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6일은 묘한 날이다. 37년 전 오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됐다. 2016년 비슷한 시기, 그의 딸 박근혜 대통령은 “정말 대통령 맞느냐”는 세간의 질타를 받고 있다. 동시에 또 다른 부녀도 주목을 받고 있다. 박 대통령과 얽히고 설킨 최태민 목사(1994년 사망)와 최순실씨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9년 10월26일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에 맞아 숨졌고, 김재규는 당시 최태민 목사의 비리 의혹 등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가 권력의 미움을 샀다. 그가 박 전 대통령을 암살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최태민 목사였다는 당시 기록물과 발언 등을 다시 살펴봤다.
■ “최태민 같은 자는 백해무익하므로 죽어 없어져야 한다”1992년 8월29일치 <동아일보>에 김충식 기자(현 가천대 교수)가 쓴 연재물 ‘남산의 부장들’ 편엔 10·26의 서막이 소개돼 있다. 대통령 경호실장 차지철이 박정희 대통령의 신임을 점점 더 얻어가는 반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최태민 목사 사건으로 대통령으로부터 면박을 당했다는 내용이다. 1979년 11월 합동수사본부 기록에 나타난, 최태민에 대한 김재규의 ‘증오’가 정보부 수사파트 케이(K)국장의 진술로 남아 있다.“김(재규) 부장은 ‘최(태민) 같은 자는 백해무익하므로 교통사고라도 나서 죽어 없어져야 한다’고 증오를 표시했다. 새마음봉사단의 부총재인 사이비 목사 최가 사기·횡령 등 비위사실로 퇴임한 후에도 계속 막후에서 실력자로 영향력을 행사하여 각 기업체 사장들을 운영위원으로 선임하고 성금을 뜯어내는 등 새마음운동 취지를 흐리게 해서 계속 동향을 감시하라는 김 부장의 지시를 받았다.”■ 김재규 “10·26 동기 중 하나는 최태민”김재규는 변호인들이 이미 항소이유서를 작성해 제출했음에도 황인철 변호사를 불러 항소이유보충서를 구술했다. 이때 그는 “법정에서는 공개할 수 없지만 반드시 밝혀야 할 문제”로 “구국여성봉사단과 관련한 큰영애의 문제”를 거론한다.“구국여성봉사단이라는 단체는 총재에 최태민, 명예총재에 박근혜양이었는 바, 이 단체가 얼마나 많은 부정을 저질러왔고, 따라서 국민 특히 여성단체들의 원성 대상이 되어왔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아니합니다. (…) 본인은 백광현 당시 안전국장을 시켜 상세한 조사를 시킨 뒤, 그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던 것이나 박 대통령은 근혜양의 말과 다른 이의 보고를 믿지 않고 직접 친국(임금이 중죄인을 몸소 신문하던 일)까지 시행하였고, 그 결과 최태민의 부정행위를 정확하게 파악하였으면서도 근혜양을 그 단체에서 손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혜양을 총재로 하고 최태민을 명예총재로 올려놓아 결과적으로 개악을 시킨 일이 있습니다.”(김정남 전 청와대 교육문화사회수석, 2012년 6월12일치 <새마갈노> 칼럼 중)■ 김재규 변호인 “최태민 괜히 조사해서…”김재규의 변호를 맡았던 안동일 변호사는 2005년 <10·26은 아직 살아 있다>라는 책을 펴낸 뒤 <신동아>와 한 인터뷰에서 “김재규가 10·26 혁명을 일으킨 간접적인 동기가 박정희의 문란한 사생활과 가족, 즉 자식들 문제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안 변호사는 “김재규는 큰영애인 박근혜가 관련된 구국여성봉사단의 부정과 행패를 보고 분개했다고 해요. 이런 일들이 대통령이나 박근혜 자신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고 조사를 시켰다는 겁니다. 박정희는 영부인이 돌아가신 다음부터 자식들을 애지중지하고 철저히 감싸고 돌았다고 해요. 당시 항간에 말이 많던 최태민이 총재, 박근혜가 명예총재를 맡고 있었는데, 김재규가 문제점을 보고한 후 박근혜가 총재, 최태민이 명예총재가 됐습니다. 박정희가 최태민의 실권을 뺏는답시고 두 사람의 자리를 맞바꾼 거지요. 김재규는 자기가 괜히 조사를 해서 오히려 ‘개악’이 됐다고 후회했대요”라고 말했다.■ 박근혜·최태민 보고 받은 박정희 “가슴 찢어진다”<월간조선> 2005년 11월호를 보면, 선우련 청와대 공보비서관은 1997년 별세하기 전 남긴 비망록에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와 큰딸을 불러 친국하는 모습을 묘사했다. 그 후 박정희 대통령은 선우련 비서관에게 △최태민을 거세할 것 △구국봉사단 관련 단체를 모두 해체할 것 △최태민이 박근혜와 청와대 주변에 얼씬도 못하게 할 것을 지시했고, 큰딸 박근혜는 상심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간 최태민과 관련한 보고가 올라올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네”라고 말했다고 선우련 비서관은 기억했다.■ “최태민, 박정희 일가 모든 불행의 시발점”1979년 10월23일, 그러니까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기 3일 전 김재규는 대통령에게 문건 하나를 직접 보고한다. 최태민의 횡령, 사기, 변호사법 위반, 이권 개입, 융자 브로커 행각, 성추문 등이 적나라하게 들어 있는 보고서다. 2007년 대선 당시 <선데이저널>은 ‘최태민, 박정희 일가 모든 불행의 원초적 시발점’이란 제목으로 이 보고서 일부를 보도했다. 무려 44건의 비리 대부분이 권력형 부정행위였고, 이것이 박정희 대통령의 정치적 배경이 물러지는 단초가 됐다는 취지의 보도였다.
■ 2007년 박근혜 “최태민 의혹…천벌 받으려면 무슨 말을 못해”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 나선 박근혜 후보는 검증 과정에서 ‘최태민 의혹’에 맞닥뜨렸다. 그는 <중앙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그분은 목사님으로 나라가 어려울 적에 많이 도와줬다. 월남이 패망하고 우리나라도 어려운 상황일 때 구국기도회 하면서 도와줬고 아버지마저 돌아가셔서 어렵고 힘들 때도 정신적으로도 많이 도와주고 위로해 주셨다. 저에게 고마운 분이다. (이 대목에서 박 후보는 어조를 높였다) 횡령을 했느니 사기를 했느니 하는 얘기가 있던데 실체가 없는 얘기다. 천벌을 받으려면 무슨 짓을 못 하느냐는 말도 있는데 지어내서 마음대로 매도하고 네거티브하려면 무슨 말을 못 지어내겠나”라며 ‘최태민 괴담’에 발끈했다.그러나 죽은 최태민은 산 박근혜를 맴도는 불가사의였다. (▶관련기사: <한겨레> 이름 7개, 부인 6명, 승려 목사 ‘최태민 미스터리’) <김형욱 회고록>을 보면, 최태민은 1974년 육영수 사망 직후 박근혜에게 편지를 보내 박근혜와 만나게 됐다. “어머니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 나를 통하면 항상 들을 수 있다. 육 여사가 꿈에 나타나 ‘내 딸이 우매해 아무것도 모르고 슬퍼만 한다’면서 ‘이런 뜻을 전해달라’고 했다”는 내용이었다. 죽은 이가 꿈에 나타나는 ‘현몽’인데, 최태민과 박근혜는 모두 이 편지 내용을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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