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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최규하(崔圭夏, 1919~2006) 출처: 최규하대통령기념사업회

제12대 국무총리, 제10대 대통령
본관은 강릉(江陵), 자(字)는 서옥(瑞玉), 호(號)는 현석(玄石)이다.
1919년 7월 16일 아버지 최양오(崔養吾)와 어머니 전주이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부인은 홍기(洪基) 여사이다.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최재민(崔在民)에게 한학(漢學)을 배워 소학(小學),논어(論語), 맹자(孟子), 대학(大學) 등을 익혔다.

  • 1932년 원주보통학교(원주초등학교 전신)
  • 1937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경기고등학교 전신)
  • 1941년 동경고등사범학교
  • 1943년 만주 대동학원(大同學院)을 차례로 졸업한 이후
  • 1945년 9월부터 서울사범대학에서 교직생활을 하였다.

1946년 중앙 식량행정처 기획과장으로 공직에 입문하여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직후 농림부 양정과장이 되어 그 해 11월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아시아지역 식량회의에 한국대표로 참석하였다.
이 식량회의에서 외국어 능력과 국제회의 대표로서의 활동력을 인정받았고, 1951년 9월 외무부 통상국장으로 발탁되어 외교관직을 시작하였다.

1952년 주일(駐日) 한국대표부의 총영사(總領事), 1957년 참사관(參事官), 1959년 공사(公使)를 역임하면서 유엔극동경제위원회(ECAFE) 제11, 12, 13차 회의의 한국대표로 참석하여 무역진흥을 위해 노력했다.

1959년 외무부차관이 되었다가 1960년 5월 사임한 이후

  • 1962년 외무부장관 고문
  • 1963년 외무부 본부대사 겸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고문
  • 1964년 주(駐)말레이시아 특명전권대사(特命全權大使)
  • 1965년 제1차 아시아태평양각료회의(ASPAC) 사무총장
  • 1966년 제17차 콜롬보플랜각료회의 수석대표 등을 역임하였다.

1967년부터 1971년까지 외무부장관으로 재직하면서

  • 유엔통상및개발위원회 77개국 각료회의 수석대표
  • 제22 · 23 · 24 · 25차 유엔총회 수석대표
  • 1 · 21사태 수습을 위한 미국 밴스 특사와의 회담
  • 월남참전 7개국 외무장관 회의
  • 제3 · 4차 아시아태평양각료회의(ASPAC) 수석대표
  • ASPAC 사회 · 문화센터 설치 협정조인
  • 제19차 콜롬보플랜각료회의 수석대표 및 총회의장
  • 아시아 외무장관 회의(자카르타) 수석대표
  • 월남 · 태국 · 대만 · 말레이시아 4개국 친선방문
  • 프랑스 드골 대통령 서거 조문 사절단장 등의 직무를 수행하였다.

1971년부터 1975년까지 대통령외교담당특별보좌관으로 재임하면서

  • 남북조절위원회 위원으로 두 차례 평양 방문
  • 미국 존슨 대통령 서거 조문사절
  • 대통령특사로 인도네시아 · 말레이시아 · 필리핀 · 태국 · 버마 · 싱가폴 · 일본 · 네팔 · 인도 · 이란 · 레바논 · 사우디아라비아 · 이디오피아 · 케냐 · 레소토 · 스와질랜드 · 보츠와나 · 우간다 · 덴마크 · 스웨덴 · 노르웨이 · 아이슬랜드 등을 친선방문 하였으며
  • 특히, 대통령특사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를 방문하여 석유의 안정적 공급문제를 해결하였다.

1975년 12월 국무총리 서리를 거쳐 1976년 3월부터 1979년 9월까지 제12대 국무총리로 재임하면서

  • 터키 · 이란 · 사우디아라비아 · 호주 · 뉴질랜드 · 인도네시아 등을 국무총리로서 공식 방문
  • 1979년 10월 26일의 박정희 대통령 유고로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고,
  • 12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한 대통령선거에서 제10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나
  • 12월 12일 신군부세력의 군사반란으로 대통령 통치권을 행사하지 못하다가 1980년 8월 16일 대통령직을 사임하였다.

대통령직 사임 이후

  • 1981년 국정자문회의 의장
  • 1983년 전직 대통령으로서 그리스 · 이태리 · 스페인 · 포르투갈 친선방문 및 벨지움 · 덴마크 · 스위스 · 독일 · 프랑스 순방
  • 1985년 미국 · 캐나다 · 자메이카 · 베네주엘라 · 도미니카 등 순방, 1991년 '민족사 바로 찾기 국민회의' 의장
  • 1993년 '민족사 바로 찾기 국민회의' 명예의장 등의 활동을 하였다.

최규하 전대통령은 대한민국 헌정사상 불편부당(不偏不黨)한 직업공무원으로서 과장 · 국장 · 차관 · 장관 · 국무총리를 차례로 거쳐 대통령이 된 첫 번째 인물이며, 청렴하고 강직한 성품과 일생동안의 검소한 생활은 귀감이 되었다.
2006년 10월 22일 향년 88세를 일기를 영면하였다. 원주시는 2008년 10월 22일 최규하 전대통령이 유년시절을 보낸 생가터에 유허비(遺墟碑)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