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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겟돈 전쟁이란

제1부 아마겟돈 전쟁이란 무엇인가?

이란과 이스라엘 등의 국가들이 있는 중동지역에서 전쟁의 소문이 있을 때마다 수많은 기독교인은 아마겟돈 전쟁의 전조가 아닐까 우려하며 추측을 하고 아마겟돈 전쟁에 대한 글을 씁니다. 수많은 기독교인은 요한계시록 16장에 나오는 아마겟돈 전쟁에 대한 예언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큰날인 세상의 종말이 올 때 3차 세계대전과 같은 큰 전쟁이 일어날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마겟돈 전쟁에 대하여 기독교인들이나 신학자들이 각기 다른 해석을 하였고 그 해석들은 각 시대에따라 다른 시나리오들로 변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 요한계시록이 예언하는 아마겟돈 전쟁은 무엇일까요? 먼저 이 전쟁에 대한 여러 가지 다른 시나리오와 해석, 그에 따른 오해들에 대해 살펴봅시다.

아마겟돈 전쟁의 각각 다른 시나리오

아마겟돈 전쟁에 대한 해석은 시대마다 달랐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80년 전에는 아마겟돈 전쟁을 이슬람 문화권의 터키 제국과 기독교 국가들 사이에 있을 최후의 전쟁으로 생각하는 아마겟돈 전쟁 시나리오가 대중적인 예언 해석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정세가바뀌자 아마겟돈 전쟁에 관한 이 예언 해석도 바뀌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막바지인1945년, 핵폭탄이 일본에 투하되면서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본격적인 냉전 시대가 시작되자, 아마겟돈 전쟁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아마겟돈 전쟁은 소련이 이스라엘을 침공함으로써 무신론 세력인 공산주의와 기독교 국가들 사이의 최후 대결전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고, 그래서 급기야는 중동 지역에서 최후의 대결전을 벌이게 될 것이라는 새로운 예언 해석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990년도에 소련과 동유럽이 무너지면서 냉전 시대도 과거의 역사로 흘러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몇 번에 걸친 실망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아마겟돈 전쟁에 대해서 깊은 회의와 혼돈 속으로 빠져들어 가게 되었습니다. “과연, 아마겟돈전쟁은 요한계시록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이 세상에 일어날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언제 시작되어서 어떻게 종전될 것인가? 또한 그 최후의 대결전에서 누가 최후의 승리를 쟁취하게 될 것인가?”라는 질문들은 아직도 수많은 기독교인에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입니다.

아마겟돈 전쟁에 대한 현대 기독교의 견해

오늘날 현대 기독교회는 아마겟돈 전쟁에 대하여 조금씩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기독교인들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도 그들 나름대로 최후 종말에 관한 아마겟돈 전쟁 시나리오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오늘날 현대 기독교회 안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예언해석들과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이 만들어낸 지구 종말에 관한 시나리오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비기독교인들의 견해

일반 대중적인 잡지나 공상 과학 소설 그리고 영화에서는 아마겟돈 전쟁을 인류가 전멸하는 종말적인 사건으로소개하고 있습니다.

2) 세대주의자들의 견해

대다수의 기독교 서적들은 아마겟돈 전쟁을 총과 미사일과 같은 현대식 무기를 사용하는 현대식 전쟁으로 해석합니다. 이러한 견해를 믿는 사람들은 성경에 나오는 갈멜산 근처나 아랍의 석유 지대와 사해 근처, 즉 중동 지역을 전쟁 지역으로 한정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남진 세력과 아프리카의 북진 세력, 그리고 서쪽에서 몰려오는 유럽과 미국의 군사력 그리고 동쪽에서 오는 2억에 달하는 중국의 군사력이 인류의 최후의 날에 대결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그래서 수많은 기독교인은 중동지역에 고조되고 있는 정치적 긴장과 군사적 충돌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3) 역사적인 예언 해석 원칙에 입각한 견해

성경의 예언들이 역사 속에서 성취되어왔고 성취될 것이라는 예언 해석 원칙인데 대부분의 종교개혁자가 이해했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역사적인 예언 해석에 따르면 아마겟돈 전쟁을 말세에 있을 하나님의 백성과 사탄의 세력 간에 펼쳐지는 치열한 마지막 영적 투쟁으로 보고 있습니다.

과연 어떤 가르침이 성경으로 입증될 수 있을까요? 성경은 아마겟돈 전쟁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을까요? 아마겟돈 전쟁의 실체를 성경으로 검증해봅시다.

제2부 누가 아마겟돈 전쟁에서 살아남을 것인가?

최후의 승리를 얻을 사람들

“누가 아마겟돈 전쟁에서 최후의 승리를 얻고 살아남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야말로 아마겟돈 전쟁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는 첫 번째 중요한 열쇠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아마겟돈 전쟁은 이스라엘 국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중동 지방의 무력 전쟁이 될 수도 있고,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참된 백성과 사탄의 백성 간에 펼쳐지는 마지막 대전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요한계시록이 아마겟돈 전쟁에서 승리할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계 16:12~16).

승리할 사람들의 특징

이 아마겟돈 전쟁에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게 될 사람들의 특징이 위의 성경 구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 사실에 대하여 사도 요한은 매우 흥미롭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계 16:15). 성경은 최후의 승리자인 사람들을 “옷”을 입고 다니는 자들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옷을 입어야 마지막 전쟁인 아마겟돈 전쟁에서 승리하는 이스라엘이 될 수 있다는 말일까요? 옷을 입는 것과 아마겟돈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이 문제에 대하여 성경적으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9장은 이 질문에 대해서 매우 놀라운 한 답변을 우리에게 줍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그분께 영광을 돌리세 이는 어린 양의 혼인식이 다가왔고, 그 아내도 자신을 예비하였음이라 그에게 허락하사 정결하고 흰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의라”(KJV, 계 19:7,8).

이 말씀은 마치 안개 낀 바다에 우뚝 서 있는 등대처럼 요한계시록 16장 15절에 기록된 “옷”의 의미를 비추어 줍니다. 요한계시록 19장 7, 8절을 보아 알 수 있듯이, 아마겟돈 전쟁의 승리자들이 입고 있는 “옷”은 “정결하고 흰 세마포”입니다. 그런데 이 세마포는 무엇을 의미한다고 했습니까?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의라”(8절)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마겟돈 전쟁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인 그리스도의 재 강림을 맞기 위한 준비는 “옷”을 입는 것입니다.

옷을 입는다는 의미

성경은 성도들이 “옷”을 입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관성 있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타난 옷의 의미는 그냥 의복이 아니라 “의의 옷”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사 64:6) 같다고 말함으로써, 인간의 의가 아니라 오직 예수께서 주시는 정결한 의의 옷만이 우리를 하늘 왕국의 시민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예수께서도 성도들이 마지막 심판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복”(옷)을 입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비유로 설명하셨습니다.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 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거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22:11~14).

또한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할 세상 역사의 마지막 교회로 예언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도 마지막 시대에 사는 성도들은 반드시 희고 깨끗한 의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사실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계 3:18). 그러므로 옷을 입는다는 의미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옷 = 흰 세마포 = 성도들의 의 = 그리스도의 의

아마겟돈 전쟁에서 누가 승리할까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입니다. 그러나 이 이스라엘은 유대인의 피를 가지고 있는 혈통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흰 옷,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고 있는 영적 이스라엘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온 마음과 생애로 받아들여서 회개하고 새롭게 거듭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진리와 계명에 순종하는 의로운 생애를 사는 사람들은 국가와 민족, 혈통과 관계없이 아마겟돈 전쟁에서 최후의 승리를 얻게 됩니다. 곧 자아가 죽고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가 늘 내재함으로 자신의 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마음속에 덧입혀진 사람들이 의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며, 바로 이것이 아마겟돈 전쟁에서 승리를 얻는 비결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아마겟돈 전쟁의 승리자들에 대해서 “누구든지”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계 16:15).

제3부 사탄의 군대를 지휘하는 세 장군들의 정체와 그들의 전략

요한계시록은 이 지구의 마지막 전쟁인 아마겟돈 전쟁을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들과 전능하신 하나님 사이의 전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들은 사탄의 편에 서서 그의 악령들의 능력과 사주를 받아서 최전방에 나서서 싸우게 될 세 장군들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들의 정체를 올바로 파악한다면, 아마겟돈 전쟁을 위하여 세워놓은 사탄의 전략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누가 또는 무엇이 사탄이 사용하는 세 장군들일까요? 요한계시록 16장에 나오는 아마겟돈 전쟁의 장면을 자세히 확인해봅시다.

세 장군들의 정체와 전략

1) 세 장군들의 이름

사도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에 모여 있는 하나님의 군사들을 보면서 “옷”을 입고 있다고 묘사했던 것처럼, 사탄의 깃발 아래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라고 기록하였습니다(계 16:13, 14). 바로 여기에 사탄이 사용하는 세 장군들의 정체가 그려져 있는데, 그들은 “세 더러운 영” 즉 “귀신의 영”들이며, 그들 각자의 이름은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입니다.

2) 세 장군들의 전략

사도 요한은 세 장군들, 즉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아마겟돈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하여 어떻게 사람들을 기만하여 사탄의 편으로 끌어들인다고 했습니까?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계 16:14). 그들의 전략은 “이적”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온 세상 사람들을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시키고, 그의 표를 강요하기 위하여 사용한 전략인 “큰 이적을 행하”는 작전은 아마겟돈 전쟁에서 사탄의 세 장군들이 사용한 전략입니다. 아마겟돈 전쟁에서 사탄은 세 더러운 영들, 즉 거짓 선지자와 짐승과 용을 사용해서 온 세상 사람들뿐만 아니라 “온 천하 임금들” 즉 각국 정부의 권력자들까지도 기적으로 미혹해서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라고 했습니다. 개구리는 혀로 먹이를 잡아먹습니다. 이것은 혀를 사용한 거짓 가르침으로 사람들을 속여 사탄의 먹이로 만들어 갈 것을 상징합니다.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계 16:13). 세 더러운 영들은 이적과 함께 거짓 가르침으로 사람들을 기만하여 마지막 때에 준비되지 못하게 하며 아마겟돈 전쟁에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항하여 전쟁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3) 세 장군들의 정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사탄의 세 장군들은 총과 미사일을 사용하는 군대가 아니라 종교적인 세력이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이적”은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종교의 영역에서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 장군들 중에서 하나가 “거짓 선지자”라고 표현된 것을 보아서도, “세 더러운 영”들인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공언하는 기독교뿐만 아니라 뉴 에이지나 강신술과 같은 이방 종교를 포함한 종교적 세력임이 틀림없습니다. 서로 다른 종교들이 사탄이 베푸는 놀라운 기적을 통하여 하나의 세력으로 연합하게 될 것입니다. 용은 요한계시록 12장 9절에 사탄이라고 그 정체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용은 이교의 세계와 세상에서 역사하는 사탄의 강신술과 거짓 계시들을 말합니다. 짐승은 요한계시록 13장에 그 정체가 나타나 있는 교황청의 세력을 말하고, 거짓 선지자는 타락한 개신교회들을 의미합니다.

세 장군들의 기만 전술을 피하는 방법

사탄이 조종하는 이 세 장군들의 기만으로부터 피할 방법이 있을까요?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 벌어지는 대전쟁의 쟁점과 공격 목표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마지막 대전쟁의 핵심 쟁점(issue)일까요? 요한계시록 12장에는 사탄이 마지막 시대에 총력을 기울여서 싸우는 공격 목표가 나오며, 14장에는 짐승의 표를 거절하고 승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사탄의 공격 목표

“용(사탄)이 여자(교회)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계 12:17). 사탄과 그의 세 장군들은 “여자의 남은 자손”을 없애기 위하여 총력을 기울일 것인데, 그 “여자의 남은 자손”은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지막 시대에 사탄의 공격 목표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며 그들은 짐승의 우상을 경배하지 않고 그의 표를 받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사도 요한의 계시를 살펴봅시다.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1,12). 요한계시록 12장과 14장에 기록된 이 두 말씀은 모두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서 벌어지는 대전쟁이 “하나님의 계명”을 중심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 바로 이것이 마지막 시대에 일어나는 대전쟁의 중심이며, 모든 혼돈과 기만을 벗어날 수 있는 열쇠입니다.

2) 승리하는 자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또 한 가지 논리적인 예측을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아마겟돈 전쟁에서 승리하는 자들도 “하나님의 계명”대로 순종하는 거룩한 생애를 사는 자들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다시 요한계시록으로 가서 과연 어떤 사람들이 아마겟돈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게 되는지를 확인해 봅시다.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계 16:15). 역시 하나님의 말씀은 아마겟돈 전쟁의 최후 승리자들의 모습에 대해서도 동일한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깨어서 자기 옷을 지”키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의를 상징하는 흰옷을 입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진짜 이스라엘이며, 참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로서, 하나님의 진리와 계명에 순종하는 삶을 통하여 거룩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입니다. 사탄이 “이적”과 거짓 가르침을 통하여 온 세상을 기만할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계명”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을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사탄과 세 더러운 영들인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의 기만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을 부인하고, 좁은 길을 걸으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거룩한 그리스도인의 생애를 사는 것입니다. 반면에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이기심과 탐욕을 버리지 않은 채, 각종 은사와 기적을 추구하면서,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구원에 대한 감정적 확신을 얻고자 노력하는 자들은 세 가지 종교 세력들에 의해서 가장 쉽게 기만당할 수 있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계명”이 폐하여졌다고 가르치면서, 기적과 각종 은사만을 강조하는 종교 세력을 조심해야 합니다! 계명에 순종하지 않는 죄 된 삶을 살아도 구원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설교하는 종교 세력을 조심하십시오!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은 율법주의라고 가르치는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하십시오! 오늘날 기독교회 안에, “하나님의 계명”에 대해서 그토록 많은 오해와 비난이 쏟아지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과 예수 그리스도의 경고

바로 이러한 이유로 사도 바울도 “그때(말세)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을 행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던 것입니다(살후 2:8~10).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한 모든 사람은 기만당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살후 2:10). 그러므로 우리는 말세에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게 하는 “불법한 자” 즉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모든 능력과 기적과 속임수를 행할 것이라는 바울의 경고를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마태복음 24장에 재림의 징조를 설명하시면서 “사람의 미혹을 주의하라”는 경고를 6번이나 반복하시면서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다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마 24:24). 또한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고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7:21~23).

사탄과 그의 사자들은 총력을 다하여 사람들을 기만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외면적으로 볼 때는 거짓 그리스도인들에게 마치 하늘의 놀라운 능력과 기적이 임하는 것처럼 보이게 될 것인데, 온 세상 사람들과 이방 종교인들도 그들의 놀라운 기적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놀랍고도 기만적인 분위기하에서 온 세상의 국가와 정부 권력자들까지도 미혹당하여 세 종교 세력, 즉 사탄이 지도하는 이방 종교의 강신술 세력(용)과 교황청 세력(짐승), 그리고 타락한 개신교회(거짓 선지자)의 연합된 요구에 따라서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표를 받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사형 명령을 내리는 일을 추진하게 될 것이며, 이러한 놀라운 기만적 분위기는 아마겟돈까지 연결될 것입니다. 마지막 시대의 대전쟁은 연합된 종교 세력과 국가가 연합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함으로써 극에 달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소수의 무리는 온 세상의 비난과 조롱과 핍박하에서도 하나님의 충성된 백성으로 그들의 자리를 지키게 될 것입니다.

제4부 아마겟돈 전쟁은 언제, 어떻게, 어디에서 일어날까?

아마겟돈 전쟁이란 마지막에 전 세계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향하여 감행하는 악인들의 최후 공격을 말하며, 사탄의 백성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에 있을 전쟁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성경적인 해석입니다.

그렇다면 아마겟돈 전쟁이 언제쯤 어떻게 일어날까요?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요한계시록에 기록되어 있는 마지막 사건들의 순서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마지막 사건들이 일어날 순서를 알면, 아마겟돈 전쟁의 전후에 일어날 일들에 관해 알 수 있으며, 그 전쟁의 배경에 관해서도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요한계시록이 말하고 있는 마지막 사건들의 순서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짐승의 표 환난

마지막 사건은 짐승의 표를 강요하는 사건으로 시작됩니다.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계 13:15~17). 이 말씀은 사탄과 그의 지상 대리자들에 의해서 전 세계적으로 짐승의 표가 강요되고, 그 표를 받지 않는 사람은 사고파는 매매를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누구나 죽임을 당하게 된다는 사형 명령이 세계적으로 발표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경고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마치 하나님과 사탄 중간에 서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짐승의 표가 세계적으로 강요되는 그날이 오면,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경배하든지 사탄을 경배해야 하는 마지막 선택을 해야만 하는데, 그때 세상은 완전히 두 개의 진영으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인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경배하게 될 것이고, 사탄에게 속한 무리는 짐승을 경배함으로써 그의 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짐승의 표를 받을 뿐 아니라,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기를 거절하고 그 표를 받지 않는 소수의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나아가서는 그들을 죽일 것인데, 바로 이것이 지구 역사의 마지막에 있는 선과 악의 마지막 대전쟁입니다.

한 가지 특이하다고 할 만한 사실은, 온 세계가 둘로 나누어지는 배경에는 누구를 경배(worship, 예배)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경배”라는 단어는 종교계에서만 사용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무리뿐만 아니라, 짐승을 경배하는 무리도 기독교인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양쪽 다 기독교인들이 중심 세력을 이루게 될 것인데, 한 무리는 하나님의 참 백성으로만 형성될 것이며, 다른 무리는 거짓 기독교인들과 이방 종교,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연합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 사항은 “어떻게 이방 종교와 세상 사람들이 거짓 그리스도인들과 연합하게 될 것인가?”라는 점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에는 이 의문에 대한 힌트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계 13:13,14). 바로 여기서 우리는 사탄이 이방 종교인들과 세상 사람들을 하나로 끌어모으는 방법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놀라운 거짓 기독교인들이 행하는 놀라운 “기적과 이적”입니다. 사탄은 자신의 대리자인 거짓 기독교인들에게 능력을 줌으로써 온갖 기적을 행하게 하는데,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세상 사람들이 경이로운 마음을 가지고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도록 미혹할 것입니다.

은혜의 시간의 끝

마지막 시대를 위한 가장 두려운 경고의 말씀이 요한계시록 14장 9~10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이 말씀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가 짐승의 표를 받고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서 완전히 거두어지면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 부어지게 될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사탄의 세력은 짐승의 우상을 세우고 온 세상 사람들에게 경배를 강요 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최종적으로 거절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참 백성을 핍박하고 죽이는 일들을 자행함으로 인류의 반역과 죄악은 그 한계를 채우게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에 대한 은혜와 자비의 손을 거두실 수밖에 없게 되고, 이로써 마지막 일곱 재앙은 시작됩니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계 15:1).

온 세상이 사탄의 대리자들이 일으키는 기적과 이적에 기만당하여 짐승의 우상을 경배하지만, 하나님의 참 백성은 목숨을 걸고 짐승의 우상에 대한 경배와 짐승의 표를 거절합니다. 이러한 거절이 하나로 연합된 사탄의 대리자들과 세상 사람들의 마음속에 핍박의 정신을 불타오르게 만듭니다. 수많은 성도가 순교자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대전쟁은 선과 악의 전쟁입니다. 마지막 대전쟁은 짐승의 표를 받은 악인들과 그것을 거절한 의인들 사이의 전쟁입니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숫자가 훨씬 더 많고, 하늘의 놀라운 기적과 능력이 자신들과 함께 하므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이유로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의인들을 핍박하며 죽이려고 달려들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참 백성은 온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과 조롱과 오해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장면에서, 하나님께서는 일곱 재앙을 악인들에게만 내리도록 하심으로써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십니다. 이때 세상의 은혜의 시간이 끝나는 것입니다. 악인들은 재앙의 원인을 의인에게로 돌림으로써, 박해의 불길을 더욱 드높일 것이지만, 계속되는 재앙들을 통하여 악인들의 마음에 ‘왜 우리와 연합하지 않는 저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재앙이 내리지 않는데, 우리에게는 온갖 재앙이 내릴까?’라는 의혹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일곱 재앙이 의인들에게도 불편과 어려움을 줄 것은 사실이지만, 악인들에게만 직접적으로 가해질 것입니다.

일곱 재앙

짐승의 표 강요 사건이 세계적으로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받은 악인들에게 내리는 일곱 재앙 역시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일곱 재앙의 순서와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일곱 재앙이 내리는 시점은 짐승의 표가 강요돼서, 사람들이 짐승의 표를 받고, 짐승을 섬길지 하나님을 섬길지 각 사람의 운명이 결정지어진 이후라고 성경 자체가 답을 주고 있습니다. 일곱 재앙 중 첫째 재앙부터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에게 내린다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첫째 재앙: “첫째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매 악하고 독한 헌데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나더라” 지금은 의인과 악인이 같이 질병과 전염병의 피해를 보지만, 이때부터는 오직 짐승의 표를 받은 악인들에게만 재앙이 집중적으로 내립니다.

둘째 재앙: “둘째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

셋째 재앙: “셋째가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더라”

넷째 재앙: “넷째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다섯째 재앙: “다섯째가 그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하고 저희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더라” 다섯째 재앙은 짐승의 보좌가 있는 장소를 암흑으로 두르는 재앙입니다. 이 재앙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짐승의 세력의 정체와 그가 존재하고 있는 장소를 밝히 드러내실 것이며, 누구 때문에 일곱 재앙을 내리게 되었는지를 나타내 보이십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누가 진짜 하나님의 백성이며, 어떤 무리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무리인지를 온 세상 앞에 명백하게 드러내실 것입니다.

여섯째 재앙: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계 16:12~16)

바로 이것이 우리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주제인 아마겟돈 전쟁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아마겟돈 전쟁이 일곱 재앙 중에서 여섯 번째로 내리는 재앙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마겟돈 전쟁은 사탄의 편과 하나님의 편 사이에 벌어지는 대전쟁인데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참여하게 되는 영적 전쟁입니다. 사탄의 편에서 이 전쟁을 주도하는 세력은 “세 더러운 영” 즉 “귀신의 영”들이고, 하나님의 편에서는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들, 즉 하나님께 목숨을 다하여 충성을 바치는 진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일곱째 재앙: “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잔을 받으매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데 없더라 또 중수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니 사람들이 그 박재로 인하여 하나님을 훼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 이러한 일곱 재앙을 통과하면서 지구는 황폐하게 될 것이고, 그때 예수님께서 재 강림하셔서 의인들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아마겟돈 전쟁은 어디서 일어날까?

아마겟돈 전쟁에서 사탄의 대리자들인 세 더러운 영들이 어디로 사람들을 모은다고 하였습니까? “세 영이 히브리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계 16:16).

사도 요한은 전쟁이 일어나는 곳을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고 불리는 곳은 어딜까요? 히브리어와 헬라어에 정통한 학자들은 사도 요한이 말한 아마겟돈(Armageddon)은 헬라어로 Har-megedo(산-므깃도) 이며, 이것은 “므깃도의 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데에 의견을 모읍니다.

그러면 “므깃도”란 어디일까요? 그것은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와 바알신의 거짓 선지자들 사이에 대전쟁이 벌어졌었던 “갈멜산”의 아래에 펼쳐져 있는 조그만 평야와 계곡의 지명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 그리고 헬라어로 Har-megedo(므깃도의 산)이라고 불리는 곳은 구약 성경에 나오는 “갈멜산”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마겟돈 전쟁을 실제적인 중동 전쟁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 갈멜산 아래에 있는 평야와 계곡에 온 세상의 군대들이 집결하여 이스라엘 군대를 공격하는 전쟁을 벌인다는 말일까요?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많은 군대가 모여서 전쟁을 벌이기에는 이 갈멜산 아래에 있는 평야가 너무나 협소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을 한번 방문해본 사람이라면, 아무도 그곳에서 온 세계로부터 집결한 수많은 군대가 전쟁을 치르게 되리라 생각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마겟돈 전쟁을 중동 지역에서 일어나는 실제적인 전쟁이라고 생각하는 견해는 비성서적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과 사탄의 대리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대전쟁을 설명하면서, 왜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인 갈멜산을 언급하고 있을까요? 사도 요한은 구약 시대에 갈멜산에서 있었던 선지자 엘리야와 바알신의 거짓 선지자들 사이에 있었던 투쟁을 통하여 아마겟돈 전쟁을 묘사하기 원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러므로 갈멜산에서 있었던 투쟁과 아마겟돈 전쟁에서의 대전쟁을 비교하면, 아마겟돈의 실체를 좀 더 정확하게 엿볼 수 있습니다.

요한은 구약 시대에 있었던 갈멜산에서의 투쟁을 통하여 세상 끝에 있을 아마겟돈 전쟁을 상징적으로 조명하였습니다. 그 당시의 정치 세력인 아합왕권과 종교 세력인 바알신의 거짓 선지자들이 연합하여 하나님의 참 백성인 엘리야를 향하여 집중적으로 공격하였던 극적인 클라이맥스가 갈멜산에서 있었던 것처럼, 사탄의 거짓 종교 세력과 그들에 의해서 미혹당한 세상 정권들이 연합하여 마지막 시대의 엘리야인 소수의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핍박과 박해의 불길을 치솟게 하는 클라이맥스가 아마겟돈 전쟁입니다. 이 마지막 투쟁의 결과, 갈멜산 위에서 바알의 거짓 선지자들의 기만이 폭로되어 죽임을 당했던 것처럼, 아마겟돈 전쟁에서도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의 기만적인 정체가 폭로되고, 모든 사람의 지지가 끊기고 그들은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아마겟돈 전쟁은 어디서 일어날까요? 이 전쟁은 중동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하나님의 참 백성에 대한 핍박의 불길인 동시에, 선과 악 사이에 존재하는 마지막 영적 대전쟁입니다.

제5부 유브라데 강물이 마른다는 의미와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정체

유브라데 강물이 마른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제, 우리는 아마겟돈 전쟁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또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계 16:12).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글자 그대로 유브라데 강물이 실제로 마르면서 동쪽으로부터 왕들이 오게 된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이것은 어떤 다른 상징적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실제가 아니라 상징

유브라데 강이 마르는 사건을 실제로 해석하지 않고, 상징으로 해석해야만 하는 이유는, 유브라데 강은 그것이 말라야만 현대식 장비를 갖추고 있는 군대가 도하 작전을 펼칠 수 있을 만큼 넓고 깊은 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강물이 아무리 많이 불어나 있을 때라도 요즘처럼 현대화된 군대에는 전혀 장애가 될 수 없습니다. 가장 도하하기에 적합한 지역으로 볼 수 있는 시리아 지역의 강폭은 불과 1마일 미만에 불과합니다.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낡은 장비를 가지고 있던 연합군도 악천후 속에서 폭이 100마일이 넘는 영국 해협을 도하하는 데 성공했던 사실을 돌이켜 보면, 오늘날의 초현대식 군대가 유브라데 강이 기적적으로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도하 작전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시대에 뒤떨어진 이야기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라도, 우리는 유브라데 강이 마르는 사건을 상징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재 강림하시기 직전에 유브라데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사도 요한은 구약 성경으로부터 두 가지 사건을 빌려와서 아마겟돈 전쟁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앞에서 설명하였던 갈멜산에서의 사건이고 나머지 다른 하나는 지금 설명하고자 하는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유브라데 강을 기이한 방법으로 말림으로써 바벨론을 멸망시켰던 사건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고레스 왕이 유브라데 강물을 말리게 된 사건의 배경과 모습을 살펴봄으로써 아마겟돈 전쟁에서 유브라데 강물이 마르는 사건의 의미를 알아보도록 합시다.

고대 유브라데 강물이 마른 사건

먼저, 이 사건의 시대적 배경을 잠시 살펴봅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불순종의 길을 걷자, 바벨론 제국의 포로로 잡혀가서 종살이하는 고난을 허락하셨습니다.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바벨론을 정복하던 해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지 거의 70년이 되던 때였습니다. 고레스 왕은 그 당시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바벨론 성을 함락시키기 위해서 특별한 전략을 생각해 내어야만 했습니다. 역사가들의 기록에 의하면, 고레스 왕은 비밀리에 유브라데 강물을 옆으로 빼돌림으로써, 강물의 수위를 크게 낮추는 데 성공하였고, 이로 인하여 유브라데 강물이 관통하여 흐르던 성 밑 수문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달밤에 고레스 왕의 군대는 유브라데 강의 하상을 도보로 걸어서 바벨론 성안으로 침입하여 들어가 바벨론을 점령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고레스 왕이 이 땅에 태어나기 150여 년 전에 이미 “고레스”란 이름을 정확하게 지목하시면서 위에서 언급한 고레스 왕의 전략을 다음과 같이 예언해 놓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깊음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마르라 내가 네 강물들을 마르게 하리라 하며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세움이 되리라 하는 자니라”(사 44:27,28). 하나님께서는 고레스 왕이 유브라데 강물을 말리는 전략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으로부터 해방시킬 것과 폐허가 된 예루살렘 성전이 중건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을 아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예언적 안목입니까!

사도 요한은 바로 이러한 고레스 왕의 전략을 인용하면서,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고 기록하였던 것입니다(계 16:12). 유브라데 강은 바벨론 성을 관통하여 흐름으로써, 고대 바벨론을 유지하는 생명줄이었습니다. 유브라데 강물이 마른다는 것은 곧 바벨론의 생명줄이 끊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영적으로 아마겟돈 전쟁에 적용하면, 구약 시대에 고레스 왕이 유브라데 강물을 빼돌림으로써 바벨론 성을 함락시켰던 것처럼, 마지막 시대의 아마겟돈 전쟁에서는 하나님께서 사탄의 세 장군들(용, 짐승, 거짓 선지자)로 등장하는 세 종교 세력인 영적 바벨론을 지지, 후원하던 젖줄을 마르게 하심으로써 사탄의 세 장군들을 몰락시킨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사탄의 세 장군들인 영적 바벨론을 지지하던 세력이 어떻게 마르게 될까요? 요한계시록 17장에 그 힌트가 나옵니다.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계 17:15). 그렇습니다. 유브라데 강의 “물”은 백성, 즉 많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유브라데 강이 마른다는 뜻은 온 세상 사람들이 사탄의 세 장군들(용, 짐승, 거짓 선지자)에게 보내던 지지와 후원을 중지함으로써, 사탄의 세 장군들이 권력을 잃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고대 유브라데 강이 바벨론을 유지하게 하는 주요 자원이지만, 후에는 바벨론을 멸망시키는 원인이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영적 유브라데 강의 “물”(백성, 사람들)은 영적 바벨론의 세력을 파멸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유브라데 강물이 갑자기 마르는 이유

그런데, 왜 온 세상 사람들이 사탄의 대리자들에게 보내던 지지와 후원을 갑자기 중지할까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일곱 재앙을 악인들에게만 내리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재앙인 아마겟돈 전쟁의 전후에 나오는 다섯째 재앙과 일곱째 재앙,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요한계시록 17장에 차례로 나오는 장면들은 유브라데 강물이 갑자기 마르는 이유와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다섯째 재앙: “여섯째가 그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고”(계 16:10). 하나님께서는 “짐승의 보좌”가 있는 장소를 암흑으로 두름으로써, 사탄의 세 장군들 중의 하나인 짐승의 정체와 그가 존재하고 있는 장소를 밝히 드러내실 것이며, 누구 때문에 일곱 재앙이 내리게 되었는지를 나타내 보이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탄의 대리자들의 기만적인 정체를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일곱째 재앙: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분노의 잔을 받으니”(계 16:19). 여기서는 아마겟돈 전쟁에서 사탄의 세 장군들 역할을 했었던 세 더러운 영인 용, 짐승, 거짓 선지자의 연합 세력이 바벨론이라는 이름을 달고서 등장합니다. 일곱 번째 재앙에는 하나님의 참 백성을 괴롭히던 바벨론이 무너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종교 세력뿐만 아니라, 이들을 후원하던 각국의 정치적 세력들도 붕괴합니다.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계 16:19).

악인들은 재앙의 원인을 의인들에게로 돌림으로써, 박해의 불길을 드높이지만, 계속되는 재앙들을 통하여 악인들의 마음에 “왜 우리와 연합하지 않는 저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재앙이 내리지 않는데, 우리에게는 온갖 재앙이 내릴까?”라는 의혹이 생기게 됩니다. 또한 자신들이 핍박하는 소수의 사람들의 생애와 성품에 나타나는 거룩한 증거들을 보면서 자신들이 사탄에게 기만당했음을 마침내 깨닫게 됩니다. 특히 다섯째 재앙을 통해 짐승의 보좌가 어두워지면서 일곱 재앙이 내리도록 한 원인은 의인들이 아니라 짐승의 세력과 그 세력과 함께한 사탄의 대리자들임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일곱 재앙의 고통스러운 과정 속에서, 사탄의 세 장군들에게 보내던 세상 사람들의 지지와 후원은 완전히 중단됩니다.

요한계시록 17장에는 유브라데 강물이 마르는 장면이 좀 더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바벨론이 음녀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 그(여자)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라 …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계 17:1,2,5,15,16). 요한계시록 17장 후반부에는, 세상 사람들이 사탄의 세 장군들(용, 짐승, 거짓 선지자)에게 보내던 지지와 후원을 완전히 중단할 뿐 아니라, 그들을 향하여 참혹한 복수를 가하는 두려운 장면이 나옵니다. 바로 이러한 과정이 영적 유브라데 강물이 말라가는 과정이고,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됩니다.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제 우리는 아마겟돈 전쟁에서 제일 마지막 장면을 살펴볼 것입니다. “또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 강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계 16:12). 하나님의 백성을 위기의 순간에 극적으로 구원해 내기 위하여 동쪽에서 나타나는 동방의 왕들은 누구일까요?

1) 도적같이 나타나는 이스라엘의 구원자

아마겟돈 전쟁을 설명하는 요한계시록 16장 본문에서 직접 그 정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계 16:14,15). 이 말씀에는 사탄의 세 장군들인 “세 더러운 영”들이 이적을 통하여 온 천하의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장면이 나오면서, 예수께서 “도적같이” 재 강림하시는 모습이 나타나고, 이어서 재 강림 때에 승리하며 살아남게 될 사람들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그려져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동방(동쪽)에서 오는 왕들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나타나는 방향을 동쪽으로 표현합니다.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 24:27).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편에서부터 오는데 … 땅은 그 영광으로 인하여 빛이 나니”(겔 43:2).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동쪽)로부터 올라와”(계 7:2).

그렇다면 왜 예수님의 재 강림을 “동방에서 오는 왕들”이라는 복수로 표현하였을까요? 왜냐하면 그때에는 천만천사들을 대동하고 오시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19장에는 “동방의 왕들”이 오는 모습이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오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계 19:14,16). 계속해서 이어지는 장면에는 예수께서 천만천사 대군과 함께 재 강림하시면서 아마겟돈 전쟁의 전범들을 체포하여 심판하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계 19:20,21).

2) 고레스 왕은 이스라엘의 구원자

구약 시대의 고레스 왕의 이야기를 아마겟돈 전쟁에서 유브라데 강물이 마르는 사건에 영적으로 적용하였다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을 위기의 순간에 극적으로 구원하는 사건에도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구약 시대에 고대 이스라엘을 바벨론의 압제에서부터 구원하기 위해서 동방에서 온 고레스는 영적 이스라엘을 영적 바벨론에서 구출하는 “동방에서 오는 왕들”을 표상하는 인물입니다.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에 대하여 소개하는 표현을 살펴보면, 마지막 시대에 아마겟돈 전쟁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해 내는 동방에서 오는 왕들이 누구인지를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

“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키며 … 열국으로 그 앞에 굴복케 하며 … 나의 목자라 …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사 41:2; 44:28; 45:1).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킨 고레스 왕에 대해서 사용하고 있는 다음과 같은 4가지 표현, 즉 (1) 동쪽 방향에서 나타나시고, (2) 모든 악인들의 국가들을 굴복시키고, (3) 목자라는 호칭을 가지고 있으며, (4)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소개를 받을 수 있는 분이 누구일까요? 오직 한 분밖에 없는데,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마지막 시대에 사탄의 대리자들에게 쫓기고 핍박받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재림이야말로 유일한 소망입니다. 애굽의 바로왕 군대에게 쫓기던 고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홍해를 가르셨던 예수님께서, 아마겟돈 전쟁에서는 마지막 위기의 순간에 하늘을 가르시면서 나타나심으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셔서 하늘로 데려가실 것입니다.

마치면서

지금까지 우리는 아마겟돈 전쟁은 실제적인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과 사탄의 대리자들 사이에 있을 최후의 영적인 전쟁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왜 수많은 기독교인은 아마겟돈 전쟁을 실제적인 전쟁으로 생각하게 되었을까요? 이렇게 기독교인들의 눈이 멀게 된 이유는 예수회가 만들어낸 세대주의 신학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종교개혁 운동으로 큰 타격을 받은 카톨릭은 예수회를 통해 반종교개혁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성경에 예언된 적그리스도의 정체를 가리고 기독교인들이 성경의 예언들을 이해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세대주의 신학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들은 비밀조직을 만들고 그들을 이용하여 세대주의 신학에 맞춰 세계정세를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더 자세한 사항은 [239호 이스라엘과 이슬람에 대한 성경 예언과 마지막 시대] 월간지의 신앙 기사들을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인터넷 주소창에 아래 주소를 입력하시면 바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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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말세에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전쟁들이 있을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마 24:7). 중동에서 3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것이 성경이 예언한 아마겟돈 전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마겟돈 전쟁은 3차 세계대전보다 훨씬 더 무섭고 두려운 전쟁입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사탄의 대리자들 사이에 일어나는 영적인 전쟁은 우리의 목숨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까지 담보로 하는 전쟁입니다. 과연 누가 사탄의 기만을 분별하고 끝까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설 수 있을까요? 우리는 아마겟돈 전쟁에서 승리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는 것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자신이 죽고 마음속에 예수님께서 온전히 임재하시는 경험을 매일 하는 사람만이 아마겟돈 전쟁을 위해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사탄의 대리자들은 이 마지막 시대에 사람들을 기만하여 아마겟돈 전쟁에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항하여 전쟁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두 무리가 갈라지고 있으며 서로 전쟁을 위하여 칼들을 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할 마지막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때 나는 과연 어느 무리에 속해 있을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갑옷을 입음으로 죄를 승리하고 예수님의 성품인 흰 세마포를 덧입어 아마겟돈 전쟁에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