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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읽는 이슬람

키워드로 읽는 이슬람

이슬람은 어떻게 사회를 구성하는가

에디터의 노트

이슬람은 오늘날 19억명의 신자를 보유한 거대 종교입니다. 25억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종교 인구를 차지하는 기독교의 다음 가는 숫자죠. 게다가 이슬람은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는 신정일치의 사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슬람은 종교적 신념을 넘어 이를 따르는 국가, 사회의 행동 및 구성 원리로도 볼 수 있는데요. 변치 않는 종교적 가르침 아래 오늘날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슬람의 태동은 어땠고 그 배경은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배경

사회 구성 원리로서 종교의 기능

이슬람이라는 거대한 사회이자 종교를 살펴보기에 앞서 종교가 사회 체제에 미치는 영향력을 환기하고자 합니다. 종교는 관습, 도덕, 법과 함께 사회 구성원의 사고와 행위 양식을 이끄는 사회 규범이지만 때로 직접적으로 사회를 구성하는 원리로 기능하기도 합니다.

사회를 제어하는 권력에는 정당성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정당성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필요하죠. 만약 왕이 지닌 권력의 정당성이 단지 그 자리 자체에서 비롯한다면 누구든 빼앗아 차지하면 그만입니다. 오늘날 대다수 국가 행정 수반의 통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것은 국민으로부터 지지받은 대표성입니다. 국민으로부터 선출돼 그 뜻을 대리하므로 국민에 발휘하는 권력도 정당하다고 보죠. 대의 민주주의라는 이념과 제도적 과정이 권력의 정당성을 보장하는 셈입니다. 권력은 사회계약에 의해 시민으로부터 이양받은 것이죠.

그러나 역사적으로 이 기능을 수행한 것은 신화와 종교입니다. 왕의 권력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았기에 절대적이라는 '왕권신수설'이 대표적이죠. 고대 이집트와 같은 제국주의 국가에서 왕은 곧 신이거나 신의 아들이거나 하다못해 신의 대리자였습니다. 왕권에 가장 큰 정통성으로 작용하는 혈통 역시 계보를 거슬러 오르면 신성(神聖)과 맞닿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신화의 형식을 빌려 전해졌죠. 권력은 신이라는 초월적 존재로부터 받은 것이므로 이에 대항하는 일은 감히 생각지 못했습니다.

신 중심 사회였던 중세를 지나 인간의 주체성과 이성을 강조한 근대 계몽주의 물결은 종교적 부패를 척결하고 인간 중심 사회를 꾸려보고자 한 움직임입니다. 그러므로 인간만의 능력인 '이성'에 힘을 싣고 제도와 이념을 정교화하기에 이르죠. 인간성을 긍정할 뿐만 아니라 법으로써 공동체 운영에 필요한 제약을 만들고, 국가 권력을 입법, 사법, 행정이라는 서로 다른 주체로 나누어 견제하는 삼권분립을 도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주체성을 긍정한 근대 사회는 어느 정도 실패를 맞닥뜨리기도 했습니다. 인간의 욕망을 성장동력으로 삼는 자유 자본주의는 불평등과 돈의 가치를 지나치게 숭상하는 배금주의를 낳았죠. 자본의 추구와 만난 자유는 모두들 '벼락거지'가 되지 않기 위해 '영끌' 대열에 합류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사회주의의 기반이 되는 공산주의 역시 그 공공의 재산이 공산당원의 것이 되거나 역시 자본주의의 욕망에서 자유롭지 않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욕망 앞에 생각만큼 이념과 제도의 작동은 수월하지 않습니다. 윤리 역시 마찬가지죠.

욕망으로 인한 인간의 불완전성, 근대화에 대한 실망은 다시금 종교를 소환하게 합니다. 근대화를 거치며 정교(政敎)가 분리되었던 지역에서도 종교가 공동체적 삶에 분명히 반영되길 원하는 움직임이 나타납니다. 흔히 얘기하는 '근본주의'(fundamentalism)입니다. 오늘날 존재하는 사회적 홍역을 치유하거나 자본, 권력 등 사회적 자원에 대한 또 다른 정당성의 근거로서 다시 종교를 찾는 움직임이죠. 이후에 더 다룰 예정이지만 탈레반이나 IS, 이슬람주의의 동력이 되는 사고이기도 합니다.

대상

이슬람의 탄생

610년 사도 무함마드에 의해 창시된 이슬람은 종교이자 삶의 방식입니다. 이슬람의 경전인 쿠란(Quran)은 신과 인간의 관계뿐 아니라 이슬람 공동체 내에서 개인과 개인의 관계, 개인과 사회 또는 국가와의 관계까지 규정합니다. 또 다른 경전인 하디스(hadith)는 무함마드의 언행을 기록해 전하는 것으로, 이는 이슬람의 신자인 무슬림이 따르는 행동의 모범이 됩니다.

이슬람이 정치적 색채를 띠는 것은 내용과 기능뿐이 아닙니다. 이슬람은 태동에서부터 정치적 목적을 수행했습니다. 이는 이슬람 발생 이전 아라비아반도의 삶과 연관지을 수 있습니다. 이슬람 이전은 암흑의 시기라는 뜻에서 '자힐리야'(jahiliya)로 불립니다. 아랍어 자힐리야의 사전적 의미는 '무지'이며 신에 대해 무지한 상태를 가리키지만, 당시 사회의 혼란을 은유하기도 합니다.

이슬람의 발생지인 아라비아반도는 대부분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농사는 오아시스 인근이나 일부 산악지대에서 제한적으로 가능했죠. 대다수는 유목민이었습니다. 따라서 인구도 적었으며 강력한 국가가 수립되지 못한 상태였죠. 파편화 된 부족사회만이 존재했으며, 생업은 무역이나 약탈에 의존했죠. 생존을 위한 부족 간 전투가 비일비재해 호전적인 남성 중심 사회가 됐으며, 때문에 여성의 권리는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고 남성의 소유물로 여겨지곤 했습니다.

지역을 아우르는 이념이나 종교 또한 있을 리 없어 질서 또한 부재했습니다. 부족마다 제각기 원시적인 우상을 섬기는 다신교의 모습을 띠고 있었죠. 오늘날 이슬람의 성지로 여겨지는 메카(Mecca) 중심에는 '카바'(Kaba)라는 이름의 신전이 있는데, 여기에는 당시 부족들이 숭배하던 우상이 360개 이상 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러니 사회적 통합은 힘든 일이었죠.

그런 와중에 당시 아라비아반도를 끼고 두 제국이 패권을 다투고 있었습니다. 바로 페르시아 제국과 비잔틴 제국인데요. 이들에는 이미 기독교와 유대교라는 일신론적 종교가 퍼진 상태였습니다. 아라비아반도에도 유대교와 기독교의 일신론적 종교관이 확산하고 있었죠. 일부 아랍인들 사이에서는 유대인과 기독교인이 신봉하는 하느님이 그들에게 신을 의미하는 알라(Allah)와 같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알라가 아랍 민족에게 직접 경전이나 선지자를 보내지 않은 상태였던 거죠. 이때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계시를 받고 이 일신론을 바탕으로 이슬람을 창시하고 무력으로 메카와 메디나(Medina)를 통일해 국가를 세운 인물이 바로 사도 무함마드(570~632)입니다. 그는 당시 강대국 사이에 끼어 제대로 결집하지 못하던 아랍인들을 모아 이슬람 제국의 주인으로 만들기에 이릅니다.

내용

이슬람이 구성한 세계, 왜 이슬람이 필요했나

무함마드가 창시한 이슬람의 유일신 사상은 아랍 민족을 결속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강조한 것은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전반적인 사회개혁과 정의를 설파했습니다. 오히려 정치가 내지 사회개혁가에 가까운 모습인데요. 무함마드는 알라의 계시를 빌려 빈부격차와 지나친 물질 숭배, 상류층의 타락과 개인주의, 권력 남용 등의 사회적 문제를 끊임없이 지적했습니다.

무함마드는 알라 앞에서 모든 무슬림은 평등하다는 원칙을 퍼뜨리며 사회를 바꾸는 데 앞장섰죠. 파편화되어 서로 갈등과 복수를 일삼던 모든 집단은 보복을 중단하고 서로 협력하며 공존한다는 것이 그가 고향 메카를 떠나 메디나에서 초기 이슬람을 확장하며 주민들과 합의한 헌장의 주요 내용입니다. 무함마드가 메카에서의 박해를 피해 메디나로 이주한 일은 '거룩한 도망'(성천)이라는 의미로 히즈라(Hijrah)로 불립니다. 이슬람 신앙공동체인 움마(Ummah)를 형성하는 계기가 됐기에 이 날짜인 622년 7월16일을 이슬람력 원년 1월1일로 삼죠.

무함마드의 이슬람 창시는 당시 아랍 사회의 위기를 극복하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아라비아반도에선 전통과 규범이 훼손되고 전쟁과 불의가 만연했습니다. 그의 고향 메카는 무역으로 번창하는 상업 도시였으나 물질 만능주의가 기승을 부렸죠. 그렇기에 오늘날까지 이슬람에서 사유재산의 과도한 축적을 경계하며 약자를 존중하고 부의 나눔을 선한 일로 여깁니다. 정의와 평등의 가치를 수호하는 통합된 공동체인 움마와 유일신에 대한 종교는 아랍 사회를 구원하기 위한 필수 요건이었던 셈이죠.

비교

이슬람의 종교적 권위와 정치 권력을 공고히 하는 두 가지 원칙

이슬람은 중동의 다른 양대 종교인 유대교, 기독교와는 태동부터 다릅니다. 이는 창시자 무함마드의 지위와 역할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선지자 모세와 예수는 모두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하고 신도들을 가나안과 예루살렘에 이끄는 사도로서의 역할만 수행했습니다. 반면 무함마드는 알라의 메시지를 전하며 이슬람의 터전에 정착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메카와 메디나를 통합하고 이후 이슬람 제국을 팽창하기 위해 전쟁을 불사하는가 하면 정치·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죠.

그중 이슬람의 정치적 권위를 공고히 한 시스템으로 두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1️⃣ 성직자 계급 없음

이슬람에는 사제와 같은 성직자 계급이 없습니다. '이맘'이라는 지도자가 존재하나 평신도이며 예배를 이끌고 설교를 할 뿐입니다. 게다가 남녀노소, 배움과 재산을 막론하고 누구나 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알라 앞에 평등하며 이슬람의 예배당 모스크에 모여 기도를 통해 직접 신과 소통합니다. 또한 경전과 신학을 공부한 학자인 울라마(ulama)들만 존재하는데, 이들은 정부의 이슬람법인 샤리아(Shariah)의 해석이나 종교 재산 관리를 위해 고용된 사람들일 뿐입니다. 성직자는 없고 공무원만 있는 셈이죠.

2️⃣ 누구에게나 행사할 수 있는 '십일조'

이슬람에는 기독교의 십일조에 해당하는 자카트(Zakat)가 존재합니다. 이는 무슬림의 의무 중 하나로 수익의 2.5%를 내야 하죠. 그러나 그 대상은 꼭 교회가 아닙니다. 길거리에서 만난 누구에게라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이는 가난한 이에게 도움을 주고 과도한 부의 쏠림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입니다. 또한 돈이 특정 종교기관에 모이는 일도 방지하죠.

위 두 가지를 종합하면 이슬람에는 종교를 위한 사제도 돈도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종교기관이 왕이나 권력과 유리되어 그 권위에 도전하거나 우위를 점할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한 제도입니다. 이슬람의 영향력은 특정 권력이나 기관에 매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종교가 종교 외 이념이나 이익을 추구하면 오히려 그 생명력은 짧아집니다. 중세의 암흑시대 종교의 권위가 극에 치달아 부패했던 때처럼요. 그러나 무함마드는 이슬람을 권력 추구와 분리함으로써 1400년이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그 영향력을 유지한 셈입니다.

? 참고한 도서 및 자료는 똑똑 홈페이지 본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쿠란, 하디스, 샤리아법 등 이슬람의 사고와 행동의 근거를 살펴보는 '이슬람은 무엇에 의해 움직이는가'가 이어집니다.

이슬람은 무엇에 의해 움직이는가

에디터의 노트

지난 화에서 이슬람은 단지 종교적 신념을 넘어 이를 따르는 국가와 사회의 행동 준거가 된다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슬람의 주요 교리를 이해하는 일은 이슬람 국가와 무슬림들의 사고 및 행동방식을 파악하는 일과 다르지 않은데요. 과연 그들은 어떤 가치관을 공유하고 행동하는지 그 의미와 체계를 살펴봅니다.

배경

이슬람의 구원관과 종교관

이슬람의 신자인 무슬림은 일생 동안 알라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스스로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이를 '지하드'(Jihad)로 부르는데요. 흔히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의 입에 곧잘 오르내려 종교적 전쟁인 성전(聖戰)의 의미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지하드는 단지 이슬람 세력 확장을 위한 물리적 전쟁만을 뜻하는 표현은 아닙니다. 대다수 무슬림 학자들은 오히려 알라의 뜻을 실현하는 개인적 정진과 노력을 더 큰 지하드로 해석합니다. 지하드를 통해 생에 베푼 선행은 천사에 의해 기록되고, 이는 죽음 이후 천국에 가느냐 지옥에 떨어지느냐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됩니다. 이것이 이슬람의 기본적 구원관입니다.

이러한 이슬람의 구원관은 철저히 자기 의무를 강조합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절차나 과정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스스로의 수행이 중요하죠. 이슬람이 타 종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실용주의적 면모를 띠는 이유기도 합니다. 지난 화에서 지적했듯 이슬람엔 사제도 교회 기관도 없습니다. 모두가 알라 앞에 평등하고 또 직접 소통하기 때문이죠. 또한 모든 일은 알라의 뜻대로 발생한다고 보지만 이성과 자유의지에 따라 일정 부분 스스로 책임지는 정명론(定命論)적 성격을 지닌 것도 이슬람에서 개인의 주체적 수행이 강조되는 이유입니다.

내용

이슬람 사회의 지침, 쿠란과 하디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적다, 쿠란

이슬람에서 첫째가는 권위를 지니는 것은 경전 쿠란입니다. 쿠란은 이슬람 사회의 정치·경제·사회·문화·생활 규범 등 삶과 인식 전반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슬람의 창시자 사도 무함마드는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하느님(알라)의 말씀을 전해 듣고 이를 외워 포교에 사용했다고 하죠. 무함마드는 문맹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랍어로 '읽어야 할 것' '낭송해야 하는 것'을 뜻하는 쿠란은 즉 읽는 경전, 독경입니다.

무함마드는 죽을 때까지 수차례에 걸쳐 계시를 받았으며, 쿠란은 그의 제자와 추종자들이 이를 기록해 책으로 만든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무함마드의 입에서 낭송된 경전이기에 다소 거친 문장으로 이뤄졌음에도 오늘날까지 수정이나 편집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는 신성한 신의 메시지이기 때문에 변질과 훼손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유에서 쿠란은 심지어 다른 언어로의 번역도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습니다.

쿠란이 단 한 차례 계시를 바탕으로 쓰인 게 아니기 때문에 그 내용은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계시를 받은 초기에는 신의 유일성과 인간의 도덕적 의무, 미래에 다가올 심판을 정열적으로 노래하는데요. 이후 메디나로 이주해 이슬람 종교 공동체인 움마를 꾸리면서부터는 신학적 신조, 민·형법 규정을 포함한 법률, 입법적인 내용까지 포함합니다.

무함마드의 모범을 따르라, 하디스

쿠란에서 적절한 지침을 찾기 힘든 경우 보조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로 사도 무함마드의 말과 행동을 기록한 하디스입니다. 쿠란을 해석하고 보완하는 역할을 하는 건데요. 쿠란이 법전의 역할을 한다면 하디스는 실질적인 적용 사례를 비추는 판례와 비슷하달까요. 물론 그 기준이 되는 사례는 무함마드 한 사람뿐이지만요.

하디스가 쿠란 다음으로 권위를 지닐 정도로 이슬람 사회에서 무함마드는 신성한 인물입니다. 무슬림들은 그를 알라의 뜻을 그대로 실천하는 완전무결한 인간으로 믿죠. 이슬람이 유대교, 기독교와 일신론적 종교관을 공유하듯 예언자로 인정하는 것이 무함마드 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나 무함마드가 신의 말씀을 마지막으로 받은 예언자로 보죠. 그렇기 때문에 종래 예언자가 전달하는 계시 내용은 낡고 뒤떨어졌으며, 무함마드를 통해 내려온 계시가 가장 어려운 시기에 내려온 가장 새로운 지표라고 해석합니다. 모세나 예수 등 이전의 선지자도 인정하지만 무함마드가 전하는 내용이 가장 완전한 최신 버전이라는 거죠. 이슬람이 인정하는 경전이 쿠란만은 아니지만 가장 완전한 경전은 쿠란으로 보는 이유와도 같습니다.

의미

집행과 해석의 종교적 법률, 샤리아

이슬람 사회에서 실질적으로 법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샤리아입니다. 샤리아 법체계는 쿠란과 하디스 그리고 순나(Sunnah)로부터 비롯하는데요. 여기서 순나는 '많은 사람이 가는 길'이라는 뜻에서 관행을 의미하며 이슬람 예언자의 언행과 관습을 기록한 것입니다. 하디스가 순나의 모태가 되는 기본 자료라고 할 수 있죠. 약간 케이스가 다양해진 '판례'랄까요.

샤리아는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할 밝은 길'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쿠란이나 하디스, 순나에서 답을 끌어낼 수 없는 경우 이슬람 종교학자들이 그 특정 주제나 질문에 대한 지침으로 판결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는 무슬림의 모든 일상생활에 관여할 수 있는데요. 예를 들어 어떤 파티에 초대받은 무슬림이 참석을 고민할 경우 샤리아 학자에게 조언을 구해 행동하면 이슬람의 법적 경계를 지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금융이나 사업, 가족에 대한 법률 역시 무슬림들이 일상생활에서 샤리아에 지침을 구하는 대표적인 분야입니다. 샤리아는 모든 무슬림이 지켜야 할 생활 규범으로서 무슬림의 삶 모든 부분을 신의 뜻에 따르도록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샤리아는 두 가지 분류로 범죄를 구분합니다. 중범죄로 형량이 정해져 있는 '하드'와 판사의 재량에 따라 형량을 정하는 '타지르'인데요. 절도를 한 경우 손을 자르고 불륜을 저지르면 돌로 쳐 죽이는 등 가혹한 형벌을 허용하는 것이 하드입니다. 대부분 쿠란에서부터 규정된 형벌이 변치 않고 적용되는 경우죠. 일부 무슬림 국가에선 엄격히 적용하지만 무슬림 사이에서 하드에 대한 여론은 분분합니다.

타지르는 쿠란에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은 경우입니다. 이를테면 몸을 가리는 보수적인 복식에 대한 지침은 쿠란이나 하디스, 순나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지만, 히잡을 써야 하는지 부르카를 착용해야 하는지 등 해석과 적용은 국가와 학파마다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판결이 매우 복잡하며 집행 역시 이를 수행하는 전문가의 수준과 훈련에 의존하죠. 샤리아는 신앙생활은 물론 이슬람 사회의 모든 계율을 기본법, 대인법, 재산법, 형법, 절차법 등으로 나눠 포괄합니다.

키워드

여섯 가지 믿음과 다섯 가지 실천

이외에도 이슬람 교리에는 신앙의 근간이 되는 여섯 가지 믿음과 이를 실천하는 다섯 개의 '기둥'이 존재합니다. 여섯 가지 믿음, 육신(六信)은 '유일신 알라에 대한 믿음' '알라에 봉사하는 영매인 천사에 대한 믿음' '성전(聖典)에 대한 믿음' '예언자 또는 신의 사도에 대한 믿음' '최후 심판에 대한 믿음' '정명(定命)에 대한 믿음'으로 나뉘는데요. 이를 실천하는 다섯 가지 행동을 오행(五行)으로써 무슬림이 따라야 할 다섯 가지 종교적 의무로 규정합니다. 이슬람을 떠받치는 행위라는 의미에서 다섯 가지 기둥으로 부르기도 하죠.

1. 신앙고백, 샤하다

라 일라하 일랄라, 무함마드 라수룰라. (알라 이외에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이다.)

이슬람을 따르겠다는 선서입니다. 샤하다를 낭송함으로써 비로소 이슬람에 입교해 무슬림이 될 수 있습니다. 샤하다의 낭송은 위의 여섯 가지 믿음 또한 받아들이는 의미가 있습니다. 핵심이 되는 첫 번째 기둥인 만큼 수행하는 데 있어 여섯 가지 원칙 또한 존재하는데요. 소리 내서 외워야 하며, 뜻을 완전히 이해해야 하며, 진심으로 믿어야 하며, 죽을 때까지 고백해야 하며, 틀리지 않아야 하며, 항상 주저 없이 외워 고백해야 합니다.

2. 기도, 살라트

무슬림은 오늘날 사우디아라비아에 위치한 메카의 카바 신전을 향해 하루 5번 기도해야 합니다. 꼭 이슬람의 예배당인 모스크는 아니더라도 번잡하지 않고 깨끗한 곳에서 해야 합니다. 엎드려 기도하는 살라트 행위는 알라 앞에서 스스로 하찮은 존재라는 걸 인식하고 자만심과 이기심을 버리게 하는 가르침의 의미를 담고 있죠.

3. 자선, 자카트

지난 화에서 언급하기도 한 기독교의 십일조와 유사한 자카트입니다. 수입의 2.5%를 고아나 불우이웃에게 내어놓는 일인데요. 일부를 자카트를 통해 베풀면 나머지 재산은 정화받는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과도한 재산 축적을 경계하고 빈민을 구제하는 구빈세 성격의 세금의 의미에 가깝습니다.

4. 금식, 사움

'라마단'으로 익히 알려진 한 달 동안의 금식입니다. 굶주림의 고통과 가난한 이의 마음을 느끼기 위한 행위로써 자비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이 기간의 금식을 통해 그 해 저지른 모든 죄를 보상받는다고 하죠. 이슬람력 9월 한 달 동안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금식합니다. 이슬람력 9월이 아랍어로 라마단입니다.

5. 성지 순례, 핫즈

무슬림은 건강과 재정이 허락하는 한 태어나 한 번은 이슬람의 성지 메카에 순례해야 합니다. 무슬림의 일체성과 유대를 증진하기 위한 행위로써 631년에 무함마드가 메카를 순례한 것이 유래입니다. 날짜가 정해져 있는데, 이슬람력 12월 8일에서 10일이 핫즈 기간입니다. 이 때가 되면 메카의 카바 신전은 무슬림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죠.

? 참고한 도서 및 자료는 똑똑 홈페이지 본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오늘날 극단주의 무장단체를 중심으로 이슬람이 어떻게 오용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살펴본 '이슬람의 왜곡'이 이어집니다.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한 이해

에디터의 노트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을 둘러싼 탈레반, IS 등 이슬람 무장단체 이슈에서 이런 표현 많이 보셨을 겁니다. 그들의 인권 탄압 및 폭력 행위는 이슬람 '근본주의'를 토대로 한 원리·원칙적 교리 해석을 바탕으로 한다고요. 이른바 이슬람 교리를 깐깐하게 적용한 결과라는 건데요. 이 말은 진실일까요? 먼저 근본주의란 무엇인지, 또 어떤 배경으로 무엇을 추구하는 움직임인지부터 살펴봅니다.

배경

근본주의의 출현

근본주의(원리주의)는 근대화에 대응해 일어난 전 지구적 종교 현상입니다. 꼭 이슬람에 국한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나 유대교에서도 발견할 수 있죠. 근본주의(Fundamentalism)라는 말이 처음 탄생한 것은 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20년대 미국 기독교입니다. 전쟁의 참혹함과 폭력성 그리고 여전한 사회적 불평등 문제는 근대화의 상징인 과학과 이념을 거부하고 절대적 확실성에 대해 갈망하게 합니다. 지난 1화에서도 짚었듯 이런 상황에서 종교가 공적 영역에 더 중심된 역할을 하기 바라는 염원이 바로 근본주의입니다.

근본주의를 이해하기 위해 한 가지 더 알아야 할 개념이자 흐름이 있습니다. 바로 '세속주의'입니다. 세속주의란 근대화를 거치며 다수 국가에서 일어났던 정교(政敎) 분리의 움직임입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헌법 1조에 '라이시테'(Laïcité)로 명시할 만큼 정치와 종교를 중요하게 분리하는 나라입니다. 근대화와 함께 변방으로 내몰리듯 보이던 종교가 근본주의라는 이름으로 다시 소환된 데에는 근대성에 대한 실망과 함께 세속주의 정부가 종교를 없애려 한다는 공포 어린 확신이 있습니다.

종교를 막론하고 근본주의 자체는 폭력적 현상이 아닙니다. 전체가 아닌 일부의 움직임일뿐더러 처음부터 모두 투쟁의 형태를 띠지도 않습니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내부적 신앙 운동으로 출발하다가 이차적 단계에서 외부의 적을 대상으로 삼죠. 대체로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만드는 데 먼저 주의를 기울이고, 그다음 단계에서 더 넓은 사회를 개종시키고자 하는 '반격'의 형태를 띱니다. 동기가 되는 것은 앞서 언급한 두 가지입니다. 종교적 이상의 재구현과 이대로라면 현대 사회에서 자신들의 신앙이 파괴되리라는 공포죠.

내용

이슬람 근본주의

종교가 공적 영역에 중심 역할을 하길 바란다는 것은 곧 종교가 사회를 움직이는 중심 가치 노릇을 하길 원하는 움직임입니다. 이슬람 근본주의는 삶의 모든 원리를 쿠란과 하디스로 대표되는 알라의 가르침대로 운영해야 한다는 사상이죠. 사회나 법은 물론 개인의 사생활이나 사고방식까지도요. 여기까지는 이슬람 사회의 기본 가치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슬람 근본주의는 1400여년 전에 정립된 이슬람 교리를 정말 깐깐하게 해석 적용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날 이슬람 사회가 이슬람의 가치를 사회 중심에 두는 것은 보편하지만, 실제로 샤리아법 적용은 현대에 맞게 유동성이 존재하며 탈레반 정부와 같이 공포스럽지 않습니다. 세간의 오해처럼 서구적 가치에 대해 부정적이지도 않죠.

9·11 이후 서구 정치인들은 무슬림들이 '우리의 생활 방식, 민주주의, 자유, 성공'을 증오한다고 가정해왔다. 그러나 무슬림들에게 서구의 무엇을 가장 높이 평가하는지 묻자 정치 성향이 급진적이든 온건하든 모두 이런 것들을 꼽았다. 서구의 기술, 서구의 근면한 직업윤리, 개개인의 책임감, 서구의 민주주의와 법치, 인권 존중, 언론의 자유, 양성 평등. — <신을 위한 변론>, 카렌 암스트롱, 457쪽.

서구에 의해 도입된 세속화와 근대화

20세기의 많은 무슬림 지식인들 역시 서구적 가치를 깊이 인정했습니다. 이집트의 그랜드 무프티(이슬람 율법 해석 최고 권위자)였던 무함마드 아부두(1849~1905)는 당시 영국의 지배를 증오하면서도 서구의 근대화된 경제를 다음과 같은 말로 칭송한 바 있습니다. 유럽의 근대화가 쿠란이 추구하는 정의와 평등을 잘 실현할 요건을 갖춘 것에 대한 부러움의 표시였죠.

파리에서는 이슬람은 보여도 무슬림은 보이지 않았는데, 이집트에서는 무슬림은 보여도 이슬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슬람 근본주의의 눈에선 이 점이 문제가 됩니다. 안타까운 측면도 있는데요.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많은 이슬람 국가는 유럽 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이는 2차 세계대전 전후까지 이어집니다. 이후 식민 통치에서 벗어나 경제적 발전을 이룩하지만, 국내 빈부 격차는 계속해서 커질 뿐이었죠. 독실한 무슬림의 눈으로 보면 이해되지 않는 광경인 겁니다. '알라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라는 이슬람의 가르침과 맞지 않으니까요. 쿠란은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라면 번성하리라 보장했는데, 실상 세속적인 서구의 벽에 발전이 가로막힌 거죠. 이슬람 공동체 움마(Ummah)의 정치적 위상이 위기에 처한 셈이죠.

이에 서구 문화의 유입을 통한 근대화와 세속화를 거부하고 이슬람법에 기초한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열광적 움직임이 바로 이슬람 근본주의입니다. 순수하고 이상적인 이슬람 사회를 다시 부흥시키자는 거죠. 그 대상은 바로 사도 무함마드가 이룩했던 과거의 이슬람 제국입니다.

과거에 실재한 이상의 구현

이유가 있습니다. 다수의 무슬림은 무함마드가 그의 네 후계자와 함께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 전체를 정복했던 과거 이슬람 제국을 가장 '완벽한' 국가 및 체제로 생각합니다. 이른바 '영광의 시대'인 셈이죠. 제국의 융성도 융성이지만, 알라의 계시와 율법에 따라 형성한 사회라는 점이 뜻깊죠. 오늘날 이슬람 근본주의가 널리 퍼져 큰 힘을 발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상이 실제 역사 속에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 하니 그때 그 율법을 똑같이 엄격히 적용하려는 겁니다. 순수한 '본래의 이슬람'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말이죠.

"프랑스혁명은 인권을 선언하고 자유, 평등, 박애를 부르짖었다. 러시아혁명은 계급 철폐와 사회 정의를 선포했다. 그러나 위대한 이슬람혁명은 이미 1300년 전에 이 모든 것들을 선언했다." — 하산 알 반나(이슬람 근본주의의 시초 '무슬림 형제단' 창립자)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서양이 발전한 이유 역시 이슬람의 뛰어난 점을 먼저 발견해 수용한 덕분이라고 봤습니다. 반대로 이슬람 국가들은 본래의 이슬람으로부터 멀어져 쇠락했다고 주장했죠. 따라서 본래의 이슬람으로 돌아간다면 이슬람 국가들이 다시금 찬란한 발전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고 설파합니다. 이슬람 근본주의의 시각에서 1930~40년대에 걸쳐 진행된 경제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은 서구 문명이 무너지고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낡은 이슬람을 버리고 서구의 가치와 문화를 받아들여 발전을 이루고자 했던 아랍 민족주의자들과 달리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 서구 문화는 극복의 대상입니다. 발전의 해답은 이슬람의 뿌리에 있다고 여기죠.

따라서 이슬람 세계가 약화되어 유럽 제국의 식민 지배를 받고 오늘날까지 서방에 뒤처져 있는 원인이 지나치게 서구화해 이슬람의 가르침에서 멀어진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직업도 없고 가난에 허덕이며 차별받는 빈곤층들은 이런 이슬람 근본주의에 쉽게 빠져듭니다. 현재의 암울한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다시 이슬람의 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설득받죠. 이것이 바로 이슬람을 이념적 혹은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이슬람주의'입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선 세속주의 세력이나 외세에 대한 무력투쟁도 정당하다고 여깁니다. 이슬람 사회를 타락한 적이니까요.

핵심

근본주의의 맹점

1️⃣ 시대와의 괴리

이슬람 국가는 신앙 공동체인 움마가 확대돼 만들어졌습니다. 주권은 신에게 있죠. 그렇기에 신의 계시를 기록한 쿠란이 헌법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1400여년 전 쓰인 쿠란이 무함마드 사후 더 이상 변경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알라가 한 번 계시한 말씀은 영원불변하며, 2화에서 짚었듯 교리의 변질을 우려해 편집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슬람 법학자들이 해석을 통해 겨우 유연성을 발휘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고 권력자의 입맛에 따라 악용될 여지가 큽니다.

2️⃣ 선별적 해석

근본주의가 답을 구하는 방식은 환원주의입니다. 지독하게 전통을 따릅니다. 그러나 근대화와 세속주의의 공포에 사로잡힌 근본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지켜야 할 전통을 되레 왜곡하게 됩니다. 전통의 근본주의적 해석을 공고히 하고자 교리를 선택적으로 적용하는 우를 범하는 거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인용하는 공격적이고 호전적인 구절들은 극히 일부입니다. 쿠란의 다원성을 무시하고 평화와 관용, 용서의 가치를 설파하는 많은 구절과 맥락을 외면한 인용으로써 폭력을 정당화하죠.

예를 들어 많은 무슬림 사회에서 여성차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확히 표현하면 이슬람 교리가 보장하는 권리조차 여성들에게 주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배경과 맥락에 따라 이해하는 쿠란과 하디스에는 꽤 진보적으로 남녀평등을 언급하지만, 남성 중심으로 권력이 분배된 무슬림 사회에서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슬람 교리를 선별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해 온 폐단이 큽니다.

예시

쿠란은 히잡 착용을 강제하는가?

밖으로 나타내는 것 이외에는 유혹하는 어떤 것도 보여서는 아니 되느니라. 즉, 가슴을 가리는 수건을 써서 남편과 그의 부모, 자기 부모, 자기 자식, 자기의 형제, 형제의 자식, 소유하고 있는 하녀, 성욕을 갖지 못하는 하인, 그리고 성에 대해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는 어린이 이외의 자에게는 아름다운 곳을 드러내지 않도록 해야 하니라. — 쿠란 24장 31절

신체를 가리는 이슬람 전통 복식인 히잡의 하나인 부르카를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 여성을 탈레반이 무자비하게 총살해 국제사회의 뜨거운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아랍어로 '가리다'를 가리키는 히잡은 보통 쿠란에서 비롯됐다고 주장되지만, 정작 쿠란에선 정숙한 옷차림을 권장할 뿐입니다. 히잡을 반드시 착용하라거나 신체 어느 부위를 반드시 가리라는 식의 언급이 없죠.

히잡은 본래 아라비아 사막의 뜨거운 열기를 견디기 위해 필요한 물품이었습니다. 마땅히 냉방기구가 없던 때에 두건과 망토 등으로 몸을 가리는 일은 필수였죠. 이는 역시나 뜨거운 지중해성 기후를 이겨내야 했던 그리스 정교회나 로마 가톨릭교에도 남아있는 풍습입니다.

히잡 착용에 목숨을 잃을 만큼 엄격한 잣대를 들이민 것은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가 들어서고 이에 영향을 받은 탈레반이나 IS가 요구하면서부터입니다. 대다수 국가에선 이미 이러한 극단적 근본주의에서 벗어났지만 극단주의 무장단체들은 이를 고수하고 있죠. 두 조직 사이에서도 히잡으로 인정하는 형태가 다를 만큼 원칙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똑똑! 히잡에 대한 역사적 이야기와 이를 둘러싼 논쟁의 요지를 똑똑 브리프에서 만나보세요.

? 참고한 도서 및 자료는 똑똑 홈페이지 본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이슬람 근본주의를 토대로 한 극단주의 무장단체의 이슬람 오용을 살펴보는 '이슬람의 왜곡된 해석'이 이어집니다.

이슬람의 왜곡(sub. 탈레반은 왜?)

에디터의 노트

지난 화에서 이슬람 무장단체의 사상적 배경이라 할 수 있는 '근본주의'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이번에는 이어서 탈레반이 자행하는 인권 유린 행태의 근거를 찾아봅니다. '이슬람 율법의 틀 안에서' 국가를 운영한다는 탈레반의 말은 신뢰할 수 있는 걸까요? 알라는 정말 무슬림에게 차별과 탄압을 가르친 걸까요?

현상

혼돈의 아프간, 사라진 여성 인권

20년 만의 탈레반 재집권으로 아프가니스탄은 깊은 혼돈에 빠져 있습니다. 지난 8월 탈레반은 수도를 장악한 뒤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이슬람 정부"를 구성하고 "이슬람 율법이 보장하는 범위에서 여성 인권을 최대한 존중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한 젊은 여성이 탈레반의 총격으로 사망했습니다. 부르카를 입지 않고 외출했다는 이유였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탈레반 대원이 미혼 여성의 집에 찾아와 결혼을 강요하는가 하면 수많은 여성이 일터와 학교에서 쫓겨났습니다. 남성 동행 없인 외출도 어렵습니다. 이게 정말 이슬람의 가르침일까요?

내용

쿠란 속 여성 인권

남성의 우월성? 여성은 소유물?

남성은 여성의 보호자라. 이는 알라께서 여성들보다 강한 힘을 주었기 때문이라. 남성은 여성을 그들의 모든 수단으로써 부양하나니 ... 먼저 충고를 하고 그 다음 잠자리를 같이 하지 말 것이며 셋째로는 때려 줄 것이라. 그러나 다시 순종할 경우는 그들에게 해로운 어떤 수단도 강구하지 말라. — 쿠란 4장 34절

이슬람 교리가 남성의 우월함과 여성에 대한 폭력을 긍정한다는 근거로 소환되는 문제의 구절입니다. 이 부분 때문에 하디스나 샤리아의 적용 문제도 해석에 따라 갈리는 건데요. 그러나 쿠란은 남녀 간의 생물학적 차이에 따른 권리와 의무가 있음을 밝힐 뿐입니다. 당시 남성이 생업에 나섰던 시대적 배경 속에서 여성의 보호를 덕목으로 규정한 것이죠.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거나 여성의 주체성을 억압하기 위한 표현이 아닙니다. '때려도 된다'는 내용 역시 품행이 정숙하지 않은 여자에 한해 가장 나중에 동원될 수 있는 수단입니다. 지금 관점에선 그래도 문제지만요.

이 4장은 여성의 권리를 다루는 장입니다. 오히려 이야기를 여는 첫 절에서 강조하는 것은 남녀가 동등한 존재라는 점이죠. 둘 모두 '알라께서 한 몸에서 창조'했음을 이야기합니다. 신앙을 통해 천국에서 누릴 보상 또한 같다는 점을 통해 알라 앞에 남녀가 평등함을 역설하죠.

일부다처제의 배경

이슬람은 4명까지 일부다처제를 허용합니다. 그러나 축첩 제도처럼 남성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 역시 위와 마찬가지로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성격이 큽니다. 이슬람이 생겨난 7세기 아라비아반도에서는 전쟁으로 인해 미망인과 고아를 구제하는 것이 큰 문제였습니다. 당시 남성보다 여성의 비율이 훨씬 높았으며, 여성이 홀로 생계를 꾸려나가기엔 치안 수준과 노동 강도 면에서 쉽지 않은 환경이었죠. 지금도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은 생계를 책임지거나 가정 지출을 부담하지 않아도 됩니다. 여성은 '어머니'라는 자체로 존경받아 마땅하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무함마드의 '일부다처제'는 생계가 어려운 여성들을 구제하기 위해 한 남성이 여러 여성을 보살필 수 있게 한 겁니다. 일종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였던 셈이죠. 그러므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남성만이 여러 아내를 책임질 수 있었으며, 어느 한 명을 편애하지 않고 모든 부인을 평등하게 대해야 함이 쿠란에 명시돼 있습니다. 그럴 수 없다면 차라리 '혼자 있게 내버려 두라'고 말하죠. 이른바 '조건'이 있는 셈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과부나 고아와 같이 취약층을 돕기 위한 목적이어야 하며, 모든 부인을 똑같이 존중해야 하죠.

여성 해방은 이슬람 태동의 과업

이슬람은 창시 당시만 해도 남녀평등에 있어 매우 진보적이었습니다. 사도 무함마드의 뜻도 그러했죠. 무함마드가 살았던 6세기 말~7세기 아랍 사회에서 여성과 아이는 한 사람으로서 제대로 된 인격권이 없었고, 무함마드는 이를 개선하려 했습니다. 여기에는 그의 부인의 영향도 컸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무함마드가 종교적 지도자가 된 데에는 그의 첫 번째 부인 카디자의 덕이 컸기 때문입니다.

무함마드보다 15살이 많은 과부였던 그녀는 부유한 상인이었기에 무함마드에게 경제적·사색적 자유를 제공할 수 있었죠. 쿠란은 서구 사회에선 수 세기나 뒤에야 이야기되는 이혼과 상속에 대한 권리를 내용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쿠란은 58장에서 선지자와 진지하게 토론하며 의견을 개진하는 여성의 모습을 담는 등 표현의 자유에 있어서도 공평히 보장하고 있죠. 이슬람 현대사 속에서도 드물지만 공직에 출마해 자신의 뜻을 펼치는 여성의 사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키워드

탈레반의 행동 원리, 파슈툰왈리

현재 아프가니스탄을 재점거한 탈레반의 행동 원리를 설명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자행하는 인권 문제 역시 이 두 가지를 근거로 합니다. 첫 번째는 누차 얘기해온 바 있는 이슬람 근본주의이고, 두 번째가 바로 파슈툰왈리(Pashtunwali)입니다.

1994년 공식 조직된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최대 민족인 파슈툰족의 말로 '학생들'이라는 뜻입니다. 아프간은 그들 법으로 인정하는 민족만 14개에 달할 정도로 다수의 부족국가인데요. 이 탈레반이 무얼 배운 '학생들'이냐면 바로 이슬람 근본주의입니다. 그러니 샤리아의 해석 또한 매우 원리·원칙적이죠. 그들이 텔레비전과 음악, 영화를 금지하는 것은 당연히 쿠란에 규정돼 있지 않은 일일뿐더러 이슬람을 타락시킨 서구 문물이기 때문이죠.

이슬람에 앞서는 부족 관습법

탈레반이 여성의 복식을 제한하거나 남성의 동행 없인 외출을 허락하지 않고 등교나 출근도 제한하는 등의 행태는 사실상 그들의 부족 관습법인 파슈툰왈리와 연관 깊습니다. 탈레반이 파슈툰족의 말이라고 얘기했듯, 탈레반의 뿌리는 파슈툰족입니다. 그들을 움직이는 부족 관습은 이슬람이 있기 전부터 존재한 유구한 전통이고요. 이슬람이 있기 전 존재하던 360개 이상의 우상은 알라로 정리했지만, 부족적 관습은 어찌하지 못한 겁니다. 탈레반에게 이슬람보다 가까운 것이 파슈툰왈리입니다.

문제는 두 가지입니다. 먼저 파슈툰왈리의 중요한 가르침 중 하나는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여성을 보호한다'입니다. 언뜻 낭만적인 기사도처럼 들리지만 여성을 매우 수동적이며 불완전한 존재로 보는 시각입니다. 여성을 독립적 존재로 보지 않고 반드시 남성의 보호를 받아야만 하는 존재로 여기죠. 그렇기 때문에 남성의 허락 없인 밖에 나갈 수도 없는 겁니다. 보호가 지나치다 못해 심한 구속이 된 건데요.

게다가 파슈툰왈리는 '명예'를 굉장히 중요시합니다. 명예가 실추되는 것은 곧 죽음과 다름없다고 여기죠. 그런데 여성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 하는 일은 파슈툰족에서 곧 명예에 금이 가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억압의 수위가 높고 처벌 역시 횡행하는 거죠. 또한 한 사람의 명예는 곧 부족 전체의 명예와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족 차원에서 엄벌을 내리는 일에도 익숙합니다.

게다가 아프가니스탄의 사회 발전은 매우 뒤처진 편에 속합니다. 내전에 시달리느라 미디어 보급도 안 돼 있고 구석구석 정부의 영향력도 발휘하기 힘듭니다. 종교적·정치적 특수성 때문에 국가의 사법 체계나 행정 시스템 마련도 미숙하죠. 하물며 무장집단인 탈레반 체제라면 더하죠.

핵심

이슬람의 탈을 쓴 자의적 정치

탈레반이 따르는 것은 이슬람이라기보다 자기 부족의 오랜 관습인 파슈툰왈리입니다. 이슬람은 통치의 정당성을 포장하고 내부를 포용하기 위한 명분 내지 얼굴마담에 가깝습니다. 이슬람은 이슬람주의로 전략적으로 활용될 뿐입니다. 이슬람의 율법 안에서 여성의 인권을 보장하겠다고 밝혔으나 파슈툰왈리에 따라 총살하는 모습에서 단적으로 드러나죠. 국제사회에서 탈레반의 대내·대외 정치에 대해 우려하고 그 폭력성을 염려하는 등 신뢰를 지니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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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탈레반 체제의 앞으로를 읽어보는 '아프간을 둘러싼 국제 정세'가 이어집니다.

오늘날 아프간 정세의 이해(with 탈레반 2.0)

에디터의 노트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지도 한 달이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사이 또 다른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의해 카불 공항이 폭탄 테러에 휩싸이는 일도 있었는데요. 여전한 아프간 사회의 불안과 국제 사회의 눈총 속에서도 탈레반은 기어이 과도정부를 구성해 발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탈레반 정부에 대한 제재나 인정과는 별개로 이젠 그들을 국제 사회 안에서 사고해야 하는 현실적 필요를 맞닥뜨리고 있는데요. 똑똑 리포트 <키워드로 읽는 이슬람> 마지막 화에서는 오늘날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간 정세를 이해하는 데 도움 될 이야기를 정리했습니다.

현상

IS의 카불 공항 테러,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지난달 26일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또 한 번의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바로 극단주의 무장단체 IS가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 공항에 폭탄 테러를 저지른 건데요. 테러로 인한 사망자와 부상자 수는 각각 170명과 1300명. 희생자에는 미군, 탈레반, 아프간인이 모두 포함돼 있습니다. 테러를 저지른 IS-호라산(IS-K) 역시 "미군과 미국에 협력한 아프간인을 표적으로 한 것"이라고 밝혔죠.

  • IS-호라산: 호라산 지역을 담당하는 IS 분파 중 하나. '호라산'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중앙아시아, 이란 동부를 아우르는 옛 지명.

이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18~19일 아프가니스탄 잘랄라바드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 역시 IS-K는 자신들이 배후임을 밝혔습니다. 이 테러로 숨진 탈레반 전사는 십수명에 달하죠.

언뜻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탈레반이나 IS나 우리 눈에는 똑같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로 보이는데 말이죠. 물론 탈레반과 IS는 순수한 이슬람 사회를 만들자는 이슬람 근본주의를 공유합니다. 이를 위해 신앙의 이름으로 폭력을 정당화하고 쿠란을 선별적으로 해석한다는 점 역시 동일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신성한 전쟁'이라는 뜻의 지하드입니다.

본디 지하드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큰 지하드'는 알라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개인적 투쟁을 가리킵니다. 성전(聖戰)을 가리키는 '작은 지하드' 역시 조건적인 방어의 성격이 강하죠. 외부의 침입과 탄압으로부터 맞서 이슬람을 지키기 위한 전쟁입니다. 여기에는 이슬람 초기 무함마드가 메카를 떠나 메디나로 이주했어야 할 만큼 지독했던 종교적 박해나 이후 십자군전쟁과 같은 역사적 배경이 존재합니다. 또한 성전일지라도 민간인에 대한 살상이나 자살 테러 등은 모두 이슬람 교리에서 금지하는 행위입니다. 창조물인 인간의 목숨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창조주 알라뿐이기 때문입니다.

이 테러리스트들은 쿠란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기에 그들의 경전 해석을 두고 토론한다든가 그들의 범죄를 두고 '이슬람'에 책임을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 카렌 암스트롱, <신의 전쟁>, 593쪽.

그러나 탈레반, IS와 같은 극단주의 무장단체들은 이와 같은 교리를 자신들의 목적에 따라 해석하고 사용합니다. 그리고 이 '목적'에서 집단 사이 차이가 존재합니다. 차이는 극단주의나 폭력의 강도로 나타나죠.

IS는 이슬람 무장단체 내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세력으로 꼽힙니다. 이유는 IS의 궁극적인 목적이 모든 무슬림을 규합하고 세계의 중심에 이슬람 국가를 세우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탈레반의 목적은 아프간에 과거 이슬람 이상세계를 복원하는 데까지입니다. IS의 야욕이 전 세계에 미친다면 탈레반의 관심은 비교적 자국에 국한하죠.

IS의 눈에 탈레반이 '순수한 이슬람'이 아닌 배신자 또는 변절자로 비치는 이유입니다. 지난 2020년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평화 협정을 맺고 미군 철수를 이끌어낸 것부터 오늘날 국제 사회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협상에 나서는 모습 모두 배신 행위이자 지하드를 버린 이단 행위라는 거죠.

가뜩이나 국정 운영 능력이 부족하고 자금난에 시달리는 탈레반은 IS와의 내전까지 감당해야 하는 삼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그나마 IS는 미국이나 서구 유럽, 정교 분리의 세속주의 국가들에도 적대적이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공통의 안보 위협인 셈입니다.

내용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의 온상, 1979년 소련 침공과 이후 내전

탈레반과 IS, 그리고 IS의 모태라 할 수 있는 알카에다의 등장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닙니다. 모두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이후 내전 기간 동안 생겨났습니다. 당시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아프가니스탄은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고 있으며 과거에는 중국과 서양을 오가는 실크로드 중 하나이기도 했죠. 이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은 근현대에 들어 서구 열강들의 침탈 대상이 되었는데요. 1960년대에는 소련이 인근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을 공산화하며 아프간에도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힘입어 1978년 공산당 세력이 쿠데타를 통해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잡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후 아프가니스탄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이슬람 세력의 반란이 일어나죠. 당시 공산당 정부가 시행한 여성 참정권 및 직업 선택의 자유 보장, 여성 강제 결혼 철폐 및 부르카 미착용 허용과 같은 사회개혁이 무슬림의 반발을 샀기 때문입니다. 이슬람 전통을 어지럽히는 침략 행위로 본 거죠.

궁지에 몰린 친소련 공산당 정부는 소련에 도움을 요청합니다. 소련은 1979년 12월 아프가니스탄에 대규모 병력을 파견하죠. 이에 무슬림들은 지하드를 선포하고 대대적인 전쟁에 돌입합니다. 기나긴 전쟁이 시작되고 수많은 젊은이가 스스로 '무자헤딘'(지하드를 수행하는 전사)을 자청하며 아프가니스탄에 모여듭니다. 끈질긴 게릴라전 끝에 소련은 결국 1989년 2월 철군하기에 이르는데요. 이후에도 혼란은 계속돼 아프간 정부군과 이슬람 반군의 내전이 이어지죠.

소련과의 전쟁과 이후 내전을 통해 생겨난 것이 바로 탈레반과 알카에다 그리고 IS입니다. 지난 화에서 탈레반은 1994년 공식 조직됐으며 그들은 이슬람 근본주의를 배운 '학생들'이란 뜻을 지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 근본주의를 배운 이유가 바로 당시 소련군과 공산주의에 대항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길러진 탈레반 전사들은 내전을 종식하고 2001년까지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하게 되죠.

1987년 아프간 무자헤딘의 모습. ⓒerwinlux via wikimedia commons(CC-BY-SA)

2001년 9·11 테러로 악명을 떨친 알카에다 역시 소련과의 전쟁 과정에서 생겨났습니다. 당시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은 소련과의 전쟁에서 무자헤딘을 지원했던 인물입니다. 주로 후방 지원을 맡던 그는 1986년경부터 전장에 나섰고, 이후 이슬람 전사를 양성하는 훈련캠프를 만들어냅니다. 이것이 후에 알카에다로 발전하죠. 알카에다는 탈레반과 탈레반 정권을 지원하며 밀월관계를 형성했고, 알카에다의 야욕은 세계로 향합니다.

IS는 알카에다에서 파생한 조직입니다. 모태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응하고자 만들어진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AQI)죠. 이슬람 제국의 통치를 꿈꾸는 '칼리프' 국가를 세우고자 한다는 점에서 알카에다와 이상을 공유하지만, IS의 행보는 더욱 급진적입니다. 극단주의 단체를 병합해 칼리프 정권을 자처하는 한편, 미국이나 서방 세계뿐 아니라 자신들의 뜻에 동의하지 않는 무슬림에게도 서슴없이 총구를 겨눕니다.

핵심

열강의 세력 다툼 속에 자라난 극단주의 무장단체

아프가니스탄이 원래 폐쇄적인 종교성을 발휘하는 국가는 아니었습니다. 탈레반의 재집권 이전인 2000년대가 아니라 1970년대 이전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1964년에는 헌법에 남녀평등을 명시하고 여성의 투표권과 참정권까지 보장했죠. 미니스커트를 입을 정도로 자유로이 거리를 활보하는 아프간 여성들의 모습도 1970년대의 풍경입니다. 수도 카불은 '중앙아시아의 파리'로 불릴 정도였죠.

그러나 그런 아프가니스탄에서 극단주의 무장단체가 출현할 정도로 이슬람이 변질된 것은 전쟁 때문입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기존 사회를 변질시키는 소련 공산주의의 침투는 외부 세력의 침공에 대항하는 지하드를 발동시키기에 충분했죠. 전시 상황 및 이후 복구 과정에서 이슬람은 개방성과 근대성을 잃고 폐쇄적이며 배타적인 모습을 띨 수밖에 없었고요.

또한 이때 소련에 대항하는 아프가니스탄 전사들을 아낌없이 후원한 것이 바로 미국입니다. 소련과 공산주의 진영의 세력 확대를 저지하고자 무기며 교육 비용까지 물심양면으로 지원했죠. 그 결과 미국의 바람대로 소련이 패퇴하긴 했으나, 소련이 물러간 자리엔 미국의 세금을 먹고 자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가 자라났습니다.

전망

탈레반 2.0에 대한 각국의 자세

그럼 이제 '2.0 버전'으로 돌아온 탈레반 체제 아프가니스탄을 둘러싼 국제 지형도를 돌아볼까요.

탈레반

탈레반의 과제는 국제 사회의 인정입니다. 국제 사회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그동안과 다른 포용적인 정부를 구성할 것이라 얘기하고 있죠. 실제로 과거 일방적 성명만 노출했던 것과 달리 영어를 구사하는 대변인을 내세워 유화 발언을 내놓고 있는데요. 그러나 아프간 내부는 물론 국제 사회에서도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지난 7일 탈레반은 향후 6개월 동안의 과도정부 구성을 공개했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내각 명단 33명 전원이 친 탈레반 강경파 남성입니다. 포용은 허울에 불과했던 거죠. 공식 내각에선 여성 및 전 정부 관료를 포함하리라는 일부 의견이 있지만, 역시 신뢰하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현재 탈레반 체제가 국제 사회의 인정을 받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재정 문제 때문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은 이전에도 국가 예산의 3분의 2를 국제 원조로 충당해 온 가난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탈레반 집권 이후 미국의 자금 동결 조치를 비롯해 서구의 지원 중단을 맞은 상태죠. 얼마 전 국제 사회로부터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지원을 받기로 했지만, 여전히 목이 마릅니다.

중국

중국은 탈레반 정부에 우호적인 대표적인 나라입니다. 어찌 됐건 미군이 철수한 영향력을 선점하고 싶어 하는데요. 여기에는 경제 및 안보라는 두 가지 셈법이 존재합니다. 먼저 아프가니스탄은 그 위치상 중국을 중심으로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를 잇는 실크로드 사업인 '일대일로' 프로젝트 구현에 빼놓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아프가니스탄에는 반도체나 첨단산업에 사용되는 희토류가 풍부하게 매장돼 있습니다. 이를 기술 경쟁에 활용할 수 있다면 중국몽(中國夢)에도 가까워집니다. 그렇기에 탈레반이 과도정부 구성을 발표하자마자 물자 지원의 뜻을 밝혔죠. 미국의 자금 동결에 대해서도 부당한 처사라며 스피커 노릇을 해줬고요.

안보 문제도 있습니다. 중국은 매우 일부지만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게다가 대부분 이슬람교를 믿고 있는 신장 지역 위구르족을 탄압해 온 터라 탈레반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죠. 반중국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탈레반 체제 아프가니스탄과 결탁하는 일만은 피하고 싶은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손은 내밀되 테러 세력과 단절하길 요구하는 이중 자세를 취하고 있고요.

미국

미국은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약 20년에 걸친 인명, 재정 피해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손을 떼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상보다 너무 빨리 탈레반이 들어섰고, 이로 인해 자행되는 각종 인권 유린 사태는 국제 사회의 리더로서 미국의 이미지를 깎아 먹었습니다. 첨단 무기까지 남겨두며 유라시아 지역 헤게모니에서 이탈한 미국의 속내가 IS 견제이든 중국 견제이든, 현재로선 바이든 정부의 오점으로 작용하고 있는데요.

약 70억달러에 달하는 아프가니스탄 내 미국 자산을 동결하고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탈레반 정부를 마냥 무시할 수만도 없는 노릇입니다. 탈레반보다 더 막 나가는 무장집단 IS 때문입니다. 카불 공항에서 실제로 미군을 노린 IS를 감시하려면 탈레반의 협조를 통한 아프가니스탄 내 인프라 구성이 불가결합니다. 그렇기에 미국 측은 탈레반 정부와 관계 개선의 조건으로 인권 존중과 함께 테러 근절에 대한 의지를 요구하는 겁니다.

국제 사회의 과제가 된 탈레반 2.0

이번에 들어선 탈레반 정권은 과거 유래를 찾기 힘든 기묘한 문제적 정부입니다. 인권 유린 행태는 여전하고 과연 다른 테러 집단과 유기적 관계를 끊어낼지 역시 불분명하지만, 앞으로 국제 정세를 이야기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조각이 된 점은 분명합니다. 이번 사태로 발생한 수많은 아프간 난민에 대한 처우 문제 역시 나라를 불문하고 난항을 겪고 있는 상태인데요. 종교와 현대사의 어둠을 먹고 자란 탈레반 2.0은 존재 자체로 세계 각국에 물음과 과제를 던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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