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 영국 총리는 보수당 내부의 EU 회의론자들을 달래기 위해 2017년까지 EU 탈퇴 의사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 발생한 스코틀랜드 탈퇴 위기로 인해 영국의 EU 탈퇴 동력은 줄어들 것이고, 유럽통합의 정치적 안정성은 높아질 전망이다. 스코틀랜드는 독립에 실패했지만 2년에 걸친 주민투표 운동과정에서 많은 자치권을 약속받았다. 자유를 얻지 못하는 대신 많은 실익을 얻었다. 영국 정부도 파운드화와 주식의 가치 하락 등으로 인한 금융 및 재정위기를 피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주민투표는 국제적으로도 관심을 끌었다. 미국은 가장 든든한 동맹국인 영국이 약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지역 분리주의가 강한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영국의 사태가 남유럽으로 번질 것을 우려했다. 유럽에는 미니국가들이 많지만, EU 회원국이 되면 국가로 생존하는 데에 큰 문제는 없다.

따라서 하나의 유럽으로 통합되는 과정 속에서 중앙정부로부터 완전독립하려는 지역들이 늘어나고 있다. 중세시대처럼 국왕의 통치 아래 점차 자신의 영지를 실효 지배하는 영주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독립실패는 신(新)중세주의에 제동을 걸었고, 아직은 허약한 브뤼셀의 권한을 강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최근의 경제위기를 정치통합의 강화로 겨우 고비를 넘긴 EU으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 스코틀랜드인의 꿈은 계속된다!

주민투표에서 패배한 직후 독립을 주도한 샐먼드(Alex Salmond)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나는 정치무대를 떠나지만 스코틀랜드인의 꿈은 계속 남아 있다.”라고 말하면서 사임했다. 그의 사임은 새로운 지도자에 의해 독립이 다시 시도돼야 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의 후계자로 꼽히는 스터전(Nicola Sturgeon)도 “스코틀랜드가 독립할 날은 분명히 올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국가가 분리 독립하는 경우는 많다. 유럽에서 연합왕국이 분리된 사례로는 스페인-포르투갈, 덴마크-노르웨이가 있다. 구소련의 붕괴는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국가연합 분리사태였다. 오늘날 국가분리의 수단으로 점차 혁명이나 전쟁이 아닌 주민투표가 이용되고 있다. 주민투표에 의한 독립이 극적으로 무산된 사례는 1995년의 퀘벡이다. 50.6% 대 49.4%로 퀘벡은 캐나다에 잔류하게 됐다. 그런데 최근 들어 주민투표가 법적 근거 없이 분리주의에 활용되고 있다. 크림반도의 러시아인들은 주민투표로 우크라이나로부터의 독립을 결정했다. 동우크라이나의 도네츠크와 스페인의 카탈루니아도 독립을 묻는 주민투표를 선언했고, 이들 나라의 중앙정부는 불법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앞으로 분리주의 문제를 둘러싸고 중앙과 지방의 갈등은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고상두 연세대학교 일반대학원 지역학협동과정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