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5449) 썸네일형 리스트형 JP “김재규의 발작증, 박 대통령은 몰랐다”“차지철 그놈 죽여야” 김 부장 입에 달고 살아 1973년 12월 27일 서울 중앙청 국무총리 집무실로 김재규 중정차장이 찾아와 김종필 총리에게 신임 인사를하자 김 총리가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하고 있다. 김 차장은 이때부터 동갑인 JP에게 “총리 각하”라고 호칭하기 시작했다. 김재규는 박 대통령의 동기(육사 2기)·동향(경북 구미)이다. [사진 국가기록포털] 1974년 육영수 여사가 돌아가신 뒤 대통령의 정밀한 판단력이 흐려지는 징후는 여러 군데서 드러났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생활의 균형을 잡게 한 건 육 여사였다. 그분이 세상을 뜨자 대통령은 생각과 행동의 균형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분할하여 통치한다는 박 대통령의 ‘디바이드 앤 룰’(divide & rule)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권력의 추는 2인자 행세를 하는 차지철 경호실장 쪽으로 쏠리고.. 10·26 그날 … 김재규, 박정희 향해 "야, 너두 죽어봐" 1964년 2월 국회 국방위 소속 차지철 의원( 오른쪽)이 6사단을 방문, 김재규 사단장(준장)을 옆에 앉힌 채 상석에서 브리핑을 받고 있다. 포병 간부 출신인 차지철은 중령으로 예편했고, 육사 2기 김재규는 차 의원보다 여덟 살 많다. 김재규는 차지철의 안하무인 격 행동에 분격하곤 했다. [사진 국가기록포털] 1979년 10월 26일 밤에서 27일 동트는 아침까지 나는 청와대에 있었다. 나는 1층에서 마주친 김계원 비서실장을 끌고 2층 그의 사무실에 올라갔다. “김 실장은 시종 옆에서 다 봤을 테니 자세한 얘기를 하나도 생략하지 말고 내게 다 해주시오. 언제 필요하면 그 정황을 남겨 놓고 나도 죽어야겠소.” 나도 모르게 비장한 말투로 그를 재촉했다. 그의 양복 윗도리는 대통령이 흘린 피가 배어 거무스름.. 경부고속도로 건설 고속도로는 이제 우리 생활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레 자리잡고 있다. 지금 와서는 정부 최고결정권자의 식견이 국가발전에 미치는 영향력의 지대함을 거론할 때 대표적인 사례로 등장하는 박정희 (朴正熙) 의 고속도로 건설도 당시에는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박정희는 67년 4월 제6대 대통령선거 공약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 구상을 처음 밝혔다. 그해 12월에는 국가기간 (基幹) 고속도로건설 계획조사단을 만들어 '단군 이래 최대의 역사' 로 일컬어진 경부고속도로 건설사업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반대는 거셌다. 야당과 언론은 사업검토가 불충분한 정치공사라고 몰아붙였다. '대원군 (大院君) 이 경복궁을 짓다가 쫓겨났듯이 박정희도 경부고속도로를 만들다가 망할 것' 이라는 저주어린 비난도 있었다. 여당과 정부의 고위인사 중에서.. “박정희 경제성장률의 진실”의 진실 “박정희 경제성장률의 진실” 이라는 글은 몇년째 인터넷에 퍼져서 꾸준히 올라오고 공유되는 글이다. 이 글의 원출처를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데, 출처는 Barry Lee 라는 분의 글(1편 / 2편)이다. 블로거이자 헤비 트위터리안이었는데, 2012년 미국에서 수술 중 사고로 사망했다. 먼저 불행한 사고로 돌아가신 고인의 명복을 빈다. 1. 애초에 그래프가 잘못됐다 이 글은 사람들 사이에서 넓게 퍼졌는데, 원래는 잘못된 그래프가 있었다. Barry Lee 님은 나중에 이 그래프를 삭제했지만, 사람들이 퍼간 내용에는 이 그래프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그래프가 포함된 블로그가 이 포스팅이고, 그 잘못된 그래프가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한동안 공유되었다. 세계 연 경제 성장률 vs 한국 연 경제 성장률.. 외환위기 IMF 외환위기는 우리나라 경제뿐 아니라 정치·사회·문화 등 거의 전 분야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일대사건이었다. 정리해고 등 구조조정과 경기침체로 고통스러운 시기를 겪어야 했지만 그로 인해 환골탈태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경제 체질이 바뀌었다. 정부의 관치금융이 사라지고 기업들은 규모보다는 수익성 중심으로 사업을 했다. 외국자본이 국내에 대거 진출하는 계기가 됐고 사외이사제 등 여러 가지 외국 제도가 도입됐다. 외환위기 터지다 외환위기의 원인은 여러 가지로 나눠볼 수 있지만 단적으로 말한다면 경제개발기에 성공적이었던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 관치금융, 재벌체제 등이 오히려 위기를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기업들은 ‘문어발식 확장’으로 무리한 투자를 했고 몸집을 불렸다. ‘대마불사(Too big to fa.. 국채보상운동 1904년 한국을 경제파탄에 빠트려 일본에 예속시키려는 방법으로 강제적인 차관이 도입되었다 1904년의 고문정치 이래 일제는 한국의 경제를 파탄에 빠뜨려 일본에 예속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한국정부로 하여금 일본으로부터 강제로 차관을 도입하게 하였다. 1905년 일본은 식민지 기초 작업의 제일보로 한국의 문란한 화폐를 정리한다는 명목으로 화폐정리채 3백만 원을 차입해 들여왔다. 이어 그 해 12월에는 화폐개혁에서 비롯된 공황을 구제한다면서 1백 5십만 원을 또 차입하여 들였다. 고율의 이자가 가산되어 격증되는 국채로 2천만 민족이 국운의 절박함을 느꼈다 통감부 설치 이후 일제는 한국정부에 강요하여 교육제도의 개선, 금융기관의 확장정리, 도로 항만시설의 개수확충, 일본인 관리 고용 등 각종 명목으로 고이율의 .. 홍남기 “CPTPP 여론수렴”…결정은 차기정부로 미뤄 정부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위한 본격적인 여론 수렴 절차를 시작한다. 13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제226차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CPTPP 가입을 본격 추진하고자 다양한 이해관계자 등과의 사회적 논의를 바탕으로 관련 절차를 개시한다”고 했다. 그동안 CPTPP 논의에 소극적이었던 정부가 관련 여론 수렴을 시작했다는 것은 가입을 위한 첫발을 뗐다고 평가할 수 있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CPTPP) 개요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CPTPP는 일본·호주·캐나다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11개 국가가 참여한 메가 FTA(자유무역협정)이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13.5%와 세계 무역 15%를 차지.. "코로나 악화로 딸 학교 문닫고 사라졌다"서태지가 전한 근황 가수 서태지. [사진 스포트라이트] 가수 서태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딸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홈스쿨링 중이라고 밝혔다. 서태지는 지난 24일 ‘서태지 컴퍼니’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근황을 전했다. 그는 “1년 만에 글을 쓴다. 너무 소식이 없어 미안하다”며 “올해는 정말이지 전해줄 소식이 하나도 없어서 가만히 지내고 있었다”고 운을 뗐다. 서태지는 “2021년은 1년이 통째로 사라진 기분이다. 팬데믹이 2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도 믿어지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이번 연말은 연말 기분이 좀처럼 안 난다”고 했다. 이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딸의 학교에도 문제가 생겼다고 전했다. 그는 “작년 크리스마스 때는 이제 곧 담이(딸)가 학교에 갈 수 있을 거라 굳게 믿었는데 코로.. 이전 1 ··· 641 642 643 644 645 646 647 ··· 682 다음